최근에 영국의 런던 시내에서 대낮에 이슬람 급진주의자로 보이는 청년 두 명이 지나가는 군인을 칼로 죽였다. 범인들은 군인을 차로 치고 마체테와 식칼로 찌른 후 목을 잘라 참수(斬首)한 후에 시체를 끌고 다니다가 자동차가 다니는 차도 한 가운데에 버렸다. ‘마체테’(Machetes)란 아프리카 사람들이 사용하는 정글 벌채용 칼이다. 1994년에 일어난 르완다 내전 때에 100여일 만에 100만 명이 죽었는데 그 때에 사용한 살인 무기로 알려져 있다. 체첸계 미국 시민권자인 무슬림 형제가 범행을 저지른 보스턴 마라톤 현장 테러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이런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에 숨진 25살 드러머 리 릭비라는 이름의 군인은 2009년까지 아프칸 부대에서 두 차례 복무한 적이 있다고 전해졌다.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인 시민들이 엉겁결에 두려워하며 멀찍이서 바라만 보고 있을 때에 지나가던 시내버스에서 한 여성이 급하게 내렸다. 두 아이의 엄마이며 어린이 스카우트 지도자인 48살 잉그리드 로요 케네트는 살해당한 군인의 시체 곁으로 다가가서 범행의 현장을 확인 한 후에 그 곁에 있던 범인들에게 다가가서 “당신들이 그랬느냐. 왜 그랬느냐”며 대화를 시도하였다. 저들 범인들은 “위대한 알라의 뜻에 따라서 계속 싸울 것이다. 영국과 싸우겠다.”고 말하자 “둘이서 그 많은 영국인과 맞서 싸워서 어쩌려고? 그 손에 든 거 이리 줘봐”하면서 아이들을 달래듯이 말을 걸었다고 한다. 잉그리드 로요 케네트는 “마침 가까이에 있는 학교의 하교 시간이라 어머니들과 어린이들이 쏟아져 나올 시간이라서 다른 사람들을 더 공격할까봐 나에게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 계속 시간을 끌려고 대화를 이어 나간 것이다.”라고 그 순간의 용감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당시의 심정을 털어 놓았다. 범인들은 20여분 후에 출동한 경찰의 총에 맞고 체포되었다. 이 일로 영국의 데이비드 케머런 총리를 비롯한 온 영국인들은 그녀에게 ‘용감한 어머니’라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참극의 현장 곁을 지나던 시민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용감한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보여준 그녀의 즉각적인 행동은 참으로 담대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영국과 프랑스의 116년 전쟁의 역사에는 프랑스에 잔 다르크(Jeanne d'Arc, 1412-1431)가 있고 우리나라의 기미 독립 운동에는 유관순(柳寬順, 1902-1920) 열사와 같은 용감한 여성들이 있지 않은가.
이 세상에 완전한 평화가 영원히 보장 되는 곳이란 단 한 곳도 없다. 성경에서 소개하는 인류의 역사가 그러하다.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 동산인 에덴에서 시작된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도 살인은 있었다. 그것도 형이 동생을 죽이는 형제살해 사건 말이다. 이 같은 싸움과 보복과 살인과 전쟁과 죽음과 피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그 시간을 같이 해 왔다. 성경, 사사기 3장 이하에 보면 사사 옷니엘의 때에 평온을 유지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악이 극성을 부리게 되었고 사십년간의 평온이 깨어지고 에훗이 사사로 등장하였다. 성경은 나라 안에 평화가 사라지는 이유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라고 설명해 준다. 결국 하나님은 모압 나라의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셔서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규합한 모압의 세력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에게 위협이 되게 하셨다. 이스라엘은 열여덟 해 동안이나 모압 왕 에글론을 섬기는 참담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긴긴 세월의 핍박이 계속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하였다. 그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이 민족의 구원자로 세우신 인물이 왼손잡이 사사인 에훗이었다. 에훗은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치는 무리들 가운데 동행하였다. 조공을 바치고 돌아가던 이스라엘 진영에서 되돌아간 에훗은 에글론을 개인적으로 만나길 요청하였고 마침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던 모압 왕을 따로 만날 수 있었다. 에훗은 오른 쪽 허벅지 옷 속에 한 자 반 되는 길이의 양날 선 검을 차고 있었고 모압 왕 에글론을 단 칼에 처단하였다. 칼은 에글론의 등에 까지 꽂혔고 피와 기름에 엉겨 붙었다. 에훗은 그 칼도 뽑지 않고 비둔한 왕의 몸에 꽂아 놓은 채로 다락문을 잠그고 왕궁을 벗어나서 이스라엘 진영으로 도망하여 돌아 왔다. 에글론이 죽음을 당한 현장은 시간이 꽤나 지난 후에야 신하들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그 후에도 에훗은 모압사람들 중에서 장사와 용사들 약 만 명을 죽였다. 결국 모압은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하게 되었고 팔십년간 온 나라에 평온이 있었다. 에훗 후에 등장한 사사가 삼갈인데 그는 소를 모는 막대기 하나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일 정도의 용맹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한 용사였다.
