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 크라이슬러 (Fritz Kreisler,1875-1962)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다. 5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지난 세기 최고의 바이올니스트로 인정 받던 인물이다. 그는 24살 때에 독일의 베를린에서 바이올린독주가로서 데뷔하였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을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서 연주를 하였다. 빈의 분위기를 가장 짙게 풍기는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가 남긴 작품에는 <빈 카프리치오 Caprice viennois>, <아름다운 로즈마린 Schon Rosmarin>, 왈츠곡으로 '사랑의 기쁨' , '사랑의 슬픔' 등이 유명하다. 그는 콘서트와 작곡으로 얻은 모든 부를 아낌없이 주변에 다 나누어주었다. 한번은 그의 음악 여행 중에 너무나도 정교하고 아름다운 바이올린을 발견하였지만, 모든 부를 다 나누어주었기에 살 수가 없었다. 시간이 걸렸지만 그 바이올린을 사기 위한 충분한 돈을 마련 한 후에 그 바이올린 소유주를 다시 찾아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바이올린은 벌써 다른 수집가에게 다시 팔린 상태였다. 프리츠 크라이슬러는 그 바이올린의 새 주인을 찾아갔다. 바이올린을 자기에게 팔라고 요청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자신의 애장품이기 때문에 못 판다는 것이었다. 실망스럽게 돌아 서려던 그는 그 바이올린 주인에게 “그 바이올린을 한번만 연주해 보아도 되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그가 누군지 몰라보고 있던 주인은 허락했고, 바이올린 연주의 거장인 크라이슬러의 감동적인 연주는 그 집안을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하게 채웠다. 그제서야 그가 당대 최고의 바이올니스트인 것을 알게 되었다. 훌륭한 연주가 끝난 다음, 그 바이올린 수집가는 프리츠 크라이슬러에게 말했다. "저에게는 그 훌륭한 바이올린을 소장할만한 권리가 없네요. 크라이슬러씨, 이 바이올린은 이제부터 당신 것입니다. 세상으로 가지고 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나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구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아름다움 선율의 명연주가 가능하게 하시는 그 분의 손길에 나를 맡겨야 한다. 세상의 탐욕에 내가 붙들려 있게만 해서는 않된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살아가기 시작하면 나의 삶의 가치는 전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주님을 드높이고, 주님을 경배하고, 주님이 전파되고, 주님이 그 누군가에겐가 영접되게 하는데 성령 안에서 마음껏 쓰임 받는 구원의 도구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누가 언제 썼는지를 알 수 없는 시편 중의 한 편인 시편 107편은 ‘감사 예배시’로 분류된다. 105편과 106편의 시작도 “여호와께 감사하고,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감사의 찬양시로 되어 있다. 그러면 시편 107편은 무엇을 감사한다는 고백인가.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e is good; his love endures forever.)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인하여 감사하라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8편 1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시고 아름다운 이름을 이렇게 찬양하고 높여 드렸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나를 지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고 경배하고 높여 드리고 송축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생각과 입의 말과 범사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가리지 않고 존귀와 영광을 드높여 드릴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의 삶이 아닌가 말이다.
며칠 전에 새벽 본문으로 묵상한 요한 계시록 5장 12절에 보면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큰 음성의 우렁찬 찬양이 나온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성도된 우리는 이처럼 날마다 순간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하고 또 찬양하며 살아가는 생활이어야 한다. 모세 때에 광야의 무리들이 입에 불평과 원망을 달고 살 때에 땅이 갈라지고 불 뱀이 나와서 저들을 삼키지 않았나.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구원을 요청할 때에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 높이 매어달고 처다 보는자 마다 살리라고 하지 않으셨다. 이처럼 신앙생활은 상식이나 이해의 차원이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믿고 따르며 인간의 좁은 소견으로 인한 생각과 입의 불평을 멈추고 범사에 감사하고 매사에 감사하고 크고 작은 대소사에 주님께 감사하는 나날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시편의 의미는 이스라엘 선조들이 하나님께서 무한대하게 베풀어 주신 끝이 없는 은혜를 누리며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잊어버리고 배반하고 배은망덕(背恩忘德)하며 우상을 숭배하고 금송아지 앞에서 절하며 육체의 탐욕에 마음을 빼앗긴 채로 배를 신처럼 섬겼다. 그러므로 시편 107편은 그 잘못과 과오를 회개하고 뉘우치며 고백하는 선언적인 의미의 감사 찬양시이다. 여기서 고백하는 ‘선하심’이란 일체의 그 어떤 악이라도 섞이지 않은 상태의 순수한 하나님의 최고의 선을 찬양하는 것이다. ‘인자하심’이란 호세아서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을 찬양하는 것이다. 호세아서 6장 6절의 “나는 인애를 원하고...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는 말씀 가운데 나오는 ‘인애’는 시편 본문이 나오는 ‘인자’와 같은 ‘헤세드’로서의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과 은총과 너그러우심과 인내와 용서를 포함한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신 것이다. 생각하면 감사하고, 돌아보면 감사하지 않나.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하는 고백과 감사의 찬양이 나오지 않나. “지금 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는 찬송이 고백되지 않나.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감사하고 있나.
