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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눅15:17-32)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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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2-02-05 07:22 조회 24,775 댓글 0
 
하나님 아버지는 언제나 항상 자녀인 우리의 곁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아버지이시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서 13절에 보면,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고 했다. 이 말씀은 성경에서 표현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에 대한 표현 중에서 대표적인 말씀 중의 한 곳이다.

최근에 미국에서 한인 목사 부부가 두 살배기 아이를 집에 두고 새벽 예배에 참석했다가 아동 학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미국 조지아 주의 애틀랜타 북부 한인 밀집 거주 도시인 알파레타의 어느 장로교회에서 부목사로 시무 중인 김모(37) 목사와 그의 아내 정모(35)씨는 지난 2012년 1월 27일 오전 새벽 기도를 하려고 두 살짜리 아이를 두고 집을 나섰다. 이 아이는 잠에서 깨어나 현관문을 열고 나갔고 울면서 마을을 배회하다가 이웃에 사는 여성에게 발견됐다. 이 이웃은 경찰에 바로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김 목사 부부를 긴급 체포했다. 김 목사는 경찰에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와 집으로 돌아갔는데 문이 열려 있고 아이가 사라진 상태였다"고 말했다. 곧바로 구치소로 넘겨진 이 부부는 흉악범으로 기소될 뻔했으나 미국 문화를 잘 몰라서 그런 실수를 했다는 정상이 참작돼 중범죄 혐의는 기각됐다. 미국에서는 부모가 유아를 집에 혼자 있게 하는 것은 아동을 학대하는 중대 한 범죄로 취급한다.

사실 이 같은 현상은 미국뿐만 아닐 것이다. 오늘 날 우리나라에 최근에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청소년의 문제, 특히 중학생의 집단 폭력이나 집단 따돌림의 문제의 요인도 저들을 방치한 부모와 가정에 책임이 큰 것이다. 요즘처럼 인터넷과 온갖 종류의 컴퓨터 게임과 PC 방의 난무하는 문제와 엄마 아빠가 바쁘고 분주하다는 이유로 아들딸들과 별로 대화도 없고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별로 나눌 시간과 기회가 없이 한 주 한 주, 한 달 한 달 지내다 보니 문제 청소년들이 양산되어 가는 실정이다. 내 아들딸이 누군가에게 가해자로 살아가는지 혹은 피해자로 지내면서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아파하고 무엇을 괴로워하는지를 모르고 사는 부모 세대가 너무나 많단 말이다.

그러므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언제나 마음으로 아들딸과 함께 하고 사랑과 정성으로 자녀와 그 삶을 같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물론 사고나 질병이나 무슨 가정적인 사연으로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거나 엄마와 아빠가 무슨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결별하여 살아간다거나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하다 보니 어린 시절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댁이나 외가댁에 맡겨진 환경에서 외로운 성장기를 보내야 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수도 적지는 않다.

오늘 본문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할  것 없이 거의 많은 사람들에게 골고루 알려진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 중의 하나이다. 어느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장차 자기가 받을 자기의 분깃을 미리 나누어 달라고 요청했다. 두 아들의 분깃을 나누어 주었더니 며칠 후에 둘째 아들이 그 받은 재산을 모조리 정리해 가지고 다른 나라로 떠나 버렸다. 그 남의 나라에 가서 허랑 방탕하게 살면서 그 많은 재산을 다 날려 버렸다. 빈털터리가 되었는데 그 남의 나라마저 흉년이 들어서 세상살이가 궁핍하게 되었다. 결국은 남의 집에 가서 돼지를 치는 일을 했다. 나중에는 돼지우리에 돼지들 곁에 누워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심지어는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조차도 먹을 수 없는 딱한 신세가 되어 버렸다. 오늘 본문은 그 다음 부터의 내용이다. 누가복음 15장 17절은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라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이 둘째 아들이 돼지우리에서 지내며 돼지가 먹는 꿀꿀이 죽 조차도 얻어먹을 수 없는 초라하고 비참한 신세가 되어서 자기 신세타령을 하는 것이다. 그 많던 아버지의 분깃이 다 날아가 버리고 빈털터리가 된 후에 스스로 돌이켜 뉘우치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오게 된 것이다.

둘째 아들이 스스로 돌이키는 생각이 무엇이었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그리고 돼지우리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하겠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고백하려 했다.
“지금부터는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 아닙니다.” 하고 말할 생각이었다.
“이제부터는 저를 품꾼의 하나로 여겨 주십시오.” 하고 말할 계획을 세웠다.

