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밴드에 공유
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내게로 돌아오라(말3:7-12) 2012. 1. 8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으로 보내기
  • 밴드로 보내기
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2-01-08 00:02 조회 19,897 댓글 0
 
하나님은 구약의 맨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를 통해서 “내게로 돌아오라”(말3:7)고 촉구하셨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하셨다. 어렸을 적 기억에 어른들을 따라 주일 저녁 예배나 수요일 밤 기도회에 참석하면 그런 찬송을 자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 당시의 담임 목사님이 그 찬송을 좋아 하셨던 것 같다. 새 찬송가 525장이다.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 자여 길이 참 어둡고 매우 험악하니
집을 나간 자여 어서 와 돌아 와 어서 와 돌아오라.“

그 찬송을 따라서 부르다 보면 동네 아저씨들 중에서 날마다 마을의 큰 길에서 술에 잔뜩 취해 가지고 싸움하고 소리 지르고 아무데나 실례하고 아무데나 술 취해 들어 눕기도 하고 하던 이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그런 동네 아저씨들이 주께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노래를 불렀다. 또 이웃 마을 아저씨 중에 산 속에 혼자 살면서 남의 집에 무엇을 훔쳐다가 먹고 살고, 개나 돼지나 닭을 훔쳐 가기도 하는 이를 생각하면서 그 찬송을 따라 부르곤 했던 생각이 난다. 소문에는 그 아저씨가 무서워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읍내 장에 가거나 들에 일 다니는 것도 불안해 한다는 말을 듣고 그 찬송을 부를 때마다 그런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면서 그 찬송을 불렀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나중에 소문에 들으니 그 두 마을의 그 아저씨들이 오래 살지 못하고 둘 다 불행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술로 살고 나쁜 짓을 일삼고 살던 생활을 청산하고 주께로 돌아 왔으면 제대로 인생을 살 수 있는 이들인데 안타깝고 불행한 생을 젊어서 마친 것이다. 반면에 그 또래의 마을 아저씨들 중에서 하나님을 잘 믿고 예수님을 잘 믿은 이들 중에는 장로가 된 이들도 있고 아들은 목사요 선교사가 되고 딸과 사위들도 신앙생활을 잘 하고 축복을 받는 가정으로 발전해 간 것을 본다.

말라기서가 쓰여 질 당시의 유다 나라와 예루살렘의 상황은 말라기 3장 5절이 자세하게 고발하고 있다. 말리기란 이름은 ‘여호와의 사자’란 뜻의 히브리어인 ‘말라키야’이다. 하나님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더 이상 눈 감아 주시거나 참아 주시지 않고 심판하시겠다고 언약의 사자인 말라기를 통해서 강조하셨다.

점치는 자들,
간음하는 자들,
거짓 맹세하는 자들,
품꾼의 삯을 제대로 계산해 주지 않아서 억울하게 하는 자들,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는 자들,
나그네를 억울하게 대하는 자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을 시작하시겠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점치는 자들이란 하나님 외에 우상을 숭배하는 모습을 대변하는 것이다. 간음하는 자들이란 성적으로 타락하게 살아가는 자들을 언급하시는 것이다. 거짓 맹세하는 자들이란 거짓과 술수와 간계와 속임수와 사기를 치며 살아가는 자를 향한 심판을 예고하신 것이다. 또한 가난한 품꾼의 품삯을 제대로 계산해 주지 않는다든지 남편 잃고 홀로 살아가는 여인이나 부모 잃은 고아들을 압제한다든지 나그네를 함부로 대하는 이들을 죄 없다 아니하시겠다는 말씀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하여 심판하시겠다고 했다.

말라기서는 그리 길지 않은 선지서이지만 그 내용은 매우 심각한 주제들을 여러 가지 담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 신앙과 경제관의 회복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십일조와 봉헌물에 관한 강조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상적으로 살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온갖 탐심과 불의와 거짓과 교만과 영적으로 혼탁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로 타락하고 변질된 유대 백성들과 예루살렘 성민들을 향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회개와 회복을 촉구하시는 말씀이시다.

