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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믿음(빌3:4-14) 202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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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10-08 21:49 조회 2,809 댓글 0
 

                               바울의 믿음(빌3:4-14)                 2023. 10. 8

 

 

빌립보교회의 개척자요 설립자인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하고 있다. 1장에서는 칭찬의 말로 시작하였다. 1장 3절 이하에 보면,

 

내가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간구할 때마다 여러분을 위하여 기쁨으로 간구합니다. 

여러분은 첫날부터 오늘 날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주님이 그리스도 예수의 심판날까지 이루실 줄을 나는 확신합니다. 

여러분 모두는 언제나 내 마음에 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여러분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현장의 권위 있는 그 누군가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아 든다면 오늘날 우리 각 사람도 기분 좋지 않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편지를 시작한 사도 바울은 2장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마십시오(빌2:3)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십시오(빌2:14)

 

‘다툼, 허영, 원망, 시비’, 이런 단어를 언급하는 이유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각 사람이 모두가 다 그렇게 성숙하고 칭찬만 받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 내용이다. 

 

오늘 3장의 일부를 읽었다. 3장의 시작은 “형제 여려분,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라는 내용이다. 이 말은 반대로 말하면 교회 안에 문제가 생겨서 기쁨이 떠나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나. 다투고 원망하고 계속하여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시비를 걸고 또 누군가는 허영심에 붙잡혀서 교회를 어지럽힌다면 그런 교회 생활에 무슨 기쁨이 있겠는가. 사실 그 당시에 빌립보 교회를 어지럽히는 신앙의 위기는 ‘유대주의적 율법주의자’들 때문이었다. 빌립보서 3장 2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들을 3가지 내용으로 지적하고 있다.

 

 

개들을 삼가라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라

몸을 상하게 하는 자들을 삼가라

 

라는 말은 유대주의적 율법주의자들을 지적하는 각기 다른 표현이다. 왜 이렇게까지 심한 말로 지적한 것일까. 산상 수훈인 마태복음 7장 6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요한 계시록 22장 15절에 보면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 하며 지어내는 자들은 다 성 밖에 있으리라”라고 구원 받지 못할 자들이라고 경고하였다. 여기서 언급한 ‘개’란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더럽고 사악한 자들과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의한 자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단어이다.

 

‘행악하는 자들’이란 복음 안에서 일한다는 미명 아래 실상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하는 악한 자들을 말한다. 저들은 사도로 가장하고 거짓 교훈을 퍼트리는 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고후11:13)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 보면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11:14-15)라고 분명하게 경고하였다. 

 

그 뒤에 이어진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라는 말씀은 할례의 본래의 참뜻을 잊어버린 채 몸의 일부인 살을 베어 내는 할례 의식만을 고집하며 지내는 ‘유대주의적 율법주의자’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는 말이다. 

 

자, 그러면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를 통해서 저들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가르치고 기대하였기에 이런 편지를 쓰고 있나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바울의 믿음’이라고 정한 것이다. 빌립보서 3장 17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라고 부탁하고 있다. 과연 바울의 믿음이란 어떤 믿음이기에 이런 권면을 하는 것일까.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믿음.

바울은 3절과 4절에서‘육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는 모세의 법을 따라 몸에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고집하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하여 깨우침을 주기 위해서 사용한 단어이다. 사도 바울은 할례를 반드시 받아야만 한다고 고집하고 주장하면서 정작 삶에 있어서는 주님이 기대하시는 신자다운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자들에 대하여 이런 내용의 교훈을 강한 어조로 강조해서 편지한 것이다. 바울은 3절에서 참 할례가 무엇인지를 세 가지로 교훈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는 자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는 자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자

 

이런 자야말로 참 할례파라고 교훈해 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자신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육체의 것을 자랑하라면 나처럼 자랑할 것이 만은 자가 있느냐는 것이다. 즉 겉으로 드러나는 자신을 소개할 만한 것들을 언급한다면 나처럼 화려한 이력을 가진 자가  너희들 중에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태어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

나는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다.

 

창세기 14장 13절에 보면 “히브리 사람 아브라”이란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 사용된 ‘히브리 사람’이란 ‘이주자, 지나가는 자’라는 뜻이다. 즉 아브람은 하란에서 가나안 지역으로 이주한 이주민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나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다.

나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던 자다.

나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다.

 

 7-8절을 풀어서 설명하면 이런 내용이다. 

“그러나 다메섹 체험 이후로 나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기고 버렸다. 왜냐하면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내가 육체적으로 자랑하며 그동안 끌어안고 살아오던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버렸다. 나는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 안에서 복음의 비밀을 깨달았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다.”