원수의 손에서 구해주시고 불러 모아 주셨으니 감사.
여호와는 택함 받은 백성들을 대적자들의 손에서 속량하셨을 뿐만 아니라 선조들의 땅으로 다시 불러 모아 살아가게 해 주셨으니 감사하다는 고백이다. 공동번역 성경으로 보면, “야훼께서 구해 주신 자들 모두 노래하여라. 원수의 손에서 구해 주시고 동서남북 사방에서 불러 모아 주셨다.”고 하였다. 속량해 주셨다는 말은 대가를 지불하고 구해 주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바벨론의 땅과 메대 바사의 세력으로부터 풀려 나서 선조들의 땅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을까. 어떻게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예루살렘 성곽을 중건하며 하나님께 다시 예배할 수 있었을까. 돌아보면 모든 것이 주님의 도우심이요 은혜가 아닌가.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찬양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살아야 했다. 장막 안에 거하던 저들의 사십년은‘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던 정처 없는 나그네 세월의 연속이었다. 이것이 포로 생활에도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시편 107편에는 ‘거주할 성읍’이란 표현이 세 번이나 반복된다. (4, 7, 36절) 그런 저들의 불쌍해지고 불운하고 불행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주할 성읍’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셨다. 저들의 선조들은 주리고 목이 마르고 기력이 다 빠져서 피곤한 상태였다.
열왕기 하는 제 25장으로 끝난다. 그 내용은 남 왕국 유다의 멸망 장면을 싣고 있다. 유다의 마지막 임금인 제 20대의 왕 시드기야 제 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에 쳐들어 왔다. 주전 584년의 일이다. 성 주변에 진을 치고 토성을 쌓았다. 그 후 이년 여간 포위 상태였다. 성경은 그 참담한 역사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시드기야 왕 제 십일 년 넷째 달 구일에 성 안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의 백성들이 먹을 양식이 다 떨어졌다. 일순간에 성벽은 파괴되었고 밤중에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는 싸울 생각 없이 도망하기 시작하였다.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 도망하는 군대 가운데 시드기야 왕도 끼어 있었다. 아라비아 길로 도망하던 왕은 여리고 평지에서 붙잡혔다. 바벨론의 군대는 시드기야 왕을 립나에 있는 느브갓네살 왕 앞으로 끌고 갔다. 바벨론의 왕은 유다의 왕 시드기야을 심문하였다. 그리고는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왕이 보는 앞에서 죽였다. 그리고 왕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였다. 시드기야 임금 32살 때의 일이다. 그리고 바벨론을 끌고 갔다. 유다는 망하였다. 주전 586년의 사건이다.
역대하 36장은 이 불행한 사건을 하나님 편에서 기록하고 있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 앞에서 겸손하지 아니하였으며....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대하36:12, 16)
그리고 얼마 후에 느브갓네살 왕의 신복이며 시위대장인 느부사라단이 지휘하는 군대가 예루살렘을 초토화 시켰다. 성과 왕궁과 성전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성 안에 있는 집을 모두 다 불태워 버렸다. 일순간에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비천한 백성 일부만 남겨서 저들이 포도원의 농사를 짓게 하였고 대부분은 모두 다 포로로 결박해서 바벨론으로 끌고 가 버렸다. 바벨론의 군대는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의 두 놋 기둥을 뽑아갔다. 성전 뜰의 놋 바다도 깨트려서 그 놋을 모조리 다 가져 갔다. 가마, 부삽, 부집게, 숟가락, 놋 그릇 등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다 가져갔다. 심지어는 불 옮기는 그릇과 주발까지 모조리 다 가져 갔다. 금과 은으로 된 모든 성물들을 싹 쓸어 가져가 버렸다. 비참하고 참담한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포로의 땅에서 죽어간 이들도 많았다. 바벨론의 포로 생활 70년 후에 더러 살아남고 그 곳에서 태어난 후손들 중에 예루살렘과 유다 땅으로 되돌아 올 수 있는 날이 왔다. 그런 새로운 날의 새 역사가 가능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 때에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드린 감사의 예배 찬송이 시편 107편이다.
