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는 여호와의 기업(시127:1-5) 2014. 5. 4
어린이 주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자녀를 위한 기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알려져 있다.
나에게 이런 자녀를 주옵소서
약할 때에 자기를 분별할 수 있는 강한 힘과
무서울 때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담대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내게 주옵소서
주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아는 자녀를 나에게 허락하옵소서
바라옵건데 그를 평탄하고 안이한 길로 인도하지 마옵시고
고난과 도전에 대하여 분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폭풍 속에서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긍휼이 여길 줄 알도록 가르쳐 주옵소서
그 마음이 깨끗하고 그 목표가 높은 자녀
남을 정복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자녀
장래를 바라보는 동시에 과거를 잊지 않는 자녀를 내게 주시옵소서
이것을 다 주신 다음 이에 더하여
유머를 알게 하시고
인생을 엄숙하게 살아감과 동시에
삶을 즐길 줄 알게 하시며
자기 자신을 너무 중대하게 여기지 말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은 소박하다는 것과
참된 지혜는 개방된 것이요.
참된 힘은 온유한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나 아버지는 어느 날
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자녀는 가정의 미래요 국가의 장래이다. 자녀가 없는 가정 혹은 어린이가 없는 나라를 상상하여 보라. 아브라함은 적지 않은 양과 염소와 소와 나귀와 약대를 소유한 거대한 목축을 하는 족장이었다. 그런 그에게 자녀가 없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던 75세 때까지 아내 사라와 단 둘이서 살았다. 물론 이웃에는 조카들이 태어나서 자라고 집안에는 각종 일을 돕던 남녀종들이 적지 않았으나 정작은 친 아들딸이 없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약속으로 나이 100세에 언약의 아들 이삭을 낳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 기다리다 지쳐서 아내 사라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사라의 몸종이었던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이란 아들을 낳은 것이 사실이나 하나님은 그와 같은 출산 과정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아브라함은 그 아들 이삭을 통하여 그의 나이 160살에야 쌍둥이 손자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는 기쁨을 얻었다. 아들 이삭이 40살에 리브가에게 장가든지 20년 만에 쌍둥이 손자가 태어난 것이다. 그와 같은 더딘 후손의 번성인데도 하나님은 하늘의 별처럼 땅의 모래처럼 무수히 많은 자손이 태어날 것이라고 그에게 약속하여 주셨다.
과학자 게리 그린스버그가 2008년에 포착한 모래 입자 사진이 세상에 알려 지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모래를 250배 확대한 것으로 알려진 이 사진들은 단번에 보는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는 게리 그린스버그가 모래 입자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서 발견한 것인데 그는 모래가 총천연색의 산호파편과 보석 같은 외양의 광물과 작은 갈색 암석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시편 128편 3절에는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라고 하였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시92:12-13)라고 하였다.
우리에게 있어서 자녀란 그런 존재이다. 부모의 눈높이로 볼 때에 아들딸과 손자손녀를 다양하게 평가하지만 가정에 선물로 주신 자녀들은 그처럼 단순하게 한 두 마디의 말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하늘의 별과 같고, 알고 보면 그처럼 빛나고 아름다운 모래와 같은 존재들이다. 물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에 모래와 같이 많게 하시겠다는 약속은 숫자적인 것이지만 별처럼 아름답고 모래처럼 아름다운 존재가 우리의 자녀가 아닌가. 그 높은 건물을 지을 때에도 시멘트에 모래를 섞어서 짓지 않는가.
