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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하나님께서 좋아 하시는 사람(삼상15:10-23) 2014.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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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3-02 21:41 조회 21,833 댓글 0
 
하나님께서 좋아 하시는 사람(삼상15:10-23) 2014. 3. 2
 
성경에는 하나님을 의인화해서 표현한 말씀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중의 하나가 본문이다. 22절에 보면, 사무엘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점점 타락의 길을 걷고 있는 사울 왕에게 과연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추궁한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부모의 눈높이와 기준으로 볼 때에 사랑스럽고, 예쁘고, 자랑스럽고, 귀엽고, 대견하고, 좋게 행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그 반대의 행동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자녀들을 말할 때에 “우리 아들 혹은 우리 딸은 이 날까지 한 번도 밉게 행동해 본 적이 없이 잘 자라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대개는 아들딸들이 사춘기를 지낸다든지 하는 경우에 엄마 아빠와의 관계에서 한 동안 대화도 잘 통하지 않고 어색하거나 뭔가 잘 통하지 않는 불통의 때가 있다.
 
그건 성장기라서 그렇다 치고 사울 왕이 하나님 보시기에 한심스럽고 그를 왕 삼으신 것이 후회되는 이유는 그 정도의 차원이 아니다. 사울 왕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각하다. 이미 사울 임금의 처신은 매사에 하나님의 기대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점점 매사에 사사건건 말마다 일마다 사건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사울 왕의 타락상을 보여 주고 있다. 이는 마치도 에덴동산에 창조된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의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불순종의 사건 기록이다.
 
민수기 23장 19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라는 말씀이 있다. 그렇다. 인간에게는 거짓과 술수와 속이고 빼앗고 빼앗기는 등의 위선과 간교함이 있으나 하나님은 진실하셔서 거짓이 없으실 뿐만 아니라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주님이시다. 또한 인간은 후회가 없을 수 없는 일생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에 후회가 없으시다. 사람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철이 나고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전혀 한 번도 후회가 없이 사는 인생은 아마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각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달아 알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아하실 만한 나날을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인생의 태도인지 모른다.
 
사람이 부모님이 보시기에만 좋게 살아도 좋겠거늘 하물며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이었던 사울 왕은 달랐다. 그는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신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답게 잘 출발하였으나 나중에 가서 하나님의 뜻과 기대에서 점점 벗어난 불행한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본문의 내용을 통하여 깨달음을 받고, 반면교사로 교훈 삼으며 기도 제목 삼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하나님이 후회(後悔)하지 않으시도록 사는 사람.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에 후회나 실수가 없으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신다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 말씀하는 표현은 사울 왕이 행한 죄와 악에 대하여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의인화한 표현이다. 11절 말씀의 내용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신 다고 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 시대의 백성들이 타락하게 살고 방종하고 악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 한탄(恨歎)하사 마음에 근심”(창6:6)하셨다고 하였다. 여기서 하나님이 한탄하셨다든지 혹은 마음에 근심하셨다는 표현이 바로 하나님을 의인화한 표현들이다. 본문에서도 불순종으로 치닫는 사울 왕의 타락상을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심경을 ‘하나님이 후회하셨다’고 표현한 것이다. 사울 왕을 바라다보시며 후회하시는 하나님은 그 동안 하나님께 잘 순종하는 것 같던 사울 왕이 마음을 돌이켜서 제 마음대로 행동하고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잘못을 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지적하고 계시다. 또한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지 아니한 불순종을 나무라고 있다.
 
사울 왕의 한심스러운 행동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 그 자체를 후회하셨고 그런 시대 상황을 지켜보던 사무엘은 마음에 근심하며 온 밤을 새워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사무엘 선지자가 밤을 새워 부르짖어 기도한 기도 제목은 분명하다. 어서 사울 왕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 받는 왕으로 변화되게 해 달라는 기도와 임금 사울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백성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징벌이 번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였을 것이다.
 
