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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하나님의 전신갑주(엡6:10-18) 201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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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8-01-02 21:49 조회 16,540 댓글 0
 
                   하나님의 전신갑주(엡6:10-18)         2017. 12. 31

2018년 2월 9일부터 25일까지 강원도 평창에서 제 23회 세계 동계 올림픽이 열린다. 각종 경기마다 이긴 자와 진자의 기분은 하늘과 땅 차이가 될 것이다. 대회 슬로건은 ‘하나된 열정’이다. 영어로는 ‘Passion. Connected.’라고 했다. 95개 나라에서 5만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한다. 인천공항에서 평창을 거쳐 강릉까지 KTX가 개통되었다.
 
동계 올림픽 종목은 눈 위에서 하는 경기와 빙판에서 하는 경기 그리고 슬라이딩 종목 3가지를 비롯해서 102개 세부 종목의 경기가 열린다. 스키 점프나 스노우보드 등의 각종 경기를 보면 그 속도와 난이도 등의 위험 요소를 극복한 끊임없는 연습과 도전의 결과를 아름다운 스포츠의 예술작품처럼 감상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경기들이 결국은 끊임없는 자기와의 씨름이다. 
 
모든 경기는 법대로 경기해야 좋은 상을 타게 된다. 운동경기가 그러하듯이 신앙생활에도 그 원칙과 법도와 원리가 있다. 아무리 젊었어도 병들고 허약하면 그런 국제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심신이 강건해야 각 분야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가지고 다른 나라의 최정상의 선수들과 기량을 겨루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 중에서 약물이나 마약 중독이나 도박이나 이성 간의 부적절한 일탈행위 등으로 인하여 개인과 가족과 국가의 명예를 실추 시키고 초라해 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
 
88 서울 올림픽 때 미국의 칼 루이스(Carl Lewis, 1961-)와 캐나다의 벤 존슨(Ben Johnson, 1961-)은 100m 결선 진출 선수였다. 초반에 뒤지던 벤 존슨이 중반 이후 치고 나가 9.79초의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탔다. 그러나 사흘 뒤 도핑 테스트에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라는 근육 강화제 약물 복용 혐의가 드러나게 되자 금메달을 반납해야 했다. 부끄럽게도 황급하게 자기 나라로 도망치듯 돌아가고 말았다. 금메달은 2위였던 미국의 칼 루이스에게 돌아갔다. 자메이카에서 태어  났고 캐나다에서 이름을 떨치던 벤 존슨은 그 일 년 전인 1987년에도 로마 세계 육상 선수권대회에서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었다. 결국은 그 기록도 취소되고 금메달도 박탈당했다. 벤 존슨은 올림픽 영웅에서 한순간에 부도덕한 인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경기 출전 자격이 정지 되기도 하고 풀리기도 하면서 선수 활동을 하긴 하였으나 5년 후인 1993년에 그는 또다시 약물 복용 사실이 들통 났다. 그로 인해 결국은 국제육상경기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미국의 칼 루이스의 자기 관리는 달랐다. 그는 4차례의 올림픽 대회에서 총 9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또한 1983년부터 1993년까지 4차례의 세계 육상 선수권대회에서 8개의 금메달을 비롯해 총 10개의 메달을 획득하였다. 그는 100m, 400m 릴레이와 멀리뛰기를 우승하고 4년 후에도 같은 기록을 되풀이 한  4관왕이 되었다.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때에 이어서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남자 100m의 2연승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요즘 9.53 초의 100미터 기록 보유자인 자메이카의 우 사인 볼트(Usain Bolt, 1986-)는 9. 86의 칼 루이스 기록을 뛰어 넘은 선수이다.
 