성경 연구가들은 말라기서가 기록된 시대 배경을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총독으로 있던 때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 이유는  1장 8절에 ‘총독’이란  칭호가 나오기 때문이다. 성경의 인물들 중에서 총독으로 불리는 유일한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느헤미야이기 때문이다. 느헤미야가 바사의 아닥사스다 임금 곁의 출세한 술 맡은 관원으로 지내던 중에 예루살렘 성의  폐허에 가까운 참담한 소식을 듣고 금식하고 철야하며 기도한 후에 왕의 허락을 받아들고 도착한 그 현장은 실로 비참하고 답답하고 참혹한 현실이었다. 하나님 신앙에서 벗어나고 어떻게 하다가 거룩한 다윗 성이요 시온 성이요 솔로몬의 성전이 봉헌되었던 그 아름다운 예루살렘 성이 그 지경이 되었나 하고 탄식이 절로 나오던 때였다. 신앙적으로 변질되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섬기는 데서 멀어져 버린 패역한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헤미야가 앞장서서 불과 52일 만에 성곽을 중건하고 주전 444년부터 주전 433년까지 12년 동안 총독으로 있으면서 에스라와 스룹바벨과 함께 앞장서서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신앙의 회복을 위해서 매진하던 때였다. 에스라가 앞장섰던 수문 앞 광장의 민족적인 회개 집회는 한 나절이 계속되도록 어른 아이 남녀 할 것 없이 자리에 앉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이 한 나절을 서서 계속하여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회개와 감격의 성령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현장이 되었다.
말라기를 쓴 이가 말라기 1장 1절에 그 이름 밖에는 전혀 다른 설명이 없기 때문에 혹자는 ‘여호와의 사자’란 뜻의 그 말라기는 에스라가 아닌가 하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하튼 말라기서의 주제와 내용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대변하며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들을 향하여 회개와 변화와 헌신과 충성을 촉구하는 말씀들로 가득하다.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않고 있던 말라기 당시의 백성들을 향해서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촉구하신 것이다. 이 같은 하나님의 초청을 들은 백성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하고 반문하였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안내하신 주께로 돌아  가는 영적 회복의 방법이 본문에 담겨 있다.

십일조와 봉헌물에 대한 도둑질.
하나님은 십일조 생활을 등한히 하고 하나님께 바치는 헌물 즉 봉헌물을 제대로 봉헌하지 못하며 되는대로 등한히 건성으로 살아가던 당시의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한 것이다.”하고 책망하셨다.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하고 묻자 십일조 생활 하지 않고 봉헌 생활 제대로 안 하며 산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한 것이라고 책망하신 것이다.

십일조에 대한 신명기 14장의 규정에 보면 토지의 소산물과 짐승의 새끼들 중에서 모든 것을 분명하게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드리라고 했다. 각종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소와 양을 비롯한 모든 짐승들 중에서 십일조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봉헌하라고 했다. 또한 그 십일조를 성읍에 모아서 저축하고 그것으로 자기 분깃과 기업이 없이 살아가는 레위인과 성중에 거류하는 나그네와 고아와 홀로 된 여인들이 와서 그 성 안에서 그 몫으로 먹고 배부르게 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였다.

십일조 신앙은 열의 소득에서 하나를 드리고 아홉으로 살아가는 신앙이 아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신앙은 주신 소득에서 하나를 구별하여 드리는 것을 통해서 내게 주신 모든 소득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열중의 하나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남은 아홉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신앙으로 사는 것이 십일조를 드리는 신앙인 것이다. 그래서 신명기 14장 29절에 보면 십일조를 반드시 드려야 하는 것을 강조하신 하나님은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하셨다.

온전한 십일조를 통한 하나님 시험.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주신다. 7절과 10절과 11절과 12절의 말씀에 4번이나 반복하여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고 했다. 무슨 의미인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는 나약한 하나님, 불의한 하나님, 변덕쟁이 하나님, 무기력한 하나님이 아니시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천지의 창조주시며 우주 공간의 해와 달과 별들을 다스리시고 삼라만상을 주관하시며 섭리하시고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아버지이시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축복을 맹세해 주시는 것이다. 온전한 십일조 신앙으로 살아가는 자에게 복을 주시되 그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고 했다.

각종 재앙의 상징인 메뚜기의 피해를 막아 주신다고 했다. 오늘 날 나의 가정생활과 일터와 사회생활의 메뚜기가 무엇인가 생각하여 보라. 남편이나 아내나 부모나 자녀들, 아들딸과 사위 며느리와 손자 손녀들의 삶을 갉아 먹는 메뚜기 떼의 재앙이 무엇을 의미하나 생각하여 보라. 별의 별 메뚜기 재앙이 나의 가정 경제를 갉아 먹고 좀 먹고 해치고 있지 않는가.

