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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여호와의 복(렘31:10-14) 2012.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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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2-01-06 07:22 조회 18,969 댓글 0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다. 사람이 복 중에 아기를 잉태하면 축복하는 마음이 간절해지고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길 기도하는 마음처럼 말이다. 태어난 아들딸들에 대해서도 평생토록 복된 생을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마음은 그 어느 부모의 마음에나 다 있을 것이다.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후에 하신 첫 말씀이 복을 주시는 말씀이셨다. 창세기 1장 28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라고 했다. 단지 말씀하신 것뿐이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말씀에 무한한 능력과 에너지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복을 주시는 말씀은 생육하라,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와 하늘과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축복의 말씀이셨다. 창세기 9장 1절에 보면 노아의 홍수 시대가 끝 난 후에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해 주신 것도 역시 복이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했다. 그 말씀이 창세기 12장 2절과 3절에 가서 아브라함의 때에 구체적으로 절정에 이른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福)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福)이 될지라 너를 축복(祝福)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福)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福)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여기에 보면 복이란 말씀이 무려 네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더군다나 세상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들이 되도록 해 주시겠다고 복의 울타리를 쳐 주셨다. 

복이란 무엇인가. 영 혼 육이 하나님의 원래의 창조 상태를 회복하고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모세 오경의 마지막 책인 신명기 33장 29절에 보면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고 했다. 오늘 날로 하면 누가 이스라엘인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천하 만민 중의 믿음의 백성이 곧 영으로 이스라엘 백성인 것이다. 하나님은 돕는 방패요 영광의 칼로 다가 오셔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돕고 함께 하시는 아버지이시다.
 
전도서 6장 3절과 6절에 보면, 사람이 백 명의 자녀를 낳고 장수하고 비록 천년의 갑절을 산다고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말씀이 나온다. 바벨론 포로로 흩어진 땅의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때가 되면 되 돌이켜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선포된 예레미야의 말씀이 본문이다. 여호와 복을 반복하여 강조하셨다. 12절에 ‘여호와의 복’ 그리고 14절에 ‘나의 복’이라고 하셨다. 무엇이 복인가.

흩어진 곳에서 모으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복.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흩으시기도 하시고 그 흩어져 지내던 심판과 고난의 땅에서 불러 모으시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같은 하나님의 모습은 특히 구약 성경의 여러 곳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때로는 흩으시고 때로는 다시 불러 모으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를 하였다. 모세 시대 이후에 광야로 출애굽 시키셨고 여호수아를 앞장 세워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 그 여럿의 사사 시대를 거치고 사울 임금의 시대를 거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를 거쳐서 성막 신앙에서 성전 신앙의 새 시대의 백성들로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셨다. 솔로몬이 크게 잘못하고 그의 말년에 이스라엘 나라가 남북으로 나누어 진 것도 배후에는 하나님의 간섭이 분명했다. 세월이 지나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바벨론과 앗수르에 끌려가서 포로 생활을 70년이나 계속하게 된 것도 하나님이 저들을 사랑하시는 사라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 이 세상에 그 어느 부모가 제 자식이 남의 집에 종이 되고 남의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원하겠는가. 그 모든 역사는 자식다운 자식이 되기를 기대하는 부모의 마음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셨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 보면 속 썩이는 아들딸에게 집을 나가 버려라. 호적에서 네 이름을 파서 없애 버리겠다고 버럭 소리를 질러 대는 아버지들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아무리 큰 소리를 질러 대며 화를 내고 역정을 내는 아버지라고 그 말의 내용이 진심이 아닌 것은 누구나 안다. 어찌 이 세상의 그 어느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호적에서 이름을 파 버리고 부자와 관계를 끊기를 원하겠는가. 물론 일시적으로 자식이 자식의 도리를 제대로 다하지 못하고 속만 썩이고 부모의 마음을 안타깝게 할 때에 한국 아버지들은 고작 화를 내고 자식을 훈계한다는 무게 있는 표현 중의 하나가 집을 나가 버려라 혹은 호적을 파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 생각해 보면 그것은 자식을 향한 끝이 없는 아버지의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은 이즈음에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이방에 흩으셨던 하나님이 다시 불러 모으시고 오히려 더 잘 지켜 주시겠다고 하신다. 이 얼마나 눈물겨운 장면인가.  목자가 양떼를 모으듯이 모으며 지켜 주시겠다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은 고난의 땅, 심판의 땅, 유리방황하게 하신 환난의 땅에서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한 사람씩 불러 모아 목자가 양을 지키듯이 지켜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우리나라의 남북의 역사는 아직도 이처럼 북녘 땅을 벗어나서 탈북의 현장에서 방황하고 고난의 땅으로 숨고 피하고 도망 다니며 고생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또 그러한 일들이 앞으로 점점 계속될 북녘의 아픈 현실 속에 새 해를 맞았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남북 현실을 보면 꼭 이스라엘 나라가 남북 분단의 아픔을 겪고 나중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고생할 때의 장면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해가 바뀌고 새 달력을 내어 걸어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새 해를 맞은 새 각오와 새 결단과 새 희망의 우리의 가슴을 벅차게 하고 새롭게 하는 것뿐이다. 물론 이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태도에 의하여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갈수 있으니 말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불러 모으시고 목자처럼 사랑의 손길로 다가 오셔서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믿고 따르며 순종하는 자에게 그런 복을 주시는 여호와이시다.

