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어린 양(요1:29-42) 2023. 1. 15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 가지로 묘사한다. 특히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 빛, 참 빛, 영원히 목 마르지 않는 물, 생명의 떡, 생명의 물, 길, 진리, 부활, 생명, 양의 문, 포도나무”등등 다양한 비유로 표현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어린 양’이라는 표현이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요한복음 1장 29절에 보면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소개하였다. 그 이튿날 요한이 자기 두 제자와 함께 서 있다가 그들 앞을 지나가시는 예수를 보고 말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세례 요한은 줄곧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지칭하였다.
성경에는 창세기로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계속해서 ‘어린 양’에 대한 수 많은 기록을 담고 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 꼭대기에 가서 번제를 드리려 하였다. 그 때에 불과 나무가 준비 되었는데 제물로 사용될 어린 양이 없었다. 그 때에 아들 이삭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불과 나무는 여기 있는데 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처럼 번제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짐승이 어린 양이었다. 레위기 4장 32-33절에 보면 “그가 만일 어린 양을 속죄 제물로 가져오려거든 흠 없는 암컷을 끌어다가 그 속죄제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속죄제물로 잡을 것이요”라고 하였다. 이사야 53장 7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라고 설명해 주었다. 요한 계시록 5장에 보면 6절에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8절에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12절에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이처럼 요한 계시록에는 예수를 어린 양으로 표현하는 내용이 26번이나 계속하여 나온다. 요한 계시록 22장 1-2절에도 보면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라고 하였다. 이처럼 ‘어린 양’으로 묘사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 신구약의 중심이고 성경 전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 그러면 오늘 “요한 복음에서 사도 요한을 통해서 설명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어떤 분이신가”를 함께 묵상하는 중에 은혜가 되기를 바란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분.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유월절의 기원이 되는 출애굽의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하나님은 애굽 땅에 내려가 있던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출12:2-3)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출애굽을 위하여 어린 양을 잡으라고 하셨다. 그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셨다. 그 어린 양의 고기를 밤새도록 구워서 온 가족이 다 같이 먹도록 하셨다.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도록 하셨다. 날 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까지 다 불에 구워 먹게 하셨다. 밤새도록 구워서 먹고 아침이 되었는데도 남은 것이 있으면 불살라 버리게 하셨다.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출12:11)
여기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라는 말씀이 감격적인 말씀이다. 그 동안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의 바로 왕의 강팍한 마음을 상대하셨다. 그 마지막 재앙이 애굽의 모든 가정의 첫째 즉 장자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재앙이었다. 그 날, 그 밤에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가정은 장자의 생명이 보존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가정에 그런 은혜가 임하였다. 유월절을 뜻하는 ‘페싸흐’라는 단어는 ‘지나가다, 뛰어넘어가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유월절은 430년 간의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는 날이다. 애굽의 각 가정의 장자가 죽임을 당하는 때에 생명을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날이다. 이는 어린 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의미를 예표적으로 보여주신 상징적인 날이다. 따라서 유월절은 성만찬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의 예표가 되는 기념비적인 날이다. 우리는 ‘구속’(救贖) 혹은 ‘대속’(代贖)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그 뜻은 “죄를 사함 받는다”는 뜻이다. 맞다.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의 죽으심이다.
우리가 252장 찬송가 <나의 죄를 씻기는> 찬송가를 부른다. 그 가사의 내용이 무엇인가. 계속하여 10번이나 반복되는 가사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Noth-ing but the blood of Je-sus)라는 고백이다. 그렇다. 우리를 온갖 죄에서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밖에는 없다.
