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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과 새 사람(엡4:17- 24) 2024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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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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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08-11 18:53 조회 1,201 댓글 0
 

                       옛사람과 새 사람(엡4:17- 24)          2024. 8. 11

 

 

두 주일 전인 7월 마지막 주일에는 에베소서 3장 말씀을 나누었다. 속사람과 겉사람에 관한 말씀을 묵상하였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에베소서 4장에서는 옛사람과 새 사람에 관한 말씀을 교훈하고 있다. 맞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기 시작 한 후가 ‘옛사람’과 ‘새 사람’으로 구분될 수 있어야 한다. 확연히 달라진 구분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되고

내가 늘 바라던 참 빛을 찾음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물밀 듯 내 맘에 기쁨이 넘치네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이란 289장 찬송가의 1절 가사이다. 

 

2절 가사는 이렇다.

 

주 예수 내 맘에 들어 와 계신 후 망령된 행실을 끊고

머리털 보다도 더 많던 내 죄가 눈 보다 더 희어 졌네

 

그렇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변화로 입증되어야 한다. 새 사람이 되려면 옛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 예수 만나기 이전의 모습이 옛사람이라면 예수 만난 이후에는 새 사람의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처럼 일순간에 변화를 체험할 수 있으면 좋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점진적으로라도 변해야 한다. 날마다 달라지고 순간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주 안에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해야 한다. 달라져야 한다. 좋은 쪽으로 변화되어 가야 한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들은대로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배워야 한다. 

 

“저 사람 변했어. 몰라보게 달라졌어. 

새사람이 되었어. 옛날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니야.”

 

오늘의 말씀 묵상 중에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옛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

유충이 허물을 벗고 나방이 되는 것을 관찰해 보았는가. 어렸을 적에 여름철을 지내다 보면 풀숲이나 나뭇가지에 매미의 유충이 허물을 벗고 매미로 날아 간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어렸을 적에는 여름 방학이면 밀짚으로 매미 집을 엮어 만들었다. 양파 자루 같은 것으로 매미 채를 만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매미를 잡으러 다녔다. 

 

매미의 유충이 일정한 때가 되면 허물을 훌훌 벗어 버리고 매미가 되어 날아간다. 인간은 다윗의 고백처럼 죄 속에 잉태되고 죄 속에 태어나서 죄와 악을 일삼다가 죽어갈 존재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야 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구세주로 보내셨다. 죄 사함 받고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주 안에서 새람으로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셨다. 

 

4세기의 성자 어거스틴은 로마서 13장 11-14절의 말씀을 깨닫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1-14)

 

어둠의 일을 벗어 버리는 것이 옛사람을 벗어 버리는 것이다.  방탕하고 술취하고 음란하게 지내고 호색하고 쟁투하고 시기하며 지내는 것이 옛사람의 모습이었다면 그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 버려야 한다. 새 사람의 옷을 가라입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어야 한다. 정욕을 위하는 육신의 옷을 벗어 버려야 한다. 

 

최근 뉴스를 아는가.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수도권 13개 대학 학생이 소속된 수백 명 규모 동아리에서 마약 투약·유통, 집단 성관계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경희대 출신 20대 동아리 임원은 과거 미성년자들과 성관계를 하며 촬영한 영상을 수백만원에 팔아넘긴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실도 알려졌다. 어린이이든 청소년이든 청년이든 장년이든 노년이든 예수 만나야 한다. 그래야 달라질 수 있다. 옛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 옛사람의 생각과 습관과 말과 행실을 벗어 버려야 한다. 

 

과거에 시골에서는 농한기에 놀음하는 이들이 많았다. 고스톱하고 도리지꾸땡이란 것을 했다. 땅 문서를 놓고 놀음했다. 놀음하는 습관에 빠지면 손을 잘라버려도 손가락 없이 손목으로 화투장으로 넘기며 놀음한다는 말이 있었다. 옛사람이란 육체의 욕망에 사로 잡혀 살아가는 사람이며 악한 습관에 사로 잡힌 방종하고 타락한 사람의 모습을 말한다. 

 

도리지꾸땡이란 단어는 알겠는데 뭘 말하는지 잘 몰라서 인터넷에 검색을 하였다. <칼날과 햇살>이란 제목의 김용만의 장편 소설의 한 단락이 소개되었다. 

 

 “늬가 진짜 병신이다 그 말이더.”

  “워째서?”

  “노름을 할라 카모 기술이 있어야제 개뿔도 오기만 가지고 돈 딸 성부르나? 그라고 돈을 날렸으모 깨끄이 손 털 일이제 머 한다고 칼부림 했노?”

