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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그들의 대답(말43:7-12, 행10:17-24) 2018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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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8-01-14 22:45 조회 15,659 댓글 0
 
                                         그들의 대답(말43:7-12, 행10:17-24)        2018. 1. 14 청지기 주일
 

양화진 외국인 묘지를 방문하면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묘비가 하나 있다. 24세 젊은 나이로 조선에 와서 개성에서 조선 말을 배우며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던 그녀는 불과 9개월도 지나지 않아 순교한 루비 켄드릭 (Miss Ruby Rachael Kendrick, 1883~1908)양의 묘비이다. 그녀의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
만일 내게 일천 생명이 있다면 그것을 모두 조선에 주겠노라
 
미국 텍사스 남감리교회의 독실한 가정에서 태어난 루비 캔드릭은 꿈 많은 소녀 시절부터 불신자들에 대한 구령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해외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텍사스 여자고등성경학교에 진학했다. 1905년 6월에 졸업한 그녀는 선교사 파송 연령제한에 걸리자 교사로 1년, 대학 학부 과정 1년을 수학하면서 해외 선교를 위해 착실히 준비했다. 그녀는 이 기간에 텍사스 엡윗 청년회 대표가 되었다. 1907년 9월에 남감리교회 여자 외국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조선에 왔다. 텍사스에서 엡윗청년회 컨퍼런스가 열리고 있던 중 조선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가득 담긴 그녀의 편지 한통이 도착했다. "만일 내게 일천 생명이 있다면 그것을 모두 조선에 주겠노라."라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는 그곳의 수많은 사람의 심령을 감동시켰다. 20명 이상의 조선 선교 지원자들이 결심하는 열매를 맺었다.  그 후 매년 마다 선교 후원금이 조선 땅에 보내졌다.
 
해마다 새해를 맞으면 둘째 주일을 청지기 주일로 지킨다. 청지기가 누구인가. “주인의 것을 맡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이 청지기이다. 십일조에 관한 말씀 묵상을 매년 첫 달 둘째 주일인 청지기 주일에 해 오고 있다. 십일조가 무엇인가. 십일조는 구약시대의 산물이니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가. 아니다. 예수께서도 십일조 생활을 분명하게 교훈해 주셨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무슨 말씀인가.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할 뿐만 아니라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실천할 줄 아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시다. 예수는 이처럼 예물을 드리는 생활과 일상생활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삶을 강조하셨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성령 받은 초대 교회의 구성원들은 십일조의 신앙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은혜 받은 감격 속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는 공동생활을 하였다. 사도행전 4장에 소개된 구브로 섬 출신의 레위 족 사람인 요셉은 밭을 팔아서 바쳤다. 그 요셉을 사람들은 ‘바나바’라고 불렀다. 그는 가는 곳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자의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요셉’으로 불리기보다는‘위로의 아들’이란 뜻의 ‘바나바’라고 주로 불렸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초대 교회 이후의 교회 공동체는 십일조 신앙에 머문 정도가 아니었다. 그 외에도 훨씬 더 풍성하게 넘치는 연보 생활을 기쁜 마음을 갖고 자원하여 하고는 하였다.
 
지난 2천년 동안의 세계 선교를 이루어 온 헌신자들을 보라. 그들은 자신의 재산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과 생명을 바쳐서라도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땅과 낯 설은 민족을 향하여 ‘땅 끝 선교’의 부담을 갖고 나아갔다. 끝없는 섬김과 헌신에 의해서 오늘 날의 세계 교회와 한국 교회의 선교 동력에 불이 붙여진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우리 교회가 적지 않은 선교를 감당하면서 여기 까지 나아 올 수 있었던 힘도 십일조 신앙과 선교 신앙을 갖고 끝없이 섬기고 충성하고 헌신을 계속해 오는 숨은 일꾼들이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일 예배에 다녀간 해외 취업 현장에 있는 30대 후반의 한 청년은 월요일에 점심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요청하였다. 점심을 함께 하고 헤어지는데 그는 100불짜리 새 달러 100장이 담긴 한 묶음을 건네었다. 10,000불을 헌금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그렇지 않나. 십일조 신앙이란 모든 신앙 생활과 헌금 생활과 헌신 생활의 기본적인 표현이다 십일조 생활을 못하거나 안 하는 분들은 늘 상 “왜 꼭 십일조를 해야 하느냐”, “지금이 모세 시대냐, 구약 시대냐”고 질문하며 회의적이다. 그러나 묵묵하게 십일조 신앙을 지켜 오는 개인과 가정은 말라기의 본문 말씀을 그대로 믿고  간증하며 새로운 은혜를 체험하며 주를  따르길 원하는 믿음으로 살아간다.
 