미국 펜실베니아 필라델피아 외곽인 벤살렘에서 10년 가까이 살았다. 두 시간 반 쯤 북쪽으로 가면 ‘베들레헴’이란 곳이 있다. 미국 전역에 그 같은 이름의 도시가 20곳이 넘게 있다고 들었다. 그 곳, 베들레헴은 산 속에 형성된 아름 다운 자연 가운데 있는 작은 도시이다. 그 곳에 리하이대학교(Lehigh Univ.)의 공과대학을 비롯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유학가는 학생들이 꽤 있다고 들었다. 베들레헴에는 과거에 “술집, 도둑, 창기”이 세 가지가 없다고 했다. 그 베들레헴에 연합감리교회가 있다. 한인 회중들이 있어서 필라델피아 주변의 몇몇 교회가 연합 사역을 했다. 아름 다운 가을에 그 곳 베들레헴 교회의 예배에 순서를 맡아서 가고 있었다. 가을 단풍이 아름다웠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앞에 25톤 대형 트럭이 앞을 가리고 섰다. 트럭 뒤 범퍼에 이런 긴 문장으로 스티커로 붙이고 다녔다.
No matter
who you are
No matter
what you΄ve done
God loves you
네가 누구이든지
네가 어떤 삶을 살아왔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
19살에 신학교에 들어가서 오늘 날 까지 수 많은 신학 서적을 읽었다. 줄 쳐 가며 읽은 책이 한 두권이겠는가. 그런데 그 날 그 길거리에서 만난 이 명 문장은 나의 뇌리에 오래도록 각인되어 있다.
그렇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사랑하셔서 나의 죄를 사하시려고 이 땅에 보냄을 받으신 대속의 주님이시다. 구속의 주님이시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께서 가버나움 동네에 들어가셨다. 어느 집에 계신다는 소문이 퍼졌다.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 앞에까지 사람들이 꽉 들어 찼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고 계셨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가지고 예수께 왔다. 예수를 만날 길이 없자 네 사람은 지붕을 뚫었다. 지붕에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누워 있는 침상 째로 달아 내렸다. 감동적인 장면이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2:5)그 자리에 어떤 서기관이 함께 앉아 있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는가”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아시고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그리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걷기 시작했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수 많은 각색 병자를 고쳐 주셨다. 귀신을 내어 쫓고 새사람이 되게 하셨다. 심지어는 죽은 자도 살려 내셨다. 예수는 그것이 이 땅에 보냄 받은 사명의 전부는 아니었다. 예수는 이 땅에 죄 사함을 선포하시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이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영생의 복을 받아 누리게 된다. 우리 각 사람에게 이와 같은 분명한 깨달음과 믿음이 있기를 축원한다.
성령이 내려와 머무신 분.
우리가 잘 아는대로 세례 요한은 각 사람에게 물로 세례하였다. 예수의 열 두 제자들도 한결 같이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자들이다.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셨다. 32절에서 말씀하는 비둘기 같은 성령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예수 위에 머물렀다는 증언은 예수께서 세례 요한 앞에서 세례를 받으시던 그 장면을 언급한 것이다. 마태복음 3장 16절 이하에 보면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열렸다.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가 같이 내려서 예수 위에 임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는 말씀이셨다. 요한복음 1장 32절의 ‘하늘’즉 ‘우라노스’란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 즉 창공을 말씀하는 그 이상이다. 여기서 말씀하는 ‘하늘’이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인 하늘을 의미하는 말씀이시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5장 16절에서 하나님이 계신 곳을 하늘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성령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 위에 풍성하게 내려 주셨다. 이는 이사야 61장 1절의 예언의 말씀의 성취이기도 하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라고 하였다. 누가복음 4장 16절 이하에 보면 어느 날 예수께서 고향인 나사렛을 방문하셨다. 마침 안식일을 맞았다. 예수는 나사렛 회당에 들어 가셔서 성경을 읽기 위해 회중 앞에 서셨다. 누군가가 이사야서를 건넸다. 예수는 이사야 61장 1절을 펼쳐서 읽으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이는 성령을 받으신 예수께서 장차 행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고향 나사렛 사람들 앞에서 공언하신 장면이기도 하다.
그렇다.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성령 안에서 탄생하셨다. 예수의 성장기가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임재의 증거였다. 예수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실 때에 비둘기 같은 성령이 충만하게 그에게 임하였다. 예수는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시며 사십일간 광야에서 금식하셨다. 사십일 금식 후에 마귀의 세가지 유혹도 성령의 충만함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고 물리치셨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1-4장 까지 성경을 펼쳐서 관찰해 보자. 맞다. 예수는 그 시작과 끝이 성령 안에 계신 성령 그 자체이시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은 삼위일체 한 분이시다. 예수는 성령 안에서 수난을 받으시고 죽임 당하시고 성령 안에서 부활 승천하셨다.
