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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서머나 교회와 같은 교회(계2:8-11) 2014.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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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2-16 20:30 조회 19,351 댓글 0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환난과 궁핍과 비방과 시험으로 대변한 서머나 교회 성도들의 고난 극복의 신앙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칭찬으로 일관하고 있다. 주후 70년에 태어나서 86년을 살다가 로마의 총독에게 붙들려 나가 원형 극장 안에서 그를 조롱하는 무리들 앞에서 화형 당해 죽은 서머나 교회의 폴리캅 감독은 오늘 날로 하면 서머나 교회의 담임목사였다.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 주겠다고 회유하자 폴리캅이 대답한 말이 역사에 전해진다.
 
“내가 86년 동안 살아오도록 주님은 단 한 번도 나를 배신하신 적이 없으신데 어찌 내가 지금 주님을 부인한단 말이오.” 하고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화형대 위에서 타 죽어 가면서
 
“사랑하는 주님, 저를 순교자의 한 사람으로 택하사 부활과 영생의 잔을 받게 하시니 그 은혜를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대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원토록 영광과 존귀를 드리옵니다. 아멘”
 
 
성경과 기독교 역사의 인물들을 보면 하나님을 믿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고난의 역사였다. 다니엘서의 주인공인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다.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거운 풀무 불 가운데 던져졌다. 요셉이나 예레미야는 구덩이에 던져졌다. 믿음 장인 히브리서 11장은 이와 같은 신앙 선조들의 굳센 믿음을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11:33-38)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들 가운데 가롯 유다는 예수를 은 30냥에 팔아 버리고 배반하고 도망가서 피밭이라고 불리는 아겔다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외에 사도 요한만이 장수하며 복음을 전했고 나머지 제자들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안드레를 비롯한 모든 이들인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 당하였다.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이다. 우리나라에도 처처에 순교의 현장이 기독교 사적지로 전해진다. 한강변의 양화진, 절두산의 역사가 그러하지 아니한가. 주일 오후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그 곳에 가서 보라.
 
충남 서산군의 해미면에 있는 해미라는 곳은 천주교 박해지로 유명하다. 1790-1880년에 이르는 약 100년 동안 천주교 신자를 국사범으로 처형하였다. 돌에 메 쳐서 죽이고 나무에 매 달아 죽이고 나중에는 웅덩이에 집단으로 생매장하여 흙으로 덮어 죽였다. 손과 발을 묶어서 물웅덩이에 빠트려 죽이기도 하였다. 그 숫자가 정확하지 않다. 수천 명에 이른다.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 박해, 1866년 병인박해로 이어지는 핍박 기간에 병인박해 때에 죽은 신자만도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동서고금에 순교자 없이 기독교의 복음이 전파된 것은 없다. 요한 계시록에서 말씀하는 서머나는 오늘 날 터어키 서부에 위치한 큰 항구도시인 이즈밀이다. 스미르나라고도 한다. 요한 계시록의 초대 7교회 중에서 유일하게 건물이 있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곳이다. 황제 숭배를 거부해 순교한 서머나 교회의 담임 목사였던 감독 폴리캅을 기념하여 세운 교회이다. 서머나 교회는 B. C 400년대의 비잔틴시대에 세워졌고 오늘 날의 교회는 120년 전인 189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대 교회 당시에 서머나 지역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았고 그들은 기독교인들을 잔인하게 탄압하였다. 또한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많은 재정적 궁핍을 겪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머나교회는 모든 핍박과 유혹을 물리치고 담대하게 믿음을 지켜 온 모범적인 교회로 예수님께 칭찬만 받았다. 초대 교회인 서머나 교회는 사도바울의 3차전도 여행 때에 사도 바울에 의해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사도 요한에게 직접 교육을 받았던 폴리캅은 A. D. 115-116년까지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다. 156년에 서머나 지역에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지방 총독인 스타티우스는 빌라델피아 등지에서 잡아 온 11명의 기독교인들을 원형 경기장에서 굶주린 사자의 먹이로 물어 뜯겨 죽게 하였다. 이때 폴리캅은 밀고자들에 의하여 붙잡혔는데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스타티우스는 그를 살리기 위해 그의 신앙을 부정하라고 종용하였다. 그러나 폴리캅은 순교를 각오하였다. 사나워진 군중들은 그를 사자 밥이 되게 하여 죽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총독은 이미 사자 밥으로 던져 넣는 심판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 때에 성이 난 군중들은 물러가지 않았고 그를 장작더미에 올려 화형 시켜 죽이라고 외쳐댔다. 집행관들은 장작더미에 폴리갑을 올려놓고 불을 붙였다. 폴리갑의 순교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불길이 크게 솟아올랐을 때 우리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불꽃은 마치 바람을 맞은 돛처럼 아치 형태를 이루어 순교자 폴리갑의 육체를 불의 담처럼 에워쌌습니다. 그 한 가운데 서 있던 폴리갑의 몸은 전혀 불타는 육체 같지 않았습니다.”
 