말라기 3장에 보면 어느 날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의 입을 빌려서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 백성들이 대답하였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그러자 하나님이 대답해 주신 말씀이 말라기 3장 8-9절이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12절에도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이 말씀을 마치시면서 하나님은 다시 또 말씀하셨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십일조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간증하는 간증은 넘쳐 난다. 이는 십일조 생활을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서는 모두가 다 강 건너 남의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말라기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는 말씀을 왜 계속하여 반복적으로 사용하시는 걸까. 그렇다. 이 말씀을 하시는 주 여호와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다.”우리가 믿고 따르고 경배하고 섬기는 하나님은 블레셋에 지고 앗수르에 끌려 다니고 헬라와 로마 앞에 비굴해 지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다. 우리의  주 여호와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그의 가족들과 식솔들이 포로로 붙잡혀 간 그돌라오멜 연합군대의 왕국에 쳐들어가서 뺏겼던 재물과 조카 롯과 그의 부녀와 친척들을 모조리 다 다시 되 찾아 왔다. 아브라함에게 뛰어난 전략이 있었기 때문인가. 아브라함과 함께 따라 나섰던 318명이 무술에 능한 자들이기 때문인가. 아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해 주신 전쟁이기 때문에 이긴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던 아브라함은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났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였다.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창14:19-20) 그 때 축복의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들 중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주었다.
 
말라기 말씀에 보면 십일조 신앙을 갖고 살면 어떤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나. 말라기 3장 10-12절을 보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겠다.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할 것이다.
 
'고려은단' 의 조규철 회장은 24살 때 특별 새벽기도를 마치고 교회를 나서다가 목사님께 인사를 하다가 윗 주머니에서 담뱃갑이 떨어졌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창피한 생각에 담배를 끊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번번이 작심삼일이었다. 그러다 언젠가는 다시 결심하고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마다 기도하면서 은단을 씹었다. 그렇게 해서 금연에 성공하게 되었다. 그는 신앙인으로서 떳떳한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생각하던 중에 은단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 소비도 줄고 국민 건강에 이익도 불 수 있는 사업이라 생각했다. 1943년 그 당시에는 큰돈인 거금 50원을 들여 일본인이 경영하던 은단 공장을 인수했다. 1946년에 은단 회사를 크게 확장하였다. 그러나 6. 25 전쟁으로 모든 것이 풍지박산이 나고 말았다. 그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하고 기도하였다. 6.25전쟁 때에 부산으로 피난했던 그의 사업은 휴전 이후 1955년 서울 제기동에 '고려은단 제약회사'를 세워 국내의 굴지 회사로 발전시켰다. 과거에 그의 집이 신촌 봉원동 연대 뒷산에 있었는데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이 산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실과 기도장소를 제공하고 개방해 주었다. 지금은 고령이고 그를 이어 그의 아들 조창현 사장이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그도 아버지 못지않은 신실한 크리스챤이다. 그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회사가 민족 복음화를 위해 쓰임 받을 수 있을까?' 하고 고심하다가 몇 년 전부터 시작한 것이 예수님을 대대적으로 소개하는 옥외광고다.
 
Jesus loves you
 
라는 대형 광고를 고속도로 곳곳에 설치했다. 경부, 중부, 호남, 남해 고속도로는 물론 올림픽 대로에도 설치했다. 회사는 더욱 성장해 국내 시장 점유율 80%인 최대의 은단 회사가 되었다. 소리 없이 북한과 가난한 제 3세계의 나라들마다 의약품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선행도 계속하고 있다. 고려 은단의 제품들은 아시아 여러 나라와 미국에 까지 수출되고 있다.

