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곳곳마다 인류는 채소나 육류나 생선이나 젓갈류를 나름대로 식초나 소금에 절여서 저장해 놓고 먹는 방법을 발전시켜 왔다. 물론 채소의 경우에 신선한 야채로 먹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채소는 곡물과 달라서 오래도록 보관하기가 어렵다. 채소를 말렸다가 먹을 수는 있지만 그 본래의 맛을 잃게 되고 영양가도 떨어진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발전해 온 채소류를 식품으로 보관하는 처리법 중의 하나가 향신료를 섞거나 아니면 장이나 식초나 소금에 절이는 방법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김치다. 김치는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권에서 발전한 음식으로 단연 한국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영어권에서도 김치를‘kimchi'라고 발음하여 그대로 부른다. 전에 미국에 살 때에 보면 대형 식품 매장인‘G-Mart'라는 곳에 한국 상인들이 보급하는 김치가 크고 작은 병에 보관되어 판매되는 것을 보았다. 오늘 날 김치는 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일본에도‘기무치’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김치 맛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 역사적인 첫 기록은 약 3,000년 전 중국의 <시경>으로 알려져 있다.“밭두둑에 외가 열렸다. 외를 깎아 저(菹)를 담자, 이것을 조상에 바쳐 수(壽)를 누리고 하늘의 복(福)을 받자”고 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저’(菹)가 바로 김치이다. 이‘저(菹)’가 한국에서는‘지’(漬)라고 사용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여러 지방에서 묵은 김치를 묵은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이 대한(大寒)이니 올해의 입춘(立春)도 보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아직 한 겨울이지만 조금만 지나면 재래시장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좌판을 벌여 놓은 노파의 찬거리 중에 야생 봄 야채가 나올 날이 멀지 않다. 물론 요즘이야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는 별의별 야채와 과일들이 제 철과 상관없이 재배되고 공급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김치라는 것이 소금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고 각종 양념이 적당하게 잘 배합되어야 제 맛이 아닌가. 또한 아무리 재료가 좋아도 각기 김치를 담그는 주방장의 손맛은 참으로 서로 다 다르다. 전래적으로는 집집마다 간장과 고추장과 된장 맛이 서로 다 달랐던 것처럼 말이다. 김치를 담그려면 여러 양념류가 배합되어야 하지만 특히 고추나 고춧가루가 빠진 김치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물론 백김치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조선 시대의 선조 25년경인 임진왜란을 전후한 1592년경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부터 420여 년 전의 일이다. 김치를 담글 때에 본격적으로 고추를 사용한 기록은 1766년에 발간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1766년)인데 저채류 만드는 법 34종이 소개되어 있다. 이때부터 고추를 넣어 색깔과 맛을 내는 오늘날과 같은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으며 생선과 고기가 곁들인 것이 특이하다. 어렸을 적 기억에 강화도 순무 김치에 밴댕이가 섞여 있었다. 밥상 위에 놓인 순무김치에서 밴댕이가 보이면 어린 우리 형제들은 징그러워했는데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이때다 하고 냉큼 집어 잡수시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영양가 있는 찬거리가 넉넉지 못하던 동절기에 김치 속에서 섞여 나오는 생선은 훌륭한 영양 보충원이었던 것 같다. 요즘은 음식점에 가도 쌀과 김치나 고기와 생선 종류의 원산지 표시가 상례화 되어 있다. 어떤 식당은 김치 맛이 일품인 반면에 또 어떤 식당의 김치는 젓가락이 단 한 번도 가지 않는 정말 한심한 맛의 김치도 있다. 미안하지만 중국산이 특히 그렇다. 물론 그것을 먹는 사람마다 입맛이 제각각이겠으나 말이다.