성도의 신앙생활도 그러하다. 성도는 주 안에서 그 힘의 능력을 덧입고 강건해야만 한다.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전쟁 중에 모세가 그랬고 아론과 훌이 그랬다. 여호수아가 잘 해서 아말렉을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산꼭대기에서 두 손을 들고 기도하던 모세와 아론과 훌의 연합한 기도를 주목해 보신 것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육체의 욕망을 따라서 살아가면 스스로 멸망하고 만다. 그러므로 육체의 욕망을 죽이고 빛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허약하면 이 계절에 감기를 달고 살듯이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항상 삼킬 자를 찾아서 돌아다닌다. 그러므로 마귀의 간계를 이기기 위해서는“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고대 전쟁은 칼과 창과 활을 주 무기로 하였다. 사도 바울은 그 당시의 전쟁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런 편지를 썼을 것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투구나 방패(防牌)나 오늘 날로 하면‘방탄조끼’인 호심경(護心鏡)이나 허리띠나 신발이 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병사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용 장비일 뿐이다. 공격용 무기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의 칼과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간구 생활이다. 성도가 항상 깨어 기도하기를 힘쓰지 않으면 마귀의 간계를 능히 이길 수가 없다.
성도는 자기의 힘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다. 11절과 13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취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생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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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영적 씨름.
일본에는 스모가 있듯이 우리나라에는 전통씨름이 있다. 씨름 경기를 보라. 몸을 최소한 가린 간편한 복장에 허리샅바를 감아 잡고 상대방과 기술과 힘을 겨룬다. 씨름에서 이긴 자와 진 자의 차이를 보라. 경기는 이겨야 맛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영적 싸움, 영적 씨름에서 이기지 못하면 마귀의 조롱거리가 되고 마귀의 노리개 감이 되고 만다.
 
그리스도인의 적은 11절에 말씀하는 마귀다. 성도의 적은 마귀다. 10절의 “끝으로”라는 표현이 뭘 말씀하나. 앞에서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녀, 상전과 종, 종과 상전의 관계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 모든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중에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여 이기지 못하면 언제라도 마귀의 밥이 되고 만다.
 
가정의 행복을 파괴하고 부부의 삶을 병들게 하고 자녀들이 탈선하게 하고 우리의 사회생활을 형편없이 실패하게 만드는 원인이 뭔가. 경제적인 원인인가. 너무 많이 가진 것이 문제인가. 너무 부족한 것이 탈인가. 많이 못 배워서 그런가. 아니면 너머 많이 배우고 너무 많이 알고 너무 잘난 것이 문제인가. 남이 다 우습게 보이나.  교만이 하늘로 치솟나. 너무 건강한가. 너무 병약한가. 성도의 삶을 쓰러트리려고 호시 탐탐 노리는 적이 무엇인가. 11절에서 말씀하는‘마귀의 간계’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성령의 실존처럼 마귀의 실존을 인정하고 구분하지 못하면 펑펑 마귀에게 넘어지고 만다.
 
신앙생활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마귀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마귀는 “참소자”란 뜻이다. 마귀는 영적인 존재다. 마귀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생활 배후에서 항상 성도들을 넘어지게 하고 시험에 빠지게 하려고 기회를 엿보는 악한 존재다. 
 
<순전한 기독교> 혹은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로 잘 알려진 20세기의 대표적인 기독교 영성가였던 C. S. 루이스(C. S.  Luis)는 이런 말을 했다.
 
“마귀가 가장 조종하기 쉬운 사람은 마귀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이다”
 
마귀의 존재를 믿지 않거나 잘 모르는 사람에게 마귀는 안심하고 쳐들어가서 공작을 벌인다. 계시록 12장 9-10절에 보면 마귀의 정체를“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우리 형제들을 참소(讒訴) 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 하던 자”라고 정의하였다.
 
사단의 특징은 자꾸만 믿는 사람들을 참소한다. 참소란 “남을 헐뜯어서 없는 죄를 있는 것처럼 뒤집어씌우는 것”을 말한다. 마귀는 우리 안에서 스스로 참소하게 만들고 비참한 생각이 들도록 학대한다. 마귀라는 뜻에는“사이를 갈라놓는다.”는 뜻도 있다. 마귀가 역사하면 좋던 부부관계가 갈라진다. 부모 자식 간에 갈라지게 한다. 직장에서도 자꾸만 사이를 갈라지게 한다. 주를 믿는 성도와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갈라지게 한다. 목회자와 성도들 간의 사이를 갈라지게 한다. 마귀는 자꾸만 주변 사람들과의 좋던 사이가 갈라지도록 방해하고 이간질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근신하여 항상 기도하여야 한다. 끊임없는 기도로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다니는 마귀의 간계(奸計)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11절에 보시면 마귀는 자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간계”(奸計)라는 무기를 사용한다. 이  ‘methodoia’(메소도이아) 라는 말에서 영어의 ‘method’ 즉 ‘방법’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마귀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목적 달성을 하기 위해서 별의 별 수단을 다 동원한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라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성도의 가정을 깨트리고, 교회를 흔들어 놓고, 사회생활을 어지럽히기 위해서 별의 별 간악한 방법을 다 동원한다. 12절의“통치자, 권세들,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 모든 내용은 표현만 다를 뿐 마귀를 말한다.
 
