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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바울 곁의 그 사람, 디도(고후8:16-24) 2014.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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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9-07 21:47 조회 22,627 댓글 0
 
바울 곁의 그 사람, 디도(고후8:16-24) 2014. 9. 7
 
 
성경은 하나님이 시대별로 불러서 사용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사도 바울이 그런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한 동안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인 것을 몰라서 잘못된 신앙관에 붙들려서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이들을 박해하였다. 그런 그가 주 안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사도행전 9장의 다메섹 체험 이후에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이방 사도의 선봉장이 되었다. 그는 선교를 위해서 남다른 고난을 많이 겪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역사 속에 바울일 수 있었던 큰 힘 중의 하나는 하나님이 그의 곁에 세워 주신 뛰어난 협력자들의 연합의 힘이 컸다. 사도 바울은 인덕이 많은 인물이었다. 사도 바울 곁에는 로마서 16장이나 디모데 후서 4장 등에서 언급하는 뛰어나고 준비된 믿음의 동역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 중에 뵈뵈라는 여신도가 그러하다. 뵈뵈는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러 사람과 사도 바울의 보호자와 같은 여성 신도였다. 쉬운 표현으로 하면 손이 크고 통이 있고 의리와 믿음을 갖고 오래도록 꾸준히 사도 바울을 비롯한 선교의 사람들을 후원한 여장부였다.
 
또한 사도 바울의 동역자 중에 빼어 놓을 수 없는 주인공이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이다. 저들 부부는 사도 바울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그의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이라도 내어 놓을 정도의 주인공들이었다. 로마서 16장 4절에,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라는 회고담을 보면 바울은 저들 부부,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통하여 위기의 순간에 도움을 받았던 경험이 그의 가슴에 큰 감사의 추억으로 간직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로마서 16장 13절에 보면,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고 부탁하면서 “그의 어머니는 곧 나의 어머니라.”고 할 정도로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었던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내이며 루포의 어머니였던 그 여성 신도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어머니와 같은 남다른 분이었음을 빼어 놓지 않고 언급하고 있다. 데살로니가 후서 4장에 보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인 의사 누가가 늘 사도 바울의 곁을 지키던 주치의요 동역자였고 한 때 그의 곁을 떠나 헤어졌던 마가복음의 기록자인 마가도 나중에는 사도 바울의 곁에 유익한 동역자였음을 알 수 있다.
 
고린도후서 8장인 본문에 등장하는 바울 곁의 그 사람, 디도도 디모데 전후서의 수신자인 디모데와 함께 사도 바울에게서는 떼어 놓을 수 없는 평생의 동역자요 동료였다.
 
디도서 1장 4절에 보면,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라고 하였다. 이 얼마나 큰 칭찬이며 인정이며 격려인가. 디도는 유대인이 아니다. 그는 헬라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공경한다’는 뜻이다. 갈라디아서 2장 3절에 보면, 그는 할례 받지 않고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나중에 목회자가 된 그는 그레데 섬과 안디옥과 고린도 교회에서 목회하였다. 특히 고린도 교회의 안정과 발전과 부흥에 크게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 디도의 헌신적인 사역은 사도 바울의 고난 많던 사역에 시시 때때로 위로와 기쁨이 되었다. 서로 자기가 잘 났다고 우월해 하며 주장하기를 좋아하고 서로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 파 등 파당을 지어 분란을 일으키며 반목과 질시로 어지럽혀지던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큰 감화력을 주어 교회를 안정시키고 화목하고 올바른 신앙으로 이끈 주인공이 디도였다.
 
특별히 본문에 소개되는 디도의 모습을 통하여 은혜를 더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간절함과 열심의 사람.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생각하거나 디도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 감사한 내용은 디도에게 사도 바울과 ‘같은 간절함’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간절함이란 사실은 ‘관심’을 말한다. 즉 ‘같은 관심’(same concern)을 가지고 사역해 나가던 디도를 생각할 때에 늘 하나님께 감사하였다는 것이다. 16절의 간절함이란 관심이고, 17절의 ‘더욱 간절함’이란 ‘더욱 열심’(much enthusiasm)이 있었음을 그렇게 표현하고 해석한 것이다. 디도는 당대의 위대한 선교의 사람이요 전도자요 목회자였던 사도 바울의 곁에서 그에 버금가는 동료요 참 아들이요 동역자로 사역하면서 매사에 함부로 생각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같은 관심과 열심을 갖고 신중하게 사역하던 준비된 인물이었다.
 
