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레23:15-22) 2023. 7. 2 맥추감사주일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이다. 맥추란 보리를 거둔다는 뜻이다. 15절의 일곱 안식일에서 칠칠절이란 설명이 가능하다. 16절의 오십일에서 오순절이란 용어도 나왔다. 일곱 안식일 이튿날이 오순절 날이다. 맥추절기에 대한 설명이다. 요제(搖祭)란 흔들어 드리는 제사의 방법이다. 거제(擧祭)라는 것도 제물을 들어 올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사는 사람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다. 16, 17, 18절 끝에 ‘여호와께 드리라’라고 강조 하였다.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 제사하라고 하였는가. 만물과 그 열매가 주께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자연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섭리하신다. 오늘날 세계 정상들과 전문가들이 환경 보존, 생태계 보존, 기온 상승에 따른 기후 변화 위기 대책 마련 등에 앞장 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리 첨단 과학이 발전해도 자연과 생태계의 질서가 무너지면 지구는 멸망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맥추절에 무슨 제사를 드렸는가. 네 가지 제사를 드렸다.
새 소제(素祭).
소제라는 것은 곡물로 드리는 제사이다. 새것으로 드리라는 것은 해를 넘긴 묵은 곡물로 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해에 농사된 새 곡물로 드리라는 것이다. 17절에 보면 소제의 방법이 나온다. 4.6리터의 곱개 빻아 마련한 보릿 가루를 준비해서 누룩을 넣고 만든 유교병 두 개 구워다가 여호와 앞에서 흔들어 제사하라고 하였다. 이는 유월절에는 누룩을 넣지 않고 마련한 무교병으로 제사하는 것과 대조가 되는 제사 명령이다. 누룩 없이 만든 무교병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면 누룩이 들어간 유교병은 그리스도의 몸된 성도를 상징한다. 즉, 유교병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보내 주신 성령의 강림으로 세워진 신약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다.
모든 농사가 다 땀흘림과 수고가 필요하지만 보리 농사는 힘들고 어렵다. 유월절인 무교절기와 다르게 칠칠절인 맥추절은 단 하루만 지키게 한 것은 보리를 수확하는 계절이 무척 분주한 계절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 소제를 맥추절에 유교병으로 준비하려면 보리를 수확해서 말리고 곱게 빻아서 누룩을 섞어 반죽하고 번철에 타지 않게 정성껏 잘 굽기 까지 수고와 정성이 들어 간다. 그 바탕은 감사이다. 그렇지 않나. 요즘 떡이나 빵을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이들도 더러 있겠지만 대개는 떡과 빵을 전문점에서 사서 먹는다. 떡을 만드는 과정이나 빵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 순서와 과정과 수고와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새 소제로 준비하여 맥추절에 제사하는 제사도 마찬가지이다. 새롭게 수확한 보리로 누룩이 들아간 떡을 구워 내면서 맥추절 제사를 준비하는 이들은 그해의 수확이 가능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다. 레위기 23장 10-11절에 보면 요제를 드리는 방법에 대하여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곡물의 첫 이삭 단을 흔들어 드리고, 누룩이 들어간 소제의 잘 구워 낸 떡 두 덩이를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 흔들어 드리게 하라고 하셨다.
번제(燔祭).
18절에는 ‘번제’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칠칠절이며 오순절인 맥추절에는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어린 수솟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드리라고 하였다. 준비된 소제와 함께 드리되 전제와 함께 드리도록 명하셨다. 여기, 전제란 제물에 붓는 포도주를 말한다. 전제나 화제는 제사의 방법이지 제사의 종류가 아니다. 부어 드리기에 전제(奠祭), 불로 태우기 때문에 화제(火祭)라고 하는 것이다. 레위기에서 언급하는 제사의 종류는 “소제, 번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이 다섯 가지다. 번제는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로 드리는 제사라고 설명되어 있다.
어떤가. 우리가 고기를 구워 먹으면 숯불 위에 구워 지는 과정을 들여 다 보는 것도 좋고 적당하게 잘 구워진 고기를 입에 넣고 씹는 맛도 좋지만 고기를 굽는 과정에 그 구수한 향기가 입맛을 돋우고 먹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지 않나. 아마 하나님도 고기 굽는 구수한 냄새를 아셨나 보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다. 18절 끝의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라는 표현은 대단히 문학적이다. 레위기의 시작인 1장 9절에 보면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라고 하였다.
번제가 무엇인가. 태워서 드리는 것이다. 온전히 다 태우는 것이다. 레위기 1장 9절의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 살라 번제를 드릴지니”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제사의 완성, 번제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번제물로 내어 주신바 되었다. 온전히 죽임을 당하셨다.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셨다. 완전한 죽음에서 완전한 새 생명을 선물해 주셨다. 그는 부활 후 사십일을 이 땅에 계시다가 열한 제자가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다. 이 고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진리를 깨달은 사도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12:1)라고 명하였다.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제사)니라”라고 하였다. 그 실천 방안으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라고 하였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라.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라.
·변화를 받아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 교훈해 준 것이다. 한해의 절 반을 보내고 남은 한해의 절반을 시작하는 7월 첫 주일인 오늘 이 시간에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예배하며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소제처럼 드리고 번제처럼 드리는 결단이 있기를 축원한다.
속죄제(贖罪祭).