출애굽기 7장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의 고난 받던 히브리 백성들을 바로의 학대로부터 풀어 놓아 해방하고 모세를 앞장 세워서 홍해를 건너 광야를 거쳐서 가나안으로 이끌어 가실 결심을 하셨다. 그 때에 모세와 아론을 앞장 세우셨지만 강퍅한 바로 왕으로부터 히브리 백성들을 이끌어 내시기 위해 하나님이 동원하신 재앙이 전개된다. 물이 피가 되었다. 개구리 떼로 천지를 덮게 했다. 온갖 세상의 티끌들이 모두 다 이가 되게 했다. 파리 떼로 가득하게 했다. 가축들이 죽어 넘어가기 시작했다. 온 애굽의 사람과 짐승에 악성 종기가 났다. 우박으로 세상을 심판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그렇게 하셨다.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었을 때에 엄청난 규모의 우박 재앙이 애굽의 천지를 덮었다. 야곱의 후손이 모여 살던 고센 땅 이외의 모든 애굽의 사람과 짐승과 밭과 채소에 불과 우박이 엄청나게 내려서 사람과 온갖 짐승을 쳐서 죽이고 밭의 곡식들과 채소가 엉망진창이 되고 그 많은 나뭇가지를 꺾어 폐허를 만들고 말았다. 그 다음에 이어서 벌어진 여덟 번째 재앙이 메뚜기 재앙이다. 마음이 여전히 완강한 바로가 깨닫고 히브리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했다. 출애굽기 10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13절에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모세가 지팡을 들었다. 동풍이 밤낮 불기 시작하는데 다음 날 아침이 되자 햇빛이 보이지 않을 만큼 엄청난 메뚜기 떼가 애굽의 전역을 덮었다. 우박의 재앙으로 큰 피해를 보고도 더러 남아 있던 밭의 곡식들과 채소를 비롯하여 애굽 땅의 온갖 푸른 것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다 갉아 먹어 버렸다. 이때에 바로 임금이 모세를 불러서 회개를 시작했다.

“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죄를 지었으니 바라건대 이번만 나의 죄를 용서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을 내게서 떠나게 하라.”(출10:16-17)

그 때에 모세가 바로 임금에게서 나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모세를 기도를 들으시고 돌이키셔서 강렬한 서풍을 불게 하셔서 그 많던 애굽 땅의 메뚜기 떼를 모조리 홍해로 몰아 넣으셨다. 신기하게도 애굽 땅에는 메뚜기 떼가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모조리 홍해 바다로 불려 쓸려 들어가고 말았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도 바로 임금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보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완악하기 그지없었다. 지독히 악한 왕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성경은 그 바로 왕의 모습을 이렇게 언급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출10:20)

애굽의 임금 바로 왕의 마음이 여덟 가지의 재앙을 당하면서도 마음이 돌이켜지지 않고 진심으로 회개 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완악한 채로 내어 버려두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뒤 이어서 아홉 번째 재앙이 흑암이 온 땅을 덮는 재앙이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모세는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캄캄한 어둠이 덮치며 삼일동안 전혀 빛을 볼 수 없는 흑암이 애굽의 전역을 덮었다. 그 때에 바로 임금이 모세를 불러 하는 말이 양과 소를 비롯한 짐승을 그대로 두고 어린 자녀들만 데리고 애굽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그 때에 모세는 물러서지 않고 양과 소를 주어야 광야에 나가서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번제를 드릴 것이 아니냐고 맞섰다. 모세는 양과 소들 중에 단 한 마리도 애굽에 남기지 않고 모두 다 갖고 갈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여전히 바로 왕의 마음은 강퍅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성경은 그와 같은 바로 왕의 완악한 상태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증언한다. 바로 왕은 화를 벌컥 내면서 소리쳤다. “너는 나를 떠나가고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다시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고 말 것이다.”(출10:28) 사태는 점점 심각하고 험악해졌다. 모세도 큰 소리를 치고는 바로 왕 앞을 빠져 나왔다. “나도 다시는 당신 얼굴을 보지 않을 거요.” 그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다시 나타나셨다. 그리고 열 번째 재앙을 지시하신 것이다. 이제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어 줄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하셨다. 그것이 우리가 잘 아는 애굽의 장자를 치는 재앙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금과 은 패물을 부지런히 챙기라고 명령하셨다.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명령은 이것이었다. 임금으로부터 몸종과 짐승의 새끼에 이르기까지 처음 난 것은 다 죽이신다는 경고였다. 애굽 온 땅에 이전에도 없었고 장래에도 없을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으리라고 경고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엄청난 재앙 중에서도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심지어는 개 한 마리라도 그 혀라도 움직이지 않도록 온전히 보전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출11:7)