역사는 그 어떤 분야이든지 이처럼 간절함과 남들보다 더욱 열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발전되어 왔고 발전되어 가는 것이다. 공부도 이런 태도를 가진 학생들이 잘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회생활이나 교회생활도 이런 기질을 가진 이들이 잘하게 된다.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하려는 자세로는 그 어떤 일도 이룩하기가 쉽지 않다.
 
세계적인 여성프로 골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박인비 양이 올 가을에 결혼하게 될 상대방인 남기협 스윙 코치는 특별한 관계로 사랑을 키워 왔다고 한다. 지난 2008년 US 여자 오픈 우승 이후 계속하여 슬럼프를 겪으며 성적이 부진하던 그에게 작은 자세 하나까지라도 섬세하게 관찰하고 코치하면서 연습의 결과가 좋아지기 시작하면 “잘 했어! 바로 그거야.”하고 수도 없이 칭찬하고 인정하고 격려한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실력의 향상과 마음에 안정을 갖고 오늘 날에 이르게 되었다고 회상하였다. 그 후로 그는 지난 2013년 4월 15일, 여자 프로 골프 세계 랭킹 제 1위에 올랐다. 그는 세계 여성 골프계의 메이저 대회 5승 기록 보유자인 박세리 선수의 뒤를 이어 그녀 자신도 5승 보유자가 되었다. 신지애 선수가 세계 대회 2승 보유자라고 한다. 저들이 한 분야에서 그런 세계 정상에 오르고 그런 기록을 유지하기까지 얼마나 간절하게, 얼마나 열심히 한 길을 갔겠는가.
 
가정생활, 사회생활, 직장 생활, 교회 생활 등 그 어떤 분야의 그 무슨 일이든 다 마찬가지가 아닌가. 간절함과 열심히 없이 이룩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물론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야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 각 사람이 각 분야에서 간절함과 열심을 갖는 것은 매사에 기본이 아닌가.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 이천년 역사에, 혹은 우리 주변에서 대하는 탁월하게 앞서가며 건강하게 성장하고 부흥하며 선교와 교육과 섬김의 선두에 서는 교회들의 배후에는 사도 바울이나 디도나 베베나 브리스가 아굴라와 같은 숨겨진 간절함과 열심을 가진 신앙의 사람들의 끝없는 연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진지한 열심과 열정 그리고 주어진 사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믿음이 유약한 사람들을 강건하게 세워 나가고 소속한 공동체를 힘 있게 일으켜 나가는 원동력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가을 운동회를 하면 빼 놓지 않는 경기 중의 하나가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서 하는 기마전이었다. 그 기마전이란 것이 물론 위에 올라타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힘 있게 세 명이 한 조가 되어서 서로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손에 손을 힘 있게 부여잡고 기마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텨 나가는 연합이 얼마나 중요한가.
 
사탄은 자꾸만 성도들의 간절함과 열심에 금이 가게 하려고 방해 공작을 한다. 베드로 사도가 말한 대로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벧전5:8) 그러므로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여야 한다.” 마귀는 몸이 약해지면 바이러스가 들어 와서 감기로 고생하게 하고 몸살 나게 하고 병약하게 하는 것처럼 자꾸만 성도들 중에 가만히 몰래 스며들어 와서 그 영혼을 병들게 하고 무너트려 버린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깨어서 기도와 말씀과 찬송과 전도와 봉사와 충성을 통하여 영적 근육을 강화시키지 않으면 우는 사자처럼 달려드는 마귀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사도 바울이나 디도의 같은 간절함과 열심의 바탕은 신앙생활 그 자체이기도 하였지만 더 구체적인 것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의 거액의 연보에 관한 것이었다. 20절에 보면, ‘거액의 연보’라는 말씀이 나온다. 아마도 예루살렘 교회를 후원하기 위한 특별 연보에 참여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연보 규모가 거액의 연보였던 것 같다. 그것을 하게하고 맡아서 책임감 있게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게 하고 하는 일에 디도의 역할이 남달랐음을 칭찬하고 인정하는 말씀이 16절에 나오는 디도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표현인 것이다.
 
