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섬마을에서 자라나던 어렸을 적 기억에 어른들을 따라 주일 저녁 예배나 수요일 밤 기도회에 참석하면‘돌아 와 돌아 와’하는 찬송을 자주 불렀던 기억이 새롭다. 새 찬송가 525장이다.“돌아 와 돌아 와 맘이 곤한 자여 길이 참 어둡고 매우 험악하니 집을 나간 자여 어서 와 돌아 와 어서 와 돌아오라.”그 찬송을 따라서 부르다 보면 동네 아저씨들 중에서 날마다 마을의 큰 길에서 술에 잔뜩 취해 가지고 길가에 벌렁 드러눕기도 하던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 동네 아저씨들이 주께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찬송을 따라 불렀다. 이웃 마을 아저씨 중에 산속의 동굴 속에 혼자 살면서 남의 집의 먹을거리를 훔쳐다가 먹거나 혹은 개나 돼지나 닭을 끌어다가 잡아먹는 이가 있었는데 그도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찬송을 따라 부르고는 했다. 그 아저씨가 무서워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걸어서 읍내 5일장에 가거나 들에 일 다니는 것도 불안해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였다. 아래 윗마을의 그 아저씨들이 결국은 오래 살지 못하고 둘 다 불행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술로 살고 나쁜 짓을 일삼고 살던 생활을 청산하고 주께로 돌아왔으면 제대로 인생을 살 수 있는 이들인데 안타깝고 불행한 생을 젊어서 마친 것이다. 반면에 그 또래의 마을 아저씨들 중에서 하나님을 잘 믿고 예수님을 잘 믿은 이들은 존경 받는 지도자가 된 이들도 있고 자녀들이 밖에 나가 성공하기도 하고 목사나 선교사가 되고 신앙생활을 잘 하고 축복을 받는 가정으로 발전해 간 것을 본다.
성경, 구약의 마지막 선지서인 말라기가 쓰여 질 당시의 유다 나라와 예루살렘의 상황은 말라기 3장 5절이 자세하게 고발하고 있다. 말라기란 이름은‘여호와의 사자’란 뜻이다. 하나님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더 이상 눈감아 주시거나 참아주시지 않고 심판하시겠다고 언약의 사자인 말라기를 통해서 강조하셨다.“점치는 자들, 간음하는 자들, 거짓 맹세하는 자들, 품꾼의 삯을 제대로 계산해 주지 않아서 억울하게 하는 자들,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는 자들, 나그네를 억울하게 대하는 자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을 시작하시겠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점치는 자들이란 하나님 외에 우상을 숭배하는 모습을 대변하는 것이다. 간음하는 자들이란 성적으로 타락하게 살아가는 자들을 언급하시는 것이다. 거짓 맹세하는 자들이란 거짓과 술수와 간계와 속임수와 사기를 치며 살아가는 자를 향한 심판을 예고하신 것이다. 또한 가난한 품꾼의 품삯을 제대로 계산해 주지 않는다든지 남편 잃고 홀로 살아가는 여인이나 부모 잃은 고아들을 압제한다든지 나그네를 함부로 대하는 이들을 죄 없다 아니하시겠다는 말씀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하여 심판하시겠다고 했다. 말라기서는 그리 길지 않은 선지서이지만 그 내용은 매우 심각한 주제들을 여러 가지 담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 신앙과 경제관의 회복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십일조와 봉헌물에 관한 강조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상적으로 살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온갖 탐심과 불의와 거짓과 교만과 영적으로 혼탁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로 타락하고 변질된 유대 백성들과 예루살렘 성민들을 향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회개와 회복을 촉구하시는 말씀이시다.
