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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기뻐하시는 금식(사58:6-12) 2022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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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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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8-14 17:17 조회 4,517 댓글 0
 

                      주가 기뻐하시는 금식(사58:6-12)        2022. 8. 14   광복절 77주년 기념 주일

                                                                

 

 

동물과 식물 세계는 약육강식이 원리로 통한다. 동물계는 물론이고 식물들도 세월이 지나다 보면 번식력이 강한 식물들이 주변을 잠식해 들어간다. 이는 인간사도 마찬가지이다. 나라에 힘이 없으면 주변의 더 강한 나라의 지배를 당하고 만다. 이는 정치, 경제, 외교, 금융, 군사 모든 면에서 다 마찬가지이다.

 

주한일본공사 미우라는 수십 명의 일본인 낭인과 일본 수비대를 하수인으로 고용하여 1895년 8월 20일 고종의 왕비인 명성황후(1851-1895)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켰다. 일본인들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침소인 건청궁에 난입하여 고종에게 미리 준비한 왕비의 폐출조서에 서명을 강요하며 위협했다. 이어 궁내부대신 이경직을 살해하고 창덕궁 옥호루에서 지내던 명성황후를 무참하게 시해하고 그 밤으로 불 태우는 야만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명성황후 44살 때의 사건이다. 

 

고종(1852-1919)은 1907년 7월,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되었다. 고종의 퇴위에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헤이그 밀사 사건이었다. 고종은 1907년 4월 20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이준(李儁), 이상설(李相卨), 이위종(李瑋鍾) 등 3명의 밀사를 파견해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침략상을 국제 사회에 알리려고 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이 비밀외교 작전은 실패로 끝났고, 고종도 일본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났다. 고종은 일본의 대한제국 병탄(倂呑) 이후인 1919년 1월 21일에 덕수궁에서 68세의 나이로 죽었다. 고종이 일본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국민들은 분노했고 이러한 분노는 그 해, 3·1 운동으로 이어졌다.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은 나라를 잃은 민족의 울분 속에서 죽어 간 것이다. 

 

1910년 8월 22일에 역사에서 경술국치라고 이름 붙인 한국과 일본 간에 문서 협약이 이루어졌다. 그 당시 대한 제국의 인구는 1200만명 정도였다. 이는 이미 그 몇 해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이것이 한일병합, 혹은 한일합방이라고 말하는 일제 식민지의 시작이다. 일주일 후인 1910년 8월 29일에 그 효력이 발효된다고 언론에 공포하였다. 대한 제국의 대표는 을사 5적 중의 하나인 이완용 내각총리대신이었다. 창덕궁 흥복헌으로 불려온 대신들 중 학부대신 이용직은 조약을 반대하다 쫓겨났다. 이용직은 "이같은 망국안에는 목이 달아나도 찬성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한일 합병을 반대하였다. 

 

이후 이른바 경술국적이라고 불리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이 앞장 서고 내각 8명은 한일 병탄 조약 체결 이후 공을 인정받아 조선귀족 작위를 수여받았다. 한일합병의 실무는 일본 육국 제 3대통감이었던 데라우치가 맡았다. 

 

“한일병합전문”7개 조항을 읽어 보면 “왕과 왕족의 지위를 보존해 주겠다. 일본에 잘 협조하는 이들의 재산과 신분을 보장하고 복리를 제공하겠다. 일본에 말 잘 듣는 이들은 조선 내에 관리에 등용하겠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야말로 식민지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사람이 어떤 경우에 금식하게 되나. 삶이 평온하고 일상이 행복하고 날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한데 날마다 끼니마다 금식하며 지내는 이가 있을까. 그런 이들은 없다. 사람이 살면서 금식한다는 것은 인생의 절대적인 위기와 환난을 겪을 때에 있는 특별한 경우이다. 그렇지 않나. 금식이란 것이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금식이 무슨 의미가 있나. 내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겸비한 마음가짐으로 주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할 때에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모세는 두 돌판에 십계명의 말씀을 받기 전에 시내산 꼭대기에서 사십일 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금식하였다.

에스더는 유대인을 멸족하려는 하만의 궤계의 소식을 접한 후에 자신과 동족의 삼일 금식을 선포하였다. 

느헤미야는 선조들의 땅 예루살렘의 폐허의 소식을 들은 후에 두어 달 동안을 금식하며 밤을 새워 가며 울며 부르짖어 가며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였다. 