그 고백 중의 하나가 4절과 5절이다.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그렇다. 얼마나 오래도록 광야의 사막 길에서 방황하여야 했던가. 거주할 성읍이 없는 참담한 나그네 인생길에서 주리고 목이 말라 고생하며 그 영혼조차 피곤에 지쳐 지내던 날들이 얼마였던가를 회상하며 예배드리고 있는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와 6. 25를 겪은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는가. 부산에 가면 6.25참전용사의 묘역이 있다. 유엔 묘지이다. 서구에서 우리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날은 제1차 세계대전이 4년 만에 끝난 1918년 11월 11일이다. 무려 900만 명의 목숨을 잃은 제 1차 세계 대전을 유럽에선 'The Great War’(대 전쟁)라 부른다. 영국의 한 저널리스트는 이를 마지막 전쟁인 줄 알고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The War To End All Wars)이라고 했다. 영연방 국가들과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과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이 11월 11일에 모든 전쟁에서 사망한 이들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는 날이 됐다. 전 세계 21개 나라에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죽거나 실종된 장병들이 40,895명에 이른다. 6.25 전쟁의 사상자는 민간인 포함하여 450만명에 이른다. 산업 시설의 43%가 파괴되었다. 가옥과 주택 1/3이 불탔다.한국전에 참가한 미군 장성의 아들들은 모두 142명이었고 그중 35명이 전사하였다. 한국전에 참전하였던 미군 전사자만도 모두 54,000여명에 이르고 부상자는 10만 명도 넘는다. 벤프리트 미 8군사령관의 아들지미 밴프리트 2세 공군 중위도 압록강 남쪽의 순천지역을 폭격하기 위해 출격했다가 새벽 3시경 김포 비행단의 레이더와 접촉한 후 표적을 향해서 날아가더니 레이더에서 사라진 뒤 소식이 끊겼다. 마지막 UN군 사령관인 마크 클라크 대장의 아들 클라크 대위도 금화지구의 저격능선에서 중대장으로 싸우다가 세 번에 걸친 부상으로 전역을 했으나 결국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나중에 아들도 장군이 된 워커 장군도 한국 전에서 사망하였다. 1952년 12월,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인 노르만디의 영웅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한국 전선을 살피기 위해 방한하여 8군 사령부를 찾았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아들도 소령으로 한국전에 참전 중이었다.
캐나다 6·25 참전 용사 빈센트 커트니(Vince Courtenay)씨는 1951년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혼성 3개 대대가 밀려 내려오는 중공군을 막아낸 '가평전투'에 참전했던 참전용사이다. 올해 그의 나이는 79살이다. 그는 2007년에 매년 11월 11일을 기해 전 세계의 6·25 참전 군인과 유족들이 '부산을 향하여(TURN TOWARD BUSAN)' 1분간 묵념하자고 제안했다. 나라마다 시차(時差)가 있는 점을 감안해 시간은 부산의 오전 11시에 맞추자고 했다. 그해 11월 11일 밤 9시 캐나다 오타와에선 100여명의 참전 군인들이 모여 머리를 숙였다. 첫해 4개 나라가 참여했고 2012년 미국도 동참했다. 국가보훈처가 '부산을 향하여'를 올 2014년부터 21개국 모두가 참여하는 행사로 확대키로 했다 한다. 이미 21개국 참전 용사 단체들에 연락을 끝냈다. 서울에만 200개의 플래카드를 달았고 부산에도 달고 있다 한다. 10월 30일 오전 10시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어 일반인들로부터 이와 같은 묵념 행사 참여 의사 표시와 함께 사진 등록을 받기 시작했다. 캠페인을 확산시켜 행사 당일까지 10만 명을 넘긴다는 목표다. 부산 유엔묘지는 한국 정부가 유엔에 영구 기증해 유엔이 관리하는 세계 유일의 묘지다. 1951년 조성 당시 1만 여 위(位)였으나 차츰 본국으로 이장해 지금은 2300 여 위(位)가 남아 있다. 낯선 나라에 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젊음을 바친 분들의 희생을 다 갚을 길은 없다 해도 11월 11일 11시 1분의 묵념으로 그들 영혼과의 끈은 끊기지 않을 듯하다.
