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시90:10)고 하였다. 사람이 칠십년을 산다면 25,550일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팔십년을 살 수 있다면 거기에 3,650일을 더 사는 것이다. 굉장히 긴긴 날 같으나 그것을 365일씩 나누어서 일 년씩을 살아가고‘나이’라는 것을 먹는다. 올해도 여기저기서 전쟁과 테러와 지진과 쓰나미와 각종 질병을 비롯한 전염병과 여러 가지 사고 등으로 불행한 죽음을 맞은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살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은총이고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세기에 태어나서 56살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생을 살다가 간 첨단 과학의 천재였던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 Steve Jobs, 1955-2011)는 2005년 스탠포드대 졸업식 축하 연설에서 "참된 만족을 얻는 유일한 길은 위대하다고 믿고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일을 만나는 순간은 자신이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항상 갈망하고, 항상 무모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로 연설을 마쳤다. 항상 새로운 일에 대하여 굶주려 하며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새롭고 창의적이며 발전적인 일에 도전하라는 의미의 교훈을 남긴 것이다. 그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만약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라고 자문했다. 그리고 그는 1985년 한 인터뷰에서 "나의 희망은 우아하게 낡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와 같은 그의 삶의 태도는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1985년 9월에 자신이 영입했던 존 스컬리와의 불화로 창업주였던 자신이 애플에서 밀려나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잡스는 인생의 초점을 잃어버리는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2005년 스탠포드대 연설에서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으로 다가왔다.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 대신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가벼운 마음이 됐다. 그로 인해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시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고 말하며 당시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인생을 접근함으로써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1983년 스컬리 펩시콜라 사장을 영입할 때 그를 설득했던 "남은 일생 동안 설탕물이나 팔면서 살 건가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꿀 건가?"라는 오만한 말은 스컬러의 마음을 움직이고 결심을 도왔던 잘 알려진 일화 중의 하나이다.
누구의 생애나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그러므로 이처럼 한 해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미래의 시간을 생각해 보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 1892-1982)는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라는 그의 책에서“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한 바 있다. 지나 온 날에 대한 자기반성이나 뉘우침이 없이 더 창의적인 내일이란 저절로 다가오지 않는 법이다. 년 말이 되니 여기저기서 전해 져 오는 크고 작은 별의 별 달력 선물이 적지 않다. 그 많은 달력들도 어찌 보면 사치요 낭비인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요즘도 여전히 열악한 환경의 제 3 세계의 선교 현장을 방문할 때에는 연말연시에 건네는 최고의 선물 중의 하나가 달력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만 해도 달력은 참으로 귀했다. 지역구 국회의원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고 그 사방에 열 두 달의 달력을 인쇄한 한 장짜리 달력이면 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연말이 되면 어디선가 새 해 달력을 잘도 구해 오셨다. 음력이 날마다 기록된 큰 글씨로 인쇄된 12장짜리 달력은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는 달력이었다. 아버지는 여러 개의 달력을 구해다가 안방에도 걸고 마루에도 걸고 부엌과 건너 방과 사랑방에 골고루 걸어 두었다. 그런 나의 어린 시절이 이젠 먼 과거가 되고 말았다. 달력을 보면 일 년을 365일로 하고, 다시 그것을 12달로 나누고, 또 다시 일주일씩을 나누어서 하루하루로 되어 있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흘러서 간다. 참으로 세월이 빠르다. 그래서 선조들은 세월을 흐르는 물인 유수(流水)와 같다고 하거나 화살과 같이 빠르다고 하였다. 흘러간 물이 되돌아오지 않듯이 지나간 세월도 다시 돌아오지는 않는다. 이처럼 흘러가는 세월과 찾아오는 노년기는 가시채로 막고 막대기로 쳐도 어김없이 흘러가고 약속한 듯이 다가오는 것이다. 인간의 큰 질병 중의 하나가 낭비(浪費)다. 그 중에 으뜸이 시간과 세월의 낭비이다. 시간과 세월을 아껴 써야 하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낭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건 누구나의 문제이다. 그나마 연월일과 시간의 구분이란 것이 있어서 다행이다.
한 해가 다 가고 또 다시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사람들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면 나름대로 새로운 결심을 하고는 한다. 그 결심이란 것이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날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 결심하는 기회도 없이 세월을 흥청망청 살다가 끝내는 것보다야 백번 나은 일이 아닌가. 헬라 사람들은 시간을‘크로노스’의 시간과‘카이로스’의 시간으로 구분하여 사용하여 왔다.‘크로노스’의 시간이란‘지구의 공전과 자전에 의해서 이어지는 일반적인 시간’개념이다. 그러나‘카이로스’의 시간이란‘주관적이고 의식적이며 선택적이고 기회로 주어지는 결단의 시간’을 일컫는 말이다.‘카이로스’는 로마의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신의 아들로서 기회의 신을 말한다. 토리노 박물관에 있는‘카이로스’라는 제목의 동상은 앞머리에는 머리카락이 무성하지만 뒷머리는 머리카락이 전혀 없는 대머리이며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고 손에는 저울과 칼이 들려 있는 형상이다. 기회와 시간은 앞에서 붙잡아야 하고 지나간 뒤에는 붙잡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시간의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어서 빨리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저울과 같은 분명하고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서 시간과 기회를 포착하여야 하니 결단을 내릴 때에는 칼을 사용하듯이 더 이상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말고 포착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시간과 세월과 기회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간과 세월을 선용하려는 의지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세 가지 특징은“목표의 설정과 기회의 포착과 과감하게 실천하는 의지”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등산가들은 그런 목표를 정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거쳐서 도전하고 실현해 나갔기 때문이 아닌가. 목표도 정하지 않고 준비와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이룩할 수 있는 일이 그 무엇이 있겠는가.
이와 같은 원리는 모든 분야마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다. 아까운 세월이 흘러 가 버린 후에‘걸... 걸... 걸...’하고 후회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위기(危機)는 기회(機會)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피할 수 없이 닥치는 위험하고 위급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파악하여 적극적인 도약의 기회로 삼는 것이 인생의 지혜와 용기가 아니겠는가. 미국 기독교 역사의 명 설교가요 전도자였던 D. L. 무디는 모세의 생애를 셋으로 구분하여“I am somebody, I am nobody and I am God's body."라고 해석하였다. 그렇다. 생후 세 달 만에 갈대 상자에 담겨져서 나일 강에 버림 받았던 히브리 아기 모세가 바로 왕의 딸 공주의 눈길에 들어서 왕궁에 안겨 들어갔고 거기서 40년간 궁궐의 최고 문명 교육의 혜택을 받으면서 성장한 세월은 참으로 으쓱할 만한‘somebody'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그가 살인자가 되어 미디안 광야에 피신하여 살아가던 나중 40년의 세월은 별 볼일 없던‘nobody'의 세월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버리지 않으셨고 나이 80된 모세를 호렙산의 불붙는 떨기나무 환상 가운데서 부르셨다. 그 후로 그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동족을 구출해 내는 민족지도자요 성막을 건축한 제사장이요 시내산 정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돌 판에 받던 선지자였다. 실로 그의 나중은‘God's body’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시간과 세월을 아껴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는 성경의 분부대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참다운 지혜는 영생을 아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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