예수께서도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에 광야로 가셔서 사십일간 금식하셨다.

 

이처럼 금식이란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 절대절명의 태도로 그 역사적인 사명 앞에 임하는 생의 처절한 순간이 금식과 기도로 이어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인 마태복음 6장에서 금식에 대하여 자세하게 가르쳐 주셨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16-18)

 

오늘 본문으로 읽은 이사야 58장 1-12절까지가 금식에 대한 교훈이다. 그 중에 읽지 못한 1-5절까지의 내용이 바로 그러하다. 금식한다는 것은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금식하면서 논쟁하고 다투고 서로에게 악한 마음을 갖고 주먹질하면 어찌 너희의 금식하는 기도를 주께서 응답하시겠느냐고 지적하셨다. 

 

6절에 보니까 “주님이 기뻐하는 금식은”개인이든 이웃이든 민족 간에든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의 줄을 끌러 주고,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고, 모든 멍에를 꺾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고 명하셨다. 7절에 보니까 “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고,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고, 헐 벗은 자를 보면 입히고, 골육이 당하는 어려움과 고난을 외면하지 아니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의 삶이라고 하셨다. 

 

그렇다. 생각하여 보라. 내일은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에서 36년 만에 해방되고 광복의 기쁨을 맞이한지 77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후에 주권 회복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순국 선열들이 목숨을 바쳐서 해방의 날을 꿈꾸어 왔단 말인가. 어떻게 해서 우리나라가 일제의 흉악한 결박과 압제에서 벗어 날 수 있었는가. 어떻게 해서 그 억울한 멍에의 모든 쇠사슬이 끊어지고 멍에를 꺾어서 벗어 버릴 수 있었는가.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했다. 노예 생활을 한 것이다. 70년 동안 바벨론에 끌려가서 포로 생활을 했다. 그렇게 생을 마친 이들이 많았다. 살아 남아 노년기를 맞은 이들과 포로의 땅에서 태어난 후손 들 중에서 더러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돌아 올 수 있었다. 나라 없는 설움, 주권을 빼앗긴 슬픔, 내가 살던 정든 조국 땅에서 망명자가 되고, 난민 신세가 되고, 유리방황하는 신세가 되는 것은 생각하기 조차 힘든 일이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이 땅에서 그런 참담한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 기도하고 그래서 부르짖고 그래서 금식하고 그래서 주께 울부짖으며 해방의 날을 꿈 꾸고 꿈 꾸어 왔다. 목숨을 바쳐서 라도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해 왔다. 

 

하나님은 악인의 악한 생각과 악한 행실을 주목하신다. 이사야 57장 마지막 절인 21절에 보면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라고 하였다. 그 앞 절인 20절에 보면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라고 경고하셨다. 맞다. 사람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악하게 살면 스스로 그 마음에 평강이 사라지고 만다. 그 자체가 심판이고 형벌인 것이다. 이사야 57장 15절에 보면 “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라고 약속해 주셨다. 18-19절에 보면 하나님 앞에서 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살면 “고쳐 주시고, 인도하시고, 슬퍼하는 자를 위로 해 주시고, 평강이 있게 해 주신다”라고 약속하셨다. 19절에 보니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평강’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선포해 주셨다. 

 

자, 그러면 주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며 그런 마음가짐으로 기도하며 살아가는 성도의 앞날은 어떠할까? 하나님은 어떤 축복을 약속하셨는가?

 

 

여호와의 영광이 호위하리라.

8절에 ‘그리하면’이라는 접속사에 주목하여야 한다. 선을 심어 선한 열매를 거두는 법이다. 예수께서도 산상 수훈에서 말씀하셨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고 질문하셨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라고 경고하셨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라고 복된 인생의 길이 무엇인지를 교훈해 주셨다. 

 

오늘 본문으로 대하는 이사야 58장의 말씀이 바로 그러하다. 굶주리는 자와 유리 방황하는 가난한 자와 헐벗은 자와 일가 친척의 고난을 외면하지 아니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자라야 하나님의 약속하신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그 인생의 빛이 새벽 빛 같이 비치게 해 주시겠고 치유가 급속하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8절의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라는 말씀은 구체적으로는 6-7절에서 자세하게 언급하신 이웃의 불쌍한 삶의 현장이나 가난과 고통을 대하는 일상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말씀하는 것이다. 불쌍한 이웃을 불쌍하게 대하며 사랑의 마음을 담아서 돌아 보고 섬기고 나누며 살아갈 때에 주님은 그런 개인이나 가정이나 나라나 민족을 복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렇지 않나. 불의하게 사는 자들은 그 불의가 앞서 행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갖고 이웃을 대하며 살아가는 자들의 가는 길에는 공의가 앞서 행하는 복된 인생길을 가게 해 주신다는 축복의 약속이시다.