요즘 여러분은 무슨 기도 제목을 갖고 기도하고 있는가. 자기 자신이나 혹은 가족 구성원들 간에, 내외간이든 혹은 연세 들어가시는 부모님과의 관계에서이든 혹은 자녀들과의 관계에서이든 아니면 직장의 선후배나 사업 거래처의 그 누군가의 관계에서 이런 기도 제목을 가지고 무겁고 답답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그런 기도 제목은 없는가.
 
사무엘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사무엘상 12장 23절에서 대하는 대로 사무엘은 백성들을 위한 중보기도 생활을 쉬는 죄를 결단코 범치 아니하겠다고 선언하였고 늘 그런 기도 생활의 실천에 힘쓴 기도의 사람이었다.
 
금번 2014년의 사순절 기간인 3월 5일, 수요일부터 4월 20일, 부활절 새벽까지 이어지는 사순절 특별 새벽 기도회에 그런 기도의 부담을 가지고 깨어 기도하는 성도들의 수를 한 사람 한 사람 더해 가는 교회 생활이 되기를 초청한다. 물론 여건 상 이른 새벽에 교회에까지 와서 기도하기 어려운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새벽 5시는 고단한 사회생활을 하고 늦은 밤에 잠자리에 든 시민들이 한창 깊은 새벽잠을 자는 시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동안도 해마다 사순절이 되면 새벽마다 그렇게 기도해 온 것처럼 깨어 일어나 기도하는 자리에 함께 하기를 소원한다.
 
하나님께서 후회하실 정도의 사건들이 주변에 펑펑 터지고 불안한 삶의 위기를 겪을 때에 우리는 누구를 비난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대신에 사무엘처럼 밤이 새도록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사무엘은 끊임없는 기도와 부르짖음 가운데서 사울 왕의 변화는 보지 못하였으나 다윗과 같은 시대적인 인물을 선택하여 새 시대를 준비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하게 되었다. 베들레헴의 소년 다윗에게 기름을 부음으로 기울어가던 이스라엘의 사울 왕조를 일으켜 세울 만한 새로운 지도자 다윗을 준비하여 가신 역사의 중심에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지금, 아니 요즘 나의 신앙생활의 현 주소는 어떠한가. 요즘 나는 어떠한 영적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혹시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에 후회하실 만한 영적 위기나 불순종이나 위선이나 영적 혼돈의 상태에서 방황하고 있지는 않는가. 자신의 일상생활 중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점검하고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자신의 문제를 끌어안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그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할 줄 아는 중보기도의 사명을 영적 부담으로 안고 살아갈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내 주변에 사무엘처럼 그 누군가가 나를 위하여 진심으로 하나님께 밤을 새어가며 부르짖어 기도하는 이웃이 있다는 생각을 하여 보라. 정신이 버쩍 들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게 되지 않는가.
 
그 동안도 이스라엘을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블레셋의 침략으로부터 지켜온 힘은 임금 사울 왕의 정치 역량 때문이 아니었다. 사울이 왕으로 있던 그 시대 내내 기도의 사람 사무엘 선지자의 앞장 선 기도가 있었다. 그래야 소망이 있는 것이다. 이는 나라도 기업도 가정도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나라의 통치자이냐 누가 기업의 총수이냐 누가 가정의 가장이며 누가 교회의 담임목사이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그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물어 나가는 기도의 사람이며 부르짖음의 사람이냐는 것이다.
 
