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타는 목마름으로 한 시대를 살다가 간 선각자들의 땀 흘리는 수고와 눈물 흘리는 열정과 피를 흘리는 희생의 바탕 위에서 발전되어 왔다. 39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시인 김지하는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제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시를 썼고 나중에 김광석은 곡을 붙여 노래하였다. 그 시의 일부분은 이렇다.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살아오는 삶의 아픔/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떨리는 치 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
남편 요셉의 본향으로 호적하기 위하여 따라 나섰던 만삭의 여인 동정녀 마리아는 지치고 허기지고 목마른 상태에서 베들레헴의 마구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낳느라 피를 쏟았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사십 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셨다.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님은 금식하는 광야에서 주리고 목마르셨다. 그러나 그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신 동안에 인생들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명수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머물러 계셨다. 예수님의 일과는 언제나 고단했고 날마다 기진맥진 지치고 허기지고 목이 마르셨다. 하루는 사마리아 지역 선교를 위해서 제자들과 이동 중에 수가 성 밖을 지나고 있었다. 제자들은 성 안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들어갔다. 때는 한 낮이고 무덥고 피곤하고 지치는 시간이었다. 그 때에 수가 성 밖의 야곱의 우물 가에 물을 길러 나온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다섯 남자와 살았었고 그 당시에 살던 남자도 제 남편이 아니라고 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마실 물을 구하였다. 그 때에 그 여인은 “유대인인 당신이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홀대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생수’(生水)에 대하여 소개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 복음의 말씀을 전해들은 여인은 어리둥절해 하며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요4:15)라고 요청하였다.
이 세상에 밥이 소중하고 떡이 필요하지만 물이 더 소중하다. 물과 공기가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다. 인간의 몸 안에 흐리는 피도 사실은 물이다. 지난 1992년 UN은 매년 3월 22일을 ‘세계 물의 날’(World Water Day)로 정하고 물의 부족 문제 해결과 수질 오염 방지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오늘 날 여전히 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는 세계 인구는 10억 명이 넘는다고 한다. 날마다 물의 부족이나 오염된 물을 마신 이유로 오천 명 이상이 죽어 가고 있다고 한다. 쉽게 믿어지지 않는 통계 수치들이다. 2025년경이 되면 세계 10대 강 유역 중에서 7곳 이상이 물 부족 현상을 보일 것이라고 한다. 그 때쯤 되면 물 부족으로 불편이나 어려움을 겪는 인구가 25억 명 내지 32억 명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나라도 1990년에 ‘물의 날’을 정하고 물 아껴 쓰기 운동과 물을 오염시키지 않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5년이 되면 현재의 ‘물 부족 국가’에서 ‘물 기근 국가’가 될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연간 물 소비량은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과 비교할 때 단연 제 1위이다. 독일 사람들은 연간 132리터의 물을 소비하는 반면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두 배가 훨씬 넘는 374리터를 사용한다. 우리나라의 물 값은 OECD 22개 국가들 중에서 가장 싸다. 그 한 예로 덴마크의 물 값의 십 분의 일 정도 가격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물 소비량이 세계 최고라고 한다. 너무 값이 싸서 낭비하는 것이라면 그 값을 좀 비싸게 하여야 하지 않을까. 지난 정권에서 추진했던 4대강 개발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상태로 세월 속에 덮여서 지나가고 있지만 제발 그 효과가 점점 더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와 같은 사업으로 10억 톤 이상의 수자원을 추가 확보하게 되었다니 수치상으로는 다행한 일이 아닐까. 물이 무엇인가. 인간의 몸이 70%가 물로 되어 있다. 인간이 물이 없이는 하루도 살기 어렵다. 만약에 25층 아파트에 물 공급이 끊겼다고 상상해 보라. 그 하루 생활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겠는가. 물은 공기 다음으로 소중한 창조주의 선물이다. 임금이든 평민이든 공기와 물이 없이는 살아 갈 수가 없다.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던 예수님께서 명절 끝 날에 큰 소리로 외쳐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 그 현장에 함께 주님 곁에 있었던 제자 요한은 예수님의 그 말씀의 의미는‘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라고 설명해 주었다.(요7:39) 이처럼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풍성한 은혜의 공급과 성령의 충만을 예표적으로 말씀하시고는 하였다. 그 예수님이 제자인 가롯 유다에게 배반을 받으셨고 은 삼십 량에 팔리셨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새벽녘에 대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파송한 큰 무리들에 의해서 붙잡히셨다. 그들은 손에 칼과 몽치를 들고 있었다. 스승을 팔아 버린 이름뿐인 제자 가롯유다는 그들의 맨 앞에 서서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하면서 예수께 입을 맞추었다. 그 때에 화가 난 베드로는 옆구리에 차고 다니던 칼을 뽑아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오른쪽 귀를 쳐서 땅에 떨어트렸다. 예수님은 그의 떨어져 나간 귀를 주워서 제 자리에 붙여 주시면서 “이것 까지 참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날 예수님은 새벽부터 이리 저리 끌려 다니시며 대 제사장 가야바의 뜰과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 심문을 받으시고 고난을 겪으셨다. 구레네 시몬의 도움을 받아 가며 아침 아홉 시경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도착된 예수님을 로마 병정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높이 세웠다. 여섯 시간을 고통당하시던 예수님은 오후 세시 경에 운명하셨다. “다 이루었다”는 마지막 말씀을 하시기 전에 하신 또 하나의 말씀이 “내가 목마르다.”(요19:28)는 말씀이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목마른 여인의 산고(産苦) 가운데 태어 나셔서 목마른 광야의 금식(禁食) 생활을 바탕으로 평생을 타는 목마름 가운데 고통당하고 슬퍼하며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의 생명수로 오신 구주이시다.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는 자들 앞에서 타는 목마름을 온 인류의 영적 해갈과 구원으로 대신하여 선물해 주신 구주이시다. 그 주님이 가시는 곳 마다 인생의 목마름이 해결되었다. 각색 병자가 예수님을 통하여 고침을 받고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이 떠나갔다. 심지어는 죽은 자를 살리셨다. 고단하고 힘겹게 살아가던 인생들이 예수님을 만나면 그 누구나 그 삶이 풍요로워지고 풍성해졌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셨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누구나 주님을 만나면 생명수 강가에서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의 축복을 영원히 누리게 된다.(계22:1-2)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의 내용은 신비에 가깝다. 그는 물에 대한 말과 글씨와 음악 실험을 곁들인 각종 사진 자료를 통하여 입증하는 자료와 함께 “물은 생명이고 에너지의 전달매체이며 의식을 갖춘 존재”라고 주장한다. 즐겁고 신이 나면 몸도 건강해지고 우울하고 슬프면 몸이 아픈 것은 물의 반응과 같은 신체의 원리이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듯이 인간이 창조주를 만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 받아 그 안에서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게 살아갈 때에 이것이 영생의 시작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