19절에 보면 맥추절의 제사 중에 ‘속죄제’를 드리라고 하였다. 속죄제는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이다. 숫 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를 드리라고 하였다. 레위기 4장의 35절 분량과 5장 13절까지의 내용이 속죄제에 관한 규례이다.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가 자원하여 드리는 자원제라면 속죄제는 반드시 제사하여야 하는 의무제이다. 따라서 다른 제사들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대상도 제사장, 회중, 족장, 평민을 위한 속죄제를 반드시 지킬것을 자세하게 명하고 있다.
레위기 4장에 보면 제사장이나 온 회중의 속죄제의 제물은 수송아지이고 족장을 위한 속죄제물은 숫염소로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평민을 위한 속죄제물은 흠 없는 암염소로 하라고 하였다. 수송아지나 염소를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끌아다가 그 머리 위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으라고 하였다. 제사장은 그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손가락으로 피를 찍어 성소의 휘장 앞에서 일곱 번 뿌리라고 하였다. 그 후에 향단 뿔에 피를 바르고 남은 피 전부를 회막 문 앞 번제단 밑에 쏱으라고 하였다. 또 그 속죄제물이 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떼어 내라고 하였다.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을 떠어 내고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과 허리쪽의 기름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 내야 했다. 제사장은 그 떼어낸 모든 기름을 번제단 위에서 불살라야 했다. 그 외에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것의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과 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서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사를지니라.”(레4:11-12)라고 하였다.
제사장 자신도 속죄제를 드려야만 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죄 없는 인간이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부족한 죄인이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한 몸에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다. 히브리서 기록자는 예수를“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히7:26)라고 소개하였다.
252장 찬송가 <나의 죄를 씻기는>의 가사처럼 나의 죄를 씻기고 나를 정하게 하며 나를 사죄받게 하며 나의 죄를 속하는 능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밖에는 없다. 이것이 속죄제의 정신이며 교훈이다.
욥기 1장 5절에 보면 욥은 일곱 아들과 세 딸들을 위하여 저들이 모여서 잔치한 후에는 다음 날 아침에 저들을 일일이 불러서 성결하게 하였다. 명수대로 각각 번제를 드리게 하였다. 혹시라도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였거나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싶어서 속죄제 드리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죄와 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올해의 후반기를 하루 하루 살아가는 중에 어른과 어린이와 남녀를 불문하고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고 거룩하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가꾸며 살아갈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화목제(和睦祭).
19절에 보면 “일년 된 어린 숫양 두 마리를 화목제물로 드릴 것이요”라고 하였다. 화목제란 하나님과의 화목과 이웃과의 친밀한 교제와 화목을 위하여 드리는 제사이다. 화목제는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드리는 감사제와 장래의 서원을 이루어주시기를 원하며 드리는 서원제와 장래의 축복을 서원하고 확신하며 믿음으로 미리 드리는 자원제가 있다.
번제는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살과 내장과 똥까지 모두 여호와 앞에 드리는 제사라면 화목제는 제사장과 제사를 드리는 이의 몫을 되돌려지는 제사이다.
20절에 보면 제사장과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몫에 대하여 교훈한다. 레위기 7장 11절 이하에 보면 화목제의 규례에 대한 추가 설명이 있다. 제사중에서 제물을 제사장과 제물을 드리는 이가 함께 나누어 먹는 유일한 제사가 화목제이다. 피와 기름 이외의 것 중에서 새 소제물인 유교병과 화목제의 제물로 드려진 요제인 제물의 가슴과 거제로 드려진 오른쪽 뒷 다리는 제사장 몫이었다. 이는 성막과 성전에서 제사 집전을 전담하는 제사장의 먹을거리가 궁핍하지 않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화목제를 드리고 나면 그 구별된 것 중에서 제사장과 제물을 드린 헌제자가 함께 둘러 앉아서 화목제물의 구별된 부문을 같이 나누어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하게 된 자는 이 식사에 함께 참여할 수 없었다.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화목과 친교와 거룩과 성결한 삶이 제사 신앙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제사의 순서로 하면,
·죄를 속하는 속죄제
·전적인 헌신을 다짐하는 번제
·충성과 성결의 표현인 소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리는 맥추절의 제사가 화목제이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과 인간과 인간의 화목과 친밀한 친교를 원하는 기원과 의지를 담아 드리는 제사이다.
그러므로 신약 교회의 성도들인 우리들은 구약 시대의 제사 신앙 대신에 그 정신을 본 받아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헌신을 다짐하며 충성스럽고 성결한 삶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신약 교회의 성도들은
첫째, 항상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성결하고 화목한 성도의 관계를 이어가야할 것이다.
둘째, 성도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고 섬겨 나가야만 할 것이다.
셋째, 성도는 매일 매일의 생활 중에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과 소망중에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21절에 보면,
맥추절을 비롯한 절기 신앙에 대하여 교훈한다.
성회를 공포하라
어떤 노동도 하지 말라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22절에 보면,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라.
베다가 떨어진 것을 줍지 말라.
그것을 나중에 가난한 자와 거류민이 거두어 먹을 거리로 삼도록 남겨 두라.
라고 가르쳐 주셨다. 올해, 오늘, 지금 어떤 형편 가운데에서 맥추절을 맞이하든지 범사에 크고 작은 일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주인공으로 살아가길 소망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6-18)
바라고 원하기는 우리 세대 뿐만 아니라 자자 손손 대를 이어서 하나님이 찾으시고 쓰실만한 준비된 각 분야의 믿음 좋은 인재들이 양육되고 배출되는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날마다 범사에 감사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