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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풍랑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마14:22-33)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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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1-08-06 23:38 조회 21,491 댓글 0
 
밥 브리너(Bob Briner)의 <예수처럼 하라>(Jesus Way)는 책에 보면 예수에 관한 관찰을 무려 75가지 내용으로 세분해서 묵상하고 있다. 밥 브리너는 세계 유수의 스포츠 TV 프로그램 공급사인 프로서브 텔레비전(Pro-Serve Television)의 사장이었다. 그는 국제 비즈니스와 스포츠 마케팅 분야에서 전 세계를 누비며 35년 이상 활발한 활동을 펼쳤었다. 에미상을 수상한 프로듀서이기도 했다. 그의 글들은 뉴욕 타임스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 같은 유수한 언론에 자주 실리고는 하였다. 또 자선 단체와 시민 단체에서 활발하게 그리스도인다운 사역을 감당하다가 63세가 되던 지난 199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예수처럼 하라’는 그의 책에서 예수님의 삶을 조명하면서 “폭풍을 잠잠하게 하셨다.”는 점을 묵상하고 있다.

그렇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폭풍이 한 번도 없는 생을 사는 것은 아니다. 예수 믿는 가정이라고 해서 늘 벌과 나비가 날아드는 봄철의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시골집 정원처럼 따뜻하고 한가롭고 평온한 날들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도 아니다. 예수 믿는 기업과 사업체에도 어려움은 있고 예수 믿는 나라에도 환란은 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고난과 환난이 전혀 없는 곳이란 없다.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늘 계속하여 크고 작게 일어나는 바람과 물결과 파도 앞에서 반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잔잔하던 바다에 갑자기 폭풍이 휘 몰아치기도 한다. 밤새 강풍이 불고 거센 파도가 잠자지 않던 먼 바다에 아침이 되면서 고요하고 맑고 잔잔한 바다로 평안하게 가라앉기도 한다. 마치도 지난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호수처럼 잔잔할 때도 있다. 물론 바다란 전혀 파도가 없는 순간이란 없다. 계속하여 물결치고 파도치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에 실고 나간 배 속의 물은 쉽게 썩지 않는다지 않는가. 흔들려야 물도 썩지 않는 것이다.

어느 날 예수께서 제자들만 재촉해서 갈릴리 호수 맞은편으로 건너가도록 저녁나절에 보내 놓으시고는 예수께서 혼자 산으로 올라 가셨다. 해변의 수많은 무리들도 끼리끼리 다 흩어지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갈릴리 호수를 바다라고 자주 부르는 이유는 크고 넓기 때문이다. 크기는 남북 방향으로 21Km이고 동서 방향으로 13Km이다. 한 바퀴 돌려면 둘레가 약 50Km정도이다. 길이가 50리가 넘고 폭이 30리가 넘는 규모다. 간혹 게네사렛 호수라고 하는 이유는 하프 같이 생겼다고 해서 히브리말로 하프를 뜻하는 ‘킨놀’에서 유래해서 긴네렛(민34:11) 혹은 게네사렛(눅5:1)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밤새도록 따로 혼자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계셨다. 배는 이미 수리를 항해해서 호수를 건너가고 있었다. 밤이 깊어서 제 사경이 되었다. 여기 25절에서 말하는 제 사경이란 우리 시간으로 하면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의 새벽 시간이다. 이는 로마식 시간 구분이다. 로마 사람들은 저녁 여섯 시부터 아침 여섯 시까지를 넷으로 나누어서 시간을 표시하였다. 그 중의 마지막 밤 시간이나 아주 새벽녘이다. 제자들은 밤새도록 잠도 못자고 호수를 건너 항해 하고 있었다. 예수 또한 밤새도록 주무시지 않고 밤새도록 산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러던 그 밤에 갈릴리 호수에 큰 바람과 풍랑이 일어나자 새벽녘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풍랑 위를 걸어 오셔서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 가까이 다가갔을 때에 “유령이다.”하면서 무서워 소리를 질려 대기 시작했다.  예수는 즉시 “안심해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하고 말씀하였다. 그 때에 성미 급한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하고 소리쳤다. 예수께서 “오라”하고 대답하시기가 무섭게 베드로는 배에서 풍랑 이는 호수로 뛰어 내렸는데 빠지지 않고 걷는 희한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반갑기도 하고 또 “오라”하시니 어린이처럼 호수 위에 뛰어 내려서 걷기 시작했는데 금방 바람을 보고 무서운 생각이 들자 깜깜한 밤의 파도가 거센 호수의 물속으로 순간에 빠져 들어 갔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여 나를 살려 주세요.”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 밀어 그를 붙잡아 주며 배에 함께 오르셨다. 그러시면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말씀하시자 바람이 그치고 호수가 거짓말처럼 잔잔해 졌다. 그 밤에 배에 타고 있던 제자들이 일제히 예수께 엎드려 절을 하면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하고 경배하기에 이르렀다.

