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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말3:13-18) 2014.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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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6-29 06:39 조회 18,041 댓글 0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말3:13-18) 2014. 6. 29
 
 
 
말라기는 ‘주의 사자’ 혹은 ‘언약의 사자’라는 뜻을 가진 선지자의 이름이며 본 예언서의 이름이기도 하다. 느헤미야가 주전 444년에 유대 총독으로 부임하여 52일만에 예루살렘 성곽을 중건한 후에 12년 동안 총독으로 있다가 바사의 수산 궁에 되 돌아 갔다.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와서 신앙개혁 운동을 일으켰다. 느헤미야 13장에 나오는 에스라의 대를 이은 신앙부흥 운동 말이다. 그 때가 주전 432년경인데 말라기는 바로 그 때 즈음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쓴 선지서일 것으로 여겨진다.
 
사사 시대가 그러하였듯이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몹시 멀어져 있었다. 말라기의 내용은 영적인 혼란과 정신적인 빈곤, 불평등한 부의 분배, 폭력과 영적 배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거역,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와 영적 게으름, 선민이면서 죄악에 빠져 회개하지 못하고 지내는 타락, 영적 지도자들의 죄악상과 방종과 사회적인 혼란상을 책망하시면서, 하나님 앞에서 청지기 정신의 상실로 인하여 무관심해져 버렸고 잃어버리고 사는 버린 십일조와 헌물생활에 대한 회복의 촉구, 헌물을 속이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영적 무감각, 악인과 의인을 구별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를 구별하여 심판하실 심판주께서 장차 다가 오고 계심을 경고하는 말씀으로 되어 있다.
 
내 몸에 드러나는 신체의 이상 징후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다가 병세가 깊어 질수 있듯이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안타깝게 말씀하고 또 말씀하셨다. 말라기에는 여섯 편의 설교 말씀이 담겨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본문이다. 우리는 대개 말라기 3장에서 십일조와 헌물 생활의 회복에 대하여 강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하나님은 십일조와 헌물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느니라”고 책망하셨다.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의 분깃으로 드리라는 강조인 것이다. 열매를 따기 전에 메뚜기가 먹어 버리고 포도나무의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져 버린 이유가 하나님의 분깃을 도둑질한 원인이라고 지적하신 말씀이 말라기 3장의 앞 부분에 상세하게 나온다.
 
당시나 오늘 날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없다하고, 무시하며 살아가는 세속적인 사람들이다. 반면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본문은 16절을 전후로 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는 이들의 실상과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하나님은 말리기를 전하실 때에 몹시 마음이 상해 있으셨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는구나”
그리고도 정작은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과 선지자에게 대 드는 무리들이 있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말은 이러하였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헛되다.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봤자 유익한 것이 없다.
하나님 앞에서 슬프게 회개하며 살아봐야 다 소용 없는 무익한 일이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고 교만하게 살아도 다 복되게 살지 않느냐
저것 봐라 저렇게 악을 행하며 살아도 번성하지 않느냐
함부로 하나님을 시험하며 살아도 저렇게 화를 잘도 면하며 버젓이 살지 않느냐”
 
그 때에 하나님은 몹시 마음이 상해 있으셨지만 저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경건한 이들을 따로 주목하고 계셨다. 나름대로 자기 신앙을 지키며 여호와를 경외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상을 지켜보고 계셨다. 16절과 18절에서 말씀하는 ‘그 때에’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이들이 하나님을 없다하고 믿어 봤자 헛되다고 말하면서 함부로 살아가던 그 때에, 그 같은 시대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하는 말에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
 
본문 말씀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여호와 경외하는 자들의 대화를 들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지정의(知情意)를 가진 분으로서 사람의 인격과 소통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인간과 대화하시는 분이시다. 뿐만 아니라 인간들 간의 대화에 직접 개입하시는 전능자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나누는 말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의 품고 살아가는 생각도 아신다.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노아 시대의 시대상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으로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6:5-6)라고 했다.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의 생각을 아신다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도 아시고, 감정의 변화도 아시고, 의도도 아시고 계획하는 바도 아신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대화 내용을 아신다.
 