그러므로 바라기는 우리의 자녀들이 갓 태어난 어린 아기이든 혹은 청소년이든 청년이든 아니 그 이상의 나이가 들어가는 그 어느 누구이든 욕심이 아닌 열정의 사람이요, 집착이 아닌 사랑의 사람이요, 자만이 아닌 자신감의 사람이요, 게으르지 않은 여유의 사람이요, 변명하지 않는 자기 위안의 사람이요, 독선이 아닌 주관의 사람이요 우울이 아닌 슬픔을 슬퍼할 줄 아는 건강한 감정의 인격으로 살아가길 소원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이 땅에 어린 아기로 태어나서 자라나셨다. 한 가정에 한 아기의 탄생은 하나님의 창조섭리요 신비한 축복이요 은총이 아닐 수 없다. 어제 5월 첫 삼일 새벽 기도회 시간에 민병안 석정화 집사 부부의 어린 아들 덕기가 엄마 품에 안겨서 교회에 앞에 나와 새벽 찬송을 하는 자리에 같이하고 제 아빠 품에 안겨 나와서 안수 기도를 받기 원하는데 어린 아기 덕기가 새벽잠이 없는지 말똥말똥한 눈망울로 쳐다보는 새벽의 얼굴 모습이 얼마나 예쁘고 귀여웠는지 모른다.
또한 지난 월요일인 4월 28일에는 곽남태 김명숙 권사 가정에 외손녀가 제주도에서 태어난 사진을 핸드폰으로 전해 받았는데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 모른다.
누가복음 9장 46절 이하에 보면 예수께서는 서로 크다 하고 서로 교만하게 변론하던 제자들에게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눅9:48) 또한 예수께서는 천국이 마치도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고도 말씀하셨다.
어린이 주일인 오늘 특별히 시편 말씀 중에서 솔로몬의 시(詩)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는 시편 127편의 말씀을 함께 묵상하는 중에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집을 세우시고 성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
집은 여호와께서 세우셔야 한다. 물론 여기서 말씀하는 집이란 건물로서의 집이 아니라 가정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또한 성(城)도 여호와께서 지켜 주셔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세우고 지키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만다. 시작부터 끝까지 인간의 범사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인간이 제 스스로의 노력으로 다 되는 것 같아도 절대로 그렇지 않다.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는 것은 인간이 하는 것이지만 그 씨앗이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분량이다. 집이란 가정을 일컫고 성이란 한 국가의 통치 질서와 조직과 체계의 그 모든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닌가. 집안에 아무리 가족이 많고 성 안에 아무리 군사가 많고 말과 소가 많고 황금 방패를 손에 들고 금은보화가 넘쳐 나도 하나님이 그 성을 지켜 주시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그러므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다스리고 성취하고 인도하시고 지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겸손하게 순종하며 하나님을 높이고 찬송하며 살 줄 아는 가정과 나라가 복된 것이다. 솔로몬의 지혜시인 이 아름다운 시편 127편은 마치도 잠언의 말씀을 대하는 것과 같다. 잠언 21장 31절에도 보면,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하셨다. 그 앞 절인 잠언 21장 30절에 보면,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은 매사에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고 겸손하여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우리의 지혜, 건강, 재물, 출입하는 범사에 내 마음대로 나 스스로를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그 무엇이 있는가.
제 아기는 깔아 눌려 죽이고 곁에 있는 여인의 한 아기를 갖고 서로 제 아기라고 고집하고 주장하는 두 여인이 솔로몬 앞에서 판단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그 아기를 둘로 나누어 갖게 하라는 솔로몬의 판결은 명 판결이었다. 그와 같은 지혜로운 생각도 하나님이 주셔야 하는 생각 아닌가 말이다. 건강이란 것도 어찌 내가 조심하고 내가 삼가고 내가 주의 한다고만 해서 유지되는 것인가. 내 생명을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나의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조성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호흡, 맥박, 신경 조직, 피부의 세포 하나, 오장 육부 사지백체의 그 무엇 하나, 뇌의 신경 조직 하나라도 주관하고 다루어 주시지 않으면 어찌 내가 내 건강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린 자녀가 노래를 잘하는가. 그 목소리는 누가 주셨는가. 그림을 잘 그리는가. 그 솜씨는 누가 주셨는가. 달리기를 잘하는가 아니면 축구 농구 야구를 잘하는가. 그 빠른 팔다리와 건강과 재치는 누가 주셨는가. 무엇을 뚝딱 거리면서 잘 만드는가. 그 손끝의 솜씨와 재능을 누가 주셨는가. 물론 ‘구슬이 세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긴 하지만 말이다.