 

국가보훈처가 오는 15일 제77주년 광복절을 맞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다한 303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밝혔다. 포상자 명단에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막내 딸 이름이 포함되었다. 이에 따라 안창호 선생(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과 부인 이혜련 여사(2008년 애족장), 아들 안필립 선생(2021년 대통령표창)에 이어 안수산 선생까지 '가족 2대' 가운데 3남 2녀를 포함한 7명의 가족 가운데서 4명이 독립유공자로서 정부 포상을 받게 되었다. 

 

역사의 구비 구비 마다 비겁하게 살지 않고 역사 앞에 자랑스럽게 살아간 자들은 나라가 알아 주고 역사가 알아준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태도로 식음을 전폐하며 기도하며 살아간 인생들의 앞날에 여호와의 영광이 호위하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사람이 사회적인 지위가 격상되면 호위하는 자들이 곁에 따라 붙는다. 비서관도 곁에 있게 되고, 운전해 주는 이도 생기고, 집안 살림 해 주는 이도 생기고, 머리 만져 주는 이도 생긴다. 그 뿐만 아니라 24시간 내 신변을 안전하게 지켜 주는 경호 팀도 따라 붙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누가 인생을 호위해 주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천군천사가 호위하고 주의 사자가 호위해 주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친히 하나님의 영광으로 호위해 주셔야 한다. 이것이 복이다. 이것이 복 중에 복이다.

 

개인과 가정과 가족들의 범사와 생업과 나라와 민족의 역사에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서 호위하리니”라는 이 축복의 약속이 증거되고 간증되는 주인공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물댄 동산과 물이 끊이지 않는 샘 같으리라.

옛날이나 오늘 날이나 근동 지방에서는 물이 부족하였다. 그러하다 보니 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곧 생존의 문제와 같았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떠나 수르 광야 길을 삼일 동안 걸었다. 물을 얻을 수가 없었다. 마라에 이르렀으나 마실 수 없는 물 뿐이었다. 백성들이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모세는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하나님은 한 나무를 가리키셨다. 그 나무 가지를 물에 던져 넣었더니 마실 수 있는 물로 변했다. 하나님은 이미 그 현장에서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따르는 민족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하셨다. 

 

하나님은 불쌍하고 가난하고 압제 당하는 이웃에 대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대하며 함부로 이웃에 대하여 손가락질 한다거나 허망한 말을 하지 않고 절제된 삶을 살아가는 인생에게 복 주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인생으로 살아가면 그의 앞날을 흑암 중에서 빛을 보게 해 주시고 어둠이 변하여 낮과 같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그의 가는 길을 항상 인도해 주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그의 영혼을 만족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의 뼈를 견고하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여기 11절에서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라는 말씀은 상징적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나. 우리 몸이 건강하려면 오장육부가 다 골고루 건강해야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뼈가 건강하고 견고해야 활동이 가능하다. 뼈가 약해지고 뼈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약해 지고 만다. 그렇지 않나. 사람이 며칠만 못 걸어도 몸에 기운에 점점 빠져 나가는 것을 느낀다. 뼈가 건강하고 뼈가 견고해야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씩씩하게 걸을 수 있다. 그러므로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라는 약속은 범사를 힘있게 해 주시겠다는 축복의 말씀이시다. 뼈가 병들면 한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옛날 노래 중에 “상쾌한 아침이다 걸어서 가자 걸으면 건강하다 걸어서 가자 너도 걷고 나도 걷고 걸어서 가자”라는 노래가 있지 않나.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선한 행실을 하며 사는 인생을 복되게 하시되 물댄 동산 같게 하시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 같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물이 없는 하루 생활을 상상해 보라.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물은 모든 삶의 근본과도 같다. 요즘 창세기 말씀을 날마다 일정한 분량씩 새롭게 묵상해 가고 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에덴에서 발원한 강이 에덴 동산을 적시고 네 줄기의 큰 강이 흐른다고 했다. 그 중에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 유브라데 강이다. 세계 역사의 발전한 모든 문명은 큰 강물 줄기를 중심으로 번성하였다. 아프리카의 나일 강변의 에집트 문명, 고대 근동의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곁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강 중심의 인도 문명, 중국의 황하 문명이 그러하지 않나.