에훗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나라에는 다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거역과 불순종이 팽배하였다. 하나님은 가나안 왕 야빈에게 이스라엘을 붙이셨고 저들의 학대가 이십년간이나 계속되었다. 고난과 학대 가운데 압제를 당하며 고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저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세우신 여 사사가 드보라이다. 드보라는 랍비돗의 아내인 여선지자였다. 드보라는 바락을 앞장 세워서 가나안의 왕 야빈과 전쟁을 벌였다. 하나님은 미리 드보라에게 전쟁 수행 방법을 전략으로 말씀하셨다. 싸움에 징병된 군대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들 중에서 만 명이었다. 하나님은 바락에게 군대를 이끌고 다볼 산으로 가라고 하셨고 야빈의 군대 장관인 시스라와 그의 병거와 무리들을 기손 강으로 이끌어서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시겠다고 드보라에게 미리 말씀하셨다. 이어서 사사 드보라는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라”(삿4:9)고 예언하였다. 전쟁은 벌어졌고 모세의 처남인 호밥의 자손인 겐사람 헤벨이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 나무 곁에 장막을 치고 지내게 되었다. 바락은 다볼 산에서 전열을 벌였고 가나안의 군대 장관 시스라는 기손 강 주변에 모든 병거를 집결 시키고 철 병거 구백 대를 앞장세우고 쳐 들어 왔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작전 개시를 선언하였다.
결국 가나안의 군대는 큰 혼란에 빠졌고 군대장관 시스라는 병거에서 내려서 도망치게 되었다. 이 전쟁으로 살아 남은 가나안의 군대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삿4:16) 도망치던 가나안의 군대 장관 시스라가 숨어 들어 간 곳은 헤벨의 아내인 야엘의 장막이었다. 야엘은 전쟁 중에 지칠대로 지친 군대 장관 시스라를 이불로 덮어 숨겨 주었다. 물을 달라고 하는 시스라에게 야엘은 우유 부대에서 우유를 따라 주었다. 갈증을 해결한 시스라는 찾는 자가 있으면 없다고 하라고 부탁하며 이불을 덥고 곧 잠이 들어 버렸다. 시스라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헤벨의 아내 야엘은 장막을 치는 말뚝을 가지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장막 안에 들어가서 잠든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박았다. 말뚝은 관자놀이를 꿰뚫고 땅에까지 박혔고 시스라는 기절하여 죽고 말았다. 추격하던 바락은 야엘의 영접을 받으며 그의 장막 안에 죽어 있는 시스라의 죽음을 확인하였다. 그 날로 전쟁은 끝났다. 성경은 이와 같은 전쟁의 역사를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신지라”(삿4:23)고 기록하였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야빈 세력을 점점 누를 수 있게 되었고 이스라엘 땅에 사십년간 평화를 주셨다.(삿4:24) 이처럼 전쟁과 평화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사사기 5장은 전체가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이다. 그 중에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12절)하는 노래와 함께 “겐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24절)는 가사가 이어진다. 그리고 노래는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31)라고 끝이 난다. 오늘 날 우리들의 시대에는 누가 과연 주를 사랑하는 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