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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매인 자의 기도(엡6:18-24) 2015.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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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5-08-17 22:07 조회 18,939 댓글 0
 
매인 자의 기도(엡6:18-24)                 2015. 8. 16


지난 번 종교 개혁지 방문 중에 영국 런던의 요한 웨슬리 채플 앞길 맞은편에 있는 공동묘지에서 존 번니언의 묘를 보았다. 그 곳에는 14만 구가 넘는 묘비가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에 가장 두드러지고 잘 보이는 환경에 크고 높게 대리석 묘석이 세워져 있었다. 그 곳에는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 사모의 묘도 있다고 한다. 요한 웨슬리는 교회 사택 3층 서재에서 그 곳을 바라다보며 훌륭한 삶을 사신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지내고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는 하였다고 한다. 

<천로역정>을 쓴 영국의 존 버니언(John Bunyan, 1628-1688)은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자신도 대장장이로 일하며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청교도 혁명 때에 의회군으로 강제 참여했다가 내전이 끝난 후 살아남아 고향에 돌아왔다. 그는 혁명 기간 중에 동료가 전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신앙이 없던 그는 청교도인 메리와 결혼하면서 기독교인이 되었다. 아내인 메리는 버니언과 결혼할 때 가난해서 혼수를 갖고 오지 못했으나 당시에 영국 성공회 사제 존 폭스가 쓴 <폭스의 순교사>등의 청교도 책들을 몇 권 가지고 왔는데 그 책들을 읽으면서 가톨릭교회를 증오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기로 다짐하고 베드포드 침례교회의 신자가 되었다. 존 버니언은 ‘버니언 주교’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평신도로서 복음을 전하는 설교활동을 성실히 하였다. 하지만, 버니언이 살던 시대의 국왕인 찰스 2세는 영국 국교회인 성공회를 제외한 기독교 교파들을 탄압했기 때문에 존 버니언은 국가의 허락 없이 복음을 전했다는 비밀집회혐의로 12년 동안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거기서 자서전 <은총이 넘침>을 쓰고 그 유명한 <천로역정> 1부를 썼다. 2부는 6년 뒤에 완성시켰다. 이 작품은 간결하고 소박한 문체로 표현한 종교 문학으로 역사적으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기독교 서적 중의 하나라고 알려져 있을 정도이다. 그 밖에 그는 우화로 <성경>을 쓰기도 하였다. 

감옥에 갇히는 일은 동서고금 언제 어디나 있었다. 얼마 전에 묵상을 마친 열왕기 하 25장에 보면 남 유다의 19대 임금이었던 여호야긴은 왕이 된지 3개월 만에 바벨론에 포로로 쇠사슬에 매여 끌려갔다. 그리고 37년 동안 쇠사슬에 매인 채로 감옥에 갇혀 지냈다. 그가 왕이 될 때의 나이가 18살이었으니 55살 때에 감옥에서 풀려 난 것이다. 그를 감옥에서 풀어 낼 당시의 바벨론 왕은 에윌므로닥이었다. 그는 왕이 되자 마자 그 해 12월 27일에 여호야긴 왕을 석방한 것이다. 에윌므로닥 왕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여호야긴의 고개를 들게하고 그에게 항상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주변의 왕들 이상의 지위로 높혀 주었다. 죄수의 초라한 의복을 벗게하고 그후 일평생을 항상 에윌므로닥 왕 앞에서 함께 음식을 먹게 하였다. 최고의 생필품을 날마다 풍성하게 공급해 주었다. 그 여호야긴 왕의 3대 후손이 스룹바벨이다. 세월이 흘러 바벨론이 무너지고 바사 즉 페르시아가 통치하게 되었다. 에스라 1장에 보면 바사의 고레스 왕의 원년에 하나님은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예언의 말씀들을 이루어 가시기 시작하였다. 고레스는 명을 내려서 유대인들을 모두 자기들의 나라로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건축하라고 하였다. 꿈과 같은 날이 온 것이다. 은과 금을 비롯한 각종 보석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을 도움 받게 하였다. 고레스 왕은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를지니라.”(스1:4)고 공포하였다. 하나님은 그런 비운의 시대가 다 지나가게 하신 후에 37년간 바벨론에 포로로 갇혀 지내던 여호야긴 왕의 손자 스룹바벨을 예루살렘에 돌려 보내셔서 무너진 솔로몬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데 앞장서게 하셨다. 그 스룹바벨의 이름이 에스라  2장 2절에 등장한다. 감격스러운 순간이 찾아 온 것이다.  