고 하셨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재앙이 있다. 그러한 재앙 앞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신앙이란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장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계신 가를 깨달아 아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란 무엇인가. 이처럼 하나님의 구별을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 중에서 살아가지만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별의 역사를 목격하며 살아가는 자들이어야 한다. 이런 신앙을 가진 자들이 드리는 것이 십일조이며 봉헌물의 신앙인 것이다. 하나님은 십일조와 봉헌물의 신앙으로 살아가는 인생과 백성들에게 그들의 토지소산을 메뚜기가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해 주신다고 했다. 밭의 포도나무 열매인 포도송이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신다고 했다.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호하시고 가꾸시고 키우시고 열매 맺게 해 주시겠다는 축복의 약속의 말씀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 널리 알려진 참존 화장품 김광석 사장은 분당 예수소망교회의 장로이다. 그는 간증집 <주가 쓰시겠다 하라>를 통해서 자신의 십일조 신앙 실천에 대하여 간증했다. 그는 이전에 불교 신도회장까지 하던 생활을 청산하고 예수를 믿기 시작하자마자 십일조 신앙에 대하여 주변의 교인들로 부터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그가 예수를 갓 믿기 시작할 당시에는 적자투성이의 회사를 붙들고 있었다. 보건범죄단속법 위반으로 벌금 8억 3,000만원을 내야 하는 상태였다. 그러던 중에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를 전도한 친구가 처음부터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신자에다가 빚 투성이인 그는 기독교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고 ‘십일조는 무슨 십일조’하고 시큰둥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워낙 평소에 신실한 친구의 권면인지라 “그럼 한번 십일조 신앙을 시작해 볼까”그렇게 결심하게 되었는데 마침 또 곁에서 그의 교회 생활을 지켜보던 따 다른 한 사람이 “사장님이신데 이왕이면 십일조 생활을 실천하셔서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부어 주시는 하나님을 시험해 보시지요.” 처음에는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는 말이 아주 불경스럽게 들렸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말라기 3장 10절에 그런 표현의 말씀이 있는 것을 알고는 “아하! 그 사람이 나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해서 십일조 생활을 권면한 것이로구나.” 하고 알게 되었노라고 간증했다. 평생을 승부의식이 강하고 승부사 기질을 갖고 있던 그는 그날 이후로 오늘 날까지 그 커진 사업의 십일조를 철저하게 하는 십일조 축복의 대가가 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시험하고 싶어서 처음부터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이조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을 꼭 모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제가 다음 주일부터 십의 이조를 드리겠습니다. 지금 제 사업이 형편없는 것 아시지요. 빚 갚고 벌금 내고 직원 월급 주고 나면 남는 돈 하나도 없는 것 아시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의 이조를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에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십이조를 드리는 대신에 다음 달부터 매출을 평소의 두 배로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 저 성격이 엄청나게 급한 것 아시지요. 내년부터가 아니라 다음 달 부터입니다. 당장 다음 달부터 증거를 보여 주세요. 아멘” 그렇게 기도하였다.

그는 매 주일 마다 지난주의 경영 수입의 십이조를 하나님께 드렸다. 한 주, 두주, 세주가 지나갔다. 회사 경영에는 전혀 매출이 늘어나는 표시도 없었다.  그런데 삼주가 지나면서 전국의 대리점과 외국에서 주문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연구 제품이 대박이 되고 생산 공장은 24시간 가동을 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다음 달부터 매출이 두 배가 아니라 갑자기 여덟 배로 뛰기 시작했다. 그 날 이후 김광석 사장은 전국 교회를 다니면서 십일조 생활의 축복을 간증하는 유명 평신도 강사가 되었다.

