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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된 자들이 받을 구원(시85:8-13) 2023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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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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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8-13 22:52 조회 2,661 댓글 0
 

                       포로된 자들이 받을 구원(시85:8-13)            2023. 8. 13  광복절 78주년 기념 주일

 

 

주전 722년에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였다. 그 후 예루살렘이 점령되고 남 유다의 백성들마저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포로로 끌려간 날은 이스라엘 역사 중에 가장 부끄러운 날이다. 주전 586년 5월 9일의 일이다. 

 

그러나 애굽에서의 430년간의 노예 생활을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이 감격과 기쁨의 순간이었듯이 70년의 세월이 흐르고 포로의 땅에서 압제와 굴욕을 떨치고 선조의 땅에 다시 돌아오게 된 날은 기쁨의 날이며 감격의 날이며 크나큰 축복의 날이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시편 85편 1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라고 고백하고 있다. 바벨론에 끌려갔던 포로의 땅에서 풀려나서 선조의 땅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 주께서 주의 땅에 베푸신 은혜라고 하였다. 주전 538년의 일을 배경으로 한 기록이다. 

 

바벨론과 메데와 바사가 힘이 약해지고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해졌기 때문에 포로의 땅에서 풀려나게 된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이 포로 생활을 계속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였다. 시편 85편의 1-3절에 보면 주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몇 가지로 나누어서 자세하게 고백하고 있다.

 

야곱의 포로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셨습니다. 

주의 백성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고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라고 말이다. 고라 자손의 찬양시 중의 한 편인 시편 85편의 서두에서 저들은 무엇을 감사하고 찬양하고 있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어기고 우상을 숭배한 죄의 결과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런데 오늘 고백에 보면 “주께서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모든 죄를 덮으시고 주의 백성을 향한 주의 분노를 거두고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다”라고 하였다. 

 

맞다. 하나님은 70여년 세월 동안 바벨론에 끌려간 포로 생활로부터 시작해서 바벨론이 멸망하고 메대와 바사 즉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기까지 이스라엘 민족을 이방 민족의 억압 아래 두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었다. 

 

우리 가운데 일제 강점기 때에 태어나신 분들이 몇 분 계시다. 일제 식민지의 말기에 점점 극악해져만 가던 악랄한 학정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시다. 점점 더 극심해져만 가던 일본의 식민지 세력이 어느 순간 항복을 선언하였다. 그러므로 이 땅에 해방의 순간, 광복의 날이 찾아 온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역사학자들은 그 시대 상황을 다 각도로 분석하여 그 당시의 국제적 힘의 불균형과 지정학적 난맥상의 과정을 말할 것이다. 어떤 우여곡절 끝에 이 땅에 해방의 순간이 왔는지를 해석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역사에서 대하는 출애굽이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의 예루살렘 귀환의 배후에서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본다. 그 시대 상황의 배후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간섭이 분명하다. 

 

시편 137편에 보면 1절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라고 하였다. “포로로 끌려간 땅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 주저 앉아서 시온 즉 예루살렘 성을 기억하며 울었다” 라는 고백이다.

 

이와 유사한 사연을 가진 우리나라 역사의 한이 배어 있는 국민 가요 중의 하나가 <눈물 젖은 두만강>이다. 김정구(1916-1998) 선생이 22살 때이던 1938년부터 부르기 시작한 노래이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데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강물도 달밤이면 목메어 우는데