두 어 주 전에 지방 사역을 위해서 교역자들과 함께 역촌역 주변의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였다. 대구탕을 한 그릇씩 먹었다. 그런데 그 식당의 배추김치 맛이 일품이었다. 우선 배추 자체가 좋았다. 강원도 어느 곳에서 가져온 고냉지 배추인 것 같았다. 아삭 아삭하게 적당히 절여진 상태에서 시지도 않고 덜 익지도 않은 적당한 상태의 최상급 김치 맛을 보았다. 그러하다 보니 식사 중에 식탁마다 김치 더 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또 최근에 가본 식당 중에는 교회 앞 큰 길 건너편 녹번 천주교회 옆에 있는 뽕잎 샤브샤브 집의 동치미 맛이 일품이다. 살얼음이 동동 떠 있는 상태의 잘 발효시켜 약간 얼리다가 만 상태의 그 아삭한 무우의 맛은 다시 또 생각이 난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식당 주인에게 동치미 맛을 칭찬했더니“한 그릇 담아 드릴까요.”하기에 사양하고 나오면서도 그 개운한 동치미 맛은 여전히 잊을 수가 없었다. 어렸을 적 한겨울에 자치기하고 팽이치고 썰매를 타다가 말고 목이 마르면 시골 집 부엌의 광에서 어린이 키 크기만 한 동치미 독 뚜껑을 열어 제치고 바가지로 퍼 마시던 그 시원한 동치미 국물 맛이 생각나서 참으로 좋았다. 밭에서 금방 뽑아온 신선한 배추나 상추를 겉절이 하여 먹는 김치 맛도 일품이지만 역시 김치 중에는 묵은지의 맛 또한 빼어 놓을 수 없다. 어느 식당 중에는 김치를 3년씩 저장하였다가 돌려 사용하는 곳도 있다. 묵은 김치의 제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새로운 사람도 좋지만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서 30년 아니 50년 그 이상 평생을 동행하여도 은근한 매력을 지니고 속 깊은 제 맛이 나는 그런 사람이 더 좋다. 그가 가족이든 세상이나 교회에서 만나는 그 누구이든지 말이다. 이런 복된 인간관계를 우리는 인복(人福)이라고 한다. 사람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하늘의 복과 자연의 복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복이 골고루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형제의 갈등 속에 장성하여 배 다른 열 두 아들과 외동딸을 키우며 마음 아픈 세월을 오래도록 가슴에 묻고 살아 간 야곱이 늘그막에 아들 요셉을 축복한 말이 그것이다.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로다.”(창49:25) 채소도 심어 가꾸어야 먹을 수 있고 더 오래 두고 먹으려면 맛있게 절여서 발효시켜야 제 맛을 즐길 수 있다. 채소 한 잎이 식탁에 오르려 해도 각종 벌레와 병균과 태풍과 홍수나 아니면 가뭄의 천연재해도 견뎌 내야만 한다. 요즘은 멧돼지나 고라니와 같은 야생 동물의 피해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만 한다. 사람도 그러하지 아니한가. 아들딸 낳는 것도 복이지만 그 자녀가 경쟁사회의 일정한 분야에서 자리매김을 하려면 세파에 절여지고 묵혀져서 자기 나름대로의 제 맛을 낼 줄 알고 유지할 줄 알아야 한다.
‘가연골무형성증’의 희귀병을 앓으며 성장해 온 이지영 자매의 키는 110cm이다. 지난 2012년 9월 18일에 서울 잠실 실내 체육관에는 일 만 명이 넘는 청년대학생들이 모여 들었다.‘열정樂서’라는 청년 집회가 열린 것이다. 이 자리에서 삼성 테크윈의 이지영 대리는‘난쟁이, E. T, 외계인’ 등의 놀림을 받으며 편견과 소외감 속에 우울하게 자라났던 지난날을 극복해 온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그녀는 어느 날부터 삶의 태도를 바꾸어 나가기 시작했다. 남들은 팔다리가 없이도 살아가는데 하는 생각을 갖고 동료들이 테니스 할 때에 자신은 배드민턴을 해 보려 하였고 남들이 배구공을 위로 받아 넘길 때에 그녀는 공을 바닥으로 튀겨서 넘겼다. 자신감을 회복하자 친구도 생겼고 성적도 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작은 키를 불행으로 받아들이는 대신에 다른 것으로 소화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적극적으로 매사에 도전하는 정신력을 갖게 되었다. 오늘 날 그는 60개 회사에 이력서를 냈고 7개 회사의 면접 경험을 뒤로 하고 당당하게 세계적인 기업‘삼성’의 계열회사인‘삼성테크윈’에서 인사팀의 교육 업무를 담당하는 대리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녀는 높은 취업 장벽 앞에서 우울하게 지내는 청년대학생들에게 말했다.“힘들어도 좌절하지 말고 도전하고, 도전하다 가끔 넘어질 때는 저 이지영을 기억해 주세요.”지금 당장의 화려한 외모나 경력이나 배경에만 마음을 쏟는 겉절이 인생을 자랑하지 말고 고난의 세월과 맞서는 묵은지 인생으로 살아가야만 하지 아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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