E. M. 바운즈(Edward M. Bounds, 1835-1913)의 <기도해야 산다>는 책에 보면 100년 전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간 그의 책 안에서 기도 생활에 대한 강조를 페이지마다 대할 수 있다. 그는 스스로가 기도의 사람이었다. 매일 새벽 마다 일어나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간절함이 사라져 버린 성찬식이나 세례식을 안타까워하기도 하였다. 또한 “간절한 마음이 없는 기도는 공허한 껍데기, 곧 헛된 말 장난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그런 기도가 성도들 가운데 만연해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성령 충만함이나 깊은 깨달음이 없이 찬양하는 찬양은 찬양이 아니다. 오늘 날 주께 드리는 찬양은 없고 오직 요란한 음악만 있다. 적지 않은 성도들이 습관적으로 교회에 갔다가 축도가 끝나기가 무섭게 좋아라하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그는 진정한 참된 기도의 회복을 위해서 간절한 기도를 하여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열정으로 활활 타오르는 사람만이 참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망아지가 어미 말보다 훨씬 활동적이지만 정작 마차를 끌고 수레를 끄는 것은 어미 말이다. 어린 아이들이 아버지보다 훨씬 더 활동적이지만 가정을 세워 나가는 것은 아버지이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열심은 믿음보다 보기에 훨씬 활동적이어 보이지만 산을 옮기는 것은 믿음의 힘이다. 그러므로 소란하고 허세 부리는 것을 멈추고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여야 한다. 너무 분주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 생활이 게을러지는 것은 영혼이 퇴락하고 병들어 가는 시작이다.”라고 지적하였다.
 
사울 왕이 하나님 보시기에 후회스러운 행동을 일삼을 당시에 선지자 사무엘은 밤을 새워 가며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기도가 희망이다. 기도해야 살 길이 열린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시며 새로운 일을 행하기 시작하신다. 자신도 후회스럽고 하나님께서도 후회하실 것만 같은 삶의 위기를 겪을 때에 겸손하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을 좋아하신다.
 
 
자기 속의 위선(僞善)으로부터 벗어나는 사람.
사울은 왕이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13절 이하의 내용에 보면 사울 왕은 위선과 거짓말과 가증한 불순종으로 일관하였다. 13절의 가증한 임금 사울의 말을 보라. 그는 사무엘을 만나자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얼마나 가증한 행동이며 거짓이 숨어 있는 말인가. 하나님께서 사울 때문에 후회하고 계시고 사무엘은 사울 왕 때문에 근심하며 밤새도록 부르짖어 하나님께 기도하였는데 고작 만나고 나니 한다는 말이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하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임금 사울이 거짓말 하는 것을 양과 소도 알았든지 모든 짐승까지 아말렉에 속한 생명을 죽여 없애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채 끌어다 놓은 양과 소의 우는 소리가 바로 그 순간에 선지자 사무엘에게 들렸다. 그 때에 사무엘이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양과 소의 소리가 어찌 됨이니이까”하고 질문하자 사울 왕은 “그 양과 소들은 백성들이 좋은 것을 남겨서 끌어 온 것이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는 것들”이라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사무엘 앞에서 계속하여 거짓말로 일관하는 사울 왕의 뻔뻔한 모습을 보고 그의 말을 듣던 사무엘은 “가만히 계시옵소서”하고 대답하며 지난밤에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차근차근 사울 왕에게 전달하였다. ‘가만히 계시옵소서’라는 말은 ‘됐습니다.’라는 말이다. 영어 성경에 보니까 ‘enough'라고 하였다. 이는 이제 더 이상 거짓말 좀 그만 하시라는 말이 아닌가. 사무엘이 밤 새워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사울 왕에게 전하였다. 우리말 성경으로 보면 이런 내용이다.
 
“예전에 당신이 스스로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스라엘 지파들의 머리가 되지 않았소?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신 것이오. 그리고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가서 저 악한 아말렉 사람들을 모조리 없애 버려라. 저들과 싸워서 하나도 남기지 말고 진멸시켜라’ 하고 명령을 내리셨소. 그런데 어째서 여호와께 순종하지 않았소? 어째서 약탈하는 데 급급해서 여호와 앞에서 악한 일을 행했소?”(삼상15:17-19) 사무엘은 사울 왕의 세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어째서 불순종하고 있소. 어째서 재물 탈취에만 눈이 가리어 있소. 어째서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고 있소.”하고 말이다.
 