고린도 교회에 보면 이런 일들이 있었다.  마귀는 고린도 교회 안에 파벌이 생겨나게 하고 지도자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어 가도록 계속하여 방해했다. 바울과 고린도 교회 간에 불신과 위기감이 팽배했다. 바울은 이 배후에 사단의 공작이 있는 것을 알고 교훈하였다.
 
마귀는 얼핏 보기에는 광명한 천사 같은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어지럽히고 성도들의 사이를 갈라지게 하는 이간질한다. 마귀는 참소하는 악한 영이어서 신앙 공동체를 근심하게 한다. 마귀가 간계를 부리면 교회뿐만이 아니라 가정과 일터와 사회생활 그 어디에서든 공격을 당하게 된다. 마귀는 나와 하나님 사이, 나와 교회 사이, 나와 성도 사이, 나와 목회자 사이, 나와 가족간의 좋은 사이를 자꾸만 갈라놓는다. 그러므로 마귀의 정체를 잘 분별하고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해야만 한다.
 

방어용 도구와 복장들.
전쟁이란 방어와 공격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고대 전쟁이나 현대전이나 공격과 방어의 균형 잡힌 전략을 발전시켜야 주변국의 위협으로부터 한 나라의 안정을 지켜 갈 수 있다. 이는 어느 크고 작은 국가이든 한 도성 안의 왕국이든 기업이든 가정이든 개인이든 다 마찬가지이다.
 
세상은 먹고 먹히는 전쟁의 연속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씨름이라고 점잖게 표현했지만 사실은 그 씨름은 단순한 씨름의 차원의 아니라 영적 전쟁이다.
 
선다는 말은 끝까지 싸워서 이긴다는 말입니다. 전쟁은 끝났으나 병사가 땅 바닥에 누운 채로 일어나지 못한다면 죽은 것이거나 중상을 입은 것입니다. 일어 날 수 있어야 합니다.
 
13절에 서 있다는 말은 더 나아가서 싸울 수 있다는 임전 태세를 말한다. 서 있는 동작은 군인의 기본 동작이다. 군사는 앉아 있거나 누워 있으면 안 된다. 서서 힘차게 앞으로 싸우며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14절 이하에 보면 다섯 가지의 방어용 도구와 복장에 대하여 말했다. 다섯 가지 방어용 도구와 복장들은 모두 앞에서 대적하며 나아가는 것들이지 뒤를 보호하는 도구나 장비는 없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군사는 뒤를 보이고 돌아서서 도망가는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성도는‘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진 전진해야 한다. 새해에는 올해보다 더 힘차게 전진하는 해가 되길 결단하자.
 
우선 앞에 소개되는 다섯 가지 방어용 도구들과 복장이 무엇인가.
 
허리띠
전쟁의 일선에서 싸우는 군사는 허리가 가장 중요하다. 군인이 싸우기 위해서는 머리도 중요하지만 허리가 중요하다. 허리가 약하면 한 발자국도 제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진리”가 허리띠라고 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허리띠와 같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것, 성실한 것, 진실한 것, 불변하는 것이 진리다. 그러므로 성도는 복음 안에서 진실하고 참되고 성실해야 한다. 이런 자세가 우선 되어야 영적 전쟁에 승리할 수 있다.
 
"태도는 사실보다 더 중요하다"
Attitude is more important than the fact
 
영적으로 성실하고 진실하고 참된 신앙 태도를 자져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스스로가 성실하지 못하거나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밤낮 마귀에게 얻어터지고 깨지고 시험에 들어 넘어지고 실패하고 만다. 이런 연말이 되면 누구나 다 신앙생활에 각오가 대단하다. 내년에는 예배, 봉사, 헌금, 십일조, 헌신, 충성, 성경, 기도, 전도 등등 그 각오가 대단해 진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마귀의 미혹 앞에 주저앉고 마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호심경(護心鏡)
호심경은 갑옷의 앞부분에 붙여서 적의 공격으로부터 가슴 부분의 몸을 보호하던 커다란 구리판을 말한다. 마귀는 성도의 심장을 향하여 공격해 들어온다. 정면으로 쳐들어온다. 이때에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흉배를 붙이고 살아야 한다. 이것이 의(義)라는 것이다.
 