  “허긴 그려. 허지만 눈깔이 홱 뒤집히는디 워쩔 거여. 그 얌생이 같은 놈이 살살 긁어대는 바람에 꾐에 빠졌응게 얼매나 괘씸혀야지. 그러구 그놈이 더 괘씸헌 건 쪼이로 허면 옛날에 자주 혀봤응게 별로 안 잃었을 틴디 그 육시헐 놈이 해필 도리지꾸땡으로 허자구 혀서 소 판 돈을 몽땅 날렸잖여?”

 

맞다. 옛사람의 습관에 사로 잡혀 살면 소 판돈까지 몽땅 다 날려 버리게 된다. 옛날이나 오늘 날이나 동서고금의 진리다. 옛사람의 욕구에 사로 잡혀서 살아가면 인간 구실하면서 살 수가 없다. 개과천선해야 한다. 새로워져야 한다. 옛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 옛사람의 모습이란 육체의 소욕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이다. 갈라디아서 5장 19- 21절에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 버려야 한다. 그래서 주님이 쓰신다. 그래야 주님이 기뻐하신다. 그래야 주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

새사람이 되려면 심령이 새로워 져야 한다. 사람은 영혼육으로 되어 있다. 사람의 몸은 영혼과 정신의 지배를 받는다. 사람을 영물(靈物)이라고 말한다. 맞다. 사람은 영물이다. 영의 지배를 받는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동물들처럼 본능에 의해서 살아가면 안 된다. 본능을 다스리고 절제할 수 있는 영혼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정신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마음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육의 삶이 새로워 지려면 마음이 새로워져야 한다.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근대심리학의 창시자인 미국의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생각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좌측보행에서 우측보행으로 바뀐 것이 2010년 7월 1일부터라고 한다. 그 이전에는 1921년부터 90여 년을 사람은 외쪽 차량은 오른쪽으로 홍보해 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바뀌니까 혼란이 계속되었다. 사람은 습관에 따라서 몸이 반응한다. 그러므로 습관이 바뀌려면 그보다 먼저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생각이 새로워 지고 마음이 새로워 지고 태도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변화란 불가능한 것이다. 

 

Impossible이란 불가능이란 단어다. 그 단어에 점 하나를 찍으면 I’m possible이 된다. 나는 못한다. 나는 안된다. 나는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할 수 있다’는 의식의 변화가 시작되면 사람은 새로워질 수 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

 

아기가 태어나서 걷기까지에는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또 넘어져야 하는가.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옛사람의 옛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23절을 <현대인의 성경>에 보니까 “마음과 정신이 새롭게 되어”라고 하였다. <공동번역성경>에 보니까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라고 하였다.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돌프 히틀러는 성장기 때에 한 때 화가 지망생이었다고 한다. 섬세한 그림 솜씨들이 그의 작품으로 남아 있다. 그의 그림에는 그런 악하고 독한 악마적인 요소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그의 마음과 생각과 정신을 악한 영이 사로 잡았다. 그는 독일인이 열광하는 중심 인물이 되었다. 한 두 마디로 해석하기 어려운 그의 악행이 인류 역사에 설명하기 조차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 시작이 무엇인가. 심령이다. 생각이다. 정신이다.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크나큰 불행을 부르고 만다. 자신도 불행해 지고 주변의 수 많은 이웃들을 불행하게 하고 만다. 인생이 새로워지려면 심령이 새로워 져야 한다. 그 마음이 그 정신이 그 생각이 새로워져야 한다. 마음, 정신, 생각이 시작이다.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사람이 새로워지려면 하나님 안에서 의(義)와 진리(眞理)로 거룩하게 직조한 새 사람의 옷을 입어야 한다. 옷감은 씨줄과 날줄로 직조하는 것이다. 성경은 사람이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 안에서 의의 씨줄과 진리의 날줄로 직조한 거룩한 옷을 입고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여기서 말씀하는 ‘의’란 “모든 생활에서의 올바른 태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진리의 거룩함’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의 거룩한 삶”을 뜻한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속성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다. 길이란 곧 의의 길을 뜻이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는 의의 길이며 거룩하신 진리이며 영생이신 생명이시다. 그러므로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 

 

다른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조금 다른 것도 같은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진리는 하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방인과 같이 허망한 것을 따라서 행하면 않된다. 17절에서 말씀하는 이방인이란 하나님도 모르도 예수 그리스도도 모르고 성령에 대하여서도 모르는 세상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저들은 다 우상 숭배 가운데 살아갔다.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갔다. 그들은 18절의 말씀처럼 총명이 어두워져 있고 무지한 자들이다. 그 마음이 굳어져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자들이다. 19절의 말씀처럼 죄에 대하여 무감각한 자들이다. 자기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는 자들이다. 더러운 것을 욕심스럽게 행하며 지내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분명하고 단호하게 충고하고 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 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엡4:20) 그렇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께 배우는 자들이다. 파리 올림픽이 폐막하게 된다. 각국의 각 종목의 선수들의 배후에는 그들을 오늘 날의 저들로 세워온 선배들이 있다. 대개의 코치와 감독들 중에는 그 종목의 선배 선수들 중에서 이미 오래전에 올림픽에서 금은동매달을 받았던 유능한 선배들이 자리 잡고 있다. 왜 그런가. 그들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장점을 개발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배우고 또 배우는 것이다. 개선하고 또 개선하는 것이다. 이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신앙생활이란 주 예수 그리스도께 끊임이 없이 배우는 것이다. 

