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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하나님 안에서 안식(安息)하라(시62:5-12)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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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2-01-29 00:12 조회 21,709 댓글 0
 
대한민국과 미국이 수호조약을 맺은 것은 1882년이다. 그 이듬해부터 1905년까지 20여 년 동안에 미국으로 망명하였거나 유학을 떠난 한국 사람들은 총 60명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공식적으로 이민을 떠난 이들은 1902년 12월 22일에 제물포 항에서 배를 타고 하와이로 떠난 사탕수수밭 노동이민자들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 인삼 장사를 하기 위해서 마카오에서 배를 태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활동하다가 그 곳에 눌러 앉은 이들이 더러 있었다. 또한 미국 서부의 금광에 금을 캐는 광부로 중국인을 위장하여 취업된 이들이 있었다. 오늘 날은 미국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과 유학생들과 주재원들의 수를 포함하면 150여만 명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우남(愚男)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은 황해도 평산의 가난한 선비 가정에서 외아들로 태어나 자라났다. 3살 때에 부모를 따라서 서울로 와서 자라나면서 한문을 배운 그가 19살에 배재학당에 입학할 기회를 얻었다. 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며 대가를 받고 그 받은 돈으로 가정 경제에 도움을 주며 공부하여 졸업하였다. 그 후 일본인의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한 복수사건에 연루되어 어려움을 겪게 되었으나 미국인 여의사의 도움으로 관헌의 눈을 피해 위기를 모면했다. 그는 점점 서구의 개화사상에 심취했고 기독교 신앙을 영접하였다. 서재필을 만나게 되면서 독립협회의 간부로 활동을 시작했다. 1898년에 정부의 전복을 시도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어 7년형을 받고 옥중 생활을 시작했다. 탈옥을 시도하다가 다시 붙들리는 바람에 사형 언도를 받고 지내던 중에 감형되어 종신형을 받았다. 나중에 민영환의 도움으로 7년 만인 1904년에 석방이 되었다. 그해 겨울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미국 정부에 일본이 조선을 정치적으로 침략하려 하는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였으나 별 열매가 없었다. 결국 1905년 을사한일불평등조약이 체결되고 말았다. 그 이후에 이승만은 조지워싱턴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공부해서 1910년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해에 귀국하여 조선기독교청년연합회인 YMCA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2년 동안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나 미국인 선교사의 주선으로 석방되어 세계 감리교대회에 한국인 대표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나중에 대한 평가는 찬반이 엇갈리기에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친일파 옹호니 6. 25 중의 대통령으로서의 처세와 판단, 나중 불출만 선언 번복이니 사사오입 개헌이니 3.15 부정 선거니 복잡한 역사가 많지만 그러나 그는 여하튼 철저한 반공주의자요 일본으로부터 한국을 건져 보려고 무던 애를 썼던 독립 운동가요 애국자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오늘 날 150여 만 명의 미국에 사는 한인들 중에 미국 루즈벨트 재단이 2006년에 미국에 공헌한 127인의 역사적인 공로자로 뽑은 인물들 중에 유일하게 뽑힌 한국인이 강영우 박사이다. 그 127명 중에는 록펠러, 맥아더, 헨리 키신저, 빌 클린턴, 로널드 레이건,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과 같은 인물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 최근에 최장 암으로 생의 마지막을 살아가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지는 강영우 박사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중학교 때에 축구를 하다가 다쳐서 두 눈의 시력을 잃고 말았다. 그 후에 그는 우울과 낙담과 좌절을 딛고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며 재활에 성공한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의 삶에 큰 변화를 준 시작은 지금의 아내인 석은옥을 만나면서였다. 맹학교의 학생과 교사의 관계로 만난 저들은 사랑을 키웠고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1972년 2월에 결혼하고 그해 8월에 함께 손잡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 역사상 최초의 시각장애유학생이었다. 3년 8개월 만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 대학에서 교육학 석사와 심리학 석사와 교육학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6년 4월에 한국인 최초의 시각 장애인 박사가 탄생한 것이다. 그의 자서전인 <빛은 내 가슴에>는 미국의 의회 도서관에 녹음도서로 비치될 정도의 인정받는 책이 되었다. 그는 200년과 2001년에 미국 저명인명 사전에 오른 인물이다. 2001년에는 세계 저명인사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르기도 하였다.