철저한 십일조 신앙과 절대 하나님 중심 신앙으로 날마다 새로운 간증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한다.
지난 주일에 이어서 백부장 고넬료의 인격과 신앙의 면모를 좀 더 나누길 원한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기도하던 고넬료처럼 욥바에 선교 여정 중이던 베드로 사도는 정오 기도 시간에 욥바의 해변에 있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그의 기도는 황홀한 체험에 들어갔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하늘에서 내려 왔다.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메어 땅에 드리웠다.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새들이 있었다. 그리고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하는 음성이 들렸다. 베드로가 대답하였다.“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그 때에 두 번째 소리가 들렸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어 갔다.
 
베드로는 환상 중에 분명하게 보여 주시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의아해 하고 있었다. 그 때에 고넬료가 보낸  하인들이 무두장이 시몬의 집 문 밖에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고 물었다. 그 시간에 지붕에서 베드로는 환상의 뜻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에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너를 찾는다. 의심하지 말고 내려가서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네게 보내었다.”집 문 밖에 내려 선 베드로가 그들에게 물었다. “내가 베드로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그들은 서슴없이 자기 주인 백부장 고넬료에 대하여 베드로에게 소개하였다.
 

의(義)로운 사람.
고넬료의 하인들과 부하들은 자기 주인이며 상관인 백부장 고넬료를 ‘의인’이라고 소개하였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말인가. 사람이 멀리서 볼 때에 그럴 싸 해 보이는 것은 별 것 아니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서 존경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나. 나무도 멀리서 볼 때에 울창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 썩은 가지, 병든 가지, 꺾인 가지, 시든 나뭇잎, 벌레가 갉아 먹고, 거미줄이 얼기설기 쳐져 있고, 진딧물이 가득하고 한 속속 들이의 장면들을 자세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의인이 있나. 없다. 로마서 3장 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어찌 백부장 고넬료의 하인들과 부하들은 자기 주인이며 상관인 백부장 고넬료를 의인이라고 했을까. 여기서 의인이란 말은 유대교의 율법에 비추어서 의롭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의인이란 말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신앙인을 가르치는 말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고넬료는 로마의 군대 백부장이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다. 그런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율법 신앙에 붙들려  살아가려고 했기에 그의 주변 사람들이 그를 의인이라고 했을까. 사도행전 11장 3절의 말씀에 보면, 그는 할례 받은 유대인이 아니다. 이방인일 뿐이다. 그런 그가 얼마나 철저한 하나님 신앙, 율법 신앙에 붙들려 살았기에 그의 하인들과 부하들이 그를 의인이라고 했을까.
 
창세기 6장 9절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칭찬이 어디 있겠나.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며 방주를 건설한 노아는 그의 여덟 식구와 함께 구원 받았다. 방주에 들어 갈 때 노아의 나이가 600세였다. 노아는 홍수 후에 350년을 더 살고 950세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갔다.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사람.
사도행전 10장 2절에 보면,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던 신앙인이었다. 그런 백부장 고넬료를 베드로 사도에게 소개하는 그의 하인들과 부하의 표현도 한결 같았다. “우리 주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 얼마나 좋은 평인가. 고넬료는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다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생활하던 경건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에 지방 장로 19명의 교육진급 과정과 자격 심사가 있었다. 그 중에 어느 장로는 자신의 교회 담임 목사에 대하며 말하면서 “저는 진심으로 우리 목사님을 존경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가 가정, 교회, 세상에서 이런 인간관게로 만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서로 존경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아끼고 서로 칭찬하고 서로 귀하게 여기고 서로 덕을 세우는 그런 인간 관계 말이다.
 
나는 은행일 보러 다니는 경우가 거의 없다. 교회적으로 새 통장을 만들 일이 이ᅟᅭᆻ어서 은행엘 갔다. 사람이 많이 대기 표를 뽑아 가지고 앉아서 기다렸다. 책 비치대에 어린이 그림 동화책이 있기에 단숨이 읽었다. 그림도 재밌고 내용도 교훈적이었다.
 