님 잃은 이 사람도 한숨을 지니

떠나간 그 내 님이 보고 싶구려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이 노래는 거제 출신의 이시우 씨가 작곡하고 김정구씨가 부른 노래이다. 작곡가 이시우씨가 1935년 순회공연을 위해 중국 두만강 도문의 한 여관집에 묵게 되었다. 그런데 밤새도록 옆방에서 한 젊은 여인의 비통하고도 애끓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튿날 이시우씨는 주인에게 그 사연을 물어 보았다. 그 여인의 남편은 여관 주인의 친구였는데 독립군이었다. ​몇 해전, 신혼 6개월 만에 남편은 3년만 독립운동을 하고 돌아오겠다면서 집을 떠났다. 그런데 여러 해가 지나도 남편은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을 찾아 만주까지 헤메고 다녔다. 남편은 5일 전에 일본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남편이 죽은 그 날짜는 마침 남편의 생일날이었다. 아내는 여관방에 초라하지만 남편의 생일상과 제사상을 차려 놓고 밤새도록 울었다. 제사가 끝난 후 아내는 남편의 죽음을 뒤 따라 두만강 물에 뛰어들어 생을 마쳤다. 작곡가 ​이시우 씨의 눈에는 두만강 물결이 나라 잃고 헤매는 우리 민족의 피눈물처럼 보였다. ​이시우씨가 문학청년이었던 한명천에게 이 사연을 들려주자 한천명은 그 자리에서 가사를 썼고 이시우 씨가 곡을 붙였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눈물 젖은 두만강>의 탄생 배경이다. 해방이 되기까지 일제는 이 노래를 금지곡으로 정하여 못 부르게 하였다. 항일 감정을 부추기는 노랫 가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서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울며 슬퍼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선조의 땅으로 되돌아갈 감격적인 은혜의 순간이 찾아 온 것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선물이었다. 그런 엄청난 주의 은혜를 누리던 이스라엘 백성인데 다시 세월이 흐른 후에 주후 70년 5월 9일, 이스라엘은 로마 군대에 의해서 다시 멸망했다. 바벨론에게 완전히 멸망 당할 때도 5월이었는데 로마 군대에 점령당할 때도 5월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계 처처로 흩어져서 나라를 잃어버린 슬픈 민족으로 2,000여년을 살아야 했다. 그러는 중에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로 600여만명이 죽었다. 그 후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국가가 건국되었다. 초대 수상이 벤 구리온(David Ben-Gurion, 1886-1973)이다. 그는 텔아비브의 허름한 협동조합 건물 2층에서 이스라엘의 건국을 선포하였다. 그는 그 날 아모스서 9장 14-15절을 펼쳐서 읽었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라는 말씀이다. 그 날의 그 순간이 우리가 아는 오늘날의 세계적인 강국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로 재건되는 새로운 출발의 순간이었다. 

 

이는 우리나라가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에서 개회 기도를 드린 것과 유사하다. 제헌국회의 의장으로 사회를 맡아서 진행하던 이승만 의장은 감리교 목사이며 종로 출신 의원이었던 이윤영 목사에게 앞으로 나와서 이 역사적인 순간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날 그가 기도한 그 역사적인 순간의 기도문이 국회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오늘 주보에 그 전문을 실었다. 그 내용을 읽다 보면 가슴이 울컥하는 복바치는 감격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도 이스라엘처럼 역사 중에 민족적인 수치의 날과 민족적인 기쁨과 감격의 날이 있었다. 그날이 모두 8월에 있었다. 1910년 8월 27일을 국치일(國恥日)이라고 한다. 그날의 결정으로 우리나라는 주권을 빼앗기고 일본에 합병되어 식민지가 시작된 날이다. 한일합방이라고 한다. 그 날을 역사적으로 부끄러운 날이라고 해서 ‘국치일’이라고 부른다. 1919년 3월 1일의 독립운동을 비롯하여 얼마나 많은 이 땅의 백성들이 시베리아로 연해주로 상해로 떠돌아 다니며 나라 잃은 설움을 가슴에 파묻고 독립과 해방을 위해서 생명을 바쳤던가. 36년의 슬픔과 억울한 회한에 가득찬 세월이 흐르고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날이 찾아 왔다. 광복절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 날은 기쁨의 날이요 감격의 날이요 축복의 날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임할 새로운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고 소원하는 바를 담고 있다.

 

 

그를 경외(敬畏)하는 자들이 누릴 화평(和平).

9절에 보면 “구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의 땅에 머물것입니다.”라는 확신에 찾 기도를 드리고 있다. 9절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란 8절의 ‘그의 백성이며 그의 성도들’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을 구원하시되 ‘화평’을 선물해 주시는 주님이시다. 그렇지 않나. 화평이란 구원 받은 자들이 누리는 일상의 축복을 의미한다. 구원이 무엇인가. 인생의 궁극적인 구원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누리며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구원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가난과 궁핍으로부터의 구원, 고통과 질병으로 부터의 구원, 핍박과 학대와 환난으로부터의 구원, 걱정과 근심과 염려와 불안과 초조와 두려움으로부터의 구원, 어리석음과 무지로부터의 구원, 모든 불행한 모든 환경으로부터의 구원, 풍습과 제도로 인한 억압과 통제와 결박으로부터의 구원, 악으로 부터의 구원을 누구나 끊임없이 꿈꾸고 소망하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고라 자손을 통하여 고백하는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은 화평을 향한 목마름을 담고 있는 염원이요 호소요 기도요 간구인 것이다. 때가 차서 주의 은헤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왔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제 1차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이다.