119년 전인, 1895 년 8월 20일 새벽 5시 30분. 경복궁에서 갑자기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일본의 낭인배(浪人輩) 30여 명의 공격을 받은 조선인 훈련대 연대장 홍계훈(洪啓薰)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궁궐 침입에 성공한 낭인배는 곧장 왕비의 거처인 곤녕합(坤寧閤)으로 향했다. 곤녕합에 딸린 옥호루(玉壺樓)에 뛰어든 낭인들은 궁녀들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냈다. 나중에 명성황후라고 불리게 된 고종의 왕비인 민비를 내동댕이치고 구둣발로 가슴을 짓밟고 칼로 찔렀다. 세 명의 궁녀들도 동시에 현장에서 살해되었다. 낭인배 두목은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어 민비를 확인한 뒤 시신을 곤녕합 근처의 숲 녹원(鹿園)으로 끌어내도록 부하에게 명령했다. 이어 시신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질렀다. 다른 시신들은 궁궐 밖으로 옮겨져 비밀리에 처리되었다. 이 때가 6시 5분경이었다. 불과 30분 안에 벌어진 끔찍한 사건이었다.
미국인 선교사 앨런과 러시아 공사 베베르가 서둘러 고종을 알현했을 때는 7시였다. 미리 들어와 있던 일본공사 미우라(三浦梧樓)가 고종에게 "대원군과 조선인 훈련대가 일으킨 반란"이라고 거짓말로 보고하였다. 몇 시간 뒤에 김홍집을 총리대신으로 하는 친일 내각이 구성되었다. 은폐 기도에도 불구하고 곧 온 세상에 일본 미우라 공사의 만행이 알려졌다. 일본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미국, 러시아, 영국 등 각국 공사들의 강경한 요구에 떠밀리게 되었다. 결국 일본은 미우라 공사를 비롯한 사건 관련자 47명을 본국으로 소환하여 재판에 부쳤다. 하지만 이듬해 1월 히로시마에서 열린 재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전원 무죄 석방시켰다. 서구 열강들도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하여 차츰 침묵하고 말았다. 이로써 치욕적인 '민비 시해 사건'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을 아는가. 민비가 죽은 그 다음 해인 1896년 2월 11일 친러 세력과 러시아 공사의 공모로 고종과 왕세자가 궁궐을 벗어나 지금의 서울특별시 정동(貞洞)에 위치한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가서 지내게 했다. 부끄럽고 참담했던 구한말의 역사의 한 장면이다.
역사적으로는 힘이 없으면 힘이 있는 세력에게 짓밟힘을 당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그렇게 단순하게 기록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한 성경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을 모르는 앗수르나 바벨론과 같은 이방 나라들에게 붙이셨던 것으로 해석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우시기도 하고 무너지게도 하시는 전능자이시니 말이다. 시편 107편의 43절로 되어 있는 긴긴 내용도 자세히 분류해 보면 그런 내용들이다. 가령 38절과 39절에 보면, 하나님은 “또 복을 주사 그들이 크게 번성하게 하시고 그의 가축이 감소하지 아니하게 하실지라도 다시 압박과 재난과 우환을 통하여 그들의 수를 줄이시며 낮추시는도다 .”고 하였다. 우리를 대적자들의 악한 손에서 건져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불행한 역사 속에 동서남북으로 흩어졌던 땅에서 다시 되 돌아와 함께 모여 살아가도록 모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진심으로 깨달아 알고 믿고 주님을 높이며 예배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 감사의 계절에 생각하며 감사하고 뒤를 돌아보아 매사에 범사에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고통 중에서 건지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셨음으로 감사.
6절과 7절에 보면,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근심 중에 부르짖는 인생들의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시는 아버지이시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의 가사처럼 말이다.
“내 부르짖음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영원히 주 찬양 합니다. 내 맘을 다해”
하나님은 여주인 사라에게 쫓겨난 하갈의 부르짖음도 들어 주셨다. 창세기 16장에 보면 사라의 여종인 하갈이 주인 아브라함의 씨를 받아 생명을 잉태한 후에 여주인을 멸시하였다. 결국은 가정불화가 심각해지고 사라의 성화를 견디지 못한 하갈은 사라의 학대를 피하여 광야로 도망치고 말았다. 그 때에 그 광야에 여호와의 사자 즉 천사가 나타났다. 그리고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의 수하에 복종하라. 네 씨가 번성하여 그 수를 헤아리기 못하게 많게 할 것이다. 네가 임신 하였으니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하여라.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느니라”고 위로하며 말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에게 부르짖는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지금 어떤 형편 가운데 있는가. 가난한가. 병약한가. 재물도 많고 경제력도 있는데 왠지 외롭고 쓸쓸한가. 왜 사는지 삶의 의미가 없고 무기력한가. 다 이룬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공허함과 무기력증이 밀려드는가. 남들은 나를 부러워하는데 나는 내가 실망스러운가. 나는 세속적으로 사치하고 낭비하고 치장하고 몸을 가꾸는 것에 가진 부를 쏟아 붓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가. 하나님의 선한 사역을 위해서는 손이 인색해 지는데 세속적으로 허장성세(虛張聲勢) 하며 살아가지는 않는가.