2년 전인 2013년 8월 16일은 금요일이었다. 그 날 오후 시간에 예배당 건축을 마친 준공검사필증이 구청 건축과로부터 발부되었다. 그 이틀 후인 8월 18일에 주일을 맞았고 이 곳, 새 성전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묵상하고 그 당시 예배 참석자들이 일일이 나무 십자가에 자기 자신을 못 박는 신앙고백과 함께 십자가에 큰 못을 꽝꽝 박는 체험을 하였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 신앙을 우리도 간직하고 따르자는 선언이요 결단의 예배를 드렸다. 2년 세월이 흘렀고 낯이 설던 새 가족들도 달을 거듭하면서 복음과 은혜 안에 정들어 가는 사랑스런 한 가족이 되어 가고 있다. 그 당시의 그 신앙 고백이 지금 나에게 있어서는 어떤 모습으로 성숙되어 가고 있는가를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2년 7개월간 교도소에 갇혀 지내던 모 기업의 회장이 8.15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그는 교도소 문을 나서면서 왼손에 커다란 밤색 신구약 성경책을 들고 출소한 장면이 T. V 뉴스에 소개되고 신문의 사진에도 크게 실렸다. 사연이야 어떠하든 그가 교도소 안에서 성경을 가까이 하며 지낸 사실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고백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옥에 갇히면 기도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접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옥중에서 성경을 탐독하게 될 것이다. 그 긴긴 시간동안 자유롭지 못한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며 지내겠는가.  

사도 바울은 옥중 경험을 여러 번 한 인물이다. 본문 20절에서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이라고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을 밝히고 있다. 

우남 이승만은 고종 임금 때에 박영효를 앞장 세워 내각 중심제의 정부를 조직하려던 음모가 실패해서 감옥에 갇혔다. 20일 만에 탈옥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여 종신형 언도를 받았다. 그 후에 1904년 8월까지 5년 반 동안 감옥에서 목에 칼을 차고 갇혀 지냈다. 그 동안에 <신영한사전>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도 1909년 전국 강습소 순회에 나서서 애국심 고취에 열성을 다하며 재령 보강학교(保强學校) 교장이 되었다. 그때 비밀단체 신민회(新民會)의 회원으로 구국운동에도 가담하였다. 그 해 가을 안중근의 거사에 연좌되어 해주감옥에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었다.그 뒤 1911년 1월에 일본 데라우치(寺內正毅) 총독 암살모의 혐의로 안명근(安明根)사건의 관련자로 체포되어 17년형을 선고받았다가 감형되어 2년 여 간의 감옥 생활을 하고 가출옥되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도 중국에서 독립 운동하다가 붙잡혀 20여일 갇힌 적이 있고 1932년에는 윤봉길 상해 홍구공원 폭탄사건에 연루되어 상해에서 붙잡혀 국내에 이송되었고 서대문 형무소와 대전 형무소에 2년 반 동안 갇혀 지낸 적이 있었다. 잘 알려진 대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27년 동안 감옥에 있다가 나와서 민선 대통령이 되었다. 루마니아의 범브란트 목사도 공산주의 치하에서 14년 동안 발목에 쇠고랑을 차고 감옥 생활을 하였다. 길선주 목사는 숭실학교(崇實學校)와 숭덕학교(崇德學校)를 설립하였다. 3·1운동 때에는 기독교를 대표하여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를 공포한 후에 2년간 감옥에 갇혀 지냈다. 석방된 뒤로는 북간도를 비롯하여 전국을 순회하면서 부흥집회를 인도하였다. 오산 학교 교장을 지낸 남강 이승훈도 3. 1 운동 때에 33인의 독립선언문 서명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후에 붙잡혀 2년 동안 감옥에서 고난을 받았다. 