시각 장애 상태의 한 사람, 강영우를 오늘 날까지 이끈 힘은 불가능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소망과 굳은 믿음이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고백한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시62:5)

다윗은 1절에서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렇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갖 소망이 이루어져 가는 간증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지난주에 무슨 책을 읽다가 이런 표현에 눈길이 멈춘 적이 있다.

“성공하는 사람은 행동으로 말을 증명하고,
실패하는 사람은 말로 행동을 변명한다.”

당신은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언제나 장황한 말로 자신의 지금 형편을 합리화하고 변명하며 살아가는 사람인가 아니면 별로 말은 없지만 행동과 실천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평소의 말을 입증하고 증명해 보이는 주인공인가. 삼성의 이건희 회자의 책 중에 이건희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 보면 요즘 기독교인의 삶에 심취한 노년기를 살아가는 이어령 교수가 지난 난 문광부장관직에 있을 때에 그를 만나 영국의 에든버러 박물관에 한국관을 세우는 문제를 갖고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한 경험을 몇 페이지 분량으로 쓴 내용이 있다. 이전에 만난 적도 없고 사귄 적도 없고 대화할 기회가 없던 그가 서로 만나 식사하는 자리는 참으로 불편하고 어색한 자리였다고 회상했다. 더군다나 별로 말이 많지 않은 이건희 회장과 단 둘이 식사하는 시간은 크게 부담스러운 시간이었다고 했다. “한 밤중에 들려오는 둔탁한 시계추 소리”가 방안의 공기를 꽉 누르고 있는 것 같은 추억이 그 날의 추억이라고 했다. 더군다나 어려운 부탁을 하기 위해 만난 시간이었기에 더욱 더 그러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헤어진 며칠 후에 삼성의 제일 기획팀이 방문해 왔고 정부차원에서 하기 어려운 예산 부족의 면이 있다면 민간 차원에서 힘껏 돕겠다는 답신이 왔다는 것이다. 묵묵하게 듣고 덤덤하게 반응하는 것 같던 이건희 회장과 단 한번 만나고 헤어졌지만 삼성의 제일 기획팀이 나서고 세계의 어느 곳이든 해외 현장에 한국의 문화나 역사가 잘 못 전해진 곳이 있으면 바로 잡는 일에 삼성의 해외 지사를 앞 장 세우며 프로젝트로 계속하여 추진하겠다는 답신이 왔다는 회고담이었다.

오늘 본문인 시편 62편은 다윗이 쓴 시편이다. 다윗은 베들레헴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이새는 베들레헴의 대 지주 보아스의 손자이다. 이새는 여덟 아들을 낳아 키웠다. 다윗은 그 중의 막내아들이다. 그런 그의 형들은 걸핏하면 블레셋이 쳐들어오는 나라의 전쟁에 끌려가고는 했다. 그런 가정의 어린 막내아들 다윗은 늘 들판의 양떼를 치는 것이 그의 몫이었다. 그런 그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면회를 갔다가 전쟁하지 못하고 숨어 있는 이스라엘 군대와 형들의 나약한 모습을 보고 물매와 돌멩이 다섯 개를 주어 들고 나아가서 한 개의 돌멩이를 물매로 던져서 전쟁을 끝냈다. 블레셋의 거인 적장 골리앗을 죽인 것이다. 다윗의 생애는 다윗 자신의 생애가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이 드러나는 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의 삶의 우여곡절 하나하나가 그러하기도 하지만 시편에서 만나는 그의 신앙의 고백이나 신앙의 면면을 보면 더욱 더 그러하다.

오늘의 본문인 시편 62편이 바로 그런 다윗의 시편 중의 걸작 중의 한편이다. 우리 성경에는 1절과 5절이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원 뜻은 “나의 영혼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 쉼을 찾는도다.”는 뜻이다. 쉼이 있다는 말이다.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노력하고 수고하고 애쓰고 돈 벌고 뭔가를 하는 것도 좋지만 사실 쉬는 시간이 없다고 상상해 보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프겠는가. 밤이 있고 어둠이 있음으로 낮이 의미가 있고 낮의 활동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물론 낮에 쉬고 밤에 일하거나 활동해야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말이다. 여하튼 낮에 일하고 활동하고 세상에서 부지런하게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는 것도 좋지만 저녁이 되고 밤이 되어서 가정으로 돌아가고 가족에게로 돌아가서 편한 마음으로 쉬고 먹고 눕고 잠도 자고 편안하게 안식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주어지는 것은 얼마나 귀한 것인가.