폴리갑이 순교당할 당시에 군중들 가운데서는 “이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의 아버지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오늘날에도 그의 순교를 기리기 위해 그가 세웠던 교회 위에 현대식으로 폴리캅 기념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폴리갑이 순교 당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에 보면 화폭 끝자락에 두 손이 묶인 체 서있는 낯선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이 그림을 그렸던 화가 자신인 레이몽드 페레라고 한다. 그는 성화를 봉헌할 때 자신도 항상 주님 앞에서 폴리캅처럼 순교자의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자 화폭 끝자락에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넣었다고 전해진다. 만약 폴리갑 다음에 순교할 순교자의 차례가 나 자신이라면 과연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순교에 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하는 주님은 자신을 누구라고 소개하고 있는가.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십자가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첫 열매이시다. 그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을 칭찬하신 말씀이 오늘의 본문이다. 서머나 교회는 책망 받은 내용이 없이 칭찬만 받은 교회요 성도들이다.
 
 
환난과 궁핍을 잘 이겨낸 실상은 부요한 자.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신들의 신앙을 잘 지켜 내기 위해서 어떤 환난이나 경제적인 궁핍도 굳세게 잘 이겨낸 성도들이었다. 종교,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어떤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견디고 참고 이겨낸 성도들이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이었다. 주님은 저들이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격려 하여 주었다. 육신적으로는 환난을 당하고 심지어는 죽임을 당할지라도 담대하였다. 물질적으로 궁핍하고 가난하고 굶주릴지라도 떳떳하였다. 이는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는 당시 성도들의 고백이었다.
 
배부르게 살고, 찐 살을 빼기 위해서 헬스클럽에 가서 뛰고, 뱃살을 빼기 위해서 피하 지방 제거 수술을 받는 한국의 실상으로 하면 별로 가슴에 와서 닿는 내용들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그와 같은 대한민국의 현실과 한국교회 성도들의 실상이 사실은 더욱 신앙적으로 위험한 때가 아닐 수 없다.
 
가령 사도 바울을 보라. 그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부활 예수를 만나기 이전에는 유대 종교 안에서의 신분을 비롯한 정치, 종교, 사회, 경제적인 신분이 막강하고 안정된 이였다. 그러나 예수께 붙들린 이후로 그는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굶고 배고프고 춥고 헐벗는 나날을 견뎌 내야만 하였다. 그는 고린도후서 6장에서 말씀하는 대로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고후6:3-4)지낸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런 핍박과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면서도 그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9-10)고 고백하였다.
 
바로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이 그러하였다. 저들은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었으나 실상은 부요한 자의 영적 풍요를 빼앗기지 않고 살았던 신앙의 승리자들이었다.
 
요즘 남한의 교회에는 별 종교 탄압이나 별 큰 환난이 없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 같은 내용을 설교 한다는 것은 크게 의미 전달이 잘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핍박을 받는 환경에서 예수 믿는 이들이 더러 있을 수는 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서 외면당하고 조롱받는 이들이 없지 않다.
 