<까만 코다>라는 제목의 그림동화였다. 이루리 라는 우리나라 작가가 글을 쓰고 이탈리아의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림을 그린 책이었다. 사냥꾼이 까맣게 자신을 위장하고 북극 곰 사냥을 나섰다. 소리와 냄새에 민감한 흰 북극곰을 사냥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희게 눈이 덮힌 북극의 흰 곰은 눈 색과 곰의 털색이 같아서 좀처럼 눈에 뜨이질 않는다. 사냥꾼은 단지 곰의 가릴 수 없는 크고 검은 코를 찾아서 총구를 겨누고 사냥을 시도한다. 어렵게 북극곰을 발견한 사냥꾼이 정조준을 해서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숨을 조이며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는 순간 이미 어미 곰은 사냥 군이 자기를 잡으려고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을 눈치 챘다. 순식간에 어미 곰은 곁에 있던 새끼 곰을 보호하기 위해서 끌어안았다. 그 순간 사냥꾼의 눈에 커다랗고 검게 보이던 어미 곰의 큰 코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어미 곰이 새끼 곰을 보호하기 위해서 새끼 곰을 품에 안고 자세를 웅크리는 바람에 그렇게 커다랗게 보이고  감출 수 없던 검고 큰 까만 코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 것이다. 책의 제목인, <까만 코다>라는 제목이 마치도 외국어 같지만 사실은 까만 코를 말한다. “저기 까만 코가 보인다.”하고 총구를 겨누는 순간에 어미 곰은 새끼 곰을 사랑하고 보호하려는 본능으로 머리와 몸을 움츠리면서 자신도 살고 새끼도 보호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산다는 게 뭔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가족들 간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간다. 그런 이들은 교회 섬김도 다르고 교회 충성도 다르고 교회 헌신도 다르고 교회 사랑도 다르고 교회에 대한 염려나 관심도 다르게 마련이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찬송하고 하나님만 경외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주인은 돈은 많은데 인색하기가 스크루지 같습니다.
우리 주인은 권력은 하늘을 치솟는데 사람이 못됐습니다.
우리 주인은 공부도 많이 하고 명문대학도 나왔다지만 사람이 영 틀려먹었습니다.
우리 주인은 남들은 대단하게 여기지만 곁에서 보면 항상 겉 다르고 속이 다른 사람입니다. 이중인격자입니다.”
 
뭐 이런 평을 받는다면 쓰겠나.
 
간혹 정치인들이나 기업가들 중에서 그 가까운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 비인간적인 면모가 세상에 들어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실망을 안기는 경우가 없지 않다. 모 기업가가 자가용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인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였다는 등 그런 소문 말이다.
 
욥기가 시작되는 제 1장 1절에 보면 욥이 어떤 사람인지를 기록한 말씀을 대하게 된다.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正直)하여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 이 말씀 가운데 보면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라고 했다. 그런 그도 재산이 다 날아가고 10남매가 하루에 다 세상을 떠나는 참담한 고난을 겪어야 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며 하나님만 경외하며 살고자 하는 의인에게도 고난은 있다. 아무리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아도 실패도 있고 질병도 있고 고난도 있고 시련도 없지 않다. 그러나 선하신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우리 교회의 교우들 중에도 아무리 기도하고, 아무리 부르짖고, 아무리 간구하고 매어 달려도 쉽게 해결 되지 않는 기도 제목을 끌어안고 사시는 가정들이 있다. 그게 자신의 건강 문제이든 자녀들의 문제이든 가족들 간의 그 어떤 기도 제목이든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경외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어야 한다.
욥은 자신도 병들고 일곱 명의 아들들과 세 명의 딸들이 맏아들의 집에 모여서 잔치 하던 날 한 자리에서 다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상상하여 보라. 이런 재난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욥은 아내의 비난과 친구들의 냉혹한 비평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였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1:21)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였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내 뜻대로, 내 원대로, 내 계획대로, 내 의도대로 되지 않는 세상살이 가운데서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사는 겸손한 인간의 모습이 경건이 아닐까. 예수께서 마지막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이 새도록 그런 기도를 드린 후에 십자가의 고난을 향하여 나아가신 것처럼 말이다.
 
 
칭찬(稱讚) 받는 사람.

유대인들이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하던 이방인인 로마 사람인 백부장 고넬료가 아인가. 그런데 유대의 온 족속들이 고넬료를 칭찬할 정도였다. 대단하지 않나. 이 얼마나 귀한 신앙이며 인품인가. 칭찬이란 것이 면전에서 하는 립 서비스 수준의 칭찬도 많다. 상대방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속 빈 강정 같은 그런 공허한 칭찬도 없지 않다. 그러나 여기 가이사랴에서 욥바에 보냄 받은 하인과 부하 중에는 7절 말씀에 보면 ‘경건한 사람’이 포함 되어 있었다. 경건한 부하가 보기에도 자기 상관인 백부장 고넬료는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흔쾌한 마음으로 자기 상관을 베드로에게 소개하면서 “우리 주인은 유대 온 족속들도 칭찬하는 분입니다.”하고 자신 있게 소개하였던 것이다.
 
