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요7:37-52) 2015. 2. 1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무리들의 반응은 대개 세 부류로 나뉘었다. 그 첫째는,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고 여기는 이들이었다. 둘째는, “그는 그리스도라”는 이들이었다. 또 한 부류는,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겠느냐”며 극구 부인하려는 이들이었다. 요한복음 7장 42절에서 인용하는 미가서 5장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는 다윗의 씨로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그 당시의 수많은 무리들은 모여 앉기만 하면 예수님께 대한 화제를 갖고 쟁론하고는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는 예수를 잡아 없애려는 이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런대도 여전히 예수님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던 것은 아직 예수님이 붙잡혀 수난 당하실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요한복음 7장 32절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아랫사람들을 보내서 예수님을 붙잡아 오라고 시켰다. 그런데 시간이 한 참 지난 후에 예수님을 붙잡아 오지도 못하고 빈손으로 와서 한다는 말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No one ever spoke the way this man does)하고 보고하였다. 요한복음 7장 46절에 나오는 내용이다. 바리새인들이 이런 보고를 받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답하기를 “너희도 미혹되었느냐”고 하였다. 그리고 하는 말이 “당국자들이나 바래시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자로다”라고 핀잔을 주었다.
바로 그 때에 니고데모가 등장하였다. 니고데모가 누구인가. 요한복음 3장에 예수님을 한 밤중에 개인적으로 찾아 와서 만나 뵈었던 그 니고데모가 아닌가. 니고데모는 당시 유대나라의 공회인 산헤드린의 70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이와 같은 말씀 앞에 당황해 하며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하고 질문하던 그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였던 그 니고데모 말이다. 이 사람이 나중에 예수님 돌아가신 후에 동료 관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장례를 엄숙하게 치루지 않았나.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붙잡아다 죽이려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가운데 등장해서 반대 의견을 피력한 것을 보면 그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후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마음에 품고 믿으며 지내온 것이 분명하다. 그는 이렇게 질문하였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요7:51) 이와 같은 의사 표현은 법적 판결 이전에 증인의 증언을 들어야 한다는 율법의 내용(신17:4)을 앞 세워서 자기주장을 펴는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분명한 사실은 당시 대 다수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중론을 거슬러서 소신 있고 용기 있는 말을 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예수님을 붙잡아 죽여 없애 버려야 하겠다.”는 한 가지 목표에 사로잡혀 있던 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니고데모의 그와 같은 의사 표현은 전혀 달가운 말이 아니었다. 대답이 궁색해진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고작 대답한다는 말이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고 몰아세우며 지역감정에 불을 붙이려고 하였다.
예수님은 이처럼 철저하게 혼자였고 점점 고독해져 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요한 복음 6장과 7장에서 말씀하신 말씀의 내용들은 결코 그 어느 누구라도 쉽게 받아 들이기 어려운 내용들을 계속하여 말씀하고 계셨다.
햇빛과 물과 공기는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이다. 물론 먹을거리가 있어야 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공급자는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이걸 믿고 살아가는 것이 창조론이다. 진화론을 주장하고, 진화론을 믿는 이들도 햇빛이 필요하고 먹을거리가 있어야 살고, 맑은 물과 맑은 공기가 있어야만 살 수 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의 살과 피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6장 55절에 보면,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For my flesh is real food and my blood is real drink.)
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하신 말씀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6:56-57)는 말씀도 해 주셨다.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도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요6:61-63) 는 말씀을 하심으로 도대체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무리들에 대하여 언급하셨다. 심지어는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요6:65)는 말씀도 해 주셨다. 이런 말씀들이 계속되자 그 말씀을 듣는 무리들 가운데 적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예수님 곁으로부터 떠나가 버렸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기를 두려워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물으셨다. “너희도 가려느냐”(You do not want to leave too, do you?)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6:68-69)
그러나 이와 같은 신앙고백을 열두 제자 모두가 다 한 것은 아니었다. 요한복음 6장 마지막 부분인 70-71절에 보면, 예수님은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버릴 마귀라는 말씀을 하셨노라고 밝히고 있다.