지금, 요즘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시대적인 방관자, 구경꾼이 되지 말고 매사에 역사의 중심에 뛰어 들어서 간절함과 열심을 갖고 시대적인 부르심에 응답하는 믿음 좋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칭찬 받고 택함 받은 일꾼.
사실 본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사도 바울은 디도에 대하여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고린도 교회의 연보를 수송하는 일에 책임을 맡아서 함께 하였던 다른 두 사람에 대하여도 거론하고 있다. 그가 누구인지에 대하여는 성경이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리고 22절에서 다른 또 한 사람을 거론한다. 여하튼 중요한 사실은 저들 두 사람이 디도를 비롯하여 모두 다 칭찬 받는 일꾼이요 택함 받은 일꾼들이었다는 점이다.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였다. 이 얼마나 대단한 칭찬인가. 성경에 영원히 기록되는 이런 칭찬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말이다. 성경에는 이런 주인공들이 적지 않다. 여성 사사였던 가정주부 출신인 드보라나 룻기의 주인공인 홀로 외롭게 된 시어머니를 공경하며 베들레헴의 시댁 마을에서 보리와 밀 이삭을 줍던 모압 여인 룻과 같은 인물들은 성경의 역사에 길이 칭찬 받는 삶을 살아간 주인공들이 아닌가. 이런 면에서는 우여곡절 많던 인생의 나중 말년에 호렙 산에서 부름을 받고 동족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의 선봉에 섰던 모세나 그의 그림자와 같은 생을 살다가 나중에 홍해를 건너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가나안 입성에 성공한 여호수아 같은 인물들을 보라. 저들은 하나님 앞에 그 얼마나 칭찬을 받은 인생의 주인공들인가. 예수의 곁에서 칭찬 받은 백부장들이나 수로보니게 여인이나 열두 해 혈루증에서 고침 받은 여인이나 삼백 데나리온 나가는 향유 옥합을 깨트려 예수께 부어 드린 마리아의 헌신 등은 성경을 통하여 칭찬 받는 이들의 모범이 되는 일화가 아닌가.
 
우린 세상을 살아가된 하나님 앞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칭찬 받기 위해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세상 칭찬이야 지나가고 말지만 하나님의 칭찬은 영원한 것이다. 세상의 칭찬이나 세상의 상급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칭찬이 하나님의 칭찬이 아닌가.
 
요즘 새벽에 묵상하는 에스더서의 에스더나 그의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는 동족을 말살 당할 위기에서 건져 내서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칭찬 받은 역사의 인물들이요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 하나님께 칭찬 받은 민족 구원의 주인공들이 아닌가.
 
본문의 디도나 그의 곁의 두 사람들은 모든 교회로부터 칭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의 영광과 사도 바울의 선교 일행의 소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로부터 택함 받은 일꾼들이었다. 자들이 감당하는 일은 은혜로운 일들이었다.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이란 19절의 말씀에 주목하여 보라. 그렇다. 성도된 우리들에게 맡겨진 일들은 허튼 일이란 단 한 가지도 없다. 그것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다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은혜의 일’이다.
 
힘을 모으자. 힘을 합치자. 그래야 은혜로 시작한 일이 더욱 더 은혜로워 지게 된다. 신앙으로 하나가 된 우리 안에 맡겨진 은혜의 일을 위하여 모두 다 같이 하나가 되자. 갈라디아서 6장 2절에 보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고 하였고 5절에 보면,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지난 4년 반 동안 서로 각각 자기의 짐을 서로 잘 짊어지고 왔다. 여기서 지치면 안 된다. 서로 서로 짐을 다 함께 더불어 같이 지고 앞으로 씩씩하게 나아가야 한다.
 
서로 각각 짐을 잘 지고 살아가는 대표적인 것이 기러기라고 한다. 기러기는 철새이다. 평균 1만 킬로미터를 날아서 이동한다. 이는 협동작용의 효과인 시너지(synergy)효과라고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한 사람이 50킬로그램을 들 수 있다면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150킬로그램을 들 수 있다. 기러기는 혼자서 날아갈 때보다 여러 마리가 함께 날아갈 때에 71% 이상의 거리를 더 날아갈 수 있다고 한다. 관찰해 보면 기러기는 꼭 ‘V'자 모양을 하고 날아간다. 그렇게 할 때에 공기를 가르며 날 수 있어서 혼자 날아갈 때보다 85%나 훨씬 쉬운 날개 짓으로 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선두에 날아가던 기러기가 지치면 언제라도 다른 기러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여 날아간다. 이처럼 공기를 가르는 선두의 자리를 계속하여 교대하며 수만리 길을 날아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러기는 계속하여 소리를 내면서 날아간다. 이는 지치고 힘들어서 내는 탄식이나 한숨 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서로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는 ‘추임새’와 같은 소리이다. 이는 마치도 군대의 군가와 같고 선수들을 농부들의 농부가와 같은 효과이다. “혼자 가면 빨리 갈수 있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또한 기러기의 일행 중에 아프거나 병들어서 낙오가 생기면 여러 마리의 동료들이 남아서 그 약해진 동료 기러기가 힘을 얻고 회복될 때를 기다렸다가 더불어 다시 함께 날아간다고 한다.
 