그러나 인간은 남들의 대화를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군다나 남들의 생각을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도청, 감청, 혹은 거짓말 탐지기 등을 동원하기도 한다. 사람은 상대방의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국가 간에 혹은 기업체 간에 혹은 정당 간에 서로에 대하여 스파이를 배치하기도 한다. 간혹 감청 혹은 도청이 정치적으로 혹은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의 제 37대 대통령을 지낸 닉슨(Richard Milhous Nixon,1913-1994, 재위 1969-1974)은 소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해서 대통령직에서 중도에 물러난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그 워터게이트란 사건이 무엇인가. 1972년 6월에 공화당 출신의 대통령 R. M. 닉슨의 재선을 목적으로 비밀공작반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빌딩에 있는 상대정당인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잠입하였다. 저들은 배관공으로 위장하고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되고 체포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닉슨정권의 선거방해, 정치헌금의 부정, 수뢰, 탈세 등이 드러나게 되면서 이년 후인 1974년에 결국은 재선되었던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말았다. 당초 닉슨 대통령은 도청사건과 백악관과의 관계를 부인하였으나 모든 범죄 사실이 들어 남에 따라 대통령보좌관 등이 관계하고 있었음이 밝혀졌고, 대통령 자신도 무마공작에 나섰던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국민 사이에 불신의 여론이 높아져 갔다. 1974년 8월에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대통령탄핵결의가 가결됨에 따라 닉슨은 대통령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젊은 시절에 해군 소령으로 제 2차 대전에도 참전한 바가 있다. 젊은 날 하원의원 시절부터 반공주의자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중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에 양국 간의 긴장 완화를 위하여 상대국을 일일이 방문하는 공로를 인정받기도 하였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베트남 전쟁을 끝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거짓말과 부정이 드러나자 결국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하여 불명예스럽게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닉슨은 사임 후에도 그의 형사책임을 추궁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후임인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닉슨의 재임기간 중의 모든 죄에 대하여 특사를 발표함으로써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신실한 성도라면 성도 간에 혹은 친구나 이웃 간에 혹은 가족 간에 말조심하여야 한다. 거짓말을 하거나 험담 하거나 비난하거나 불평하고 원망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하는 말을 들으시기 때문이다. 16절에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라고 하였다. “에이... 무슨 하나님이 우리가 하는 말을 일일이 다 들으신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거나 그렇게 말하는 이가 있으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욥기에 보면 1장 1절에서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라고 하였다. 욥의 특징은 엄청난 충격과 불행을 겪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말로 범죄하지 않았다. 실로 그는 온전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던 신실한 신자였다. 그는 10남매와 재산을 다 잃고 자신의 몸에 병이 찾아 온 후에도 자신의 출발이 원래 빈손이었던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고백했다.
 
엄마가 자기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신음 소리를 금방 알아들을 수 있듯이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소리를 들으실 뿐만 아니라 서로 간에 말하는 말을 분명히 들으신다. 출애굽기 2장 24절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신다고 했다. 출애굽기 3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의 부르짖음 소리를 들으시고 근심을 아신다고 하였다. 출애굽기 6장 5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들으신다고 하였다.
 
출애굽기 16장의 내용은 출애굽한지 둘째 달 십 오 일 째 되던 날의 장면이다. 출애굽한지 두 달 보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착한 곳은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였다. 그 곳에 도착한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한 결 같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16:3)
 