강한 손으로 구원(救援)하시고 속량하시는 하나님의 복.
세상은 철저히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원리 속에 돌아간다. 이는 사람들의 세상이나 동물들의 세계나 다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식물계에도 이와 같은 생태계의 원리가 자연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세상의 강한 자의 손길보다 더 강한 자의 능력으로 다가 오셔서 믿는 자를 구원하시고 속량해 주시는 여호와이시기 때문이 아닌가. 물론 여기 본문의 강한 자란 바벨론을 말한다. 오늘 날 우리의 바발론은 누구이며 어디인가. 오늘 날 나에게 있어서 강한자로 나를 괴롭히거나 힘겹게 하거나 어렵게 하는 바벨론은 과연 누구이며 어디인가. 11절에서 사용된 구원하신 다는 뜻은 해방하며 자유하게 한다는 뜻이다. 뒤에서 사용된 속량하신 다는 뜻은 값을 치루어 준다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이시면서 하신 마지막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바로 이 속량이란 뜻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 안에서 택함 받은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자유와 해방을 주시며 모든 결박으로부터 풀어 놓아 참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시는 전능자이시다.

누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 내 줄 것인가. 올해도 세계 처처에서 지진과 쓰나미와 홍수와 폭우의 물난리와 폭동과 테러와 전염병과 기근과 별의 별 재앙과 참사로 인하여 불행하게 죽어간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은 이 같은 사건과 재난과 환란이 끝이 없는 세상에서 일시적인 구원과 구속과 속량의 손길로 가다 오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 영원한 구원의 주님이시며 영원한 속량의 근본이신 능력의 주님이시다. 

지난 해 말인 성탄절이 지난 이틀 후에 설악산에 5일 동안 실종 되었던 40대의 남자 등산객이 강추위 중에서 살아남았다가 구조되었다.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저체온증세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였지만 손과 발에 동상이 걸린 정도로 헬기가 동원된 119 수색 요원들의 수고에 의해서 다시 살아 돌아 올 수 있었다. 영하 10도 혹은 20도의 극심한 추위 가운데 눈구덩이에서 텐트와 침낭 하나로 그렇게 여러 날을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생명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모세는 바로의 학정 시대에  삼 개월 만에 버려진 갈대 상자 속에 떠내려가던 나일 강에서 건짐을 받았다. 바로의 딸 공주가 건진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이 어린 아기 모세를 구원하신 것이다. 나이 사십이 된 모세가 왕궁 밖에 나갔다가 애굽 사람과 히브리 사람의 싸움을 말리려다가 애굽 사람을 죽였다. 그 다음 날 히브리 사람끼리의 싸움을 말리려다가 어제 자기가 애굽 사람 죽인 사실에 세상에 소문이 난 것을 알았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피신했고 거기서 장가들어 사십년을 지냈다. 장래가 촉망되고 장차 애굽의 왕이 될 수도 있었던 모세의 신세가 초라해 졌다. 그 사십년 세월을 모세를 잊지 않고 주목한 분은 하나님이셨다. 연세 80이 된 모세가 호렙 산자락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에 그를 찾아 만나 주신 분이 하나님이셨다. 불이 붙는 환상 가운데 떨기나무의 불꽃을 바라다보면서 가슴이 뛰던 모세의 이름을 부르던 분이 하나님이셨다. 장차 애굽의 바로 왕의 손길에서 동족 히브리 민족을 구원하여 홍해를 건너게 할 지도자로 모세를 지명하여 부르신 것이다. 그 어려운 광야 길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을 누가 다 해결하고 잦아들게 하였는가. 누가 저들에게 마실 물과 먹을 만나와 원할 때마다 그 많은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었는가. 모세의 능력인가. 아론의 지혜인가.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경륜인가. 그 모든 배후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결심하신 하나님의 손길과 하나님의 속량하시는 은총이 계속된 것이 아닌가.

지난해 연말이 되면서 방송사마다 여러 가지 시상식이 있었다. 그 중에 드라마의 남녀 연기자들에게 주는 상이 있다. 그 외에도 극작가와 연출자와 성우 등에게 주는 상이 있다. 사실 배우는 극작가의 작품을 따라서 자신에게 주어진 대사를 갖고 표정과 감정을 잘 담아내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러나 전체적인 작품은 작가의 머리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작가의 지식과 전문성과 역사성과 모든 것이 여러 다양한 주인공들을 통해서 전개되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작가의 작품이 제대로 드라마로 성공을 거두고 흥행을 이루고 시청률을 높이려면 연출자의 탁월성이 있어야만 한다. 그 중에 외국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경우에는 성우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어느 성우의 말에 의하면 배우들이 자기 대사를 성실하게 외우고 소화하는 능력이 하나의 수고라면 성우들은 자신의 배역뿐만 아니라 그 순간의 전체 장면을 섬세하고 눈 여겨 보면서 감정을 살리고 자기 몫의 대화를 이어가야 하기에 그 열배 이상의 노력과 수고를 다 하노라고 했다.