믿는 자에게 죄 사함과 영생과 천국을 허락하신 예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초청하시고 위로하시고 격려 해 주셨다. 하나님도 엿새 동안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이레째 되는 날에는 안식하셨다. 쉬신 것이다. 쉬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다. 고속도로에도 휴게소가 있어서 사람도 쉬고 차도 쉬어 가지 않는가. 쉬어야 한다. 쉬어야 멀리 갈수 있고 쉬어야 오래 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하루도 쉬지 않고 365일간 일만 하면 다 부자가 되고, 다 성공하고, 다 출세하고, 다 대단해 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쉼이 소중하고 쉼이 필요한 것이다. 안식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일도 제대로 못한다.

물론 “누가 쉴 줄 몰라서 안  쉬나요.” 이렇게 반문하실 분들이 계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고백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시편 62편 3절에 보면,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그렇다. 다윗은 언제나 자주 마음 편할 날이 별로 없었다.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하는 날들을 지내야 했다. 겉으로는 환난이요 속으로는 곤고한 날들이 적지 않았다. 오늘 말씀 3절의 표현처럼 정치적인 대적자들도 적지 않았고 이웃 나라와의 관계도 항상 불안하였다. 그야말로 외우내환(外憂內患)의 나날이었다. 나중에는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 왕 다윗의 왕권을 찬탈할 정도였으니 더 할 말이 무엇인가. 요즘 호주의 줄리아 길러드 여성 총리가 당하는 어려움을 보았는가. 말 한 마디 잘 못하였다고 200여명의 시위대가 달려드는 바람에 구두 한 짝 까지 벗겨진 채 도망치듯 경호원에 휩싸여 피신하고 말았다. 그 구두를 돌려주기는커녕 경매 사이트에 우리 돈 250만원에 경매 매물로 내 놓았다고 한다. 지도자로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은 늘 주변사람들이 그를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매 순간 안식을 찾아 나서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내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라는 말은 “나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찾는도다.”하는 고백이다. 자, 그러면 다윗은 쉴 만한 여건이 아닌데도 쉬고 안식할 만한 형편이 아닌데도 안식을 얻고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오늘 말씀 중에서 그의 그러한 신앙의 면면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소망(所望)을 가진 자의 안식.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공급 받는 소망이 분명하기에 평소에 늘 안식할 수 있었다. 언제나 불안하고 초조하고 긴장되고 두렵고 떨리고 무섭고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걱정과 염려와 근심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나의 반석과 요새와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는 분명한 확신과 소망을 갖고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통치자의 임기는 5년이다 그 임기 말 현상으로 그의 힘을 등에 업고 큰 소리 치고 권력의 단 물 맛을 즐기던 이들이 요즘 어려움을 당하는 뉴스가 신문에 도배를 하고 있다. 세상 권력에 소망을 두고 살면 그런 것이다. 다윗은 임금이었지만 달랐다. 그의 소망은 언제나 하나님 한 분 뿐이셨다. 그 자신이 어려서부터 수  많은 양떼를 치던 목자였지만 그는 자신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잘 알고 있었다. 다윗에게는 언제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소망과 믿음을 갖고 살아갔다.