 

우리나라도 한강의 기적이라고 말하는 일제 식민지와 6. 25 전쟁 이후의 비약적인 국가 발전의 바탕에는 한강을 중심으로 한 역사 발전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 그리고 지난 2천년 동안의 교회 역사를 통해서 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세와 태도로 기도하며 살아가는 인생을 어떻게 복되게 하시는가를 말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말할 것도 없다. 모세가 그러하고 여호수아나 갈렙이 그러하였다. 사사 기드온과 여 사사 드보라가 그러하고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이 그러하였다. 빼어 놓을 수 없고 이스라엘 역사에 뛰어난 물댄동산과 같은 인생이 다윗이 아닌가. 

 

지난 월요일에 남해에 도착했다. 독일 마을과 미국마을을 둘러보았다. 다음 날 오후 남해 서면에 위치한 이순신순국공원을 찾았다.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은 1545년(인종 1) 3월 8일(양력 4월 28일) 한성부 건천동(현재 서울시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났다. 사화로 몰락한 문반 가문의 사형제 중 셋째였다. 어려서 유학을 공부했고 21세 때 혼인한 이후 병학과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28세 때 처음 무과에 응시했으나 낙방했고 32세 때 식년 무과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했다. 무관으로서 승진과 좌천, 파면과 복직을 거듭하다가 1591년 재상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제수되었다. 다음해 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사천해전, 당포해전, 당항포해전, 율포해전, 한산대첩, 안골포해전, 부산포해전 등 크고 작은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 1593년 최초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었다. 1597년 조정을 기망하고 왕명을 어겼다고 해서 통제사직에서 해임되고 투옥되어 고초를 겪었다. 그해, 정유재란의 와중에 옥에서 풀려나 도원수 권율(權慄) 밑에서 백의종군했다. 같은 해 양력 8월에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이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하고 궤멸 상태가 되었다. 그러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두 달 뒤인 양력 10월 25일, 명량에서 13척의 배로 왜선 130여척을 물리쳤다. 그 다음 해인 1598년 양력 12월 16일,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그의 나이 53살 때의 일이다. 

 

충무공 이순신 그는 시대가 낸 인물이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이나 인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은 개인이든 민족이든 하나님의 뜻이 합당하게 살아가면 그 앞날을 물 댄 동산과 같게 하시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과 같이 점점 풍성하고 만족하고 창성하게 하신다. 그런 은혜와 복을 주 안에서 누리며 베풀며 살아가는 주인공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너와 네 후손이 새 역사를 이루리라.

12절의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포로 생활이 끝나고 다시 선조의 약속의 땅인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으로 돌아 오는 것을 말씀한다. 세월이 흐르고 다시 돌아 온 무리 들 중에서 스룹바벨을 앞장서게 한 귀환자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다시 건축하였다. 세월이 흐르며 하나님은 느헤미야를 통해서 예루살렘 성곽을 온전히 중건하게 하셨다. 학사 에스라를 통해서 말씀 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하셨다. 이 모든 이들이 하나님 안에서 복되게 쓰임 받은 자들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12절의 말씀은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야 예언의 말씀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이나 가족이 힘을 일으면 그 가정사가 쇠락하고 만다. 그러나 당대 뿐만 아니라 자손이 잘 되면 그 가정사가 흥왕하고 번성하게 된다. 

 

그렇지 않나.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열일곱 살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간 요셉인데 하나님은 그를 존귀하게 하셨다. 요셉 한 사람으로 인해서 나중에 가나안 지역의 대 기근의 때에 아버지 야곱과 형제와 집안 모든 사람 칠십명을 고센 땅에 정착 시켜 번성하게 도왔다.

 

요즘도 삼성가, 현대가 등을 보라. 한 사람이 일어서니까 그 집안의 형제와 후손들이 번성해 가지 않는가. 최근 언론에 보면 현대가의 후손들 중에서도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의 가정들이 점점 늘어 나고 있다고 한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한다. 12절에 보니까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다.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다시 쌓을 것이다.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다. 너는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이 얼마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축복의 말씀인가. 여러 방면에서 세상 살이가 점점 어렵고 힘들다고 말하는 이 때에 여전히 각 분야마다에서의 무한 경쟁에서 우승하며 기쁨의 단을 거두어 들이는 축복의 인생, 축복의 가정, 축복의 가문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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