오늘 이 장면이 무엇을 말씀하는가.

인생은 누구나 바람과 파도로 인해 고난을 당한다.
이 세상에 고난이 없이 사는 인생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기업이든 나라든 다 마찬가지다. 인생은 그 누구나 다 언제든지 바람과 파도로 인하여 긴장된 나날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평안하고 오늘 평안하다고 해서 영원히 평안한 것도 아니다. 반면에 지금 불안하고 오늘 괴롭고 답답하다고 해서 그런 생태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지루하던 장마와 많은 비가 내리던 날씨가 한 나절만 해가 환하게 비추기 시작해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상황이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바람과 파도로 인하여 윈드서핑을 즐기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고난과 역경은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다주는 변장된 축복의 전령일 수도 있다. 당장인 고난이요 아픔이요 불행이요 시련이요 고통이요 어려움일 수 있으나 그래서 더욱 인생이 성숙되어 가는 것이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당장은 모르지만 나중에 깨닫고 보면 축복인 경우가 더욱 더 많은 것이 인생이다. 욥기 33장 12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는 말씀이 나온다. 물론 이는 엘리후에 고난당하고 있는 욥에게 해 준 말이지만 이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욥기에 보면 이런 말씀도 나온다. “하나님은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이는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살피시며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며 물의 분량을 정하시며 비 내리는 법칙을 정하시고 비구름의 길과 우레의 법칙을 만드셨음이라.”

이번에 보았는가. "YES WE CAN." 이런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단순한 구호를 외치며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이지만 점점 어려워지는 미국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서 노심초사하는 가운데 50회 생일을 맞았다지 않은가. 우리가 평소에 자주 듣지 못하던 경제 용어인 디폴트(Default)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 정부와 상하원의 의회와 정치 노장들이 이마를 맞대고 고민하지만 거대한 미국 같은 나라고 국가적인 부채와 채무 때문에 쩔쩔 매고 있지 않은가. 디폴트란 채무자가 사정에 의하여 원리금 지불채무를 계약에 정해진 대로 이행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채무자가 민간기업인 경우에는 경영부진, 도산 등이 디폴트의 원인이며 채무자가 국가인 경우에는 전쟁, 혁명, 내란, 외화준비의 고갈에 의한 지불불능 등이 디폴트의 원인이 된다. 이런 와중의 국민들의 눈을 의식했는지 상징적이지만 생일 날 점심 식시도 몇몇의 내각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서 흰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 종이에 싼 햄버거를 하나 씩 나누어 먹는 것으로 생일 날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는 장면이 언론에 소개 되었다.

또 우리나라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의 엄청난 비 피해를 입은 여러 현장들 중에서 어느 병원이 300명이 넘는 환자를 안전하게 높은 층으로 모두 대피 시킨 후에 병원 1층 전체가 물바다가 되었던 현장에 장화를 신고 점퍼를 입은 복장으로 병원 로비의 흙탕물을 치워 내는 장면이 언론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위기와 불안과 환란과 고난과 역경과 질병과 사고와 슬픔과 두려움과 긴장과 내일을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는 전쟁과 난리를 만날 수 있다. 믿음으로 새로운 길을 떠났던 아브라함이지만 가나안에 흉년이 들어서 당황해 하면서 애굽에 내려갔다가 아내 사라를 임금 앞에 누이라고 속여서 빼앗길 뻔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누구나 원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아무도 모른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현실을 보고, 믿음으로 사건을 보고,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고 받아 들여 나가야 할 것이다.

373장 찬송의 2절이 이런 가사가 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그렇다. 마치도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같은 것이다. 우리가 새옹지마의 고사를 다 알지 않는가. 중국의 <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이야기로, 인생의 길흉화복은 바뀌기 마련이므로 미리 헤아릴 수가 없다는 말이다. 옛날 중국 북방 국경 근처에 점을 잘 치는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기르는 말이 갑자기 도망쳐 오랑캐들이 사는 국경 너머로 가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자 노인은 "이 일이 무슨 복(福)이 될는지는 알 수 없소." 라며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몇 달 후 도망갔던 말이 오랑캐 땅에서 좋은 말을 한 필 데리고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이 부러워하였다. 그러나 노인은 "이 일이 무슨 화(禍)가 될는지 알 수 없소." 하고 기뻐하지 않았다. 그런데 말 타기를 좋아하던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인은 "이 일이 혹시 복(福)이 될는지 누가 알겠소." 했다. 그 뒤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젊은이들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 전사했는데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불편해서 전쟁에 나가지 못하고 반면에 무사할 수 있었다는 일화에서 나온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도 아름답게 하시고 인간의 실수도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사는 것이 마치도 먼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은 변화무쌍한 하루하루가 아니가. 그런 중에서 별의 별 일들을 다 겪으면서 살아간다. 그런 인생의 바람과 파도와 풍랑과 폭풍 속에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살아가는 믿음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고난 중에 주님의 손을 붙잡으라.
고난은 누구에게나 있고 언제라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그 닥쳐온 고난과 불행을 어떻게 극복하며 나아가느냐는 것이다. 대단히 용감하게 물 위로 뛰어 내려서 걸었던 베드로가 바람을 바라보며 무서운 마음을 갖고 물속에 빠져 들 때에 소리를 쳤다. 예수께 소리 지른 것이다. 구원해 달라고 살려 달라고 도와 달라고 다른 이에게 소리 지른 것이 아니라 예수께 소리 지른 것이다. 이것이 기도요 이것이 간구요 이것이 부르짖음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 밀어 그를 붙잡아 주시며 배에 함께 오르셨다. 물론 우리는 세상을 살다 보면 이성으로 다 이해 할 수 없는 불행이나 슬픔이나 고난을 겪는 이들을 대하게 된다. 그런 고난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기 아니라 나의 일이요 내 가족의 일로 다가오기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고난과 역경과 시련과 슬픔과 불행과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는 것이다. 