개화 초기에 선교사들이 이 땅의 처처에 복음을 전해보려고 씨름하던 당시라든가 혹은 일제시대와 6. 25를 전후한 당시의 시대 상황으로 하면 하나님을 믿는다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든지 공개적으로 교회에 다니고 예배드리러 다니는 그 행위 자체가 핍박의 시작이던 때가 있었다. 환난이 없었다면 주기철 목사님이나 유관순 열사와 같은 인물이나 화성 제암리감리교회의 순교자가 탄생하였겠는가. 일본의 군대는 제암리의 37명의 마을 신자들을 예배당에 가두고 불을 질러서 태워 죽였다.
 
최근에 극장에 개봉된 북한 지하 교회의 실상을 공개한 영화인 “신이 보낸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오늘 날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지구의 아시아 대륙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이 작은 반도 국가의 북반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14만 명이라고 말하는 북한 지하 교회 성도들이 겪는 환난의 실상을 처절하게 보게 할 것이다. 환난과 궁핍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말한다. 예수 믿는 다는 이유 때문에 좋은 직장에서 내어 쫓긴다든지 재산을 압류 당한다든지 감옥에 갇힌다든지 고문을 당한다든지 하는 것을 말한다. 북한은 매년 종교박해가 가장 심한 국가들 중에서 대표적인 국가이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실이 발각되면 지하 교회의 신자들은 바로 체포돼 고문당하고 살해되기까지 한다. 감옥생활을 벗어나더라도 당국의 감시는 계속된다. 탈북자 대상 선교사인 에릭 폴리 선교사는 “크리스천들은 그 때가 더 힘든 시간들이 될 수 도 있다. 감시당하고 기록당할 뿐 아니라 그들의 친척들도 추적당하고 핸드폰 통화까지 감시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는 크리스천들이 자유롭게 말할 권리마저 빼앗기고 있다. 특히 무함마드나 이슬람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을 하게 되면 종신형에 처해지거나 사형을 당한다. 아프리카의 소말리아는 급진 무슬림들의 위협이 심각한 수준이다. 크리스천들을 모두 다 제거하는 것이 목표인 소말리아는 얼마 전 20대 크리스천을 목을 베어 죽였다. 우리가 오늘 설교 후에 부르게 될 찬송가인 336장의,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라는 가사는 영국의 칼빈주의 성공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기 자신도 교구의 목사가 된 1849년도에 프레데릭 페이버 목사가 작사한 곡이다. 작곡가인 헨리 헤미는 예배 시간에 오르간을 연주하며 신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인물이다. 영국도 가톨릭으로부터 개신교 국가가 되기까지 많은 신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영국은 1553년에 에드워드 왕이 죽고 캐서린의 딸 메리가 여왕의 왕위에 오르자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관계복원을 진행하였다. 이때에 영국 내에서는 개혁운동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철저한 가톨릭 신자였던 메리 여왕의 기독교 핍박은 극악하였다. 메리 여왕이 나선 종교 박해로 인하여 300여명의 종교 개혁자들이 처형되었다. 800여명의 개혁자들이 유럽 대륙으로 피신하여 스위스의 제네바나 쮜리히,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등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신앙을 지켜 나갔다. 메리(Mary I, 재위, 1553-1558) 여왕이 죽고 엘리자베스(Elizabeth I, 재위, 1558-1603)여왕이 등극하면서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다.
 
지금의 미국은 1492년 10월 12일에 스페인의 대륙 탐험가인 크리스토퍼 콜럼부스(1451-1506)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이 신대륙을 발견한 일은 유럽인들에게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당시 종교, 사회, 지식, 경제 등의 모든 분야마다에서 팽창기를 맞았던 유럽의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스웨덴 등이 앞을 다투어 신대륙 진출에 경쟁을 보였다. 영국은 1497년에 신대륙을 방문하였으나 국내 사정으로 진출이 늦어져 1584년 엘리자베스 1세가 원정을 결심하면서 본격적으로 식민지 건설을 시작하였다. 영국인들은 정착지로 1607년 제임스타운에 건설되었던 버지니아 식민지를 거점으로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영국 청교도 박해를 피해 1608년 존 로빈슨 목사의 지도하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라이덴으로 피신하였던 청교도 35명은 말이 통하지 않고 직업도 쉽게 마련할 수 없던 네덜란드에 호감을 갖지 못하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1620년 9월 6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66일간 항해하여 버지니아로 향했다. 그러나 폭풍우에 밀려 보스턴 가까운 메사추세추 주의 플리머스의 케이프 코드에 11월 초 도착하였고 정작 육지에 오른 것은 그해 12월 11일이었다. 이들은 그곳에 머물기로 합의하고 식민지를 위한 하나의 계약에 서명하였다. 102명의 순례자들 중 절반이상이 첫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고 겨우 50여명만이 살아 남았다. 겨울이 지나자 콩과 옥수수를 심기 시작하였고 사냥과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서 연명해 나갔다. 통나무를 베어다가 예배당을 짓고 안전한 거주지를 세워 나갔다. 십여 년이 지난 1630년경에는 1,000명에 이르렀고 점차 번성해 갔다. 환난과 궁핍은 새로운 세계를 살아가게 하는 역전의 기회가 된다. 영생과 천국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 열락을 버리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열매이다.
 