가만히 보면 공중의 새 한 마리나 벌과 나비 한 마리라도 하나님의 창조 신비가 있다. 서울에서는 산에 가도 들 짐승이나 산 짐승을 만나기도 어렵긴 하지만 다람쥐 한 마리나 개구리 한 마리 혹은 물속의 물고기 한 마리, 민물 새우 한 마리라도 하나님이 내시지 아니한 것이 그 무엇이 있겠는가. 욥기 39장에 보면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이 새끼 낳는 것을 네가 본 적이 있느냐.”(욥39:1)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그 위엄스러운 콧소리가 두려우니라.”(욥39:19-20) 또 이런 말씀도 있다. “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쪽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말미암음이냐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따름이냐.”(욥39:26-27)
인터넷 사진에서 악어의 눈꺼풀 위에 앉아서 악어 눈물을 빨아 먹는 나비와 벌떼의 사진을 보았다. 하나님이 내신 자연의 신비가 아닌가.
아굴의 잠언인 잠언 30장에 보면,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 넷이 있나니 곧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준비하는 개미와 약한 종류로되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과 임금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와 손에 잡힐 만하여도 왕궁에 있는 도마뱀이니라.”(잠30:24-28)고 하였다. 여기 말씀하는 사반이란 바위 사이에 사는 너구리(cony) 종류를 말한다. 그러고 보니 개미와 너구리와 메뚜기와 도마뱀 그 모든 것의 출입이 신기하지 않나. 여러 해 전에 스리랑카에 가서 서남아시아 선교사 대회로 강의하고 섬기고 마지막 날 먼 곳으로 이동하여 선교 현장을 둘러보려고 마지막 날 밤 숙소에 짐을 풀었는데 방안 천장에 도마뱀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섬뜩하였다. 선교사에게 말하였더니 그 정도는 보통 늘 상 대하는 장면이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우리 가정의 어린 아기로부터 어린 날을 지내고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지내는 중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예수님을 만나는 자녀들이 되도록 양육하자. 그렇지 못하면 헛되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정이든 나라이든 지키고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셔야 한다는 신앙이 없이 성장해 버리면 제 잘 나서 잘하는 줄 알고 창조자를 모르는 어리석고 교만한 인생이 되고 만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아들딸, 우리의 손자손녀들에게 이런 신앙을 가르치자. 집은 여호와께서 세우셔야 한다. 나라는 여호와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과 믿음 말이다.
성실하게 살아가며 하나님 사랑을 아는 자녀들.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눕는 생활은 과거나 오늘 날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부지런하고 성실한 것이 좋은 것 아닌가. 영국 속담에도 “우유를 받아 마시는 성주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우리가 부지런히 살고 성실하게 노력하고 매사에 열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다 중요하고 필요하고 그래야 하지만 언제 일어나는지 언제 눕는지 언제 먹는지 언제 쉬는지도 모르게 눈코 뜰 새 없이 뛰고 달리며 모으고 쌓아도 여호와께서 함께 해 주시지 않으면 헛되단 말이다. 그러므로 매사에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고 예배하고 섬기고 순종하고 믿고 의지하고 따르며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이사야 43장 16절 이하에 보면,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시고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시며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하였다. 광야에 물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셔서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고 하셨다.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가. 그 생각이 결과가 되고 열매가 되고 결실을 맺도록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노벨상을 타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역사상 노벨상을 2번이나 탄 주인공들도 4명이나 된다. 1989년 프랑스의 마리 큐리(Marie Curie, 1867-1934) 부부에 의해 방사능을 가진 폴로늄과 라듐 2가지 원소가 발견되었다. 즉 우라늄광선(피치브랜드)을 화학 및 전기 분리 방법을 사용하여 여기서 순수한 우라늄보다 훨씬 강한 방사능을 띤 폴로늄(Po:원자번호 84)과 라듐(Ra:원자번호 83)을 분리하는데 성공하였다. 라듐은 약 2톤의 피치브랜드로부터 약 100㎎정도가 염화물 형태로 침전되었는데 같은 양의 우라늄 보다 100만 배가 넘는 방사능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와 같은 연구의 업적을 인정받은 퀴리 부부는 4년 후인 190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나란히 받은 부부로 유명하다. 마리 퀴리 부인은 폴란드에서 태어났고 프랑스 파리 소르몬느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거기서 만나 남편 피에르 퀴리와 결혼하고 평생 물리학과 화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남편과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그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 계속 연구한 결과로 노벨 화학상을 한 번 더 받았다. 67살에 세상을 떠는 마리 퀴리의 사망 원인을 역사는 방사능으로 인한 영향이었다고 판명하였다.(골수암, 백혈병) 또한 그들의 딸과 사위도 1947년도에 생리의학상을 받는 가문 최고의 영광스런 신기록을 남겼다.