484장 찬송의 시작은 “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이렇게 시작된다. 이 찬송가는 그 가사와 멜로디가 8세기의 아이리시(Irish) 사람들의 신앙 고백을 담고 있는 오래된 찬송가이다. 8세기의 아이리시의 환경을 상상해 보라. 가난과 질병 속에 별로 넉넉하거나 여유로운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멀리 바라보아야 한다.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잡을 때에 야자수 껍데기에 작은 구멍을 파서 그 물을 마시고 그 안에 쌀과 보리 같은 곡물을 넣어 놓으면 원숭이가 그 곡물을 꺼내 먹으려고 움켜쥐고 있을 때에 달려들어 잡는다고 한다. 도망을 가야 하는데 그 야자수 껍데기 안에 있는 먹을거리를 포기 하지 못하고 움켜잡는 바람에 뒤뚱 거리며 도망을 못하는 사이에 그 현장을 덮쳐서 잡는다고 한다. 버릴 줄 알아야 사는 것 아닌가. 그것이 몇 해 전에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마시멜로 이야기의 원리가 아닌가. 어려서부터 이 원리가 몸에 배어야 한다. 신앙생활에도 이런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시간적으로 왜 하나님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잘 지키라고 하셨을까. 거기에 안식의 원리와 비밀과 축복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8가지 기본 훈련>이란 책이 있다. 8명의 목회자와 신학자가 서로 한 가지씩의 주제를 갖고 쓴 8가지 주제가 담긴 책이다. 그 8가지의 기본 원리가 기독교인의 신앙을 지켜가는 기틀이요 축복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말씀, 암송, 기도, 예배, 헌금, 교제, 전도, 제자도” 이렇게 여덟 가지다. 이것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와 같은 기초 훈련이 잘 되어 있어야 세상을 이기고 죄악을 이기고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욕망과 유혹들을 이기고 극복하는 능력 있는 성도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는 2012년 7월 27일부터 8월 12일까지 제 30회 런던 올림픽이 열린다. 지난 29회 북경 올림픽이 열린지 몇 해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4년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각 종목에서 올림픽에 출전하려는 선수들은 개인기이든 단체 종목이든 4년이란 세월을 결코 헛되게 보내지 않는다. 그들은 분명하게 정해진 소망이 있기에 그 소망 안에서 안식하고 그 소망 안에서 쉼을 얻는 것이다.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안식하고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쉼을 찾는 것이다. 어쩌면 인생으로 그 올림픽이라는 것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그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순간 이후는 더욱 더 중요한 것이다. 그 다음의 소망의 불분명하면 인생이 무너지거나 별 볼일 없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소망을 이 세상의 그 보이는 것에 두면 안 된다. 소망을 하나님께 둘 줄 알아야 인생이 오래가고 인생이 영원해 지는 것이다. 또한 그 소망이란 것이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소망이면 안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소망이어야 한다.

“My hope comes from him."

이것이 무슨 말인가. 내게서 나오는 소망이란 너무나 현세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성공 지향적이고 출세와 권력과 명예와 인기 중심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소망이란 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와 섭리와 경륜으로부터 나오는 소망이기에 차원이 다르고 그 목표가 다른 것이다. 우리 가정의 후손들과 교회의 후세들과 이 땅의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이 그와 같은 소망 즉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소망에 붙들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희망을 붙들었을 때에 홍수 시대의 심판 후에도 살아남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낳은 실수 이후에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소망을 붙들고 살아 갈 때에 언약의 아들 이삭을 낳을 수 있었다. 이삭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소망을 따라 살아가고자 했을 때에 그 아까운 우물들을 원주민들에게 빼앗길 때에 되찾으려고 궁색한 싸움을 하지 않고 앞으로 그리고 또 앞으로 나아갈 때에 이전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넓은 땅의 깊고 새로운 우물 샘을 팔 수 있었다. 그래서 그 곳을 ‘르호봇’이라 이름 하지 않았는가. 르호봇이란 “여호와께서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창26:22)하는 이삭의 선언이었다. 창세기 30장 끝에 보면,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소망을 따라 살아가려 할 때에 튼튼한 양들마다 아롱지고 다롱진 것들이 태어나기 시작하면서 몇 해 만에 거부가 되었고 크게 번창하여 양과 낙타와 나귀와 종들의 수가 심히 많아지게 되었다. 비실비실하게 약한 양들이 새끼를 밸 때에는 내버려 두고 튼튼한 양들이 물을 마시러 오고 새끼를 밸 때에는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가지를 벗겨서 그 곳에 그늘을 만들어 주며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런데 희한안 일들이 계속하여 벌어진 것이다. 이것이 소망을 갖고 이룰 줄 믿고 바라보며 살아가는 신앙의 원리인 것이다.
바라봄의 법칙이다.
시각화(visualization, picturization)하라는 말이다.

