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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여호와를 찬양하라(시146:1-10)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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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1-05-29 00:46 조회 20,981 댓글 0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에 복음을 지켜 사는 신앙생활로 인해서 순교자가 된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 모든 순교자의 길을 간  신앙선배들 중의 대표적으로 꼽히는 인물이 주기철(1897-1944) 목사이다. 그는 목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신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고 불의한 것 앞에 고개 숙이지 않던 신앙인이요 목사였다. 그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굴하지 않고 신사참배는 하나님 앞에서 명백한 우상 숭배의 죄라고 반대하다가 붙잡혀서 10년 형을 언도 받고 5년간 온갖 고문과 회유와 협박과 조롱과 배신과 독방 격리 등의 외로움과 질병과 배고픔과 육체적인 고문의 고통과 정신적인 번민과 씨름하며 믿음을 지키다가 감옥 안에서 47살에 순교한 순교자이다. 심한 고문으로 손가락도 부러지고 영양이 결핍되어 거의 탈진된 상태에서 감옥의 한국인 간수에게 유언을 전했다.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푸르고
백합화는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의 제단에 제물이 되길 원합니다.”

이런 내용의 유언과 함께 고문을 받아 피투성이가 된 몸이지만 깨끗하게 씻고 걸레처럼 헤어진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수염까지 정리하고 죽음의 순간을 준비하였다.

그는 감옥에서 죽음으로 순교하기 전날 기적적으로 아내인 오정모 사모를 만난 자리에서 세 가지 말을 남겼다.

나의 불쌍한 늙은 어머니를 잘 모셔 주기 바라오.
따뜻한 숭늉 한 그릇 마셔 보고 싶소.
내 하나님 앞에 가게 되면 조선의 모든 교회들을 위해 늘 기도하리다.

그리고 헤어진 다음 날 감옥 안에서 “내 영혼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남기고 운명하였다. 그의 시체는 지푸라기 거적때기에 둘둘 말려진 채로 손수레에 실려 감옥 바깥으로 전해졌다.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난 그는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연희전문학교 상과에서 유학하던 중에 병을 얻어 중퇴하고 말았다. 고향에 내려간 그는 창원의 웅천교회의 집사가 되었다. 그러나 술도 먹고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교회 생활을 하던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23살 때에 김익두 목사의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어 가기 시작했다. 깨달음을 갖고 거듭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나중에는 3.1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몇 해 후에는 29살 나이에 평양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목사가 되어 부산과 마산에서 목회하던 그를 오산학교의 선생님이셨던 스승이신 조만식 선생이 장로로 있던 평양 산정현 교회에 담임 목사로 청빙을 받았다. 일사각오의 기독교 신앙을 강조하며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반대하던 그는 결국 일본 경찰에 의해 붙들려 10년 형을 받고 감옥 생활이 시작되었다. 2차, 3차 구속과 석방을 거듭하던 그는  1939년 12월 19일에 조선예수교장로회 평양 노회에서 신사참배 결의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목사직에서 파면되었다.  지난 2007년에 예장통합 평양노회는 67년 만에 주기철 목사의 목사직을 복직 결의하였다. 그가 순교한지 62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그는 감옥에서 고문과 핍박과 회유 가운데 눈의 안질로 고생이 더욱 심했고 나중에는 폐와 심장이 몹시 약해진 채로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중에서도 언제나 몸을 단정히 하려고 힘썼고 항상 기도와 성경 암송과 함께 주변의 옥중 생활하는 이들을 격려하며 언제나 밝은 얼굴로 지내려고 힘썼다고 전해진다.

오늘의 시편은 150편까지의 다섯 편 모두 할렐루야 시편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그 모든 시편의 시작이 할렐루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에스라 4장의 시대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바벨로 포로 시대가 끝나고 바사 나라의 아닥사스다 임금 때에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시도하려 하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임금 아닥사스다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못하도록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던 때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느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감동을 입고 쓴 시라고 전해진다. 의지하여 보아야 별 도움도 힘도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힘과 능력과 온갖 은혜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영원하신 통치와 다스림을 찬양하는 찬양시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날이라도 하나님의 구체적인 도우심과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인생살이와 가정사와 세상살이의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손 안에 올려 드리면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심정으로 쓴 신앙 고백시 중의 한 편이기도 하다.