유대인의 핍박을 이겨낸 신앙의 승리자.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을 위협하는 또 한 세력은 유대인들이었다. 저들 유대인들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에 이스라엘을 떠나서 이주한 이들이었다. 저들 유대인들은 혈통으로는 하나님의 선민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영접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저들은 표면적 유대인들이었다. 저들은 지켜야 하는 구약의 율법조차 지키지 않던 변질된 유대인들이었다. 그 한 예로 저들이 앞 장 서서 서머나 교회의 담임 목사격인 폴리캅을 안식일에 불태워 죽였다. 본문에 보면 예수께서는 저들 유대인들을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고 지적하셨다. 당시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이 당하는 핍박은 환난과 궁핍과 옥에 갇히고 매를 맞는 등의 고문을 겪고 순교당하는 일이 비일 비재하였다. 그러나 저들은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 성도들을 핍박하는 핍박을 마귀의 핍박이라고 하셨다. 마귀가 너희들 중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넣어 시험을 받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다. 충성이 무엇인가. “맡겨진 직임을 끝까지 감당하는 것이다.” 환난과 고난과 핍박이 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고 하였다.
 
 
충성을 다함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자.
욥기 23장 10절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고 하였다. 예수님은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12:3-4)고 하셨다.
 
본문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의 관’이란 야고보서 1장 12절에서는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나니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서는 ‘썩지 않는 면류관’이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 전서 2장 19절에서는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하였다. 디모데 후서 4장 8절에서는 ‘의의 면류관’이라고 하였다. 베드로전서 5장 4절에서는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이라고 하였다. 이 모든 것은 주 예수 안에서 믿음을 지킨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영생의 축복과 그 받을 상급을 말씀한다. 이와 같은 면류관은 소치 올림픽에서 받고파하는 금메달과 천 배 만 배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상급인 것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되리라”고 하셨다. 여기서 말씀하는 둘째 사망이란 인간이 육체적으로 죽는 죽음 말고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받아 영벌에 처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예수 믿는 일을 거부한 이들이 영원히 거하게 될 불못의 저주 심판을 말씀한다.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20:13-15)고 하였다.
 
요즘 초중고대학교대학원 졸업 시즌이다. 같은 기간 학교에 다녔어도 우등상 받고 영광스럽게 졸업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낙제하거나 유급하거나 퇴학당하거나 정학 받는 이들이 있다. 물론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이들은 스스로 대학교 생활을 접고 역사적인 인물이 된 이들이지만 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환난과 궁핍과 조롱과 고난을 잘 극복하며 그 믿음을 지켜 가는 이들은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하는 영원 승리자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죽음을 이기는 죽음이요 사망의 흑암 권세를 이기신 죽음이요 삼일 후에 부활로 이어지는 죽음이셨기 때문이다. 지난 발렌타인데이였던 1910년 2월 14일, 31살에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죽음은 역사 앞에 비겁한 죽음을 죽지 않고 영생하는 부활로 이어지는 죽음을 죽은 역사적인 죽음이요 자랑스러운 죽음이요 일제의 만행을 규탄한 죽음이요 일제의 불의한 세력을 한 몸으로 막아 섰던 자랑스러운 죽음이요 길이길이 역사 앞에 떳떳한 죽임이 아닌가. 성경은 다시 말씀한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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