다윗은 꿈의 사람이요 소망의 사람이요 확신의 사람이요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었다. 그의 모든 생각과 말과 고백과 글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지혜의 창고요 총명의 보고요 명철의 금고요 탁월하고 뛰어난 지도력의 발전소요 승리하는 나날의 원천이었다.

요셉도 그를 팔아 버린 열 명의 배 다른 형들과 다르게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소망을 붙잡고 살아갈 때에 비록 그의 처한 처지가 애굽의 노예 시장이었지만 그의 나중에 창대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애굽 총리가 된 것이 아닌가.

흔들리지 않는 믿음 안에서의 안식.
다윗의 분명한 하나님 신앙을 보라.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 나의 영광,내 힘의 반석, 나의 피난처.” 다윗은 이와 같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 근거해서 매 순간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다시 3절의 표현대로 다윗을 죽이려는 자들이 벌떼처럼 일제히 달려드는 환경에서도 다윗은 의연하였고 굳건하였고 담대하였다. 어떻게 그러할 수 있었을까. 다윗은 어느 날 갑자기 임금 되지 않았다. 소년 시절에 블레셋의 골리앗 장수를 때려눕힌 후에 온 나라의 부녀자들이 “사울 임금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노래하였지만 십 수 년 동안을 이리 피하고 저리 숨는 고단한 날들을 지내야 했다. 그 후 나이 삼십에 임금이 되기까지 그는 늘 광야에 눕고 들판으로 피하고 동굴 속에 숨어 지내야 하는 곤고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시편 중에서 다윗의 시편을 보면 그런 내용들로 넘쳐난다. 시편 59편은 사울 임금이 사람들을 보내서 다윗을 찾아 내 죽여 버리라고 명령한 후에 불안한 모습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내던 때에 고백한 시편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소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시59:1-2)

이 같은 절절한 다윗의 간절한 간구는 계속된다.

“그들에게 저물어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게 하소서”(시59:14)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시59:16-17)

이것이 하나님 안에서 밤이나 낮이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힘인 것이다. 오늘 본문 6절에서도 다윗은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다.

시편 63편도 다윗이 유다 광야에 피신하던 때에 고백한 시편이다. 광야에서도 다윗에게는 늘 평안과 안식이 있었다.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시63:6-7) 불안하고 처절한 도피자의 신세였던 다윗이었지만 그의 믿음은 명확하였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시63:8-10)

인생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자의 안식.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분명하게 선언한다.

“사람은 입김이다. 인생은 속임수다.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볍다. 포악을 의지하지 말자. 탈취한 것으로 허망해 지지 말자.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자.”

최근에 스위스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이 공개되었다. 우리 돈으로 13조라고 한다. 건물의 골격이 티라노사우루스 공룡 화석과 유성의 운석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세계적인 다자이너들과 금속 공예가들에 의해서 6년 동안 구석구석 금으로 도배하듯 지었다고 한다. 물론 그런 건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집을 짓고 살아도 인간이 이 세상에서 영원하지 않다.

반복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하나님이 다윗에게 한두 번 반복하여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권능(權能)은 여호와께 속하였다,
인자(仁慈)함은 주께 속한 것이다,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신다.”

최근에 중국 심양에서 사는 조선족 홍옥명 집사에게서 국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중국 서탑교회에서 성가대로 섬긴다. 1500여명이 모이는 큰 교회다. 몇 해 전에 그는 병든 남편을 간병할 돈을 벌기 위하여 한국에 체류 하던 중에 우리 곁에서 신앙생활을 함께 하였다. 그 때 받은 은혜를 잊지 못한다면서 우리교회가 예배당 건축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100만원을 송금해 왔다. 중국 현지에서 100만원이 얼마나 큰돈인가. 그는 다윗처럼 인생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이다. 다윗의 고백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 보면 사람의 입김보다 더 가벼운 인간의 거짓과 포악과 허망한 재물에 교만하게 눈이 가리어져서 살아가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라면 그 삶의 고백이 달라야 할 것이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사40:6-8)

공동번역 성경에 보면 시편 62편 8절을 이렇게 번역해 주었다.

“백성들아, 어떤 일을 당하든지 너희는 하느님을 믿어라.
마음에 있는 걱정일랑 하느님께 쏟아놓아라.
하느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다.”

다윗과 같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매 순간마다 이기는 자의 담대함과 소망과 믿음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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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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