런던에 사는 한 젊은 남자는 작가가 되려고 했지만 조건이 매우 불리했다. 학교는 겨우 4년밖에 다니지 못했고, 아버지는 빚을 갚지 못해 감옥에 들어가 있었다. 그는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쥐들이 득시글거리는 헛간에서 병에 상표를 붙이는 일자리를 얻었다. 슬럼가 출신의 다른 사내 두 명과 같이 지붕 밑 다락방에서 자야 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그는 한밤중에 남몰래 잠자리를 빠져나와 자신의 첫 원고를 우편으로 부쳤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알고 비웃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가 보낸 원고는 수많은 다른 원고들과 함께 거절당했다. 그러나 며칠 후 편집자가 그의 글을 칭찬했다. 그 칭찬 한마디가 그로 하여금 눈물을 펑펑 흘리며 거리를 정처 없이 쏘다니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칭찬 한마디가 그에게는 계속 글을 쓰고 실력을 향상시켜 나가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그가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이다. 그는 영국 사람들이 19세기의 세익스피어라고까지 극찬하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 중에 31살 때인 1843년에 몇 주 만에 쓴 <크리스마스 캐롤> 같은 작품은 그 어느 누구의 추종을 불허하는 역사적인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한 인물이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이다. 그 후로 ‘스크루지’는 인색한 구두쇠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 소설은 <찰스 디킨스의 비밀서재>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졌고 이번 1월 달에는 우리나라 극장에서도 개봉된다고 한다.
 
누가 봐도 형편없는 사람일지라도, 단 한 명이라도 그 사람에게서 희망을 본다면 그 사람의 가능성은 끝나지 않는다. 모두가 혹평을 한다고 따라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를 칭찬하고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 것 이것처럼 아름답고 우리의 삶을 훈훈하게 하는 경우란 없다.
 
지난날을 뒤로 하고 서로를 칭찬하고 서로에게 칭찬 받는 신앙생활을 하자.
올 해 나 자신과 가족과 온 교회의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의 세상에서도 서로를 칭찬하고 서로에게 칭찬 받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자.
 
우리 교회가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역 근동과 나라 안과 밖의 열방 가운데서 칭찬 받는 교회와 성도들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거룩한 천사(天使)의 지시(指示)를 받는 사람.
사도행전을 비롯한 성경 신구약은 천사 혹은 주의 사자라는 표현을 섞어서 사용한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복음을 전하던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었다. 그런데 사도행전 5장 19절에 보면, 천사인‘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베드로와 사도들을 끌어내었다. 그리고 말했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행5:20) 감옥에서 풀려난 베드로와 사도들은 새벽에 성전에 가서 만난 백성들에게 복음을 가르쳤다. 그 시간에 대 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사람들을 보내서 옥에 갇힌 베드로와 사도들을 잡아 오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가서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겨 있고 지키는 사람들도 문에 서 있는데 문을 열고 보니 사도들이 한 사람도 없었다.
 
대제사장들의 그 어떤 세력도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의 복음 전파의 권세를 막을 길이 없었다. 베드로는 담대하게 말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5:29)
 
사도행전 8장 26절에 보면 천사인 주의 사자가 빌립 집사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그에게 분부하였다.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이와 같은 천사의 지시에 순종하고 빌립은 광야로 나아갔다. 거기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 맡은 관리인 내시를 만났다. 그는 예루살렘에 까지 가서 예배를 드리고 수례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으면서 자기 나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 때에 성령이 빌립에게 말씀하였다. “이 수례로 가까이 나아가라.”그렇게 시작해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해석해 주고 예수를 소개해 주었다. 가까이 물을 발견한 내시는 빌립에게 세례 받기를 청하였다. 세례를 마치고 물에서 올라오자 주의 영은 빌립을 이끌어 갔다.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헛것 보고, 헛소리 듣고, 마귀의 소리에 마음이 흔들리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성령 충만하여 항상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고 천사의 인도하심을 받는 개인, 가족, 성도 모두가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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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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