성경에도 요셉, 다니엘, 세례 요한, 사도 요한 등을 비롯하여 감옥에 갇혀 지내거나 섬에 유배 되어 지냈던 인물들이 한 둘이 아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라고 하였다.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빌립보 감옥에 갇혔던 장면의 기록은 읽을 때마다 실감이 난다. 사도 바울은 매를 많이 맞고 감옥에 갇힌 그 밤에 실라와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바울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기도하며 주어진 복음 전파의 사역을 감당하였다.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삼일 동안 눈이 가리어져서 보이지 않고 비늘 같은 것이 눈을 가려서 앞이 캄캄하던 때에 그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예수님은 다메섹 성에서 활동하던 아나니아 라는 이름의 선지자에게 직가라는 거리를 찾아 가서 유다의 집에 머무는 다소 사람 사울에게 안수하라고 명령하셨다. 예수님은 유다의 집에 머무는 사울을 아나니아에게 소개할 때에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고 하였다. 거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사울이 기도하는 중에 주님이 사울에게 기도의 응답을 해 주신 장면을 소개한다.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 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행9:12)고 하였다. 주님은 기도하는 사울에게 장차 그에게 임할 상황을 영의 눈을 떠서 미리 보게 해 주셨다고 아나니아에게 설명하여 주셨다. 
변화된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에서 늘 기도하며 사역하였다. 사도행전 20장 36절에도 보면 에베소 교회의 사역을 마치고 떠나갈 때에 “무릎을 꿇고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한 장면이 나온다. 사도 바울은 금식하며 기도하고, 서원을 지키기 위해서 삭발한 후에 기도하고, 무릎 꿇고 기도하고, 밤낮 없이 기도하고, 눈물로 기도하고, 동족들이 모두 다 주께로 돌아오기를 위하여 기도하던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도 기도에 대하여 강조한 내용을 대하게 된다. 그는 사슬에 매여 지내는 불편한 옥중 생활 중에서도 언제나 기도하였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권면은 자신의 삶이 늘 그런 기도의 삶이었던 것을 입증하는 말씀이다. 20절 의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은 “나로 하여금 이 일에 두려움이 없이 할 말을 담대히 말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는 것이 원 뜻이다. 


매인 자의 기도.
바울은 주변의 성도들과 교회에 편지할 때 마다 기도를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항상 기도 생활을 우선시하였다. 사도 바울의 기도는 시간과 상황의 구애를 뛰어 넘는 전천후기도 생활이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라는 권면이 바로 그것이다. 진정한 기도의 사람은 “이래서 기도 못하고 저래서 기도 못한다.”는 핑계를 대지 않는다. 참 기도의 사람은 “이래서 기도하게 되고 저래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기도의 절대 사명을 고백하고 실천하는 기도의 강자가 되게 마련이다. 기도 생활에 대하여 강조하는 사도 바울의 강조는 분명하다. 18-20절을 공동 번역으로 읽으면 훨씬 실감이 난다. 

“여러분은 또한 언제나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하십시오. 
모든 경우에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십시오. 
늘 깨어서 꾸준히 기도하며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내가 말을 할 때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고 
복음의 심오한 진리를 전할 때에 
담대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나는 지금 갇혀 있기는 하지만 이 복음을 전할 사명을 띤 사람입니다. 
그러니 마땅히 해야 할 말은 대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그렇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언제나 기도하고 간구하여야 한다. 걱정과 근심과 염려와 불안과 초조로 아까운 세월 다 보내지 말고 기도하여야 한다. 

