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Psy)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하고 있는 박재상(1977-)의‘강남 스타일’이라는 말춤이 국내의 인기를 넘어서서 미국 빌보드 차트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동양인으로서는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고 한다. 조만간 1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이 높다. 빌보드차트(Billboard chart)란 미국에서 발행되는 음악잡지인 빌보드(Billboard)에서 다루는 다양한 음악의 인기 순위를 말한다. 1894년 미국 뉴욕에서 창간된 <빌보드>는 1950년대 중반부터 대중음악의 인기 순위를 집계하여 발표하였다. 이 순위는 앨범의 판매량과 방송 횟수 등을 종합한 것으로서 오늘 날의 그 공신력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알려주는 지표가 되었다. 대중음악의 각종 장르를 세분화하여 매주 35가지 차트를 발표한다. 크게 싱글 차트와 앨범 차트로 구분된다. 싱글 차트는 보통 한두 곡이 수록된 싱글 앨범의 판매량과 방송 횟수를 기준으로 하여 순위를 정한다. 앨범 차트는 순수하게 앨범의 판매량을 기준으로 순위를 정한다. 2003년 7월부터는 인터넷 상에서 다운로드로 판매된 것도 집계된다. 싱글 차트에서 1위를 가장 많이 차지한 경우는 영국의 존 레논을 포함한 4명의 록그룹인 비틀스(The Beatles)로서 모두 20곡이 1위에 올랐다. 역사상 비틀스의 1964년 4월 4일 싱글 차트 1위부터 5위까지 모두를 차지했던 기록을 깬 이는 아직 없다. 요즘 왜 이렇게‘강남스타일’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을까. 분야마다 세상이 점점 음울해져만 가는 이때에 그 멜로디가 상쾌하고 무엇인가 마음속에 침전되어 있는 묵은 때를 벗겨 던져 버릴 것만 같은 경쾌한 음악의 박진감 때문이 아닐까. 세속적인 가사는 접어 두고라도 말이다. 미국인들에게도 한국말 가사 그대로를 전달하여 이 정도의 인기를 얻고 있다는 말은 노래의 가사 전달이 비중이 아니라 그 노래와 춤이 전하는 멜로디의 경쾌함 때문이 아닐까. 물론 책 중에도 유희선, 김세중의 <강남 스타일>이란 책이 일찍 서점가에 나온 적이 있기는 하다. 그 책에는‘젊은 부자들의 비밀’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9명의 서로 다른 강남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추적하여 낸 부자들의 경제 분석서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기 제 나름대로 살아가는 자기 방식의 자기 스타일이 있다. 사람은 각기 자기 나름대로 말하고, 웃고, 울고, 걷고, 뛰고, 앉고, 눕는 데 이르기까지 모든 크고 작은 행동 하나 하나에 제 스타일이 누구나 다 있다. 그것은 일종의 개성이며 습관이며 기호이고 문화이다. 인사하는 스타일만 해도 그렇다. 가령 몇 차례 선교 목적으로 방문할 기회를 가져 본 태국 사람들은 양 손을 펼쳐서 손바닥을 서로 모으는 합장(合掌)으로 인사한다. 그러나 자세히 배워보면 격식이 분명하다. 윗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합장한 손끝을 코 높이 까지 올리고 머리를 숙여 존경의 표시를 하며 인사한다. 아랫사람에게는 양손을 모으기는 하되 고개를 숙이지는 않는다. 서열이 같거나 비슷하다고 여길 때는 합장한 손끝을 목 근처 정도의 높이로 올리는 것으로 예를 표한다. 러시아의 슬라브계 사람들은 서로 포옹을 하고 볼에 입을 맞추며“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에스키모 족들은 반갑다는 뜻으로 서로의 뺨을 살짝 쳐주며 양쪽 귀를 만져 준다. 티베트 사람들은 자신의 귀를 잡아당기며 친근감의 표시로 혀 바닥을 살짝 내어 민다. 뉴질랜드 마오리 족인 폴리네시안들은 코를 서로 비벼 댄다. 브라질 사람들은 여성과 인사할 때에 상대방의 손 등에 입을 맞춘다. 영국을 비롯한 대개의 구라파 사람들이나 북 미주의 사람들은 서로 악수하며 가까운 사람들끼리는 포옹을 하는 스타일로 인사를 나눈다. 이처럼 문화와 종족에 따라서는 인사하는 스타일조차도 서로 너무나 다르다.