19세기에 호레이시오 스패포드(Horatio G. Spafford, 1828-1888)라는 변호사가 있었다. 미국 시카고의 성공적인 변호사였을 뿐 아니라 린드 대학교와 시카고 의과대학의 법리학 교수요 신학교 이사 및 운영 위원이었다. 또한 당대의 유명한 전도자인 무디(Dwight L. Moody)의 절친한 친구이고 무디 교회의 회계 집사였다. 이 사람은 시카고에서 부동산 투자에도 손을 대서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1871년 시카고 대화재가 일어나서 300여명이 죽고 십만 명 이상의 화재민들(火災民)이 집을 잃게 되었다.  이 때 스패포드 역시 많은 재산을 잃어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남 사녀 중 외아들까지 갑자기 폐렴으로 죽고 말았다.  그러나 스패포드는 실망하지 않고 화재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힘껏 돕는 일에 앞장섰다. 한 이년이 지난 후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 만큼 되었을 때 온 가족이 영국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스패포드는 부득불 무디와 생키(Sankey)의 전도여행을 도와야할 상황이 생겼다. 그래서 스패포드는 그의 출발을 연기하고 며칠 후에 뒤따라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의 아내와 네 딸을 계획대로 여객선에 먼저 태웠다. 1873년 11월 15일, 많은 승객들과 함께 스패포드의 아내와 네 딸을 실은 프랑스 여객선 "하브호"는 뉴욕 항을 출발하였다. 항해를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난 12월 22일 새벽 2시경, 선장과 승무원들 이외의 모든 여행객들은 모두 깊은 잠이 든 깊은 밤중에 그 배는 대서양 한 가운데서 영국 철갑선 "라키언"(Lochesrn) 호와 정면충돌하고 말았다. 배는 226명의 생명을 안고 순식간에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 칠흑같이 어둡고 추운 12월의 대서양의 밤바다에서 47명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스패포드의  네 딸들은 모두 배와 함께 깊은 바다 속에 잠기고 부인만 물위에 떠올라 구명정에 의해 겨우 구조되었다. 9일 후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웨일즈의 카디프(Cardiff)에 도착한 스패포드의 부인은 이 사실을 뒤 늦게 남편에게 전보로 알렸다. 아내로부터 미국의 시카고에 남아 있는 남편에게 전달된 전보 한 장에는 단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SAVED ALONE!"  "저만 살아  남았어요."  스패포드의 아내 애나(Anna) 만 구조되었고, 네 딸들인 Maggie와  Tanetta와 Annie와 Bessie 모두는 검은 밤바다에 수장되고 말았다. 스패포드는 즉시 다음 배를 타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운항도중에 선장은 그를 선장실로 불렀고 얼마 후에 딸들이 잠긴 물위를 지나게 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는 선실로 돌아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아픔과 슬픔으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새벽 3시에 아직까지 체험해보지 못한 평안이 그의 마음에 깃들었다.  "It is well with my soul"(내 영혼은 편하다.) 아침이 되자 스패포드는 좁은 선실 안에서 주님이 주신 영감을 메모지에 적어 내려갔다. 얼마 후 카디프에서 부인을 만났는데 부인의 얼굴은 의외로 환히 밝아보였다. 신앙의 힘이 아니라면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스패포드 부부가 귀국하려고 리버풀에 왔을 때, 당시 스코틀랜드에서 부흥의 불을 붙이고 있던 무디와 생키가 이들을 위로하러 찾아왔다. 그러나 스패포드가 "It is well with my soul"(나의 영혼이 편하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오히려 그들이 위로를 받았다.

