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한 분파인 감리교는 영국의 요한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 목사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의 국교회였던 성공회의 목사였다. 뿐만 아니라 옥스퍼드 출신의 비국교도 목사요 개혁가였던 할아버지와 더불어 외할아버지는 ‘청교도의 대부’요 ‘영국의 사도바울’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경건과 학문과 목회 지도력이 탁월했던 비국교도의 목사였다. 그는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와 어머니 수산나의 19남매 중에서 15번째로 태어났다. 런던의 명문 차터하우스에서 어린 시절에 공부하였고 17살에 옥스퍼드에 입학하였다. 23살에 옥스퍼드에 교수로 임명 되었고 같은 해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동생인 찰스와 함께 몇몇 친구들과 매일 밤마다 모여 성경을 읽고 기도하였다. 뿐만 아니라 새벽마다 일어나서 오래도록 기도하였다. 초대교회의 전통을 따라서 매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금식하였다. 옥에 갇힌 이들을 찾아 가거나 과부와 고아와 가난한 이들과 환자들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였다.
이 같은 삶의 모습을 주변 사람들은 규칙쟁이들이라는 뜻에서 ‘methodist'라고 비웃었지만 그 후에 미국 선교 실패 경험의 우여곡절을 겪은 요한 웨슬리는 1738년 5월 24일 밤 8시 45분경에 경험한 런던의 올더스게잇에 위치한 한 작은 교회의 수요 예배 참석 경험을 전후로 역사적인 인물이 되어 가기 시작하였다. 그는 그 밤의 경험을 회중들 앞에 간증하였고 일기에 “I felt my heart strangely wormed."(나는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라고 썼다. 그와 같은 성령의 임재 체험은 그를 평생 복음 전도자로 쓰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그 날 이후로 요한 웨슬리는 88살의 나이에 하나님 앞으로 가기 까지 말을 타고 32만 킬로미터 이상을 다니며 영국 방방곡곡에서 전도하였고 4만여 번의 설교를 하였고 100여권의 책을 썼다. 한 사람의 진정한 회심과 경건한 생의 흔적은 당시의 영국뿐만 아니라 오늘 날까지도 세계 처처에 그런 복음의 열정을 가진 복음 전파자들에 의하여 계속하여 번져 가고 있다. 그는 평생토록 영국 교회를 떠나지 않기를 바랐으나 그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간 지 4년 후에 국교회와 결별하고 새로운 교단의 조직과 발전을 갖기 시작하였다. 미국에서는 웨슬리안들이 프랜시스 에즈베리와 토마스 코크를 중심으로 이미 1784년에 교단 설립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교회는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 곁에 일곱 명의 집사를 세운 것이 평신도 조직과 직제의 시작이다. 그 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은 복음을 전하다가 반대자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었다. 순교자가 된 것이다. 또 다른 집사인 빌립은 예루살렘에 복음에 대한 핍박이 점점 극심해져 가던 때에 사마리아 성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두려움에 가득 찼던 사마리아 성에 기쁨이 넘쳐나게 하는 복음의 촉매자가 되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 사도가 헤롯의 칼에 순교 당하였다. 동족이었던 유대인들은 헤롯의 그와 같은 만행을 기뻐했고 이에 힘을 얻은 헤롯은 베드로 사도까지 잡아 죽이려고 무교절 기간에 붙잡아 옥에 가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베드로보다 먼저 헤롯을 데려 가셨다. 사도행전 12장 23절은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고 하였다. 그 후로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흥왕하여 믿는 자의 수를 더해갔다.(행12:24) 구교인 가톨릭은 사도 베드로를 초대 교황이라고 칭한다. 사도란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신 동안에 제자로 부르셨던 열두 명이 그 시작이고 나중에 바울은 13편의 서신마다에서 자신도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됨을 누누이 강조하였다. 가롯 유다가 주님을 배반하고 빈자리는 제비 뽑힌 맛디아가 충원되어 사도의 수는 다시 열둘이 되었다. 사도이든 집사이든 저들은 모두가 다 복음 전파의 사명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교회의 역사는 그 수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조직의 필요성을 갖게 되었다. 오늘 날 소위 당회, 구역회, 지방회, 연회, 총회 등이 그것을 말한다. 장로교는 당회를 교인 총회라고 하고 연회를 시찰회라고 하며 최상위 구조를 총회라고 하기는 서로 마찬가지이다. 민수기와 신명기에 보면 ‘총회’(總會)라는 표현이 여러 차례 나온다. 거기서 언급하는 총회란 모세의 시대에 광야 생활을 하던 이백여 만의 히브리 백성들을 일컫는 말이다.(민19:20, 20:12, 신5:22, 9:10, 18:16, 23:1, 31:30, 33:4) 한 국가로 하면 그 나라가 보호하는 영역 안에서 특권과 혜택을 누리며 의무를 부여 받는 국민이 있듯이 하나님은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총회’라고 지칭하셨다. 하나님은 사십년 동안이나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뜨거운 햇볕을 가려 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차갑고 추운 광야 길의 어두운 밤을 밝혀 주셨다. 서울 연회에는 2012년 말 통계로 387곳의 크고 작은 교회가 있다. 그 중에는 정동제일교회와 같이 1885년에 시작된 128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도 있고 지난해에 갓 시작된 개척교회도 있다. 목회자가 1,069명이나 되고 교인 수는 자료 통계로 251,109명이다. 연회는 여러 기관별 보고를 받고 안건을 결의하는 회의도 하지만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별세 목회자를 추모하고, 다른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모국을 방문한 선교사들을 환영하며, 은퇴하는 목회자들을 축하하고, 새롭게 목사가 되는 이들을 안수하여 구별하는 예배를 드린다. 또한 갓 목회자가 되기로 준비하여 소정의 교육 과정을 마치고 목회의 첫 발을 들여 놓는 이들을 연회에서 받아들이는 허입식이란 순서도 있다. 그 모든 순서와 예배는 결국 목회자 한 사람이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아 성직자의 길을 가는 평생을 보게 하는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개인적으로는 19살에 신학교에 들어가서 1984년에 개척 교회를 시작으로 준회원인 전도사로 허입되었다. 그 삼년 후인 1987년 3월 27일, 29살 때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벌써 짧지 않은 세월이 흘러갔다. 남은 사역 기간 동안 좌우로 치우침이 없는 사역을 마치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알프레드 디 수자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이란 시에 보면,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는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사랑 받지 않는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는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아니하며 곡을 하여도 울지 않는 세대라고 지적하신 바가 있다. 요즘처럼 개인화, 세속화, 첨단화, 비인간화되어 가는 이기적인 세태 속에서 교회란 무엇이고 복음이란 무엇이며 부름 받은 목회자의 사역과 삶이란 어떠하여야 하는 가를 자꾸만 반복하여 생각하게 된다. 주를 믿는 성도는 목회자이든 그 누구이든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따르는 삶을 겸허한 심정으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영국이 낳은 탁월한 설교가요 목회자였던 찰스 스펄전은 <네 주께 굴복하라>는 그의 책에서 “끝까지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 자는 승전가를 부를 것이라.”고 하였다. 이단과 사이비와 온갖 물신 숭배가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라지 비유와 그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13:43) 이 말씀은 가라지 교훈을 해석해 주신 뒤에 하신 말씀이다.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그런즉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마13:37-42) 그러므로 그 누구나 시작처럼 소중한 그 나중의 심판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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