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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생활(눅11:1-13) 202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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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07-27 18:03 조회 2 댓글 0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생활(눅11:1-13)       2025. 7. 27

 

 

 

말씀과 기도는 기독교 신앙생활의 두 축이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계신 동안에 일관되게 비유의 말씀으로 천국을 교훈해 주셨다. 그리고 스스로 날마다  기도 하는 생활을 계속하셨다.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마7:24-25)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이어지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하신 후에 하신 말씀이다. 무슨 의미인가. 말씀을 많이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듣고 깨달아 아는 말씀을 삶으로 실천해야 하는 언행일치(言行一致),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삶을 강조하신 것이다. 예수는 말씀의 실천과 더불어 모범을 보이신 것이 기도 생활이셨다. 

 

어느 날 한 곳에서 기도하기를 마치신 예수께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다가와서 이런 요구를 하였다. “세례 요한이 자기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처럼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세요”그렇다. 예수께서 날마다 비유로 말씀하신 그 많은 말씀들은 제자로서 듣고 그 교훈을 깨닫고 실천하면 족한데 기도 생활은 쉽게 배워지질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몇 가지의 분명한 주제를 가지고 기도 생활을 깨우쳐 주셨다. 그 첫째가 우리가 ‘주기도문’이라고 이름 붙이는 기도이다. 

 

 

이렇게 기도하라.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신 주기도문의 내용이 무엇인가. 

 

첫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둘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주시옵소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셋째,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소서

넷째,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도 사하여        주시옵소서

다섯째, 우리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마태복음)

 

마태복음 6장에 기록된 주기도문에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시작된다. 그리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이라고 끝난다. 

 

맞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다. 여기서 하늘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일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모든 우주 세계를 통칭하는 표현이다.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권세와 주님의 영광은 영원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나라이다. 주님의 권세는 세상 권세자의 권세와 비교할 수 조차 없는 엄위롭고 영원한 권세이다. 주님의 영광은 인간 이 세상의 헛된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주 삼라만상 가운데 충만하신 충만으로 임재하여 계신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언제나 계시다. 우리는 해와 달과 별들의 우주 공간과 지구의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각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나. 동서고금의 인류의 역사를 보라. 그 많고 많은 영웅호걸의 나중을 보라. 이 세상에 영원한 나라가 있나. 헬라와 로마가 어디로 갔나. 알렉산더와 시저의 권세가 어디로 갔나. 천상천하 절대 지존을 자랑하며 황제의 관을 직접 자기의 손으로 자신의 머리에 얹었다는 나폴레옹의 권세와 영광이 어떻게 되었나.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김일성과 같은 그 많은 독재자들의 나중은 어떻게 되었는가.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내용은 분명하다.

거룩하신 하나님, 내 삶의 중심에 찾아 오셔서 내 마음 속에 충만한 충만으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우리의 건강을 비롯하여 먹고 입고 쓰며 살아가는 의식주의 공급자이신 하나님, 죄를 용서해 주시며 죄 사함 받은 자의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온갖 사탄 마귀의 시험과 유혹과 미혹으로부터 막으시고 건지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며 살아가라고 가르쳐 주셨다. 

 

 

간청하는 기도를 하라.