그렇다. 성도인 우리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언제나 늘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하고 송축하고 찬양하며 살아간다. 찬송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이다. 오늘 말씀의 1절과 2절은 그런 가사로 되어 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우리의 영혼이 진실하고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찬송할 때에 하나님의 성령과 천사의 임재를 경험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찬송하며 고백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는 자.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일상생활 중에서 자신의 모든 도움의 근본이신 분으로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그 어느 귀인이라도, 고관대작이라도, 영웅호걸이라도, 나 보다 권력 높고 힘이 있고 능력 있고 더 잘난 그 어떤 인생이라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도움의 근원으로 삼고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대단한 것 같아도 흙으로 돌아갈 인생, 그 생각이 소멸되고 말 인생을 의지 하지 말고 야곱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광야에서 아말렉과 전쟁 할 때에 장군 여호수아는 군대와 함께 나아가 싸웠다. 그러나 산꼭대기에서는 모세와 아론과 훌이 손을 맞잡고 힘이 들어 손이 내려가는 모세를 바위에 앉게 하고 서로 손을 맞잡아 치켜들고 계속하여 기도할 때에 아말렉과의 전쟁 승리를 경험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한다. 가정, 건강, 재물, 자녀, 진학, 논문, 학위, 취업, 결혼, 자녀 출산, 사업 성공, 진급, 사업 확장 등 성공과 출세의 그 모든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광야에서 백성들이 악한 말로 원망할 때에 그 소리를 하나님도 들으셨다. 진노하신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백성들의 진영 끝에 불이 불었다. 당황한 백성들이 모세에게 부르짖을 때에 모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더니 그 때에 진영 끝에 불타던 불이 껴졌다.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도와주신 것이다.

민수기 20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 가데스란 곳에 이르렀을 때에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죽어서 그 곳에 장사지냈다. 그 곳에는 여전히 마실 물이 귀한 곳이었다. 짐승은커녕 사람 마실 물도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하기 시작했다. 왜 우리를 애굽에서 여기로 끌고 와서 이 광야에서 목말라 죽게 하느냐는 불평이었다. 민수기 20장 5절에 보면 그 곳을 나쁜 곳이라고 불평했다. 파종할 곳도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는 그 곳은 나쁜 곳이라고 원망해대고 있었다. 답답해진 모세와 아론이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려 있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 그리고 하나님이 친히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백성들을 모아라. 그들의 보는 앞에서 반석을 향하여 명령하여 물을 내라. 그 반석에서 날 물로 백성과 짐승들이 마시게 하라.”고 명령해 주셨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 앞에서 지팡이를 잡았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그 반석 앞에서 화를 낸 것이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20:10) 그 후에 모세는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두 번 쳤다. 반석에서 많은 물이 솟아 나왔다. 회중도 짐승도 배 불리 마셨다. 그러나 거기에 문제가 있었다. 모세가 화를 냈다. 화가 난 모습으로 반석을 두 번 쳤다. 하나님의 사람은 목사이든 목사의 부인이든 장로이든 권사이든 집사이든 속장이든 무슨 부장이든 교사이든 청년 학생 아니 어린이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화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화를 내고 나면 결국은 그 화가 또 다른 화를 부르고 만다. 사도 바울은 광야의 반석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화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교회인 성도의 연합은 언제나 주님의 몸 된 살과 피를 마시는 거룩한 성찬 공동체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여야 한다. 가정에서나 직장과 학교와 사업장과 교회의 그 어디에서나 다 마찬가지다. 그래야 하나님의 도우심이 구체화 되는 것이다. 모세가 반석 앞에서 동족인 회중들을 향해서 반역한 너희 운운하며 반석을 두 번씩 치며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다. 반석에서 많은 물이 솟아나긴 했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마음 중심을 읽으셨다. 그리고 곧 모세와 아론을 책망하셨다.(민20:12)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다.
장차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할 것이다.

혹시 요즘 화를 잘 다스리지 못해서 실수하거나 후회한 적은 없는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지 않으면 화를 부르고 만다. 겸손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며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신다. 모세라도 이 사건으로 인해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교만하면 안 된다. 겸손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면 안 된다. 자기 스스로 잘 난체하며 하나님을 떠나면 불행해 진다. 사람 의지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 의지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찬송하는 마틴 루터 작사 작곡인 찬송 “내 주는 강한 성이요”(585장)의 2절 가사는 이렇다.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 할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 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우리 모두가 이런 신앙의 고백 가운데 살아갈 때에 대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서 늘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자기 하나님께 소망(所望)을 두는 자.
인간은 제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소망을 갖고 산다. 그러나 그 갖가지 소망의 뿌리를 하나님께 둘 줄 아는 인생이 복된 인생이다. 세상 교육은 자꾸만 공부해라, 성공해라, 출세해라, 돈 벌어라, 부자 되라, 권력과 명예와 이 세상에 자랑할 만한 것을 취하라고 강조한다. 물론 필요하다. 세상에서 잘 되어야 하고 성공도 출세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바탕에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이 있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겸손한 신앙의 고백이 늘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인생의 모습인 것이다.

