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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그 역사의 현장 18 201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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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6-08-07 08:42 조회 13,857 댓글 0
 

성경과 그 역사의 현장-18

 

 

미국의 서정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의 시 중에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란 시가 있다. “.....나는 한 숨 쉬며 이야기 하겠지요 나이 들고도 한참 뒤 언젠가 떠 올리겠지요: 나무 숲 속 갈림길이 있었고, 또한 나는 - 나는 한 쪽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내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되었다고.”(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그가 말하는 가지 않은 길이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고 있는 길이 아닌가. 인생은 이처럼 날마다 낯 설은 인생길을 걸어간다. 그래서 인생(人生)을 한 번 가고 나면 다시는 되 돌이킬 수 없는 일생(一生)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생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내가 곧 길이요...”라고 말씀하셨고 인류 구원을 향한 구원주로서의 길을 걸어 가셨다. 그 분은 나사렛의 요셉과 정혼한 상태였던 마리아의 태를 빌려서 이 땅에 태어나셨다. 어느 날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찾아 왔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그녀의 몸에 수태되게 될 사실을 알렸다. 천사는 당황해 하는 마리아에게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1:31)라고 말했다. 마리아는 두려움에 가득 찬 숨 막히는 불안 가운데 유대 산골 마을에 있는 친척 엘리사벳의 집으로 피신해서 지내기도 하였다. 어느 날 마리아의 남편 될 요셉에게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 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1:20) 그리고 장차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날 아기의 이름까지 정해 주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1:21)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서 이 땅에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태어나자마자 헤롯의 칼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신하여야만 했다. 갖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 곁에는 산모와 아기를 보호하는 요셉이 있었다. 요셉 자신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낯설고 두려운 길을 가고 있었다. 왕이 태어났다는 소문을 들은 헤롯은 베들레헴 근동의 두 살 미만 된 남자 아이들을 모두 다 죽였다. 요셉은 이미 그 이전에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이끌고 급하게 애굽으로 피신한 이후였다. 헤롯은 충에 먹혀 죽었다. 그 후에 애굽에서 지내고 있던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다.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2:20) 헤롯의 대를 이어 그의 아들 아켈라오가 유대지역의 왕으로 있던 때의 일이다. 요셉은 무서운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나사렛에 가서 살기 시작하였다. 나사렛은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이다. 이리해서 예수님은 늘 나사렛 예수라고 불려 지게 되었다. 이는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11:1, 2:23)는 예언이 이루어진 일이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12살 때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어린 시절, 예수님의 활동 무대는 갈릴리 나사렛이 전부였다. 해마다 절기가 되면 부모의 손을 잡고 예루살렘에 다녀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나이가 좀 들면서 경험하게 된 일이다. 예수님의 부모는 그가 열두 살 되었을 때에 절기의 관례를 따라서 아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갔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예수의 부모는 유월절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에 아들이 일행 중에 없는 것을 하루 뒤에야 알게 되었다. 사흘을 헤매며 찾아 나섰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그대로 남아서 바리새인, 서기관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성경은 그 당시의 상황을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2:47)고 하였다. 예수님은 이미 그냥 평범한 나사렛 소년들 중의 한 명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해 놓으신 길을 가고 있는 메시야였다. 예수님은 명절마다 예루살렘에 가시고는 하였다. 그리고 공생애 셋째 해에 붙잡혀 죽으셨다. 당시 유대인을 지배하던 로마의 헤롯왕은 유월절이 되면 유대인 한 명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었다. 그런데 유대 백성들은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길 원했고 대신에 강도인 바라바를 풀어 놓으라고 소리쳤다. 결국 빌라도는 유대백성들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판결하였다. 새벽에 가야바의 뜰에서 심문을 받으신 예수님은 빌라도 총독의 관저로 이송되었다. 그 당시에 대제사장 가야바보다 더 권한을 행사하던 인물은 그의 장인이며 직전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였다. 예수님은 안나스와 가야바를 거쳐서 결박된 채로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려 가셨다. 빌라도의 명령을 받은 로마의 군인들은 예수님을 채찍으로 때리고 마리에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자색 옷을 입혔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하고 조롱하며 손으로 때리기도 하였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기도 하였고 주먹으로 치기도 하였다. 예수님의 오른 손에 갈대를 잡게 하더니 다시 빼앗아서 그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내려치기도 하였다. 그들은 온갖 희롱을 다 한 후에 예수님께 입혔던 홍포를 벗기고 도로 예수님의 옷을 입혔다. 그리고 골고다 언던 위에서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하기 위해서 끌고 가고있었다. 역사 속에 수많은 학자들의 고증을 거쳐서 알려진 길이 슬픔의 길”(Way of Grief)이란 의미의 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길이다. 우리 일행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극심한 고통 가운데 십자가를 메고 끌려가신 800m가량의 그 언덕길을 따라 걸었다. 14곳으로 나누어져 있는 그 길 양편에는 별의 별 장사하는 이들의 상점이 즐비하다. 1000여 년 동안 학술적인 우여곡절을 거쳐서 19세기에 들어와서 고고학자들의 고증에 의해 확정된 길이 비아 돌로로사이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7:13-14) 지금 가고 있는 그 길이 곧 그 사람 자신이다. 욥기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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