지난 2,000년 동안 세계 열방에 전파되어온 기독교 복음의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선조들의 고향인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의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헤롯이 명령한‘유대 남자 아기들을 살해하라’는 두려움을 피하여 어린 아기 예수를 품어 안고 짐승에 태워서 황급하게 애굽으로 피난하는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나중에 몰래 가만히 숨어 들어와 살게 된 것이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 마을인 나사렛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기서 30년을 살았다. 예수의 나이 몇 살 때인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으나 육신의 아버지 요셉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예수는 아버지의 하시던 일인 목수 일을 이어서 했고 홀로된 어머니 곁에서 여러 동생들을 건사하며 살았다. 나사렛은 이스라엘의 갈릴리 지역에 있는 한 시골 마을이다. 예수는 유월절이나 맥추절이나 수장절과 같은 절기 때에나 부모를 따라서 예루살렘에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거의 날마다의 일상은 나사렛을 중심으로 한 갈릴리의 생활이 전부였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나사렛 예수’이며‘갈릴리 예수’이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헤롯이 죽은 후에 애굽에 머물던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아내와 아들 예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서 살라고 현몽하였다. 악정을 행하던 헤롯이 죽었으나 그 아들 아켈라오 역시 선정을 하는 통치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요셉은 이스라엘 땅에 돌아가서 사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꿈에 천사가 다시 나타나 지시하였다. 그 후로 요셉은 아내와 어린 아들 예수를 데리고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에 가서 살기 시작했다. 이는 이사야서에서 예언한“나사렛 사람이라.”는 칭함을 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했다. 이 날 이후로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명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것 말고는 늘 나사렛 사람이며 갈릴리 사람으로 사시다가 붙잡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러므로 예수에게서는 예루살렘 스타일이란 거의 없다. 아니 전혀 없다. 오늘 날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강남 스타일이 아니라 강북 스타일이며 강북 스타일이 아니라 달동네 스타일이며 쪽방 스타일이며 노숙자 스타일이셨다. 어느 때부터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기는 급상승하였고 임금 삼자는 무리가 에워싸며 모여 들어 잠시도 쉴 틈이 없이 바쁘고 고달픈 나날을 살아가고 계셨다. 낮에는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비유로 말씀하시느라 하루해가 금방 다 지나가고는 했다. 그 때에 어느 한 서기관이 예수를 따르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 서기관들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파계(破戒)행위를 선언한 것이다.“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마8:19) 그 때 예수는“여우도 굴이 있고 공주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하신 말씀이“너는 나를 따르라.”(마8:22)는 초청이셨다.
비틀스의 인기도 역사 속에 묻혀 버리듯이 싸이의 강남 스타일의 인기도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시적인 현상이요 이 또한 유행으로 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믿는 신자들의 영원한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 하신 후에도 나사렛 예수요 갈릴리의 예수이신 것을 벗어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다. 예수가 부활하신 새벽에 빈 무덤을 찾아 갔던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빈 무덤을 들여 다 보며 놀라할 때에 천사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그리고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막16:6-7)고 전해 주었다. 그렇다. 이 세상은 베들레헴에서 나시고 나사렛에서 자라나신 후에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사십일 금식하신 후에 갈릴리의 여러 마을로 다니시며 천국 복음을 전하시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그 갈릴리 스타일! 그 복음의 스타일로 승부(勝負)해야 하는 것이다. 땅 끝까지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마28:10)고 분부하신 예수님의 그 섬김의 스타일! 그 갈릴리 스타일로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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