“이렇게 기도하라” 라고 기도 생활의 구체적인 내용을 가르쳐 주신 예수께서 곧 이어서 해 주신 비유의 말씀이 5절 이하에 나온다. 한마디로 하면 “쉽게 포기하지 말고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간청하는 기도를 계속하라”라는 교훈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어느 사람에게 한 밤 중에 친구가 찾아 왔다. 그런데 그 집에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 집에 방문한 친구는 배가 몹시 고파서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하였다. 집 주인은 하는 수 없이 곁에 있는 또 다른 친구의 집을 찾아 갔다. 문을 두드리니 집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누구세요”, “이봐 친구 난데 멀리서 친구가 찾아 왔는데 배가 고파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네. 뭐 먹을 것이 있으면 좀 주게나”그 때에 집 안에 있는 친구는 문도 열어 주지 않고 대답했다. “아 이사람아 귀찮게좀 하지 말게 난 이미 잠 옷 갈아 입고 애들과 잠자리에 들었는데...내일 오면 않되겠나”그러자 문 밖에 찾아 온 친구가 계속 간청하는 것이었다. “이보게 그 멀리서 찾아 온 내 친구가 저렇게 배가 고파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일은 내일이고 당장 지금 뭐 먹을 거리가 있거든 좀 내어 주게”문 밖에 찾아 온 친구는 무슨 먹을 거리든 마련하지 아니하면 되 돌아갈 기세가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이런 비유의 말씀을 하신 후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눅11:8)라고 교훈해 주셨다. 그렇다. 매사가 그러하다. 간절함과 열정과 성실을 통해서 역사는 바뀌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열심의 영이시다. 하나님의 열심히 우주를 다스리시는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앞에서 간청하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선을 구하고 진리를 구하고 공의를 구하는 일에 간청하는 열심히 있어야 한다. 

 

우리 선조들은“한 술 밥에 배 부를 리 없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이다. 일곱 번 찍어서 않 너머갈 나무가 없다”는 등의 속담으로 교훈하였다. 그렇다. 매사에 꾸준하게 성실하게 인내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임하면 그 결과와 열매가 달라진다. “낙수물이 바위를 뚫는다. 가랑비에 옷 젖는 것이다”라고도 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산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도다”

 

라는 시조도 있지 않나. 조선 중종 때에 태어나서 과거에 급제하고 인조, 명조, 선조 때의 40여년간 관료로 지낸 문인이며 서예가요 문장가였던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의 시조이다. 

 

맞다. 예수께서 교훈해 주신 기도의 중점이 이것이다. 우리는 지난 사순절 내내 “이제 역전 되리라”라는 찬양을 부르고 또 불렀다. 그 찬양의 가사 중에는 “기도를 멈추지 말라”는 내용이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기도 생활에 대한 예수의 강조가 무엇인가. 간청하는 기도 생활의 가치를 붙잡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먼 찾아 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 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생활의 준칙 중의 백미와 같은 내용이다. 기도하다가 그만두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만큼 간절한 기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사를 가르는 간절한 기도라면 기도하다 말겠나. 운명을 좌우하는 기도의 제목이라면 기도하다가 멈추겠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도 제목이라면 밤낮 잊고 지낼 수가 있겠나. 

 

역사에 성공적인 삶을 산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성경에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한 신앙생활을 이어갔던 신앙 선배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이 무엇인가. 믿음의 증거는 기도 생활이며 기도 생활의 결과는 믿음의 열매로 입증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편에서 수 많은 다윗의 시편들을 대하게 된다. 다윗의 위대함이 어디에 있는가. 그가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왕이었기 때문인가. 블레셋의 적장 골리앗을 물맷돌 한 개로 이겼기 때문인가. 아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왜 하나님이 다윗을 마음에 들어 하셨는가.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라고 칭찬하셨다. 하나님은 왜 그토록 다윗을 마음에 들어 하셨는가. 다윗의 남다른 점은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시편 1, 2편은 누가 쓴 시편인지 기록이 없다. 그러나 시편 3편부터 41편까지만 보아도 그 많은 시편 중에서 10편과 33편 외에는 모두가 다 다윗의 시편이다. 시편 150편 분량 중에서 73편 분량이 다윗의 시편이다. 

