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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여호와께 감사하라(시136:1-5, 21-26)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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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1-11-17 12:01 조회 18,673 댓글 0
 
감사는 사람이 무슨 일을 만날지라도 자신이 당한 상황을 지탱하고 극복하고 헤쳐 나가게 하는 힘이다. 하나님은 감사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여지는 창조의 능력이시며 은혜의 공급자이신 분이시다.

여성 최초이자 아시아계 최초의 미 육군 헬기 편대장이던 올해 42살인 태미 덕워스(Temmy Duckworth)는 지난 2004년 이라크 전에서 블랙호크 헬기를 조종하던 중 이라크군의 로켓추진 수류탄 공격을 받아 두 다리를 모두 잃고 오른팔에 치명적인 장애를 입었다. 이라크전에 미군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두 다리를 모두 잃은 그녀는 최근에 고정익 항공기(Fixed-Wing Aircraft) 조종 자격도 땄다. 그녀는 6개월간의 훈련 끝에 2011년 7월 19일 버지니아주 매나사스 공항에서 미연방항공국(FAA)의 최종 심사를 받았다. 2006년에는 일리노이 주에서 전쟁 반대 슬로건을 내걸고 주 하원에 출마했다가 2%의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서 연방 보훈처 차관보에 임명 받기도 했다. 그녀는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국제 정치학 석사를 공부한 후에 노던일리노이 대학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사고 후에 워싱턴 DC근교에 있는 월터리드 미육군병원에서 6개월간의 재활치료를 받았다. 월터리드 병원은 최고급의 실력을 갖춘 의사만도 800명이나 되는 세계적인 병원이다. 1909년에 설립된 그 병원은 제 1차, 제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그리고 이락크 전과 아프가니스탄 전등에서 부상을 당한 병사들을 치료해 온 역사적인 재활 치료 병원이다. 임직원만도 3500명이 넘고 하루에 외래 환자만도 2500명이 드나드는 세계적인 병원이다. 전쟁 중의 상해뿐만 아니라 화재로 인한 부상이나 각종 안전사고와 산업 재해 등의 현장에서 사고로 불행을 당한 주인공들이 재활 치료를 받는 유명한 병원이다. 2009년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첫날 방문해서 참전용사들과 환자들을 격려했던 병원으로 더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미국인 아버지와 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최근에는 손으로 굴리는 자전거를 타고 마라톤에 도전하고 수영과 서핑과 스카이다이빙을 할 정도의 활력 있는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남편이 일리노이주방위군 소속 장교로 시카고 북서부에 살면서 워싱턴 DC까지 1100km의 거리를 새로 구입한 소형 비행기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다고 한다. 감사는 하나님 안에서 불행과 역경과 시련과 아픔을 극복하는 끝이 없는 무한 에너지이이다. 

우리 중에는 올해 하나님의 나라로 가신 분들로 계시다. 그래서 가족에게 외로움이 남은 분들도 계시다. 또한 본인이나 가족이 어려운 수술을 받았거나 병으로 고생하시는 분도 계시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도 있다. 몇몇의 가족들이 모여서 살아가도 한 해 동안에 별의 별 일들을 다 겪으면서 산다. 일 년 삼백 예순 다섯 날 동안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민족과 열방에 크고 작은 일들이 참으로 많이 일어난다.

그야말로 하루 동안에도 희로애락이 있고, 한 해 동안에도 다사다난(多事多難)한 일들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 모든 일들을 뒤 돌아 보면서 한 단어로 지나 온 날들을 정의하라면 ‘감사’(感謝)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시편 기자는 26절로 되어 있는 말씀 가운데서 26번의 감사를 표현하고 있다. 그 긴 말씀을 다 읽지 못했지만 정리하면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선언이다. 그러면 왜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것일까. 어떤 분은 기독교인의 세 가지 덕목인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한 가지를 더한다면 그것은 바로 ‘감사’라고 말했다. 그렇다. 감사처럼 소중한 것이 없다. 어떤 가정이 가장 행복한 가정인가. 가족들이 서로에 대하여 감사를 말하고, 감사를 표현하고,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갈 때에 그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아니겠는가. 감사는 이처럼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다.