이때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배 불리게 내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안식일 전날은 이틀 치를 거두어들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하였다.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출16:7) 그 후에도 8절, 9절, 12절에 반복하여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원망하는 말을 들으셨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도 “낮의 말은 새가 듣고 밤의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그러므로 말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지 그 대화를 삼갈 줄 알아야 한다. 성도라 이름 하는 이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 혹은 진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지를 평상시의 대화 내용을 보고 하나님은 아신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라면 그 말이 달라야 한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예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무슨 뜻인가. “예수님 더러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 백성이 아니다. 천국 백성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렇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령의 사람이라면 달라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 그 어느 누구와 무슨 대화를 하든지 성숙한 그리스도인다운 대화를 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그 하는 말을 반드시 들으신다고 하였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다. 말 하는 그 습관과 마음가짐과 기본 태도가 곧 그 사람 자신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의 그 말을 분명히 들으시는 것이다. 16절의 “분명히 들으신다”(the LORD listened and heard.)는 원 뜻은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 들이시고 다시 또 들으신다”는 내용이다. 말이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기념 책에 기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여호와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한 책이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A scroll of remembrance)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 앞에 기념책을 두시고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고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그 생활의 일상을 기념책에 기록하신다. 여호와 앞의 기념책이란 인간의 말과 행위를 낱낱이 기록하여 장차 하나님의 상급과 심판의 근거로 삼으시는 책을 말씀한다. 그 책의 이름을 기념책이라 하는 이유는 인간의 모든 언행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기록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32장 32절에 보면 형 아론이 백성들과 함께 금을 가져오라고 해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선동하면서 금 송아지 앞에 절한 사건을 접하고 모세가 슬픈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하였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언행을 기록하시는 기록책 즉 기념책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초증고등학교를 졸업한지가 벌써 오래지만 우리가 다닌 초중고등하교 교무실에 가면 그 당시에 담임선생님들이 나의 품행과 성격과 대인관계와 책임감과 자질과 역량과 됨됨이와 정직성 그리고 학교 성적과 출결 상황과 건강 상태 등등의 별의별 내용들을 잉크를 찢은 펜글씨로 일일이 매 학기마다 매 학년마다 평가한 생활기록부와 성적표가 지금도 찾아가서 들 쳐 보면 다 다시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다윗의 시편인 시편 56편 8절에 보면,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렇다. 하나님은 주의 책에 우리의 흘린 눈물방울의 숫자까지라도 기록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헛된 것이란 없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의 그 유명한 연설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피와 눈물과 땀방울을 한 방울이라도 일일이 기억하여 주의 책인 기념책에 기록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의 또 다른 시편인 69편 28절에는 악인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셔서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라는 기도도 있다. 그처럼 시편 69편 28절에는 ‘생명책’이란 표현이 나온다. 다니엘이 본 환상 가운데 보면 다니엘 서 7장 9절과 10절에도 하나님은 그 앞에 심판을 베푸는 책을 펴 놓으셨다고 하였다.
 
누가복음 10장 20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다. 요한 계시록 20장 12절과 15절에도 보면, 주님 앞에는 생명책이 펼쳐져 있다고 하였다. 요한계시록 3장 5절에 보면 사데 교회에 편지하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께 받고 들은 것을 잘 지켜 행하며 흰 옷 입은 성도답게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면 장차 믿는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시겠다고 하였다.
 
우리가 좋은 상급학교나 취직 합격자 명단이나 진급자 명단에만 내 이름이 올라도 기쁘고 이 세상에서 “Who's Who"와 같은 인명사전에만 내 이름이 등재되어도 영광스럽게 생각하지 않나. 그러므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기록책에 기록되고 생명책이 기록되는 이름의 주인공이 된다면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럽겠는가. 우리 각 사람이 모두가 이런 은총의 주인공다운 신앙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정한 날에 특별한 소유로 삼고 아끼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살며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에 저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아 주시겠다고 하셨다. 여기 ‘특별한 소유’란 ‘나의 특별한 보물’(my special treasure)이라고 하였다. 성경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하나님의 특별한 보물’ 즉 ‘나의 특별한 보물’로 삼으시겠다고 선언해 주셨다. 뿐만 아니라 아비가 자기의 사랑스런 아들을 아끼듯이 아껴 주시겠다고 하셨다.
 
지난 6월 19일에는 스페인의 펠리페(Felipe) 6세가 46살에 왕으로 등극하였다. 그는 지구에 왕의 제도를 지키는 나라들 중에서 가장 젊은 왕으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부인인 왕비가 된 레티시아 오르티스는 41살이다. 스페인 최초로 평민 출신에서 왕비의 자리에까지 오른 여성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녀는 기자였던 아버지와 간호사였던 어머니의 세 딸들 중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과거에 철학교사이자 작가였던 남성과 10대 시절부터 동거하다 결혼했지만 불과 1년 만에 이혼했다. 펠리페 6세 국왕과는 이혼 3년 만인 2002년도에 공영방송국 기자로 활동하던 중에 방송국 주최 만찬에서 처음 만났다. 1년 뒤인 2003년 11월에 약혼한 뒤 그 다음 해인 2004년 5월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10년 만에 왕비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9살, 7살짜리 두 딸을 둔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평민에서 왕족이 되었고 왕비가 된 것이다. 그의 나중이 어떠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예를 드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평범하던 한 여성이 이런 날도 맞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장차 하나님이 하나님의 특별한 보물로 삼아 아끼시는 그런 날을 맞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창세기의 요셉이나, 모세나 다윗이나 다니엘서의 다니엘이나, 에스더서의 에스더나 느헤미야서의 느헤미야가 그런 주인공이었다. 저들은 하나님이 특별히 아낀 보물 같은 인생을 산 사람들이다. 그렇다. 주를 믿는 성도된 우리는 이미 그런 특권을 누리고 그런 은총을 누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성도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2:9)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높여 드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높여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면 하나님도 우리의 이름을 존귀하게 아껴 주시고 나의 삶을 하나님의 존귀하고 특별한 보배로 사랑해 주신다. 잠언 3장 3절과 4절에 보면 신자 된 우리가 성도답게 주의 말씀인 인자와 진리로 나에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고 살아가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잠3:4)고 약속해 주셨다.
 