서로가 주어진 사명의 짐을 은혜롭게 잘 지며 연합하여서 칭찬 받는 주인공이요 택함 받은 일꾼의 증거를 나타내자.
 
 
고난극복의 동역자.
성도는 같은 사명을 위하여 동행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23절 말씀대로 동료요 동역자인 것이다. 주님의 일을 감당해 나가다 보면 고생과 고난이 없지 않다. 그것은 육체적인 고난뿐만 아니라 마음고생일 수 있다. 20절 말씀처럼 자칫 잘못하다가는 비방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들은 주 앞에 뿐만 아니라 성도들 앞에서도 선한 일에 항상 조심하여야만 한다. 21절에서 말씀하는 조심한다는 그 본래의 의미는 ‘선한 일에 고난을 짊어진다’(taking pains to do what is right)는 뜻이다. 고난을 감수한다는 말이다. 예루살렘 교회가 겪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후원하기 위하여 고린도 교회가 거액의 연보를 모은 일에 있어서 그 누구의 비난이라도 받지 않도록 조심한다는 말씀이다. 고린도 후서 8장의 3절과 12절에 보면, “원대로 자원하여 할 만큼”한 연보임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워 하였다. 이는 당시나 오늘 날이나 마찬가지이다. 고린도 후서 11장 9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고 말하였다.
 
주의 일을 하는 것을 결코 쉽지도 않고 간단하거나 단순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애 쓰고, 더욱 간절하고 더욱 열심을 갖고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번은 EBS 교육방송에서 소개하는 ‘극한작업’이란 프로그램을 보았다. 주물 공장에서 일하는 광경이 소개 되었다. 개인 주택의 바깥 출입문 중에 주물로 제작한 문은 그 분위기가 클래식하고 참으로 아름답다. 그런데 그 문짝을 주물을 틀에 녹여 부어서 제작하는 공정은 참으로 힘겹고 위험하고 섬세한 공정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불량품이 나오면 다 다시 만들어야 한다. 1,500도의 액체가 된, 용해된 주물을 틀에다가 떠다가 붓는 작업을 일일이 기술자들이 직접 하였다.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열기를 견뎌 가며 작업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의 과정이었다. 72시간이 지나야 그 틀을 털어내고 모래를 일일이 털어 내서 제품의 완성도를 점검하게 된다. 그야말로 극한작업의 현장이었다. 완성된 제품의 아름다움은 보기에 좋지만 누군가 전문성을 갖고 그와 같은 제품의 완성을 위하여 기울이는 노고는 참으로 위험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하나님의 일에는 누군가가 고난을 함께하는 동역자의 연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23절 끝에 보면,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는 말씀이 나온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디도가 그런 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디도에게 있어서 본문에서 이름이 실명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거액의 연보를 모금하여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기 까지 비방의 위험을 감내하면서 이 모든 일들을 잘 감당해 나간 저들의 동역을 칭찬하고 격려한 것이다. 16절처럼, 22절에서도 ‘간절하다’는 표현을 두 번이나 반복하여 하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의 일은 그 누군가가 간절한 마음을 갖고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하는 이들의 거룩한 연합에 의하여 성취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가 주의 일에 간절한 심정을 갖고 꾸준하게 같은 관심과 열심으로 헌신하고 충성하는 이들을 사랑하여 주고 자랑스럽게 여겨 주어야 한다. 24절에서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말 성경으로 보면,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 교회 앞에서 여러분의 사랑과 여러분에 대해 우리가 자랑하는 증거를 그들에게 보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할 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자랑이 될 만한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와 범사를 감당해 나가는 증거를 보여 주는 우리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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