그 후에 예수님은 그를 죽이려는 이들의 손길을 피해서 유대의 변방인 갈릴리를 오가며 활동을 계속하고 계셨다. 그러는 중에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다가 오고 있었다. 요한복음 7장은 그 초막절에 있었던 일을 기록한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음모는 점점 심각해져 가고 있었지만 아직 예수님께서 붙잡히실 때가 되지 않아 감히 예수님께 손을 대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요7:30)
칠 일 간 계속되는 초막절이 끝나는 그 마지막 날이 유대인들에게는 절기의 가장 큰 날이었다. 유대인들은 이 초막절 기간 동안 날마다 예루살렘의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다가 성전의 제단 서편에 붓는 장엄한 의식을 계속하였다. 오늘 날의 추수감사절인 유대인의 초막절 의식에 물을 깃는 것은 선조들의 때에 광야에서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하여 마시도록 공급해 주시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날마다의 일상생활 중에 물의 부족으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달라는 염원을 담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때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쳐 말씀하신 교훈의 말씀이 본문의 서두에 나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 "If anyone is thirsty, let him come to me and drink. Whoever believes in me, as the Scripture has said, streams of living water will flow from within him."
(요7:37-38) 요한복음의 기록자인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수의 강’이란 곧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을 첨부하였다. 그리고 아직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이전이기 때문에 성령이 저들에게 계시지 않다는 설명도 해 놓았다. 자, 그러면 예수님을 믿을 자들이 받을 성령이란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 임하시는 성령님의 임재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함께 은혜 나누려고 한다.
목말라하는 누구에게나 임하시는 성령.
“누구든지”라는 말씀은 성령이 임하는 그 대상에 전혀 차별이 없다는 말씀이다. 이사야 12장 3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라는 내용의 감사 찬송이 소개 되어 있다. 인종, 문화, 언어, 풍습,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배운 사람이든 덜 배운 사람이든, 가진 사람이든 덜 가진 사람이든, 건강한 사람이든 병약한 사람이든 어른이든 어린 아이이든, 남자이든 여자이든 그 어느 누구든지 우물물을 마시고, 생수의 강물을 마시듯이 성령 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목마른 자가 물을 마시기를 원하듯이 원하면 그 누구나 다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보편적인 초청이다. 이사야 55장에도 보면,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사55:1-3)고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의 초청 앞으로 나아오라고 초대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식탁으로의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팔도강산 어디에서나 맑은 물의 혜택 가운데 살아오고 있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는 생활용수 뿐 만 아니라 식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쌓여 있고 처처마다 강줄기가 흐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또한 물 부족 국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지구는 점점 오염되어 가고 있다. 요즘 국가적으로, 국제적으로 사용하는 ‘녹색성장’이란 이와 같은 지구촌의 고민을 해결해 가자는 노력을 입증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원유 전쟁이 아니라 물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우리나라도 음료수 시장 이상으로 마시는 물 즉 생수 시장의 그 규모가 어머 어마하지 않나. 나라에 따라서는 맥주 값보다 물 값이 더 비싼 나라도 있다고 한다.
복음 앞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자유자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의 차별이 없듯이 성령의 임재 또한 그 어떤 구별도 없는 것이다. 2025년이 되면 세계에 물 절대 부족 국가가 30개국으로 늘어나게 되며 그 중의 대부분은 중동과 북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들이다. 식품회사 네슬레의 페터 브라벡 레트마테 회장, '제3세계 물 관리 센터'의 아시트 비스와스 회장 등은 2009년 현재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는 세계 인구가 최소 18억 명에 이른다고 이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WSJ) 기고문에서 지적했다. 이처럼 마실 물이 없이는 사람이 살 수 없듯이 성령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살았다고 하나 산 것이 아니다. 성령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을 거슬리고 성령은 육체를 그슬리게 되어 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서로 대적함으로 서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들이고, 모셔 드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고 하였다.
예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성령.
우물에 찾아 가야 물을 마실 수 있듯이 예수님께로 나아와야 성령을 공급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자동차 중에도 휘발유, 경유, LPG 차량의 그 연료 종류에 따라서 주유소를 구별하여 찾아 가야 하듯이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설령을 공급 받게 되는 것이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부활하신 후에 40일간 이 땅에 계시던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분부하신 장면이 나온다. 그 성령을 간절히 기다리며 기도하던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 바람과 같은 성령, 불의 혀 같은 성령이 기도하던 무리들 가운데 임했고 저들은 각기 난 곳 방언으로 말하며 성령의 충만함으로 환상과 예언과 꿈에 사로잡힌 초대교회의 구성원들이 되었다. 세레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은 것처럼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진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성령의 공급자이시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를 따르며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면 성령님께서 임하시게 된다.