성경 연구가들은 말라기서가 기록된 시대 배경을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총독으로 있던 때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 이유는 1장 8절에‘총독’이란 칭호가 나오기 때문이다. 성경의 인물들 중에서 총독으로 불리는 유일한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느헤미야이기 때문이다. 느헤미야가 바사의 아닥사스다 임금 곁의 출세한 술 맡은 관원으로 지내던 중에 예루살렘 성의 폐허에 가까운 참담한 소식을 듣고 금식하고 철야하며 기도한 후에 왕의 허락을 받아들고 도착한 그 현장은 실로 비참하고 답답하고 참혹한 현실이었다.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 신앙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의 땅으로 흩어졌고 남은 자들은 거룩한 다윗 성이요 시온 성이요 솔로몬의 성전이 봉헌되었던 그 아름다운 예루살렘 성에서 슬퍼하고 애곡하는 백성들이 되고 말았다. 신앙적으로 변질되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섬기는 데서 멀어져 버린 패역한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헤미야가 앞장서서 불과 52일 만에 성곽을 중건하였다. 주전 444년부터 주전 433년까지 12년 동안 총독으로 있으면서 에스라와 스룹바벨과 함께 앞장서서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신앙의 회복을 위해서 매진하던 때였다. 에스라가 앞장섰던 수문 앞 광장의 민족적인 회개 집회는 한나절이 계속되도록 어른 아이 남녀 할 것 없이 자리에 앉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이 한나절을 서서 계속하여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회개와 감격의 성령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현장이 되었다. 말라기를 쓴 이가 말라기 1장 1절에 그 이름 밖에는 전혀 다른 설명이 없기 때문에 혹자는‘여호와의 사자’란 뜻의 그 말라기는 에스라가 아닌가 하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하튼 말라기서의 주제와 내용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대변하며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들을 향하여 회개와 변화와 헌신과 충성을 촉구하는 말씀들로 가득하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않고 있던 말라기 당시의 백성들을 향해서“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촉구하신 것이다.
이 같은 하나님의 초청을 들은 백성들이“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하고 반문하였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안내하신 주께로 돌아가는 영적 회복의 방법이 말라기 3장의 내용이다. 하나님은 십일조 생활을 등한히 하고 하나님께 바치는 헌물 즉 봉헌물을 제대로 봉헌하지 못하며 되는대로 등한히 건성으로 살아가던 당시의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향해서“너희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한 것이다.”하고 책망하셨다.“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 하였나이까”하고 묻자 십일조 생활 하지 않고 봉헌 생활 제대로 안 하며 산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한 것이라고 책망하신 것이다. 십일조에 대한 신명기 14장의 규정에 보면 토지의 소산물과 짐승의 새끼들 중에서 모든 것을 분명하게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드리라고 했다. 각종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소와 양을 비롯한 모든 짐승들 중에서 십일조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봉헌하라고 했다. 또한 그 십일조를 성읍에 모아서 저축하고 그것으로 자기 분깃과 기업이 없이 살아가는 레위인과 성중에 거류하는 나그네와 고아와 홀로 된 여인들이 와서 그 성 안에서 그 몫으로 먹고 배부르게 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였다. 십일조 신앙은 열의 소득에서 하나를 드리고 아홉으로 살아가는 신앙이 아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신앙은 주신 소득에서 하나를 구별하여 드리는 것을 통해서 내게 주신 모든 소득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하는 고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열중의 하나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남은 아홉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신앙으로 사는 것이 십일조를 드리는 신앙이다. 신명기 14장 29절에 보면 십일조를 반드시 드려야 하는 것을 강조하신 하나님은“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하셨다.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는 신자들에게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주신다. 4번이나 반복하여“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고 했다. 무슨 의미인가.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천지의 창조주시며 우주 공간의 해와 달과 별들을 다스리시고 삼라만상을 주관하시며 섭리하시고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아버지이시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축복을 맹세해 주시는 것이다. 온전한 십일조 신앙으로 살아가는 자에게 복을 주시되 그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고 했다. 구한말 우리나라를 찾은 선교사들이 앞장서서 학교와 병원과 고아원과 교회와 각종 복지사역에 불을 붙여 나갈 수 있었던 힘은 저들이 속한 나라의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와 헌물과 선교적 헌신의 열매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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