그렇게 보면 이 세상에 간단한 일이란 하나도 없다. 다 제 나름대로 복잡하고 전문성을 요구하고 대단한 성실과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결국은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는 방법으로 인간 구원을 이룩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은 그  시대 그 현장의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속량하시는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오늘 날도 계속하여 세계 처처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열망하는 모든 만민들에게 온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허락하시는 존귀하신 아버지이시다.
지난해 말에 대구 모 중학교 남학생의 자살 사건으로 죽이 끓듯이 들끓고 있는 청소년 집단 괴롭힘 즉 왕따에 대한 문제는 이처럼 계속되는 아까운 청소년들의 죽음을 통해서 저들의 슬픔과 아픔이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의 현실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고 문제 요인을 줄여 나갈 것인가에 이전보다는 훨씬 더 나은 정책과 교육 현장의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기대한다. 아니 반드시 변화가 일어나야만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마음껏 꿈을 키워 갈 수 있는 후세대를 위한 복지 국가를 건설해 갈 수 있기를 기도하고 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산업(産業)의 축복으로 인하여 찬송하며 크게 기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복.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장래의 복 장차 천국 백성이 된 약속도 귀하고 복되지만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에 공급하시는 산업의 복 또한 얼마나 귀한 것인가. 12절에 보면 ‘여호와의 복’을 구체적으로 언급해 주셨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게 하리라고 하셨다. 이 얼마나 구체적인가. 독자들에게 그런 직장 생활과 그런 상업과 사업의 터전이 되길 소망한다. 그래서 절로 예루살렘인 시온성의 높은 곳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는 그런 내일을 소망하며 살아가자. 핍절함이 없고 꾸고 빌리러 다니지 않고 도와주고 베풀어 구제하고 선한 일에 앞장서면서 마음이 물 댄 동산과 같고 근심이 다시는 없는 그런 나날을 꿈꾸며 가꾸며 주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아가자. 

예레미야 29장 11절에 보면,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 아버지는 언제나 자녀 된 우리들에게 평안한 미래와 희망을 계속하여 공급하기를 원하시는 자상하신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의 회복이 있는 그 때가 되면 춤추고 즐거워하는 처녀들과 청년들과 노인들이 함께 즐거워하는 축복을 누리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지금 슬퍼하고 있는가. 지난해에 큰 슬픔을 당하였는가. 지난 날 큰 아픔과 충격과 괴로움과 아픔을 겪었는가. 하나님은 올해에는 지난날의 그 슬픔을 돌려서 즐거움이 되게 해 주시는 아버지이신 줄로 믿고 살자.  13절의 표현이 따뜻하고 정감이 있고 아름답지 않은가.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이 전해지는 말씀인가. 우리가 믿고 따르고 섬기는 하나님 아버지는 그런 아버지이신 줄로 믿으라. 슬픔이 즐거움이 되도록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성도의 행복을 원하신다. 성도가 성도답게만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온갖 즐거움과 기쁨을 공급해 주시는 아버지이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근심으로부터 위로(慰勞)하여 기쁨을 얻게 해 주시는 아버지이시다. 이 세상의 육신의 아버지라도 자녀들이 근심 가운데 빠져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따르며 살아가는 자녀가 된 성도들을 위로하실 뿐만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회복시켜 주시는 전능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이시다.

제사장들의 마음을 기름진 것으로 먹게 하여 흡족(洽足)하게 하며 백성들을 만족(滿足)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말씀하셨다. 공동 번역에 보면 그 내용이 명확해 진다.

 “사제들은 잘 먹여 기름기가 돌게 하고
내 백성은 좋은 것을 먹여 배부르게 하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이는 예배의 회복이며 제사의 회복을 말씀하는 것이다. 제사장들이 백성들이 회막과 성전에 가져 오는 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리고 제사장 몫의 분깃을 받아 그것을 먹음으로 기름기가 돌았다는 말이다. 제사의 회복이요 예배의 회복을 일컫는 것이다. 레위기 7장 34절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가져다가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

이는 먹을거리로 하면 제사장의 몫을 위한 제사의 구별이지만 더 나아가서 하나님 중심의 제사 신앙의 바탕은 십일조와 헌물이다. 말라기 3장 7-12절은 여호와의 복을 받는 원리를 소개한다. 이것이 예배와 제사의 회복이다.

7.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세상에 얼마나 굶주리고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이들로 넘쳐 나는가. 보아서 아는가. 20대 탈북 여성이 미라처럼 뼈만 남고 씻지도 못한 채 금방 쓰러져 죽을 것 같은 몰골로 헤매는 광경과 김정은의 볼이 통통하게 살이 찐 모습이 비교 되지 않는가. 

하나님은 가난과 굶주림과 핍절과 궁핍을 원하시는 아버지가 아니시다. 양들로 꼴을 먹되 풍성히 먹으며 맑은 물을 마시되 넘쳐나게 마시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주 여호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양과 같은 우리가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얻는 그 놀라운 주의 신비와 공급을 체험하는 주인공으로 살아가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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