남편은 아내에 대하여 감사하고 아내는 남편에 대하여 감사하고 부모는 자녀에 대하여 감사한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자녀들은 부모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자식들이 부모에 대하여 “엄마 아빠가 도대체 나를 위하여 해 주신 것이 무엇이 있단 말입니까.” 뭐 이런 지경이 된다면 얼마나 불행의 시작이겠는가. 그러므로 나라이든 기업이든 직장이든 가정이든 서로 간에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행복한 것이다. 나라가 내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는가. 뭐 이런 생각을 하는 백성들이 점점 늘어난다면 얼마나 불행한 국가이겠는가. 물론 요즘 20대와 30대의 젊은이들 중에서 취업이나 취직이나 사회생활에 경제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고 너무나 어려워서 우울하게 지내거나 답답해하거나 불만을 갖고 지내는 젊은 세대가 적지 않다고 아우성이다.

신앙의 힘, 믿음의 힘이란 주어져 있는 환경을 감사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축복의 시작이다. 다 같은 광야 생활이었지만 사사건건 모세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과 불평을 계속하던 무리들은 비록 선민이었지만 광야에서 그들의 생을 다 마치고 말았다.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축복은 희망과 소망과 기대와 감사 속에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막상 들어 간 땅에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전쟁하지 않고 날마다 한 바퀴씩 그리고 일곱째 날에 일곱 바퀴를 도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순종하기만 하였는데도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기적을 보았다. 일곱째 날에는 일곱 제사장이 일곱 양각 나팔을 크게 불고 언약궤를 앞장세우고 크고 길게 불어대는 양각 나팔 소리가 들릴 때에 온 백성들이 크게 함성을 질렀는데 하나님의 명령과 방법대로 했더니 꿈처럼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기적을 보았다. 엿새 동안은 조용하게 그리고 일곱째 날에 여호수아의 명령을 따라서 ‘와아아’하는 함성과 함께 양각 나팔을 불며 행진할 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 난 것이다. 그런 기적을 본 무리들 가운데서도 아이 성의 아간과 같은 불행한 주인공이 있었던 것을 보면 역사의 교훈은 참으로 다양한 것이다. 매사에 감사하고 언제 어디서나 누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전천후로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감사체질로의 영적체질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자 오늘 본문에 보면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 무엇을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있는가.

여호와는 선하시면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이시니까.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이시다. 영어 성경이 훨씬 쉽다. “He is good." 그렇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또한 그의 사랑이 영원하신 분이시다. “His love endures forever.” 즉 하나님의 사랑은 끊임  없이 영원하신 분이시다. 우리 성경에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표현이 26절에 26번 나온다. 영어 성경에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끊임없이 영원하다는 표현이 26번이나 반복하여 나온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고 하나님의 사랑은 끊임이 없고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이 시편 136편을 저들의 3대 절기인 유월절과 칠칠절과 장막절에 예배를 드리며 낭송해 왔다. 그렇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선하시고 사랑과 인애와 자비와 긍휼과 은총이 넉넉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시다. 아브라함의 종도 야곱도 모세도 다윗도 요나도 모두가 다 그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송하며 기도를 드려왔다. 창세기 24장 27절에 보면 나이 많은 주인 아브라함의 분부를 받고 며느리 감을 구하려고 먼 길을 떠났던 그 또한 나이 많은 종이 낙타 열 마리에 좋은 것들을 잔뜩 실고 메소포타미아의 나홀의 성에 도착해서 그 곳에 사는 브두엘의 딸 리브가를 순적하게 만나는 아름다운 장면이 소개되어 있다. 그 때에 브두엘의 어여쁜 외동딸인 리브가는 들판에 어깨에 물동이를 메고 물을 길러 나갔다가 거기서 아브라함의 종을 만나게 되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믿음의 명문가가 된 아브라함의 가정에 외며느리로 선택되는 순간이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의 나이 많은 종이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창24:27) 여기에 보면 주의 사랑과 성실이란 표현이 나온다. 그 주의 사랑이란 표현이 바로 오늘 성경 시편 136편에서 26번이나 반복하여 나오는 ‘인자하심’이란 표현이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 영원 하시도다 영원 영원 하시도다