스패포드는 생키에게 자신이 메모지에 써 두었던 글을 보여주며 작곡을 부탁했다. 생키는 이토록 훌륭한 믿음의 찬송시에는 자기보다 블리스(P. P. Bliss, 1838~1876)가 곡을 붙이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귀국 후 블리스에게 작곡을 의뢰하여 이 유명한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이 탄생하게 되었다. 당시 무디, 그리고 생키와 함께 부흥운동을 주도한 복음찬송 가수 중의 한 사람이 블리스였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스패포드는 사랑하는 네 딸을 잃어버리고서도 움츠러들거나 낙심하지 않았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완전히 망했다고 여기지 않았다. 결국 그는  그 상상 할 수 없는 엄청난 슬픔을 딛고 다시 재기하기 시작했다. 그 후에 딸 둘을 더 낳아서 완전히 하나님 뜻대로 살기로 작정하고 아예 예루살렘으로 이사했다. 그 곳에서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다가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5절과 36절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의심 없는 큰 믿음으로 살아가라.
믿음과 의심은 늘 우리 속에서 함께 작용한다. 믿음이 커지면 의심이 작아지고 의심이 커지면 믿음이 흔들린다. 제자 베드로가 예수만 바라보는 믿음으로 행동했을 때에는 파도와 풍랑 위를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바람을 바라다보는 순간에 무서운 생각이 일어났고 물결 속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다. 그 때에 바람과 파도 가운데 빠져 들어가며 살려 달라고, 구원해 달라고 소리를 질러 대는 베드로에게 손을 내밀어 붙잡아 배에 함께 오르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이것이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14:31) 결국 역사의 변화는 믿음의 문제이다. 예수께서 믿음을 크기로 표현하신 것 보면 작은 믿음이 있고 큰 믿음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어느 바닷가에서 낚시꾼이 낚시를 하는데 큰 고기가 잡히면 자로 재어 보고 바다에 다시 던지고 적당한 크기가 잡히면 바구니에 담는 것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신기해하면서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큰 물고기는 다시 바다에 던져 넣고 적당한 크기의 물고기만 바구니에 담는 이유가 뭐요.” 그랬더니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우리 집의 후리이팬의 폭이 이정도 밖에는 되지 않아서요.” 하고 대답하더란다. 꼭 누가 만들어 지어낸 이야기 같지만 우리가 혹시 그렇게 스스로를 제한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서두에서 소개한 밥 브리너(Bob Briner)의 <예수처럼 하라>(Jesus Way)는 책에서도 75가지 묵상 중에서 60번째는 “믿음을 불러 일으키셨다.”는 제목의 묵상이다. 그렇다. 우리의 신앙생활, 기도 생활, 교회 생활의 바탕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믿음이 불려 일으켜 져야 하는 것이다. 잠자던 믿음, 시들하던 믿음, 반신반의하던 믿음, 작은 믿음,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려는 어정쩡한 믿음의 모습에서 온전히 하나님께로 향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향하는 변화의 순간이 와야만 한다. 악한 귀신 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예수를 찾아 나섰던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보라. 중풍병으로 고생하는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고 예수께 찾아 나섰던 백부장의 믿음을 보라. 예수의 뒤에서 옷자락만 이라도 만지면 고침을 받을 수 있겠다고 믿음을 가지고 그리했던 12해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의 믿음을 보라.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소리치던 앞 못 보던 두 사람의 믿음을 보라.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38년을 고생하던 병자의 믿음을 보라.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눅5:6, 8)

믿음으로 기도하면 병든 자가 고침을 받는다. 믿음으로 부르짖으면 귀신이 떠나간다. 믿음으로 간구하면 죽은 자가 살아난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삼년 육 개월 간 비가 오지 않던 하늘이 큰 비를 내린다. 믿음으로 감사하며 기도하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도 오천 명의 장정을 포함한 이만여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이 일어난다.(행2:22) 예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은 모두가 다 믿음의 역사였다. 다시 오실 주님! 재림 하실 주님의 날도 믿는 자에게 경험될 날인 것이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죽음과 부활과 영생이 다 믿음의 그릇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과 신념은 다른 것이다. 

믿음 생활 중에서 의심은 마치도 장마 끝에 자라나는 독버섯과 같은 것이다. 의심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믿음이 자라고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마가복음 11장에 보면 길을 가시던 예수께서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구하실 때에 열매 없는 것을 보시고 그 나무를 저주하여 말라 죽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에 같은 장소를 지나던 중에 제자 베드로가 죽은 무화과나무를 발견하고 예수께 이야기 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라”(막11:22)는 말씀과 함께 의심 없는 믿음의 가치에 대하여 유명한 교훈을 말씀해 주신 적이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 질 줄 믿고 의심(疑心)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祈禱)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3-24)

온갖 의심과 불신을 쓰레기 버리듯이 과감하게 버리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주인공이 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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