이때에 사울 왕은 전혀 안색도 변하지 않고 다시 또 거짓말로 일관하였다. “아닙니다. 나는 여호와께 순종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지시하신 명령대로 아말렉 사람들을 완전히 쳐부수고 그들의 왕 아각을 잡아 온 것입니다. 군사들이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없앨 것들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으로 소와 양을 취한 것입니다.”(삼상15:20-21)
 
설명이 필요 없는 거짓으로 켭켭이 휩싸여 있는 사울 왕의 됨됨이를 보게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순종하며 진실하고 거짓되지 않는 사람을 찾으신다. 그러나 이즈음에 사울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다. 사울은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나 경외심에서 떠난 지 오래다. 제 마음대로 행동하고, 제 좋을 대로 나라를 이끄는 타락한 왕이 되어 버렸다.
 
12절에 보라. 사무엘은 임금 사울 때문에 밤 새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는데 사울 왕은 갈멜에 자기를 위한 기념비를 세웠다는 소문이 사무엘에게까지 전해졌다. 전쟁 기념비를 세우려거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높이는 에벤에셀 기념비를 세웠어야 할 터인데 사울은 자기의 공적을 높이고 자기의 치적을 쌓으며 하나님을 떠난 왕의 처세로 점점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사울은 자기 공덕비를 세우고 마치도 자신이 아말렉을 물리친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며 경솔하게 행동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겸손하고 진실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신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12)고 교훈해 주셨다. 하나님은 거짓되지 않고 진실한 사람을 좋아하신다.
 
 
진심으로 순종(順從)하며 살아가는 사람.
명심보감에서도 ‘하늘에 뜻에 순종하는 사람은 흥한다’고 하였다. 더군다나 성경의 교훈은 분명하다. 22절 이하에 보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던 사무엘의 사울 왕을 책망하는 책망의 내용이 나온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가.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을 청종하는 것과 순종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명심하며 살아가는 인생을 좋아하시고 그런 인생을 찾고 계신다.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습관적으로 번제를 드리고 그 어떤 다른 제사들을 드리며 숫양의 기름을 드리는 정성이 빠진 제사 행위를 하나님은 가증하게 여기신다. 그런데 23절에 보면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완고하게 살아가는 죄를 범하고 있었다. 그러한 사실을 사무엘은 일일이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 앞에서 완고하게 살아가는 것은 우상 앞에서 점치는 것과 같고 헛되고 무가치하고 불의한 우상에게 절하는 행위와 같다고 책망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참으로 하기 어려운 말까지 다 전하였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삼상15:23)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인생이 이 땅에서부터 잘되고 나중도 잘되며 평생을 잘되고 영원히 잘되는 길이다. 새벽에 자주 부르는 찬송 449장 찬송의 1절 가사에 보면,
 
“예수 따라 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5절은 이렇다.
 
“주을 힘입어서 말씀 잘 배우고 주를 모시고 살아가세
주를 의지하며 항상 순종하면 주가 사랑해 주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은 지금 당장은 아닌 것 같고 오히려 더 힘겹고 불편할지라도 주님 안에서 점점 복되고 점점 형통한 길이 될 것이다. 열왕기 하 5장에 보면 하나님의 종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여 고침 받은 아람 나라 군대 장관 나아만의 이야기가 나온다. 순종하면 나병에 걸려 있던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 장군이라도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글 때에 그 극심한 나병에서 고침 받고 어린 아이처럼 새하얀 피부로 제 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지 않는가. 그러나 어리석게 행동하고 눈앞에 있는 탐욕을 위하여 행동하면 주인과 하나님을 속이며 거짓되게 살아가려던 엘리사의 종 게하시에게 나아만의 나병이 옮겨진 것처럼 불행해 지고 마는 것이다. 나아만 장군을 뒤를 쫓아가서 은 한 달란트와 옷 두벌을 요구하던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그만 자기 몸이 희게 나병에 걸리는 불행한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순종하는 마음이 떠나면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시편 1편의 말씀 그대로가 아닌가.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1:1-3)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의 순종함으로 십자가에 달려서 골고다 언덕에서 죽으셨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장사 된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죄 사함과 영생과 거듭남의 선물을 허락하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순종하는 죽으심으로 부터 이룩하신 하나님의 기적이요 은총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순종함으로 날마다 주님 안에서 새 힘을 얻고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가며 늘 승리하는 하나님이 좋아하실 만한 주인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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