기도할 뿐만 아니라 행동하여야 한다. 모세 때에 애굽의 바로 왕이 보낸 군대가 병거를 타고 추격하여 오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령하셨고 모세는 백성들에게 공포하였다. 의복을 차려 입고 허리띠를 띠고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양과 염소를 잡았다. 일 년 된 수컷을 잡으라고 하셨다. 양이나 염소 중에서 잡으라고 하셨다. 식구 수대로 충분하게 잡아서 남기지 말고 다 불에 구워 먹으라고 하셨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까지 다 불에 구워 먹어야 했다.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었다. 그 날이 유대인의 새달의 기원이 되게 하셨고 그 열나흘 째 되는 날에 이와 같이 유월절 잔치를 하라고 하셨다. 날것으로 먹거나 물에 삶아 먹지 말고 모두 다 불에 구워 먹되 아침까지 남기지 말고 남은 것은 모두 다 불에 태워 버리라고 하셨다. 고기를 구워 먹기 전에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다. 그리고 그 고기를 밤새도록 불에 구워서 온 가족이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출발한 것이 출애굽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그 밤에 애굽의 바로 왕과 온 애굽 백성들의 장자를 치셔서 죽이셨다. 

그 밤중에 출애굽이 감행된 것이다. 양과 소와 노약자와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히브리 노예 민족이 애굽 땅을 빠져 나가게 되었다.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유아를 제외하고 걸을 수 있는 장정만 60만 가량이라고 하였다.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함께 애굽을 빠져 나갔다. 다 같이 홍해를 건넌 것이다. 저들은 그 출애굽 길에 먹기 위한 비상식량으로 발효되지 않은 반죽을 옷에 둘둘 말아서 들고 나섰다. 라암셋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숙곳이란 곳에 도착하여 그 발효되지 않은 누룩이 없는 마른 반죽 덩이를 불에 구워 나누어 먹었다.

그렇게 황급한 출애굽의 그 밤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애굽 사람들로부터 은금패물과 의복을 구하도록 하였다. 하나님은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도록 역사하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하는 대로 값진 패물과 의복 등 귀한 것들을 내어 주도록 역사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바로 왕은 군대에게 명령하여 병거 600대로 하여금 추격하게 하였다. 오늘 날로 말하면 600대의 기갑전차부대가 추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말과 병거와 마병들이 구름떼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쫒기 시작하였다. 무장하지 아니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뒤 쫓아 오는 애굽의 군대의 죽임을 당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되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어버려 두지 않으셨다. 불안하고 초조해진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모세를 원망하는 불평 소리가 가득해 졌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14:11-12) 그 때에 모세가 원망하며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설명하였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 그리고 모세를 따라 나서서 홍해를 건넌 백성들에게 광야 생활이 전개 된 것이다. 저들이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홍해 저편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고 하면 그만 홍해도 건너보지 못하고 홍해 저편 애굽 땅에서 바로 왕이 보낸 마병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따라 나서는 행동을 보였을 때에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이 아닌가. 

믿고 기도하였으면 행동하여야 한다. 그래야 기적이 일어난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하십시오. 
모든 경우에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십시오. 
늘 깨어서 꾸준히 기도하며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이것이 기도의 원칙이다. 성도 간에, 성도와 목회자 간, 목회자와 성도 간에 진정으로 마음 문을 열고 서로의 형편을 헤아려 중보하며 기도한다면 그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게 되어 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지팡이를  홍해를 가리킬 때에 하나님은 큰 동풍을 불게 하셔서 홍해의 양편 물이 벽처럼 갈라서게 해 주셨다. 밤새도록 그런 기적은 계속 되었고 홍해의 깊은 물속에 바닥이 마른 땅이 되게 해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건너기를 마치자 하나님은 그 뒤를 추격하던 애굽 군대 위에 갈러 섰던 두 물을 다시 만나게 하셔서 애굽 군대를 모조리 다 홍해 물속에 수장시켜 버리셨다. 