요한 계시록 1장 10절에도 보면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라고 말씀하셨다.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의 시작이 성령의 감동에 의한 시작임을 알리는 말씀이시다. 요한 계시록 2장 7절에도 보니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슴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였다. 요한 계시록 4장 2절에 보면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라고 하였다. 요한 계시록 14장 13절에 보면 “성령이 이르시되”라고 하였다. 17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라고 하였다. 22장 17절에도 보니까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이처럼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행적과 모든 말씀들은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으로 마치기까지 계속하여 성령 안에서 성령과 더불어 진행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자를 부르신 분.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분부하신 사명을 홀로 행하지 않으셨다. 예수는 열 두 제자를 부르셔서 저들과 함께 하셨다. 나중에는 칠십인의 제자들을 부르셔서 저들을 쌍쌍이 세상에 파송하셨다. 오늘 본문에는 안드레가 먼저이고 안드레가 자기의 형제인 베드로를 예수께 이끌고 나와서 형제가 예수의 제자가 되는 과정을 설명해 주고 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등 저들 예수의 제자가 된 이들이 원래는 세례 요한을 따르던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었다. 35절에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온다. 안드레는 예수를 만난 후에 ‘메시야를 만났다’고 형제 베드로에게 예수를 소개하였다. 베드로와 안드레의 아버지 이름은 요한이었다. 42절에 보면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게바 즉 베드로라는 새 이름의 뜻은 ‘반석’이란 뜻이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라는 축복의 말씀과 더불어 장차 베드로가 교회의 주요한 인물이 될 것을 예언해 주셨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고 배반하고 저주하고 도망가서 숨는 부끄러운 과거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베드로는 회개하고 돌아와서 성령을 받는 초대 교회 120 성도들 사이에 끼어 앉아서 성령 충만을 경험하는 첫 세대가 되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를 다시 부르셔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사도행전 초대교회의 중심 인물로 베드로를 붙들어 사용하셨다.
어제, 토요일 새벽에 비전선교단 겨울 캠프에 다녀 왔다.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산자락에 있는 광림 수도원에서 지난 수요일부터 삼박 사일 캠프가 진행중이었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겨울 새벽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에 새벽 이슬 같은 청년 500여명이 대 성전에 가득히 몰려 들었다. 우렁찬 찬양이 시작되었다. 저들과 사도행전 22장 전도자 바울의 에베소 선교 현장의 모습을 함께 나누었다. <날이 저물어 갈 때>라는 복음성가를 시작으로 청년들의 우렁찬 찬양이 새벽 성전에 가득하였다.
“날이 저물어 갈 때 빈들에서 걸을 때
그 때가 하나님의 때 내 힘으로 안될 때
빈 손으로 걸을 때 내가 고백해 여호와 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
라는 가사의 찬양이 울려 퍼졌다.
비전선교단은 동국대학교 문예창작과를 공부한 조다윗 선교사에 의해 2005년에 설립되었다. 세계 미전도 종족 개척 선교를 목적으로 선교사 양성에 집중하고 있다. 이미 300명이 넘는 선교사를 발굴하여 파송하였다. 선교 집회에 오백명, 천명씩 모여 은혜를 나누고 부르심과 사명을 새롭게 하는 청년들이 넘쳐난다. 고등학교 때 날마다 성경을 읽는 친구를 통해 전도 받았다. 한 사람의 전도로 한 사람의 선교의 거장이 탄생된 것이다. 복음 전파의 위력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 우리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자.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새벽 이슬같은 청년들이 무수하게 세워지는 환상을 보자. 요엘의 환상과 예언과 꿈이 현실이 되게 하자. 올 2023년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 받고 세움을 받는 거룩한 부르심이 우리 가운데 계속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