 

오늘날로 비유하면 바울은 이력서에 쓸 내용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력서의 지면을 한 면에 채우는 것으로 부족할 정도로 드러내고 자랑할만한 것이 많았다. 출신 성분과 배경, 학력, 지위, 능력, 역량 등등 그 누구와 비교해도 결코 부족함이 없는 0.001%의 최고 상류층이었다. 그런 그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설명하고 있다. 세상에 속한 것들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8절의 ‘배설물’이란 ‘스퀴발론’이다. 개를 뜻하는 퀴온(κύων)과 ‘던졌다’라는 뜻의 동사 발로(βάλλω)의 합성어이다. 먹다 남은 음식을 개에게 던지는 의미이다. 음식을 먹고 남은 찌꺼기나 분토를 일컫는 말이다. 그야말로 개의 먹잇감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 한 분과 세상에 속한 그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다. 마태복음 13장 45-46절에 보면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라는 천국 비유가 나온다. 진리의 발견이란 그런 것이다. 복음의 깨달음이란 그런 것이다. 천국 복음 전파를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란 그런 것이다. 사도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는 육체를 신뢰하지 말라는 강조는 그런 가르침이다. 

 

물론 공부도 해야 하고, 재주도 키워야 하고, 실력도 쌓아야 하고, 경쟁력도 가져야 한다.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왜 사냐고 물으면 분명하게 대답할 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바울은 그런 면에서 하나님 앞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의 인생관과 가치관과 신앙관이 분명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17절에서 이런 편지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형제들아 너희가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연 이어 말한다.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 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여기서 우리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포함한 말일 것이다. 주님을 본 받아 살아가려고 씨름하는 자들을 교회의 안과 밖에서 눈여겨 보라고 했다. 서로 서로 격려하여 주님을 본받아서 살아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각각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9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내가 가진 의(義)’란 자기 의(義)도 아니고 율법으로 인한 의(義)도 아니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義)다. 의를 설명할 때마다 인용하는 성경 구절이 창세기 15장 6절이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아브람은 75살 때부터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우상을 섬기던 자였다. 아브람은 조상 대대로 우상을 섬겼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섬길 뿐만 아니라 우상을 만들어 파는 것이 직업이었다. 그런 가정 환경에서 75년을 살던 아브람을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불러 내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아들은 태어나지 않았다. 그런 세월을 지내던 어느날 그에게 다시 찾아 오신 하나님의 방문과 더불어 늘 똑 같은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게 된 순간이 왔다. 그것이 창세기 15장의 내용이다. 어느 날 환상 중에 찾아 오신 하나님이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라고 말씀하셨다. 이날도 아브람은 나이가 점점 들어 가고 있으니 평생 집안일을 도 맡아 하던 ‘엘리에셀’이란 종에게 집안의 모든 재산을 상속해야 하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창15:4)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브람을 장막 밖으로 이끌고 나가셨다. 그리고 하늘의 별을 바라 보게 하시면서 말씀하셨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그 날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들은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믿는 믿음이 분명해졌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던 것이다. 

 

로마서 3장 21-22절에 보면 ‘의’(義)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를 말씀하는데 그 의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일컫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의(義)이시다”이 명제를 깨닫지 못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아멘 아멘 한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만 다닌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진리를 깨달아 알고 믿고 전파할 수 있어야만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이 의가 무엇인지를 가장 분명하게 설명한 성경 구절은 갈라디아서 2장 16절이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믿음.

기독교 역사상 수 많은 이단과 사이비가 생겨나고 사라지고는 하였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얼마나 많인 기독교를 빙자한 이단과 사이비가 극성을 부리나 모른다. 그러므로 정통 복음을 잘 깨달아 알고 순종하며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도 바울이 그런 장본인이었다. 몰라서 핍박하고 몰라서 박해하고 몰라서 기독교를 잔멸하려고 앞장 섰던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전파하기 위해서 동분서주 하고 있다. 옥에 갇히는 일도 굳굳하게 견뎌 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감옥 안에서조차 이런 편지를 써서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이 분명해 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바울은 그러한 자신의 일상의 모습을 분명하게 전하고 싶어 한 것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믿음이 분명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자신이 당하고 겪는 고난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 고난의 과정들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본받는 삶이라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10절에 ‘본 받아’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라고 말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라고 고백하였다. 

 

12-14절의 내용은 평소에 사도 바울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삶을 살아가고자 씨름하고 경주하였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유명한 말씀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 당시에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 중에는 다툼이나 허영이나 원망이나 시비로 인해서 서로의 관계가 무너진 이들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빌3:18)이 있었다. 19절에 보면 그렇게 살다가는 심판 받고 멸망할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지내는 자들이 있었다. ‘배를 신으로 섬기는 자들’(빌3:19)이 있었다. ‘부끄러운 일을 자행하며 사는 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이 안따깝게 이런 편지를 한 것이다. 20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자.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곳에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부르심에 합당한 상을 받기 위하여 달려가는 운동 선수들처럼 좌우로 치우침이 없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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