다윗의 시편의 특징이 무엇인가. 기도하는 내용이 거의 다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시3:7)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시4:1)

“여호와여 내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시5:1)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시6:9)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을 귀하게 여기신다. 기도의 사람을 주목하신다. 기도의 사람의 앞길을 인도하시고 동행하신다. 기도는 선택이 아니다. 기도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숨을 멈추면 죽는 것처럼 기도가 멈춘 인생은 살았으니 산 것이라고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 기도의 사람을 통하여 증거를 나타내 보여 주신다. 그러므로 개인이든 가정이든 기업이든 나라의 일이든 기도가 우선이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영어 수학만 강조하지 말고 기도 생활을 가르쳐야 한다. 기도 생활의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한다. 기도 생활의 열매를 보여 주고 기도 생활의 결과를 간증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다 보면 생각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인격이 달라지고 운명이 달라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기도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는 가장 소중한 방편인 것이다. 간청하는 기도, 간절한 기도, 응답의 확신과 소망을 품고 기도하는 끈기 있는 기도 생활을 통해서 크고 작은 기도 제목들마다 응답받고 간증하는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라.

기도하면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신다. “하나님 떡 좀 주세요. 하나님 생선 좀 주세요”이렇게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은 떡만 주시고 생선만 주시는 아버지가 아니시다. 더 좋은 것을 주시고 점점 더 새로운 것으로 풍성하게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한 없는 축복을 우리게 주시는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이라고 찬양하지 않나. 30년 전에 미국에 처음 도착해서 주일에 한인교회에 갔다. 우리 두 아들이 9살과 7살 때의 일이다. 우리 아들들은 영어를 한 마디도 못 하는데 교회학교 어린이들이 “God is good all the time”하고 큰 소리로 외치는데 왜 그렇게 귀엽고 멋있어 보이든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렇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잡아 주는 아버지가 아니다. 알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잡아 주는 아버지가 아니다. 세상에는 악한 아버지라도 제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에게 기도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는가. 이것은 내 설명이 아니라 예수께서 친히 교 훈해 주신 말씀이시다. 

 

그렇다.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시다. 나쁜 아버지, 못된 아버지, 무책임한 아버지, 무관심한 아버지, 무능력한 아버지가 아니시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전능하신 아버지, 자상하신 아버지, 따뜻한 마음과 친절한 마음을 지니신 아버지, 좋고 풍성한 것으로 공급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나의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기도하는 아들딸에게 성령을 풍성하게 공급해 주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좋은 것이란 성령을 말씀하신 것이다. 성령은 좋은 영이다. 사탄의 영은 악한 영이지만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은 좋으신 영이시다. 유익한 영이며 도우시는 영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으면 기뻐지고 즐거워지는 것이다. 성령을 받으면 감사와 소망과 평화와 위로와 안식이 샘솟는 생을 살아가게 된다. 성령을 받은 성도는 그 어떤 환경, 그 무슨 일을 겪을 지라도 오뚜기처럼 굳굳하게 딛고 일어나게 되어 있다. 죽음이라도 이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은“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해 주시는 좋으신 영이기 때문이다. 

 

성령은 지혜의 영이며 명철의 영이다. 보혜사이신 성령은 도우시는 영이며 생각나게 하시는 영이며 깨우쳐 주시는 영이며 지도하시는 영이시다. 잘되게 해 주시는 영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 성령 받기를 기도해야 한다. 성령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기를 간구해야 한다. 성령 안에서 생각하고 성령 안에서 판단하고 성령 안에서 결정하고 성령 안에서 추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기도의 사람의 모습이다. 예수께서는 성령 안에서 잉태되고 성령 안에서 태어나고 성령 안에서 성장하셨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때에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했다.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시며 광야에서 사십일간 금식하셨다. 성령과 말씀의 도우심으로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넉넉히 이기셨다. 예수의 생애는 성령 안에서의 생애였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무덤에 장사지낸 예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의 첫 말씀도 “성령을 받으라”(요2);22)라는 강조였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라고 말씀해 주셨다. 

 

폭염이 계속되는 이 무더운 여름철에 성령의 임재를 간절히 의지하자.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하자.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고 좋은 것을 누리도록 함께 해 주실 줄로 믿는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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