그 모든 과정에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하셨다. 모세가 손에 든 지팡이로 홍해를 향할 때에 벽처럼 양쪽에 갈라섰던 물줄기를 닫을 때에도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손을 바다 위로 내 밀어 다시 흐르게 하라”고 명령하셨고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다. 

이 기적 사건 이후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큰 능력을 본 이후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다”(출14:31)

기도하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행동 명령에 순종하여야 한다. 그리할 때에 기적이 일어난다. 베드로는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40년 동안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앉은뱅이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며 일어나 걸으라고 하였을 때에 그가 일어나 걷고 뛰며 성전에 들어 가 주를 찬미하는 것을 보았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사도 베드로는 ‘다비다’라고도 하고 ‘도르가’라고도 하는 욥바에 사는 여제자가 죽었을 때에 마침 그 곳에서 멀지 않은 룻다에 선교 여정 중이었다.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를 심히 많이 하던 주님의 여제자였다. 그런 그가 병들어 죽어 시체를 이미 씻어서 다락에 뉘어 놓고 장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곳에 살던 예수 믿는 제자들이 베드로가 룻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서 베드로를 장례식장에 청하였다. 많은 홀로 살던 여인들이 도착한 베드로를 보자 울면서 평소에 다비다가 살아 있을 동안에 속옷과 겉옷을 지어 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돕고 구제하던 이야기를 하였다. 베드로가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에 다비다의 시체를 향하여 소리쳤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그 때에 다비다가 눈을 뜨고 일어 나 앉았다. 이 일로 인해서 욥바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믿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각색 병자가 고침을 받고 귀신이 떠나가고 죽은 자라도 다시 살아나며 인생의 각종 문제들이 해결되는 기사와 이적들이 오늘 날도 우리 가운데 계속 될 줄로 믿는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내가 말을 할 때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고 
복음의 심오한 진리를 전할 때에 
담대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라고 부탁하였다. 복음 전파자인 사도 바울은 자신의 복음 전파가 주변 환경이나 사람으로 인하여 마음이 위축되거나 주저함이 없이 전파 되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두려움이 없이 담대하게 복음의 심오한 진리를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 해 달라는 부탁을 19절과 20절에서 반복하여 다시 부탁하였다. 이는 오늘 날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나의 불신앙적인 말이나 행동으로 인하여 복음 전파자인 목회자들이 그 어느 누구이든지 어느 부서에서 사역하고 말씀을 전하든지 “복음의 심오한 진리”를 마땅히 담대하게 전파할 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복음 전파자의 복음 전파의 사명이 위축되거나 마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언제나 어디서나 담대하게 선포되고 전파되도록 나라 안과 밖의 모든 복음 전파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특별이 내 곁에 내가 은혜 생활 하는 내가 속한 강단의 말씀 선포가 그 무엇으로든 그 누구를 통해서든 위협을 받거나 제한 받지 않도록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성전 앞 미문에서 구걸하던 한 장애인을 걷고 뛰도록 일으켜 세우신 기적 이후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  대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들과 사두개인들과 하나로 뭉쳐서 베드로와 요한 사도를 붙잡아 이튿날까지 가두었다.  저들은 사도들이 전파하는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는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을 싫어하였다. 그래서 사도들을 붙잡아 옥에 가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점점 부흥하였고 믿는 자가 점점 많아 져서 남자의 수만 오천 명이 넘는 큰 부흥을 이루었다. 다음 날 대 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대 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한 종교 재판이 열렸다. 더 이상 예수의 이름을 전파하지 말라고 위협하였다. 그 때에 베드로와 요한 사도는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19-20)는 대답을 하였다. 

기도는 말씀 전파자를 담대하게 한다. 기도는 우리의 일상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힘이요 능력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기도의 사람으로 연합하여 살아가는 기도의 손을 맞잡아야 할 것이다. 