우리나라에는 럭키 치약이 치약의 원조인 것처럼 미국은 콜게이트 치약이 원조격이다. 그 치약은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윌리엄 콜게이트(William Colgate, 1783-1857)는 영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풍이고 어머니는 폐결핵으로 고생하였다. 집안은 너무나도 가난하고 못 살았다. 비참할 정도로 가난했다. 나중에 미국에 건너가서 돈을 벌겠다고 부모 곁을 떠나는 어린 아들에게 그의 어머니가 일러 주었다. “얘야 네가 앞으로 버는 돈의 십분의 일은 반드시 하나님께 헌금하여라. 그것은 하나님의 몫이니까. 나중에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더라고 절대로 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하거라.”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서 도착한 뉴욕 시내에서 양초와 비누를 만드는 공장에 취직하였다. 200년 전 이야기이다. 주인의 마음에 흡족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였다. 주인이 보든지 보지 않든지 성실하게 일하였다. 그는 주일이면 부지런히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주중의 회사 생활도 열심히 성실하게 해서 나중에는 지배인이 되었다. 1806년에 23살 나이에 자그마한 공장을 직접 차렸다. 표백제와 비누와 양초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비누를 비롯한 제품의 무게를 속이지 않았다. 질도 좋은 비누를 생산하려고 노력하고 연구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수익금의 십일조를 장부에 꼼꼼하게 기록하였다. 그 기록부의 표지에는 ‘하나님과의 계산’이라고 큼직하게 이름을 써 붙였다. 회사는 점점 번창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치약도 만들고 온갖 가정생활 용품과 주방 용품과 각종 세제와 목욕 용품과 화장품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1908년에는 최초로 튜브 형식의 오늘날과 같은 치약케이스를 만들어 담아내기 시작하였다. <콜게이트 파몰리브>(Colgate-Palmolive, www.colgatepalmolive.com)라는 이름으로 발전해 온 이 회사의 제품은 오늘 날에는 치약, 칫솔, 생필품, 세제, 주방용품, 의약품 등 날마다 세계 인구 8억 명 이상이 이 회사의 그 무슨 제품이든지를 손에 집어 드는 열방의 기업이 되었다. 평소에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던 그는 나중에는 수입의 절반인 '십 분의 오'를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적인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는 아내 메리(mary)와의 사이에 여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자녀들도 부모의 대를 이어 신앙생활을 잘하는 후손이 되었다. 미술에 조예가 깊었던 저의 가족은 나중에 "The Museum of Natural History"와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을 세우는데 크게 일조하였다. 그는 나중에 뉴욕 시장직을 제안 받을 정도였으니 정중히 사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나중에 뉴욕의 시라퀴스 지역에 콜게이트라는 대학교도 세웠다. 학교의 교훈은 <Deo Ac Veritati>(For God and Truth: 하나님과 진리를 위하여)이다. 오늘 날 이 대학은 2009년 평가 기준으로 명문대학 순위 19위에 오를 정도의 세계적인 대학이 되었다. 1819년에 침례교 신학교로 시작된 이 작은 학교가 나중에 윌리엄 콜게이트와 그의 아들의 헌신에 의하여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한 것이다. 넓고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1918년에 건축된 예배당즉 채플이다.
 
청지기다운 재물관과 헌금관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온전한 십일조 생활은 신자의 기본이며 출발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회복하여 여호와를 경외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존중하는 천국 백성다운 삶을 살아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존영을 누릴 뿐만 아니라 장차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기록책에 기록되는 영광스러운 믿음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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