이런 찬송을 늘 마음에 간직하고 읊조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창세기 32장 10절에는 20년 만에 고향을 향해서 돌아가던 야곱이 먼저 보낸 종들이 전해주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 앞에 급하게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형 에서가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400명의 무장한 자들을 데리고 야곱을 대적하려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그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를 구하는 기도가 있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그렇다. 우리가 먹고 입고 누리고 살아가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모든 은총이요 진실하심 가운데 공급된 넘치는 축복이요 감사가 아닐 수 없다.


출애굽기 15장 13절에 보면 모세의 그런 기도가 나온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구속하시고 인도하시고 힘을 주셨노라는 찬양과 기도를 드린 것이다.

다윗의 승전가인 사무엘하 22장에 26절에도 보면 다윗은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그렇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자비하신 하나님이요 완전하신 아버지이시다. 실수가 없으신 전능자이시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고 제비 뽑혀 바다에 던져진 후에 구사일생으로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간의 회개 기도를 드리고 살아남았다. 토하여 내쳐진 육지에 올라 니느웨 성을 바라보면서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욘4:2)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아갈 줄 아는 주의 백성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호와는 홀로 크고 기이(奇異)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니까.
오늘의 기도 중에는 하나님의 20가지 이상의 성품을 소개하고 있다. 4절의 말씀대로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는 크고 기이한 일들(great wonders)을 계속하여 행하시는 주님이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 모든 주께 뛰어나신 하나님,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하나님,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하나님, 땅을 물 위에 펴신 하나님, 큰 빛들을 지으신 하나님,  해로 낮을 주관하시며 달과 별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하나님, 애굽의 장자들을 치신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 주신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길 에서 인도하신 하나님(12절),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그 가르신 홍해 한 가운데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네게 하신 하나님, 뒤 따르던 애굽의 군대를 그 홍해 물을 연합하게 하여 수장시키신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하나님, 당시에 그 유명하던 큰 왕들을 골고루 쳐 없애신 하나님,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신 하나님, 비천한 자들을 높이신 하나님,  성도들을 대적 자들에게서 건져 내신 하나님, 모든 육체에게 때를 따라 먹을 거리를 주신 하나님, 하늘의 하나님의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했다.

과거에도 계시고 오늘도 계시고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선하시고 인자가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바로 나의 아버지이시며 우리 모두의 아바 아버지이신 것이다.

여호와는 우리를 기억(記憶)해 주시는 분이시니까.
23절에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온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렇다. 우리들 믿는 자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여호와는 인생들을 비천한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시고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기억하셔서 복되게 하시는 전능자이시다.

느헤미야에 보면 느헤미야는 그런 기도를 자주 드린 것을 보게 된다. 자기는 출세하고 성공해서 바사 즉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 곁에서 최측근인 술맡은 관원으로 고위직에서 활동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에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부는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도 적지 않은 이들은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때에 포로의 땅에서 늙고 죽어 갔고 그곳에서 태어난 후손들이 이방 땅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 바사의 왕궁인 수산궁에서 느헤미야가 조국의 도성 예루살렘의 황무한 폐허의 소식을 듣고 기도한 내용들이 느헤미야서의 이곳저곳에 소개되어 있다. 느헤미야 5장 19절에 보면,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Remember me with favor, O my God,
for all I have done for these people.)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선악간에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의와 불의, 선과 악, 참과 거짓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영원히 인자하심을 깨달아 알고 진실하고 바르고 선하게 살아서 하나님이 나의 삶을 기억해 주시고 은혜를 더욱 더 베풀어 주시기를 소원하는 그런 겸허한 날들을 살아가야만 한다. 느헤미야는 선정을 많이 베푼 유능하고 탁월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매사를 처리하며 지냈던 명 총독이다. 그의 선한 정치역량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과 예루살렘 성민들이 아는 바였다. 그는 기도할 때마다 감히 하나님께 그런 기도를 드릴 정도였다. 느헤미야의 생각과 사상과 정책과 입장과 태도의 모든 범사에 하나님 생각으로 꽉 차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꽉 찼던 지도자였다. 느헤미야 13장 14절에서도,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라고 했다. 예루살렘에 12년간 총독으로 머무는 동안에도 총독의 녹을 받지 않고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섬기는 마음으로 일했던 자신의 사역들을 감히 하나님 앞에 보고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느헤미야 13장 22절에도 보면, “내가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마지막 절인 13장 31절에도,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하고 기도하고 있다. 느헤미야는 이처럼 기도로 끝난다. 