불의(不義)와 짝하는 순간에 마귀가 쳐들어와서 “저것 좀 봐라 신자가 참 꼴좋다.”하며 조롱하고 깔보고 고발하고 참소하기 시작한다. 성도는 누구나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것이다. 그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끊임없이 헌신하고 충성하고 봉사하고 섬기고 돌아보고 사랑하는 것이다. 뭘 얼마나 대단하게 충성했기 때문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다. 착각하면 안 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하신 은혜로 의롭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주와 주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과 세상의 이웃들을 계속하여 서로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의로운 삶의 모습이다.
 

“평안(平安)의 복음(福音)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라고 했다. 군인은 군화를 신는다. 슬리퍼를 신고 전쟁할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즉 복음을 평안의 복음이라고 했다. 복음을 깨닫고 믿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 수 있다.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화목한 관계의 은혜롭고 감격스럽고 놀라운 삶이 전개된다.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도 서로 복음 안에서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된다. 이처럼 평화의 복음을 간직하고 평화의 복음의 신을 신고 다니면서 평화의 복음을 전하고 이웃과 평화를 누리게 된다.
 
방패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이 다 중요하지만 그 위에다 꼭 이것을 더 가져야 한다. “믿음의 방패”고대의 싸움은 방패가 대단히 중요했다. 방패 없이 싸우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방패는 때로는 방어용 무기이고 때로는 공격용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다. 사도 바울은 이 방패를 믿음에 비교하였다.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이 험한 세상에서 지키고 보호하는 방패가 된다. 또한 사단의 공격을 막고 이기는 무기가 된다. “하나님을 믿으라.” 간단한 표현 같지만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교회는 드나들지만 하나님을 진심으로 삶에서 믿으면서 살지 못한다. 겉으로만 ‘주여 주여’ 하지 사실은 자기 소신에 갇혀서 산다. 신구약 성경에서 계속하여 강조하는 말씀은 하나님을 나의 생명의 주님으로 믿고 힘과 의지와 능력이 되시는 아버지로 믿으라는 것이다.
 
그래야 마귀와 악한 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보호받을 수 있다.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라고 했다. 마귀는 계속하여 성도들을 향하여 불화살을 쏘아 댄다. 작은 틈만 주어도 불화살이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날아 와서 치명상을 입힌다. 이 같은 불화살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방패를 항상 지녀야 한다. 성도가 하나님을 믿는 강한 믿음을 갖고 살면 언제라도 능히 마귀의 불화살을 막고 소멸할 수 있다.
 
투구
다섯 번째의 영적 방어 무기는 구원의 투구다. 투구란 머리를 보호하는 헬멧이다. 구원의 투구란 구원의 확신을 의미한다.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출발은 구원의 확신으로부터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 믿음이 자라날 수가 없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고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주신 영생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을 가질 때에 비로소 구원의 투구를 쓴 성도가 될 수 있다. 답답해도 헬멧의 안전 끈을 조여 매야 하듯이 구원의 투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헬멧을 쓰지 않은 채 철가방을 들고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는 젊은이들을 보면 보는 사람의 마음이 더 불안해 진다.
 
로마 병사들의 투구는 안에 두꺼운 가죽을 대고 바깥은 구리로 만들어서 그 위에 말총으로 장식을 달았다. 이처럼 성도들은 안으로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면서 바깥으로는 구원받은 확신을 간증하고 증거 하면서 살아 갈 수 있어야 한다. 구원의 간증이 늘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죄를 사해 주시고 사단의 궤계를 깨트려 주시고 나의 영혼을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해 주셨다. 성도는 주께서 나를 구원하셨고 언제나 보호하시고 은혜 주시고 축복하신다는 확신이 있고 간증이 있어야 한다.
 
이 같은 믿음이 구원의 투구를 쓴 믿음이다. 팔이나 다리는 한 쪽을 잃거나 양편을 다 잃어도 살 수 있다. 그러나 머리가 없이는 살 수 없다. 자전거나 오토바이 경주를 하는 선수들이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헬멧을 쓴다. 목회하면서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서 죽은 사람도 보았다. 오토바이 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뇌수술을 한 초등학교 동창도 만나 보았다. 사고로 팔다리를 다칠 수 있지만 머리를 크게 다치면 살수가 없다. 그러므로 구원의 투구처럼 소중한 것은 없다. 구원의 확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단 마귀가 아무리 공격해 와도 구원의 투구를 쓰고 있으면 그 영혼은 아무리 공격을 심하게 받아도 다시 일어 날 수 있다. 이길 수 있다. 구원의 확신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흔들리고 만다. 이단과 사이비가 곁에 와서 길가의 씨앗을 쪼아 가듯 물어가 버린다.  굳건한 믿음, 구원의 확신 가운데 새해를 맞이하는 성도들이 모두 다 되길 축원한다.
 