 

21절 말씀의 가르침 그대로이다. 21절을 다 같이 읽자.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라고 하였다. 

 

그렇다. 성도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듣고 그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다. 우리에게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 골고루 주어진 것은 축복이다. 우리는 사 복음서에 소개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 많은 비유의 말씀을 듣고 배운다. 수 많은 기사와 이적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음과 은혜를 체험한다. 

 

성도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깨달아서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다.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빛의 자녀 다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세상의 소금과 같은 자들로 살아가야 한다. 

 

라는 책이 있다. 제임스 데스페인(James Despain)이 쓴 책이다. 그는 세계 최대의 불도저 회사인 캐터필러 회사의 CEO였다. 같은 회사의 청소부로부터 시작해서 최고의 경영자가 된 입지전적인 주인공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의 저자인 캔 블랜차드는 “이 책인 내가 그 동안 읽은 수 많은 경영학 관련 서적 중에서 최고의 책이다”라고 극찬하였다. 제임스 데스페인은 미국 일리노이 주의 그린뷰라는 광산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어버지와 아버지는 광산에서 일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광부들은 갱도에서 일하고 나오면 술 마시고, 잡담하고, 싸우고, 노름하고, 술에 취한채로 밤을 지새운다. 그렇게 지내다가 다시 시간이 되면 다음 날 갱도에 들어가서 석탄을 캔다. 사방을 가린 높은 산봉우리와 하늘과 시커먼 개천 물이 흐르는 풍경이 전부인 곳에서 대개의 광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렇게 하루 하루 살아간다. 그러나 제임스 데스페인은 어려서부터 달랐다. 그는 광산촌 아이들과 몰려 다니며 떠들고 싸우고 말썽을 피우는 대신에 운동으로 자신의 체력을 키웠다. 야구, 농구, 육상에 열심을 보였다.  대학 진학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열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한 살 어린 여자애와 눈이 맞아서 꼬마 신랑이 되었다. 결혼 후에 어렵게 공부해서 고등학교 졸업을 하였다.  아들 마이클이 태어난 상태에서 주 방위 사령부의 공군에 자원 입대하였다. 제대 후에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가 캐터필러라는 불도저회사였다. 자신이 하는 일은 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쇳가루와 쇳 조각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허리가 끊어지도록 하루 종일 청소하였다. 그렇게 시작한 그는 그의 직장에서 나중에 최고 경영자가 되었다. 

 

그는 광부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서 긍정적인 것들을 자기 것으로 받아 들였다. 집중력, 하나님을 믿는 믿음, 신념과 끈기, 헌신적인 삶, 체력 증강, 이해심, 정직, 신뢰, 적극성, 질서, 윗사람애 대한 공경심, 권위를 받아 들이는 태도, 선한 경쟁심, 거룩한 불만족,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 근면한 노동의 가치, 상관에 대한 존중, 주어진 일에 대한 만족스러운 끝맺음, 주어진 일을 똑바로 하기, 주어진 기술과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환경의 한계를 뛰어 넘기, 스스로에게 솔직하기, 주어진 일을 칭찬 받을 만하게 일하기 등등 분명한 생활 철학을 가지고 지냈다. 

 

그런 생활 태도가 세월이 지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회사의 청소부로 입사한 이후에 상관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새롭게 주어지는 일들마다 잘 감당하려 하였다. 세월이 흐르고 그에게는 캐터필러 회사의 최고경영자의 자리가 주어졌다. 그는 책에서 한국 전쟁인 6. 25에 참전했던 미국 군대에 관한 일화도 소개한다. 이름도 알지 못하고 가 본 적도 없는 나라 대한민국에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참전해서 목숨을 바친 수 많은 선후배 동료 미국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 그는 고막이 멍멍하게 하루 종일 쇠를 깎는 철제 공장의 한 귀퉁이에서 “야 임마 청소나 하지 뭘 바라봐”이렇게 비아냥 거리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어가면서 묵묵하게 일해서 나중에는 세계 최고 최대의 불도저 생산 업체의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까지 올라갔다.

 

사도 바울은 교훈한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썪어져 가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 오직 마음과 생각과 정신을 새롭게 하라. 하나님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입은 새사람을 입으라”라고 권면한다. 아직은 무덥지만 결실의 계절 가을은 분명히 찾아 올 것이다. 주 안에서 복되고 보람된 하나님의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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