그와 같은 일이 어찌 사람의 노력만으로 가능할까.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다고 해서 그런 일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가. 그러므로 여호와를 인정하고 경배하고 기도하고 섬기고 찬양하고 그 분에게서 지혜를 공급받고 의지하여 한다.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127:2)고 하셨으니 고민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염려하지 말고 주께 간구할 줄 아는 자녀로 키워 내자.
성 안에서 유력하게 살아가는 축복된 자녀들.
본문의 3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은 얼마나 시적이고 아름다운가.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한나가 그렇게 오래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하여 낳은 아들 사무엘이 어찌 어머니 한나의 노력의 산물인가. 그녀의 남편 엘가나의 수고의 결과인가. 모세와 다윗을 그의 어머니가 낳았으나 어찌 저들이 어머니의 작품인가. 히브리의 남자 아기들을 모두 다 죽이라는 애굽의 바로 임금의 명령을 어기고 삼 개 월을 숨겨 키우던 모세가 죽지 않고 우여 곡절을 거쳐서 그의 나이 80세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출애굽하게 하는데 쓰임 받는 지도자가 되기까지 어찌 모세의 생이 제 스스로의 힘으로 가능했을까. 태어난 지 3개월 된 어린 모세를 나일 강의 갈대 상자에서 건진 것은 바로 왕의 딸 공주가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모세를 광야 40년 늙어 가던 그의 나이 80에 호렙산의 불이 붙은 떨기나무의 환상 앞에서 부르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계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모세의 하나님이요 다윗의 하나님이 오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다. 태의 열매인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업과 상급으로 주시는 선물이 아닌가.
그러므로 오늘 날 성도된 우리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며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인간사는 길흉화복 그 모든 범사에 반드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이 세상에 우연한 일이란 없다. 모든 것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으시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믿고 따를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예배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신명기 28장 4절과 11절에 보면 자녀는 하나님이 내시는 축복의 상징이다. 유대인들은 많은 자녀를 낳는 것을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기며 그렇게 믿고 살아오고 있다. 사실 그렇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렇게 노래한 것이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12아들을 낳아서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되게 하였다. 하나님이 야곱을 통하여 하신 일이다. 그러므로 내 가정의 자녀이든 교회 안에서 만나는 자녀이든 이 사회의 어느 길거리에서 만나는 자녀이든 저들을 축복하여야 할 것이다.
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의 ‘어린이 날 노래’를 아는가.
날아라 새들아 푸른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하늘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세상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오월은 푸르고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어린이에게서 배우자.
하늘에서 왜 비가 내리느냐고 묻자 어린 딸이 대답하였다. “꽃이 있으니까 비가 내리지.” 학교에서 돌아오던 딸아이가 비가 내리는 날 우산을 쓰고 걷고 있었다. 하늘에서 번개가 치자 어린 딸아이가 엄마에게 말하였다. “하나님이 사진 찍으시나 봐 후레쉬가 터지쟎아.”
어린 아이에게서 천국의 마음을 배우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복된 가정, 복된 자녀, 축복된 5월을 살아가자. 가정마다 하나님과 주 예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빈다.
“하나님!
이 땅에 태어나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보호하시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자들을 질병과 사고와 사건으로부터 건져 주시고 장차 이 나라와 열방 중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아름다운 인생들이 모두 다 되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과 열방의 어린이들에게 지혜와 필요를 채워 주시고 은혜를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병약한 아이들, 유약한 아이들, 학대 받는 아이들, 방치된 아이들, 소외된 어린이들을 감싸 안고 더불어 살아가는 가정, 나라, 교회, 이웃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