매인 자의 동역자.
사도 바울은 여러차례 감옥에 갇힐 정도의 어려움을 겪었으나 그에게는 마음과 사랑을 진심으로 함께 나누는 동역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훌륭하고 믿음 좋은 동역자들이 많았다. 바나바와 디모데와 디도와 부리스길리와 아굴라와 마가와 의사 누가와 데마와 디모데와 실라와 오네시모와 오네시보로와 아리스다고와 뵈뵈와 구레네사람 시몬의 아내이며 루포의 어머니였던 분을 비롯해서 로마서 16장이나 고린도전서 16장과 디모데 후서에 보면 그런 동역자들의 이름이 무수하게 언급된다.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편지하면서 옥중에서 만나 개종한 오네시모에 대하여 천거하면서 “그는 나의 심복이라”고 까지 극찬하였다. 
 
고린도전서 16장 18절에 보면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 등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저들은 “나와 너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다”고 극찬하는 말씀을 대하게 된다. 그 앞 절인 17절에 보면 저들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등은 교회와 성도들의 필요와 부족을 채웠던 섬김과 충성과 헌신의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교회를 섬겨가고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다가 보면 사역에 해악을 끼치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앞에서 언급한 저들처럼 공동체를 시원하게 하고 사역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며 사역의 부족을 허무는 자가 아니라 충분하고 넉넉하게 채워가는 이들이 있다. 디모데 후서 4장에 보면 사도 바울 곁에도 아쉬운 인물들은 있었다. 바울은 그의 13편의 편지 중에서 가장 마지막 편지로 쓴 디모데 후서의 끝 부분에 그런 이의 이름과 해악을 언급한 것을 본다.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니 주께서 그 행한대로 값으시리라.”(딤후4:14) 그리고 디모데에게 주의를 준다. 사도 바울은 알렉산더가 교회와 선교에 끼친 해와 악을 기억하며 언급하였다.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은 본문 21-22절에서 두기고에 대하여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공동번역으로 읽으면 이렇다. 

“내가 지금 처해 있는 형편과 하고 있는 일을 여러분도 알았으면 합니다. 우리 친애하는 형제 디키고가 이 모든 소식을 여러분에게 알려줄 것입니다. 그는 주님을 믿는 충실한 일꾼입니다. 나는 우리 사정을 알리고 또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기 위하여 이 사람을 여러분에게 보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두기고는 어떤 동역자였나?

감옥에 갇혀 고난을 겪는 사도 바울의 처한 형편과 그런 매여 있는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복음 전파를 위하여 매진하고 있는 사도 바울을 위하여 마음을 쏟아 힘이 되어 주었던 인물이 두기도이다. 그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형제와 같은 자였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의 처한 형편과 기도 제목을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세하게 전하고 중보 기도를 요청할 만한 그런 신실한 기도의 동역자였다. 뿐만 아니라 두기고는 주님을 잘 믿는 충실한 일꾼이었다. 그는 사도 바울의 사정을 속속들이 잘 아는 사역의 동반자요 기도의 동지였다. 또한 그는 어디에 보냄을 받든지 성도들의 마음에 격려가 되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주던 든든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매인 자의 축복의 말.
복음 전파자의 사명 중의 하나는 축복의 말과 축복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닌가.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풍성하고 윤택하고 흡족한 마음으로 저들을 축복하는 말씀을 전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임하는 평안(平安)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있기를 축복하고 기도하였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님의 은혜(恩惠)가 임하기를 축복하고 기도하였다. 

우리는 모세를 통하여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의 부름을 받은 후에 백성들을 이렇게 축복하라고 분부한 그 축복의 말씀을 잘 기억한다.

“여호와는 네게 복(福)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恩惠)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平康) 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4-26) 


보호하시고 은혜 주시고 평강 주시는 그런 여호와의 축복이 평생토록 그리고 자자  손손 넘쳐나는 은총의 주인공, 그런 가정, 그런 민족이 되기를 열망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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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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