 

열왕기하 25장에 보면 남유다의 마지막 왕인 제 20대 시드기야 왕도 바벨론의 점령군에게 붙잡혔다. 버티다 지친 시드기야 왕은 한 밤중에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였다. 따르는 군대와 함께 도망하던 길에 아라바 길로 향하다가 결국은 여리고 평지에서 바벨론의 군대에 붙잡히고 말았다. 바벨론의 군대는 시드기야 왕을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 앞으로 끌고 갔다. 바벨론의 군대 장관 느부갓네살의 군대는 시드기야 왕을 심문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결국 시드기야 왕이 보는 앞에서 왕자들을 죽였다. 그리고 이어서 시드기야 왕의 두 눈을 빼었다. 놋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얼마 후에 바벨론 왕의 시위 대장 느부사라단이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저들 바벨론의 군대는 성전과 왕궁을 불살랐다. 예루살렘 안의 고관대작들이 살던 번듯한 집들을 모두 불살랐다. 예루살렘 성벽을 흔적도 없이 헐어 버렸다. 그나마 남아 있던 예루살렘 성 안의 모든 백성들을 모두 다 사로 잡아 갔다. 그나마 일부 비천한 자들을 남겨 두었다. 저들은 남아서 포도원을 가꾸고 농사하며 지냈다. 결실기가 되면 해마다 바벨론의 군대는 포도원과 농토의 모든 소출을 모두 다 빼앗아 갔다. 바벨론의 군대는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것을 다 집어 갔다. 성전 낭실의 거대한 두 놋 기둥인 야긴과 보아스 까지 다 넘어 트려 끌어가 버렸다. 심지어는 부삽, 부집게, 숟가락, 놋그릇까지 다 가져가 버렸다. 예루살렘은 완전한 폐허가 되었다. 

 

생각하여 보라. 그런 비참하고 참담한 날들을 뒤로 하고 긴긴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예루살렘에 되돌아갈 수 있는 날이 왔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주전 538년의 바사와 고레스의 유대인 귀환 칙령이다. 에스라 1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유대인들은 금과 은과 필요한 모든 것과 짐승을 챙겨 가지고 너희 선조들의 땅으로 돌아가서 너희가 섬기는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고 너희 선조의 땅에서 살아라”라는 고레스의 왕의 명령은 꿈만 같은 순간이었다. 

하나님이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케 하셔서 가능하게 된 일이다. 이 때에 스룹바벨은 5만여명의 이스라엘 동족들과 더불에 감격스럽게 예루살렘 성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폐허의 도성으로 방치된 채 긴긴 세월 버려져 있었다. 

 

그 때를 전후로 해서 기록된 고라 자손의 고백이 오늘 읽은 시편 85편이다. 4-7절을 보자. 쉽게 풀어 읽으면 이런 내용이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켜 주세요.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거두어 주세요.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고 대대로 진노하시렵니까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려 주세요.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해 주세요.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세요. 

여호와여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세요.

 

그리고 연이어 간구하는 기도가 ‘화평’을 위한 기도이다. “주여 우리가 다시는 어리석은 데로 돌아 가지 않을테니 주의 백성인 주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해 주세요.”라고 간청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나. “해방이다. 독립이다. 광복이다”라고 외치는 것으로 저절로 화평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나. 폐허의 땅에 돌아온 스룹바벨과 동족들이 제 2차, 제 3차 귀환하는 백성들과 더불어 긴긴 세월 폐허 속에 방치되었던 땅에 새 성전을 건축하고 느헤미야 때에 무너진 성곽을 재건하기까지에는 수 많은 이들의 수고와 노력과 협력과 헌신이 요구되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해방이다 그리고 마을마다 소와 돼지를 잡아먹고 술을 퍼마시며 날마다 잔치하며 기쁨을 나누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해방의 감격을 안고 날마다 소와 돼지만 잡아먹고 날마다 술만 퍼마시면 나라 꼴이 뭐가 되겠나. 자원이 부족한 땅에서 우리 선조들은 1948년 나라를 건국하고 1950년 벌어진 6.25 전쟁의 참상과 이념과 사상으로 나뉘고 찢긴 땅에서 나라를 발전시키고 발전시켜서 오늘날과 같은 부강한 나라를 이루어 온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좌와 우, 보수와 진보의 이념이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팽팽한 긴장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있는 자와 없는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금수저와 흙수저의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간다. 예전에 없던 사악하고 당혹스러운 사회 범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화평이다. 평화이다. 화목이며 화해이며 더불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의 사랑을 가지고 죄 사함 받은 하나님의 아들딸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며 이것이 주님의 뜻을 이루는 화평한 삶의 모습이다.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라는 찬양에 담긴 우리의 소원이 성취되는 주의 백성답게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8절 하반부의 말씀처럼 “우리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라는 말씀을 가슴에 간직해야만 할 것이다. <개역한글성경>에는 “저희는 다시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말찌로다”라고 하였다. 

