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나 비행기를 타면 안전벨트라는 것이 있다. 비행기를 타면 항상 출발하기 전에 안전한 여행을 위한 수칙을 설명하는 시간이 있다. 그 때에 반드시 빼어 놓지 않고 언급하며 비행 중의 기류변화에 따라서 수시로 기내 방송을 통하여 안내하는 것이 안전벨트의 착용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운전자를 비롯한 승객의 안전벨트 착용을 의무화 하고 있다. 요즘 생산되는 승용차의 경우는 대개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채 시동을 살리고 출발하려고 하면‘땡 땡 땡’하는 경고음이 여러 차례 계속하여 울림으로‘어서 당신의 안전을 위하여 안전벨트를 매시고 출발하십시오.’하는 경각심을 갖게 해 준다. 운행 중에 보면 어떤 젊은 엄마들은 승용차의 운전석 옆 자리에서 어린자녀가 안전벨트도 하지 않은 채 어수선한 행동을 하는 상태로 운전을 계속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와 같은 무감각한 운전 습관은 얼마나 위험한 상태에서의 이동인지 모른다.
국토해양부는 오는 2012년 11월부터 모든 고속버스 이용 승객에 대하여‘전 좌석 안전벨트 착용의무화’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2012년 9월 13일에 국토해양부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버스 전복 실험을 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시속 25km로 달리던 버스가 6m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게 하는 실험이었다. 사고를 당한 버스가 전복되었을 경우에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승객은 안전벨트를 맨 승객에 비하여 다칠 확률은 18배, 사망할 확률은 24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을 맡아 진행한 국토해양부의 관계자는“자동차가 충돌하거나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되었을 때 탑승자 상호간은 물론 차내 의자, 내벽, 바닥 등에 부딪치면서 입게 되는 부상이 심각하므로 반드시 안전벨트를 착용해야 한다. 탑승자 스스로 안전벨트가 곧 생명 띠라는 의식을 가지고 자발적인 착용을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승용차 이용자의 안전벨트 착용률은 73.4%로 일본의 98%나 독일의 96%등에 비하여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승용차 뒷좌석 승객의 안전벨트 착용률은 5%수준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라고 한다. 통계 발표에 따르면 고속버스 이용자는 66.9%, 시외버스 이용자는 18.3%만이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이 한 평생 동안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착용해야만 하는 영혼의 안전벨트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의 문제이다. 누가복음 12장 13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의 비유 중에 어느 부자 농부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부자가 밭농사가 잘되었다. 거두어 드린 곡식을 다 쌓아 둘 창고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곳간을 헐고 다시 크게 짓고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어야겠다고 계획하였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12:19) 그 때에 하나님이 타이르셨다.“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12:20) 그리고 이어서“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21)는 교훈의 말씀을 해 주셨다. 어느 날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무리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 와서 자기 형과 유산 분배로 불편한 심경을 털어 놓았다. 그 때에 예수님은“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12:15)고 대답하시면서 이러한 비유와 교훈을 말씀하셨다.
36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음악의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의 오페라인 <돈 지오바니>(Don Giovanni)가 예술의 전당 오페라 홀의 무대에 올려졌다. 작품의 주인공인 풍채 좋은 남자 돈 지오바니는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나들며 그 숫자가 넉넉히 천명도 넘는 여성들을 농락하며 평생을 방탕하게 쾌락만을 즐기며 무법하게 살아 온 자이다. 그는 맘에 드는 여성을 겁탈하기 위하여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병적으로 중독에 빠져 사는 호색가이다. 계몽주의가 한창이던 18세기의 작품인 이 오페라의 내용은 세상에서 죄를 범하며 악하게 살아가지 말고 변화와 회개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기독교적인 구원관을 바탕에 두고 만들어진 내용이다. 오페라의 2막 후반부에 가면 극적인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추어 문 밖의 동정을 살피고 돌아온 돈 지오바니의 종 레포렐로가 비명을 지른다. 그는 방문을 잠그면서 "대리석의 새하얀 남자가 지금 옵니다"라고 말하자 돈 지오바니는 무슨 영문인지를 잘 모른다. 바로 그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종은 무서워하는데 돈 지오바니는 만용을 부리며 석상을 집안으로 초대한다. 음식을 더 청하여 권하려 하자 석상(石像)은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용건이 있어서 왔다"고 하면서 이 초대의 답례로서 자기가 있는 곳으로 와달라고 한다. 이 석상은 지난 날 돈 지오바니가 죽인 돈나 안나의 아버지 기사장이다. 함께 가겠다는 약속의 표시로 돈 지오바니는 손을 내밀어 석상의 손을 잡는다. 석상은 "그대의 죄악 이제는 참회(懺悔)하라 그대의 최후는 멀지 않았다.”(Pentiti, cangia vita. Elultimo momento!) 고 말하며 새로운 삶을 살 것을 권하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그 때에 땅이 갈라지면서 시뻘건 불길 가운데 지옥문이 열리고 돈 지오바니와 석상이 함께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 때에 극중에 등장했던 이들이“바람둥이 돈 지오바니처럼 살지 말고 악한 행실을 버리고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자”고 다 같이 합창을 하며 마지막 막이 내려온다.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는 그의 편지 야고보서 1장 15절에서“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는“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경고하였다. 그렇다. 한 학기만 공부해도 성적표가 날아드는 것처럼 인생에는 심판이 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보면“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 지리라.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였다. 이 같은 내용은 성경의 맨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 22장 15절에 또 다시 반복된다. 이는 분명히 심판이 있다는 강조가 아닌가. 오페라 <돈 지오바니>에는 주인공 돈 지오바니의 몸종인 레포렐로가 주인 돈 지오바니의 바람둥이 행실을 일일이 다 노트에다 기록해 두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이는 마치도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실을 기록하시는 것을 상징화 한 것과 같다. 요한계시록 20장에는“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리라.”(게22:12-15)는 말씀이 있다. 그렇다. 봄에 심은 대로 가을에 결실이 다르듯이 인생은 그 영혼의 결실할 순간이 누구에게나 분명히 다가온다. 죽음과 심판 앞에서는 큰 자나 작은 자의 구별이 없다. 사도 바울은“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고 충고하였다. 아간과 게하시는 재물에 대한 탐심으로 인하여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 아버지를 술 취하게 하여 아버지의 대를 이은 롯의 두 딸들과 들릴라로 인하여 무너져 갔던 삼손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 자신들의 행실을 숨길 수는 없었다. 대단한 출발을 했던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 왕의 마지막 불순종과 거짓된 행실은 하나님과 선지자 사무엘을 모두 다 실망시키고 말았다. 예수님의 제자였으나 사탄에게 이용당한 가롯 유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므로 생각하여 보라. 인간의 행실을 영원히 지켜 주는 영혼의 안전벨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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