그 누구라도 회개하고 죄 사함 받고 순종하며 기도하고 말씀을 사모하면 성령이 임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사도행전이 교훈하는 역사적인 교훈이다. 지난 이천년 간 신앙의 선배들은 모두가 다 한 결 같이 이처럼 성령의 충만함을 통하여 세계 선교의 선봉에 서는 성령의 사람들로 살아 왔다.
요한복음 4장에는 사마리아로 선교 여행 중이시던 예수님께서 수가 성 야곱의 우물 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 대화하시는 내용이 나온다. 제자들은 마을 안으로 먹을거리를 구하러 들어간 상황이었다. 예수는 대 낮에 물을 길러 마을 밖에 있는 수가 성 야곱의 우물가에 나아온 여인에게 물 좀 달라고 하였다. 그 여인과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Everyone who drinks this water will be thirsty again, but whoever drinks the water I give him will never thirst. Indeed, the water I give him will become in him a spring of water welling up to eternal life.")
(요4:13-14)고 말씀해 주셨다. 그 때에 그 여인은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하고 요청하자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 청하셨다. 사실 그 여인은 지난 날 다섯 남자와 살아 왔고 지금 여섯 번째 만나 사는 남자도 제 남편이 아닌 남자와 눈이 맞아 살아가고 있는 기구한 여인이었다. 그 여인이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알게 되자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에 뛰어 들어가서 온 마을 사람들에게 자기가 만난 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고 소문내고 전도하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온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가 만난 후에 그 여인에게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요4:42)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예수님으로부터 친히 복음의 말씀, 구원의 말씀, 영생의 말씀을 깨달아 알고 믿고 따르며 전파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가 체험하게 되는 흘러넘치는 성령.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하셨다. 지난 5년을 뒤로 하고 예수사랑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그런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핍절하고 팍팍하고 빡빡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각 사람이 어른 아이 누구나 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콸콸 흘러넘치는 그런 은혜 생활, 그런 성령 충만한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사모하는 자들에게 그런 은혜가 임하게 될 것이다.
에스겔 47장에 보면,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그런 환상을 보여 주셨다. 성전의 문지방에서 졸졸 흐르기 시작한 물이 나중에 사천척의 엄청난 물이 되는 환상을 보여 주신 것이다. 일천 척씩 재어 보니 처음에는 발목, 그 다음에는 무릎, 그 다음에는 허리에 찼다. 그러나 나중에 사천척의 물을 재어 보니 헤엄을 쳐야 할 정도의 풍성하고 깊은 강물이었다. 그 강 좌우편에는 나무가 심히 많았다. 그 물이 동쪽으로 흘러서 아라바로 흘러 바다에 이르렀다. 그 물로 인하여 바다가 되 살아났다. 그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게 되었다. 모든 생물이 살고 고기가 심히 많고 이 물이 흘러 들어가서 바닷물이 되살아났다. 이 강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났다. 이 강 가에 어부들이 그물을 치자 각기 물고기가 그 종류대로 큰 바다의 고기같이 많이 잡혔다. 그 강 좌우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났다. 그 잎도 마르지 않았다. 열매가 끊이지 않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었다. 그 물은 성소를 통하여 나오는 물이었다. 그 열매는 너무나 맛있어서 먹을 만하였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고 하셨다.
폭포를 보거나 저수지의 댐이 콸콸 넘쳐흐르는 광경을 오래도록 물끄러미 바라본 적이 있는가. 우리나라에도 곳곳에 더러 폭포가 있지만 세계 삼대 폭포인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 캐나다와 미국 접경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 브라질에 있는 이과수 폭포를 상상하여 보라. 아프리카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는 그 물줄기의 높이가 110-150미터이다. 나아애가라 폭포는 그 높이는 평균 50여 미터이지만 폭포의 폭이 짧게는 300미터에서 길게는 거의 800미터에 이르는 곳도 있다. 규모와 크기로는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국경에 있는 이과수폭포가 단연 제 일 위이다. 폭포의 평균 높이는 80여 미터이고 폭포의 마루 길이가 자그마치 4000미터에 이른다.
폭포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가뭄에 땀나듯이 쫄쫄 흐르는 은혜가 아니라 영원히 마르지 않고 흘러넘치는 강물과 같이 풍성하게 흘려 넘치는 성령의 충만함이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그 누구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며칠 후면 입춘이다. 올해 성령 충만한 범사가 되기를 소망하자.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