 

 

인애(仁愛)와 진리(眞理)와 의(義).

10절의 ‘인애’란 7절의 ‘인자’와 같은 말이다. 헤세드라고 해서 이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포함한 말이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난다는 말씀이 무엇인가. 인애와 진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속성을 일컫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인애와 진리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난다는 말은 하나님 안에서 인애와 진리가 하나라는 선포이다. 주 안에서 화평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인 인애와 하나님의 성품이신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며”라는 의인화된 표현이다. 의롭지 못한 죄인된 인생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이 인간의 범죄로 인한 진노와 분노를 거두시고 우리 각 사람을 의롭다하시며 화평한 관계를 회복해 주시는 것은 얼마나 크나큰 사랑이며 축복인가. 그렇지 않나. 하나님의 절대적인 구원의 은총과 화평하시는 배려가 아니라면 어떻게 감히 죄악에 가득찬 우리가 하나님의 의와 화평이 입맞추는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겠는가.

 

핵 위협을 무기 삼고 점점 호전적으로 중무장을 계속해 가는 북한의 실상이 안타깝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는 은혜의 날을 누리며 보존하며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11절의 땅에서 솟아나는 진리와 하늘에서 굽어보는 의란 무엇을 말씀하나.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 그 어디에서나 주의 백성들을 주목하시고 주의 성도들을 감찰하시며 의와 진리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소원하신다. 그 뿐만 아니라 13절에 보면 “의가 주의 앞에 가며 주의 길을 닦는다”라고 하였다. 불의와 거짓과 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의의 통치와 승리를 굳게 믿고 따르는 주의 백성들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땅에서 나는 좋은 것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며 하나님 안에서 화평을 누리는 증거가 무엇인가. 이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의 각양 필요를 충족하게 채워 주시는 주의 은혜와 공급을 체험하고 누리는 삶이다. 그렇지 않나.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아무리 마음에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있다고 하여도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다면 얼마나 초라하고 불행하겠는가. 

 

하나님은 신명기 28장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잘 지켜 행하는 이들을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 신명기 28장 2-14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대하면 이런 내용이다.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 순종하면 다음과 같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도 복을 받고 일터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자손이 번성하고 농사가 잘 되고 가축이 증식하며

먹을 것이 풍성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하는 일마다 복을 받아 다 잘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여러분을 치러 오는 여러분의 원수들을 여러분 앞에서 패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여러분을 공격하려고 떼를 지어 쳐들어왔다가 사방 뿔뿔이 흩어져 달아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셔서 여러분의 창고가 가득 차게 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여러분에게 주실 땅에서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분이 명령하신 모든 것을 지키면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대로 여러분을 그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모든 민족이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자기 백성으로 택한 것을 보고 여러분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여러분에게 주겠다고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에서 여러분에게 많은 자녀와 수많은 가축과 풍성한 농작물을 주실 것이며

또 하늘 문을 열어서 철따라 단비를 내려 곡식이 잘 되게 하시고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많은 민족에게 빌려 주기는 해도 빌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가르치는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듣고 지키면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머리가 되게 하고 꼬리가 되게 하지 않을 것이며 언제나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는 여호와의 명령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거나 경배해서는 안 됩니다.”

 

식민지를 뒤로 하고 해방의 선물을 받은 우리 민족, 6. 25의 참상을 뒤로 하고 여기까지 발전한 우리나라가 아닌가. 앞으로 하나님을 점점 더 잘 믿고 섬기고 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해서 남북이 복음 안에서 통일되는 감격도 누려야 할 것이다. 이 시대 역사의 중심에서 땅 끝 선교의 사명도 끝까지 잘 감당해 가는 나라, 그런 민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그런 은혜를 내려 주시길 원하고 원한다. 주 안에서 공급되는 화평과 인애와 진리와 의가 우리의 영혼육을 만족하게 하며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주 안에서 풍성하게 누리며 증거하는 주인공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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