 

공격용 무기들.
공격용 무기는 두 가지다. 영적으로 사단 마귀의 공격을 막을 뿐만 아니라 사단의 궤계를 진멸할 수 있는 공격무기는 말씀과 기도다.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검, 말씀의 검을 가져야 한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다.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우리의 영과 혼 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갤 분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고 했다. 그러므로 말씀을 알고 깨닫고 믿어서 말씀 자체의 놀라운 능력을 힘입고 살아가야 한다.
 
세계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성경 앱 유버전에 따르면 2017년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가장 좋아한 말씀이 여호수아 1장 9절이라고 한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듣고 읽고 연구하고 암송하고 묵상해야 한다. 교회 와서 예배 시간에 잠깐 말씀 듣고 일주일 내내 성경 한 구절 펼쳐 읽지 않으면 평생 교회를 들고 나도 쉽게 믿음이 자라나질 않는다. 마귀는 우리를 자꾸 바쁘다는 생각에 붙들리게 해서 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미혹한다. 이걸 이기고 극복해야 한다. 사단 마귀의 방해와 훼방을 잘 파악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영적인 일들을 이루어 나가도록 믿고 순종해야 한다. 예수님도 사십을 금식 후에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여 치셨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마귀의 간계를 넉넉히 이기게 하는 지혜와 능력이 있다. 아무리 성도라도 어물어물 하다가는 마귀에게 당하고 넘어지고 만다. 영원히 못 일어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 임금이 그랬고 예수의 제자 가롯 유다가 그랬다. 어물어물 하다가는 영영 구원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말씀은 마귀를 공격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 그러므로 양날 선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소유할 뿐만 아니라 능수능란하게 말씀의 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기도(祈禱)
또 하나의 공격무기는 기도다. 전쟁은 최신예 병기와 함께 무전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전은 최첨단 IT전쟁이다. 상대국가의 전략을 해킹하고 군사 관련 인터넷 망을 교란시키면 모든 전쟁은 엉망이 되고 만다. 교신이 끊기면 아무리 많은 군대라도 포위되거나 교란될 수 있다. 작전 지휘관의 명령이 정확하게 하달되어야 한다. 부대 상황을 알아야 한다. 기도는 마치도 전쟁 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통신망과 같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알아내는 방편이다. 그러므로 항상 성령 안에서 깨어 기도해야 한다. 쉬지 말고 기도할 때에 영적으로 승리하는 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 우리 교회가 이만큼 유지되고 역사를 이어 가며 또 새로운 해를 맞게 되는 힘은 기도의 힘이다. 기도해야 한다. 새해에는 신년 축복 기도 성회, 매주 수요 예배, 매주 금요 기도회, 매일 새벽 기도회, 사순절 기도회, 특별 기도회, 헐몬산 기도회 등 기도에 매진하는 새해가 되길 간절히 축원한다.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가족과 성도들 간에 서로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균형 있고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가 있다. 바울이 그렇게 부탁했다. 18절 끝에“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부탁했다. 성도 간에 중보 기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부탁한 것이다. 또한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바울은 19절에서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이라고 말했다. 기도 제목까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으로 부터 전할 말씀을 잘 받아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담대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19절과 20절에서 두 번이나 반복하였다. 영적인 지도자가 담대함을 잃으면 따르는 무리에게 영적으로 큰 손해와 피해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다. 목회자가 담대히 말씀을 증거 할 수 있도록 성도들이 기도 해야 한다. 사단 마귀는 자꾸만 하나님의 말씀 선포의 권위가 약해지도록 훼방한다. 말씀 선포자가 주변 환경이나 사람의 눈치를 보고 담대하지 못하도록 훼방하고 방해하려 한다. 이걸 이기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우리 생활 주변과 교회 주변에는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고 살고 복음의 말씀을 거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저들에게 담대하게 말씀이 전해지고 선포되어야 한다. 바울 당시에는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생명을 내어 걸고 하는 전쟁이었다. 그야말로 영적 전쟁이었다. 전쟁에서 영적 군사가 무장하고 싸우면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마귀에게 패해서 죽고 만다. 성령 충만, 말씀 충만하여서 기도하는 중에 모두가 승리하는 신앙의 주인공들이 되어야만 하겠다. 
 
성령 충만한 말씀묵상과 기도 생활로 승리와 기쁨의 단을 거두는 새해의 신앙생활 되길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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