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었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David Petraeus, 1952)는 그의 전기 작가인 폴라 브로드웰(39)과의 불륜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앙정보국 국장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미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 출신인 그는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 군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라크 전쟁 당시 공수부대 지휘를 맡아 주둔군 사령관으로서 이라크를 함락하는데 뛰어난 전략가로 역량을 발휘했으며 중부군 사령관으로 이라크 치안 상황을 개선시키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뛰어난 군사 전략가이며 주목받는 지휘관 출신으로 자주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언론과의 대응에도 능숙해서 대선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대중적인 관심을 받아 오던 인물이다.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사령관직을 수행하던 중 CIA 국장의 자리에 등용되었었다. 부인 홀리 퍼트레이어스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그의 부인인 홀리는 퍼트레이어스 전 국장이 웨스트포인트 생도 시절 육사 교장이었던 윌리엄 A. 놀튼 장군의 딸이다. 고교 시절 전국장학생(National Merit Scholar)으로 선발된 재원이었던 그녀는 대학 시절 육사를 갓 졸업한 퍼트레이어스 전 국장과 결혼한 뒤 다니던 펜실베이니아주 디킨스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홀리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금융개혁정책의 첨병 역할을 하는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의 설립 작업에 참여한 뒤 현재 이곳에서 군인 가족들의 금융문제를 지원하는 일을 맡고 있다. 이처럼 30년이 넘도록 군 지휘관의 외길을 걸어온 장군의 가정이 순간의 외도로 병들고 무너지게 된 것이다.
미국 군사 분야 저술가 마크 페리는 외교전문지인 포린폴리시에 실은 글에서 이 같은 인간의 약점을 추적하여 공개하였다. 미국의 국부로 불리는 조지 워싱턴(1732-1799)은 독립군 사령관 시절부터 늘 자기에게 편한 부하들만 등용했고 불같이 화를 내거나 쉽게 짜증을 부리는 등 지나치게 과민한 성격으로 악명이 높았다.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년) 당시 북군의 승리를 이끌고 후에 대통령까지 된 율리시스 그랜트(1822-1885)는 승리를 위해 부하들을 죽음이 뻔히 보이는 위험한 전쟁의 일선에 파견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술에 만취해 살았고 1869년 대통령 취임식 당일에도 술에 몹시 취한 상태였다. 미군 역사상 네 명밖에 없었던 원수(元首)인 5성 장군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는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을 거치며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ur)과 일곱 차례의 은성 무공훈장을 받은 영웅이다. 그러나 그는 육군참모총장 시절(1930-1935년) 필리핀에서 데려 온 10대 소녀 이사벨 로사리오 쿠퍼를 가까이에 있게 하고 점심시간마다 그녀의 집을 방문해 지극한 애정을 쏟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독일의 히틀러 정권인 나치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구한 아이젠하워(1890-1969)는 전쟁터에까지도 언제나 애첩을 대동할 정도였다. 그의 애인인 영국군 수송대의 여성장교인 케이 서머스비 대위는 전쟁기간 동안 아이젠하워의 운전사 겸 비서로 일하며 그와 은밀한 관계를 계속하여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아이젠하워는 부인과 이혼하고 서머스비와 결혼하려 하였으나 그의 상관이었던 조지 마셜(1880-1959)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적극적인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에는 로우스쿨 제도 이후 최초의 검사 출신 중의 한 사람인 매우 젊은 검사가 피의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사건이 드러나서 옷을 벗었다.
성경인 잠언에 보면“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고 했다. 노하기를 더디 한다는 말은 감정조절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마음을 다스린다는 말은 매사에 적절한 자기 관리 능력을 일컫는 것 아닌가. 불교의 <화엄경>에서는‘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강조한다.“세상의 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사상이다. 사실 그렇다. 행동보다 생각이 먼저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다. 마음과 생각과 판단과 사상과 느낌을 어떻게 다스리며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그 나중의 말과 행동이 결정된다. 잠언 기자는“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23:7)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언제나 환경과 상황의 변화와 유혹 앞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므로 매 순간 자기 자신의 마음을 지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물질과 재물의 문제이든 이성간의 문제이든 말의 문제이든 모든 것이 다 그렇다. 하와도 순간의 판단이 어리석어짐으로 뱀의 유혹 앞에서 무너진 것이다. 가인도 순간의 감정을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자제하지 못해서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이다. 홍수 심판까지 견뎌 냈던 노아도 풍년으로 풍성하게 거두어들인 포도주를 퍼 마시고 둘째 아들 함이 보는 앞에서 하체를 드러낸 채로 술에 취해 잠이 들어 있었다. 아브라함도 11년간 잘 참고 기다리던 언약의 말씀을 좀 더 참고 기다리지 못하여 아내인 사라의 몸종 하갈을 침소에 들임으로 하나님이 탐탁하게 여기시지 않는 이스마엘을 낳고 말았다.
모세도 자기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딱딱 치는 실수를 통해서 되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과실을 범하고 말았다. 아이성 전투에 참가했던 아간은 전쟁 중에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통해서 명령하신 전쟁 규약을 어기고 시날산의 외투와 금과 은을 훔쳐서 감추는 사건이 들통 나자 가족이 몰살당하는 심판을 받았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대를 이어 충성할 수 있던 제사장의 가문에서 자라났으면서도 하나님 신앙을 경솔히 여기며 패륜적인 행동을 일삼다가 블레셋과의 전쟁 일선에 법궤까지 메고 나가 빼앗기고 형제가 다 죽는 불행을 자초하였다. 다윗은 이미 십대 때부터 물매 돌 한 개로 블레셋의 적장 골리앗을 때려눕히는 용장이었다. 그러나 전쟁영웅 출신이요 십 수 년 동안의 광야 생활의 고난을 극복했던 하나님의 사람인 그가 다시 또 일어난 전쟁 중에 임금의 신분을 잊고 부하의 아내를 취하는 파렴치한 사건에 휩싸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큰 책망을 받게 되었다. 요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선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예언자의 사명을 경솔히 여기다가 풍랑 가운데 던져지고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간 회개하는 특별한 경험 가운데 다시 육지에 토해지는 격동의 날들을 지내야 했다. 제자 베드로는“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는 대단한 축복의 말씀을 들었던 믿음을 저버리고 주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향하여 심문을 받으시며 고난당하시던 그날 이른 아침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배반하고 저주하고 도망가는 나약한 모습으로 무너져 갔다. 뿐만 아니라 가롯 유다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사랑과 기대를 저버리고 주님을 팔아 버리고 자결하는 불운한 운명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 유명해지는 것도 좋고 성공하는 것도 좋고 출세하는 것도 좋고 뛰어난 것도 좋고 탁월한 것도 좋지만 매 순간 자기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주님이 기뻐하시고 그래야 서로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행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말을 했다. 아브라함 링컨은“대부분의 사람은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Most people are about as happy as they make up their minds to be.)고 말했다. 로이 굿맨은“행복은 여정이지 목적지가 아니라.”라는 말도 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행복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조화를 이룰 때 찾아온다.”고 했다. 에우리피데스는“죄의식을 동반한 즐거움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짧다.”(Short is the joy that guilty pleasure brings.)고 말했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천하를 통일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