내가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다가 하나님 앞으로 가겠는가. 일본의 기독교인 의사 중에 이므라 가즈오 씨는 일본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오사카 병원에서 내과 의사였다. 그런 그가 젊은 날 ‘ 섬유육종암’이란 어려운 병에 걸렸다. 결국 31살에 죽고 말았다. 그의 투병기를 편지와 글로 남긴 것이 <종이학>이란 책이고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그는 초인적인 정신력과 믿음으로 인내하며 의사의 사명을 다하다가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그는 “소중한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가” 라고 질문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보고 말하고 듣고 웃고 울고 가고 오고 앉고 서고 누군가 손을 잡고 악수하고 손을 흔들고 안아 주고 등을 두드려 주고 하는 모든 것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며 은총이며 감사할 일인가. 건강이든 신체의 일부이든 잃고 나서 지내 놓고 보면 굉장한 하나님의 축복이었던 것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것이 인간이다. 새 소리가 들리고 향기를 맡을 수 있고 눈에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고 무언가를 볼 수 있고 그 눈으로 미소를 지을수도 있고 윙크 할 수도 있다. 목소리로 노래하고 지구 저편에 있는 가족들과 핸드폰과 같은 무선 통신 장비를 통해서 곁에서 말하듯 이야기 하고 들을 수가 있다. 영상으로 지구 저 맞은편에 있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며 통화 할 수도 있다. 얼마나 감사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이므라 가즈오 씨는 이렇게 말했다. “하루 세끼의 음식을 먹고 잠이 오면 잠을 자고 새 날이 밝으면 일어나서 웃고 울고 노래하고 소리치고 뛰어 다니고 산에 오르고 바닷가를 거닐고  온갖 자연의 그 아름다운 것들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르고 산다면 너무나 희한한 일이 아닌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눈물 나게 소중한 것인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생각해 보라, 마침내 삶의 모든 것을 하나 씩 하나 씩 잃어 본 사람만이 그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위대한 진리로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저 지난 주에 재활 병원에 문병 갔다가 전풍길 교우 부부를 만나 잠시 위로하고 격려하고 기도해 드리고 왔다. 그 재활 치료실에는 한 쪽 다리를 당뇨로 절단한 노인도 계셨다. 별의 별 환자들이 넘쳐 났다. 상대방이나 가족들을 누군지 몰라보는 멍한 상태의 환자도 있다. 지난 화요일에는 지방 내에 있는 농아인 교회에서 교역자 회의가 있었다. 예배실 한 편에 현수막에 걸린 디모데 전서 4장 12절의 성경구절이 가슴을 찡하게 했다.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자”고 했다. 저들은 우리처럼 입으로 혀로 말할 수 없다. 수화로 대화하고 수화로 찬양하고 수화로 설교한다. 그것도 말이다. 그 말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자고 했다. 손으로 말하고, 수화로 말해도 할 말을 다 하며 의사 교환을 하고 산다. 감사의 말을 할 것이냐  불평이나 원망의 말을 할 것이냐는 자기의 선택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박국 3장 17절부터 19절에서,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라고 했다.

그런 절대 감사의 마음을 이 계절을 살아가는 주의 풍성한 은총을 기도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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