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은 인간 최고의 악이며 가장 큰 죄의 뿌리다. 천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목하다가 사단으로 전락하게 된 그 악의 뿌리가 교만이다. 천사는 교만 때문에 타락하여 마귀가 되고 만 것이다. 마귀 곧 사단이 인간에게 내어 뿜는 독이 교만이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계12:9)고 했다. 아담 이후로 인류의 역사를 불행하게 하는 가장 큰 악이 교만이다. C. S. 루이스는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까지 정의하였다. 그는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교만에 대해서“자신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선한 사람으로 느껴질 때는 확실히 하나님이 아니라 악마를 따르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까지 심각하게 경고하였다. 내 속에 어떤 모습의 교만과 악이 매 순간마다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가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라. 에덴동산의 하와가 남편 아담이나 혹은 언제나 에덴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을 얼마나 무시하고 함부로 여겼으면 뱀을 만나서 그렇게 어리석게 무너지고 말았겠는가.
교만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 중심에 자리 잡지 못한다. 교만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고 무시하며 제 마음대로 함부로 판단하고 지극히 인간적인 소욕을 따라서 살아간다. 뱀과의 대화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솔하게 여겼던 하와가 무너져 가는 것을 보면 그렇다. 교만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교만한 꼴을 못 보아 준다. 왜냐하면 내 속에 내가 더 나아야 하고 내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교만이 꽉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교만은 항상 경쟁적이다. 반복되는 내용 같지만 누군가가 으스대면 그 꼴이 보기 싫은 이유는 내 안에 나 자신이 그 상대방보다 더 우월하게 보이고 싶어 하는 교만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교만은 재물이나 돈의 소유에 있어서도 언제나 남들보다 더 가지려고 한다. 외모로 하면 남들보다 더 멋있거나 훨씬 더 남들의 시선을 받아야만 하며 더 돋보여야만 한다. 권력으로 하면 최고의 권력에 집착한다. 탐욕이나 경쟁심이나 이기심으로 구분할 수도 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의 뿌리와 바탕은 교만 때문이다. 타락하고 교만해진 인간은 언제나 남들보다 더 가지고 싶어 하고, 더 높아지려 하고, 더 나은 인간으로 비추어 지려고 한다. 상대적으로 더 똑똑하고 더 멋지고 더 늠름하고 더 씩씩하고 더 세련되고 더 잘생기고 더 능력 있게 보이려고 한다. 그 끝이 없는 비교 의식과 우월감을 즐기는 바탕은 교만의 늪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다. 그러므로 교만은 철저히 경쟁적이며 상대적이다.
이와 같은 경쟁심은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특히 엄마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눈에 불을 켜고 자식들을 통한 대리 만족과 교만에 불이 붙여진 치맛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런 경쟁으로 키워낸 아들딸들이 우리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 온 초석이 되기도 하였지만 그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되어서 변한 인간성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인간의 악과 죄와 교만의 뿌리는 국민 소득 2만 불 시대를 넘어 4만 불이나 그 갑절로 잘 사는 세상이 된다고 해도 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교만이라는 죄의 뿌리를 뽑을 수 있는 힘은 세상 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령 교만에 뿌리 내리고 있는 돈이란 것도 그렇다. 돈을 향한 인간의 집착은 탐욕에 기인한다. 돈은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요트, 더 좋은 자가용 비행기, 더 좋은 여행, 더 좋은 보석과 각종 액세서리, 더 좋은 먹을거리와 마실 거리, 더 좋은 의복, 더 좋은 레저 활동, 더 좋은 그 모든 소유를 향한다. 교만과 탐욕은 태평양의 모든 바닷물이라도 모두 다 삼켜 버릴 것처럼 집착하며 끝없는 탐닉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한다. 주변의 그 어떤 부자보다 더 가진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욕심은 권력을 향하여 한없이 욕망을 불태우게 된다. 동서고금의 역사에 국가의 흥망성쇠를 이루었던 권력자들의 권력과 명예와 성적 집착과 오래 살고 싶어 하던 장수(長壽)에 대한 의지와 주변 국가를 끝없이 점령해 가려 하던 침략에 대한 호전적(好戰的)인 기질의 바탕은 교만에 깊게 뿌리하고 있다. 징키스칸, 알렉산더, 진시황, 히틀러, 뭇솔리니, 일본의 메이지 천황,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김정일, 이라크의 후세인, 리비아의 카다피, 이집트의 무바라크, 캄보디아의 폴 포츠, 쿠바의 카스트로 등은 그와 같은 집착이 암과 같은 교만의 덩어리로 똘똘 뭉쳐져서 역사의 중심에서 끝이 안 보이는 악을 행하다가 역사에서 사라진 인물들이 아닌가. C. S. 루이스는“교만은 지옥에서 곧장 나온다. 교만은 순전히 영적인 악이다. 교만은 다른 악들에 비하여 훨씬 더 교묘하고 치명적이다. 교만은 사랑이나 자족하는 마음이나 심지어는 상식까지도 갉아 먹는다.”고 설명했다. 교만은 허영심의 옷으로 자신을 치장한다. 교만한 사람은 남들의 칭찬이나 박수갈채를 즐기며 경탄하는 말을 좋아하고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 한다. 교만은 점점 흉악하고 악마적으로 변해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든지 신경 쓰려 하지 않고 무시해 버린다. 교만(驕慢)의 반대는 겸손(謙遜)인데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겸손해 지려면 지금 자기 자신이 교만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해야만 가능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잊어버리는 백성이 되지 않도록 삼가라고 명령하셨다.“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성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8:-12-14)고 말씀하셨다.“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잠15:25)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잠16:5)고 하였다. 시편에 보면,“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서 낮은 자를 굽어 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시138:6)라고 하였다. 교만은 분명한 악이다.“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고 하였다. 사사기의 삼손이나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은 교만하다가 망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교만하면 끝이 안 좋다. 교만은 오래가지 못한다. 교만한 인생은 악취가 나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반드시 낮추신다. 교만은 악 중의 극악한 악이며 질병 중에서도 심각한 중병이다.“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느니라.”(잠29:23)고 했다. 복음서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찬가를 통해서“하나님은...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를 흩으셨고”(눅1:51)라고 고백하였다.‘교만’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쓰면서 1장에서 언급한 인간의 악 중의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였다. 교만은“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1:19-31)고 언급한 타락하고 범죄한 인간의 내면에서 끝없이 솟구쳐 오르는 악 중의 한 요소이다. 이처럼 교만한 인간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조차도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신 방임의 심판을 받는 자들이 되고 만다고 경고하였다. 디모데전후서에 보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교만한 자들은 교회의 지도자로서 적절하지 못하다고 교훈해 주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자기 소개서에 시선을 고정하자.“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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