한국의 슈베르트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작곡가 이흥렬(1909-1980)선생은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났다. 나중에 일본 동경으로 피아노 전공 유학을 떠났다. 피아노가 전공인 그는 피아노를 갖고 싶은데 피아노를 갖는 것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 일제 강점기 이야기다. 고향에 계신 가난한 어머니에게 자기의 소원을 편지하였다. 어머니는 뒷동산에서 솔방울을 주워 모아서 400원을 마련해서 유학 중인 아들에게 보내 주었다. 오늘 날로 하면 400만원 돈이었다. 야마하 피아노를 마련할 수 있는 돈이었다. 그 아들 이흥렬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 와서 배재 중학교, 서울 음대, 이대 음대 등에서 후학을 가르치다가 나중에는 숙명여자 대학교 음학대학장까지 지냈다. 그의 작곡 중에 유명한 작품들이 많다. ‘어머니의 마음, 바위 고개, 봄이 오면, 꽃동산, 섬집 아기 등의 곡들이 모두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그 중에 가정의 달, 어버이 날이면 생각나고 부르는 노래 어머니의 마음은 양주동 선생이 작사하고 이흥렬 선생이 작곡한 노래로 유명하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머니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이다. 하나님을 믿는 인생이 하나님을 향하여 소망을 두고 살아가듯이 하나님 또한 하나님의 자녀된 인생들을 향한 소망을 갖고 계신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 보면,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과 소망은 평안과 미래와 희망인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 안에서 민족을 향한 소망이 분명했던 인물이다. 이는 아브라함도 여호수아도 갈렙도 사무엘도 다윗도 이사야도 예레미야도 느헤미야도 에스라도 마찬가지였다. 성령 충만을 받은 나중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변화된 사도 바울과 바나바와 디모데와 같은 분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오늘 지금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소망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것 그 자체가 소망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믿음의 사람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恩惠)를 깨달아 아는 자.
오늘 본문의 6절부터 10절까지의 내용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의 존재에 대하여 교훈하는 너무나 은혜로운 말씀들로 가득 차 있다. 달리 설명이 필요 없는 말씀들이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가를 교훈하는 진리의 말씀이니 말이다.
 
영원히 진실하신 창조주 하나님
억눌린 사람들을 정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주린 자에게 먹을 주시는 하나님
갇힌 자에게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
앞 못 보는 이의 눈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
비굴한 자를 일으켜 세워 주시는 하나님
의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는 하나님
악인들의 길을 굽게 하시는 하나님
영원히 다스리시고 대대로 통치하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최근에 교회적으로 가정들 중에 슬픔을 당한 가정, 질병으로 고생하는 교우, 어려운 병마와 씨름하는 성도, 가정에 위기를 겪고 있는 이들을 대할 때에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간절히 주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하게 된다.

이번 2011년 6월 호 가이드 포스트에는 존 크라릭(John Klalik) 변호사의 700번의 감사라는 제목의 간증문이 실렸다. 존 크라릭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변호사다. 원래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지금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이 두 번째 이혼 수속을 밟고 있는 중이었다. 지난 2008년 1월의 그는 그가 창업했던 로펌은 이름만 거창할 뿐 빚더미 위에 앉아 있는 딱한 신세였다. 첫 부인에게서 낳은 두 아들들은 얼굴 본지도 오래고 언제 목소리를 들어 보았는지도 기억에도 없었다. 오직 변호사로서 일의 노예처럼 살아 왔다. 일찍이 첫 부인과 두 아들들과 둘째 부인조차도 지금은 그와 헤어져 버렸다. 7살짜리 딸아이를 자기가 맡아서 둘이 눕기도 좁은 이름뿐인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2008년 1월 첫날 아침에 애지중지 아끼던 습작으로 쓴 원고 뭉치가 담겨 있는 박스를 옮기다가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 때 자신은 인생의 실패자라는 느낌이 확 밀려오는 순간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다.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었다. 그 후로 그는 지난 3년여 동안 무려 700 통이 넘는 감사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헤어진 첫 아내에게도 오래도록 만나지 못하고 살던 청년으로 자라난 두 아들들에게도 감사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얼마 전 헤어지겠다며 떠나간 둘째  부인에게도 감사 편지를 썼다. 우편배달부, 아파트 관리인, 단골 스타 벅스의 바리스타, 공인 중개사, 사무실 보조원, 기억나는 대학의 친구, 식도 수술을 맡아 주었던 의사에게 감사 편지를 썼다. 그런데 이상한 일들이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었다. 예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감사한 일들이 계속하여 일어나는 것이었다. 몇 해 동안 못 만나던 아들과 만나서 식사를 하면서 진지하게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할 기회도 있었다. 헤어진 첫 아내와 서먹하던 관계도 이젠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얼마 전 제 곁을 떠나간 둘째 부인에 대해서도 서로 용서하는 마음이 생겼다. 곁에 두고 키우는 7살짜리 딸에게도 감사 편지를 쓰면서 정서적인 안정을 찾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딸아이와 겨우 눕던 비좁은 아파트에서 다락이 있는 예쁜 새 집으로 이사도 했다. 3년이 지난 최근에는 로스앤젤레스 대법원 판사로 임명되면서 자기가 명맥만 유지하던 로펌도 다른 변호사 동료에게 인계하게 되었다. 그는 요즘도 계속하여 감사 편지를 쓰고 있는데 계속하여 좋은 일이 일어나고 감사한 가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간증이다. 그는 어는 순간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면 금방 정신을 차리고 계속하여 누군가에게 감사 편지를 쓰는 노력을 통해서 날마다 풍요롭고 축복된 새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46편을 쓴 인물이 바로 그런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가. 언제 하나님의 약속의 도성인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하나님께 예배할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이방 땅에서 살아가면서도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분명한 소망과 확신으로 넘쳐 났다. 5절과 10절을 다시 읽어 보자. 그리고 본 시편 기자의 그 본래의 마음을 깊이 묵상해 보자.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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