이 땅 위에 영원한 것이란 없다. 오직 하나님을 향할 때에라야만 고통과 고난과 환란과 시련과 질병과 낭패가 끊임없는 세상에서 참 만족과 위로와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목자이시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고백으로 하나님의 전적인 인도하심을 고백하는 겸손한 고백신앙을 고백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었다면 사울 왕의 칼과 창을 피하여 광야와 동굴로 숨고 피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야인 생활을 하며 도피 생활을 계속해야 했던 다윗에게 예루살렘 다윗 성의 영광스러운 날이 주어질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의 손길이 인도하시는 그 보살핌이 아니었다면 바벨론 포로 생활 현장에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조들의 땅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와 성전은 재건하고 하나님께 제사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영광스러운 날이 올 수 있었겠는가. 남의 나라, 남의 땅에서 포로의 후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조들의 땅에 돌아와서‘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신 축복은 얼마나 감사하고 놀랍고 복된 일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하심에 감사.
그러므로 지금 저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인자하심과 기적 앞에 감격해 하고 감사해 하며 찬송하고 예배드리는 것이다. 8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라고 하지 않았나.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목말라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과 은혜에 영혼이 고파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주린 마음을 갖고 간구하고 부르짖고 기도하며 찬양하며 살아가면 그 사모하는 영혼, 그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되 만족하게 하시고 풍성하게 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개들도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고 예수께 간구하였을 때에 사랑하는 딸이 귀신으로부터 풀려나 자유케 되는 치유의 응답을 받지 않았나. 예수의 뒤에서 옷 자락을 잡았던 12해 혈루증 여인이 예수의 옷만 잡아도 낳겠다는 간절한 믿음을 갖고 주님의 뒤에서 예수의 옷 자락을 만졌을 때에 병에서 고침을 받지 않았나. 예수는 그 때에 자신의 능력이 나간 것을 아셨다. 그리고 그 여인의 믿음을 축복하셨다. 사모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모하고 목 말라고 영혼의 기갈과 영혼의 굶주림을 하소연하면 사랑의 주님이 귀 기울여 들어 주시는 것이다.
밀알복지재단의 김해영 씨는 아프리카의 영혼들을 끌어안은 작은 거인이 아닌가. 국제 사회복지사로 활동 중인 김해영 선교사를 보라.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시절 단지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에게 내던져져 평생 척추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던 작은 거인 김해영씨의 삶은 한 편의 영화와도 같았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김해영씨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벅찬 삶의 무게를 못 견디고 가출을 선택한다. 그런 뒤 한의원에서 식모살이를 하다 우연히 알게 된 <서울중부기술교육>에서 운영하는 무료 직업훈련을 통해 기계편물 기술을 배우게 된다. 손재주가 유난히도 뛰어 났던 김해영 선교사는 식모로서의 삶을 접고 공장에 취직하여 여공생활을 하게 된다. 기계편물 기술로 인해 김해영씨의 삶은 180도 역전된다. 김씨는 <전국 장애인 기능대회>, <전국 기능대회>에서 기계편물 부문 금메달을 모두 휩쓴 것에 그치지 않고, <제2회 세계 장애인 기능 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철탑산업훈장>까지 받게 된다. 김해영씨와 아프리카의 인연은 김씨가 우연히 기계편물 기술을 배우게 된 것과 비슷하게 우연히 참여한 자원봉사를 계기로 시작되었다. 아프리카 보츠와나 지역에 편물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김해영 선교사는 그 땅을 밟는 순간 아프리카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녀는 미국 콜럼비아 대학원에서 복지학을 더 공부할 기회도 가졌다. 국제 복지사로 활동 중이다. 그녀는 그녀의 주위 사람들의 편견에 사로 잡혀 평생을 살줄로만 알았던 김해영씨는 아프리카에서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여성이요 그의 134센티미터의 작은 키보다 천배 만 배 더 큰 거인 여성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윗은 시편 62편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요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62:1-2)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여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나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