1989년 12월 31일에 그는 모든 벌금을 제대로 다 납부하고 모든 부채로부터 자유로워 졌다. 그가 교회에 다니면서 십일조 아니 십이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은 그의 인생과 사업의 B. C와 A. D처럼 구분이 명확해 졌다. 그 다음 해를 맞는 송구영신 예배에서 그는 두 가지를 하나님 앞에서 서원하였다.

“하나님 저는 앞으로 평생토록 새벽 기도를 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또 하나는 평생토록 성결한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아내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깨끗한 신앙 양심에 따라 살도록 서원하겠습니다.”

그리고 22년 세월이 지났다. 오늘 날 참 존 화장품의 세계적인 발전과 김광석 사장 아니 김광석 장로의 받은 축복과 삶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시험하여 놀라운 축복을 받고 간증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방인들로부터 복되다고 칭송을 받는 복.
십일조 생활 잘 하며 살아가면 살아 갈수록 하나님을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 성도의 삶의 지경이 아름다워지는 축복의 현장을 보고 복되다고 말하도록 축복해 주신다고 했다. 이미 모세를 통한 십일조의 명령 이전에 아브라함은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 모세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일조 생활을 하신 근거가 분명하다. 그러므로 성도의 십일조는 선택이 아니다. 반드시 십일조 생활을 통해서 평생토록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체험하고 간증하는 주인공이 모두 다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는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경고하셨다. 이는 무슨 의미인가. 물질의 십일조도 드려야 하지만 그에 부응하는 정의의 실천과 불쌍한 이웃을 불쌍하게 여기는 긍휼의 실천과 믿음다운 믿음 생활도 버리지 말고 살아가라는 말씀이 아닌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로 하여금 성도인 우리의 받는 복과 그 간증을 통하여 십일조 신앙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들어내는 축복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자.

앤디 스탠리(Andy Stanley)는 유명한 강해 설교가인 챨스 스탠리 목사의 아들 목사다. 그는 조지아 주의 애틀란타에 있는 노스포인트 커뮤니티 교회의 12,000명 신도가 모이는 교회의 담임목사이다. 그의 책 중에 <헌금의 기쁨>(Fields of God)이란 책이 있다. 그는 간증한다. “어려서 1불이 생기면 10센트의 십일조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수백불 혹은 수천불씩 십일조를 드릴 때가 있다. 그러나 액수가 많은 십일조의 수표에 싸인을 할 때에 이렇게 많은 십일조를 드리면 내게 앞으로 큰돈을 써야 할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하지? 하는 염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그런 염려는 탐심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에 농부가 씨앗이 잘 싹이 나고 풍성한 결실을 가져 올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씨앗을 뿌리지 못한다면 얼마나 정신 나간 일인가 말이다. 앤디 스탠리 목사는 이렇게 강조한다. “너무 많이 헌금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너무 많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농장에 너무 적은 씨앗의 량을 뿌리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라.”


십일조와 봉헌생활을 잘 하면 하나님은 아래와 같은 여덟 가지 큰 복을 주신다.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말3:10)
범사에 복을 주신다.(신14:29)
죄를 멀리하게 해 주신다.(민18:32)
모든 가족이 즐거워하며 살게 해 주신다.(신12:7)
모든 민족 위에 뛰어 나게 해 주시고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얻는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해 주신다.(신26:19)
만족하게 먹고 남게 하신다.(대하31:10)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선한 일을 넘치게 해 주신다.(고후9:8)
풍성하게 하시고 의(義)의 열매를 더하신다.(고후9:10)

살아가면서 점점 이런 복을 받는 주인공과 그런 가문과 자자손손이 되기를 기도한다. 아멘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지성래목사
담임목사소개
칼럼
세미나글
사역일지
출판도서소개
언론관련 글과 영상
활동사진
동영상
상담코너
사역동향

교회소개

교회연혁

주일설교

성가대찬양

교회앨범

이달의행사

행사동영상

선교지현황

섬기는분들
전체 최신글
꿈 꾸는 것 같은 날..최고관리자
"너 축복 하시려고"최고관리자
"꿈꾸는 것 같은 날..최고관리자
"내 주 예수 주신 ..최고관리자
"내 주 예수 주신 ..최고관리자
염려와 감사(마6:2..최고관리자
"감사해"최고관리자
"바울의 소식"최고관리자
"염려와 감사"최고관리자
"누군가 널 위해 기..최고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