이젠 더 이상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그대로 있다가는 돼지우리에서 굶어 죽게 생긴 것이다. 결국 서둘러 아버지에게로 귀국하였다. 그가 고향 마을 어귀에 나타나자 그를 먼저 알아 본 것은 아버지였다. 아직 아버지와 아들의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먼저 알아보시고는 아들이 나타난 마을 어귀까지 뛰어 가셨다. 아버지는 거지 행색을 하고 나타난 아들에게 달려가서 아들을 끌어  안고 목을 부둥켜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은 흐느끼며 아버지께 말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설령 저를 다시 아들로 인정해 주신다고 해도 저는 감당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에게는 한 마디의 말씀도 안 하시고 서둘러 종들을 불러서 이러 저러한 일들을 시켰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혀라.
손에 가락지를 끼워라.
발에 신을 신겨라.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이다.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은 아들이다.”(눅15:22-24)

이 말을 들은 종들은 모든 다 즐거워하였다.

마침 그 시간에 밭에 나가서 일하던 큰 아들이 집에 돌아 왔다.  집 가까이 왔는데 집안에서 풍악 소리와 춤추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큰 아들이 종 하나를 불러서 무슨 일인가 하고 물었다. 동생이 돌아 왔는데 아버지가 기뻐서 살진 송아지를 잡고 사람들을 불러서 잔치하고 있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큰 아들은 화가 잔뜩 나서 집안에 들어 가 볼 생각도 안했다. 이 소식이 집안에 있던 아버지께 전해졌다. 아버지가 집 밖으로 나가서 큰 아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큰 아들은 평소에 품고 있던 불만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평소에 제가 늘 아버지 곁을 지키면서 밭일과 논일과 소와 양을 치는 온갖 목축 일을 다 맡아 수고하고 애 썼어도 송아지는커녕 염소 새끼 한 마리 잡아서 친구들과 회식할 기회 한 번 안 주시더니 이게 뭐 하시는 겁니까.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하십니다. 섭섭합니다. 아니 저 동생이 그 동안 집안과 아버지를 위해서 한 일이 뭐가 있습니까. 아버지 분깃을 일찍이 받아 가지고 남의 나라에 가서 창기들 품에 안겨서 그 많던 재산 다 날려 버리고 빈손으로 뻔뻔하게 집구석이라고 찾아 온 저 놈을 위해서 살찐 송아지를 잡으셨다고요. 참 잘하셨습니다. 잘 하셨어요.”

그 때에 아버지가 큰 아들을 설득하시 시작했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그렇지만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난 아들이고 내가 잃어 버렸다가 다시 얻은 아들이 아니냐. 너도 이 아버지의 마음을 아버지의 편에서 조금이라도 생각 좀 해 보려무나. 내가 죽은 줄 알았던 둘째 아들이 살아난 것으로 기뻐하고 몇 해 동안 소식이 끊겼던 둘째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으로 즐거워하는데 서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냐.”

우리는 여기서 늘 돌아 온 둘째 아들을 중심으로 말씀을 묵상하고는 했다. 혹은 큰 아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비교해 보고는 해 왔다. 그러나 오늘은 이 비유의 말씀 가운데 등장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자.

최근 한국 사회에 번져 가는 이단 중에 ‘하나님의 교회 세계 복음교회 협회’라는 것이 있다. 줄여서 ‘하나님의 교회’라고 한다. 그 교조 안상홍은 1985년에 죽었다. 그 부인이 대를 이었는지 최근에는 ‘어머니 하나님’이란 용어를 공공연히 사용하고 있다. 성부 하나님 시대에는 하나님이 히브리 백성을 출애굽 시키셨고, 성자 예수님 시대에는 예수님이 유대 백성들을 고치고 치료하고 만나 주신 것처럼, 성령 하나님 시대에는 37년 전에 죽은 안상홍이 저들의 재림 예수님이라고 가르치고 그렇게 믿고 그렇게 찬송하고 기도한다. 저들은 한국은 어머니의 나라요 예루살렘이라고 가르치고 그렇게 믿는다. 그걸 믿고 따르는 이들이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우리가 믿고 따르고 깨닫고 체험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은 남성으로서의 아버지 혹은 여성으로서의 어머니로 구별되는 분이 아니시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부모의 사랑을 표현하는 대표성이지 남성과 여성 혹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구별하여 말하는 아버지는 절대로 아니다. 물론 하나님의 속성 중에는 아버지와 같은 속성이 있고 어머니와 같은 속성도 함께 있다. 가령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모습에는 율법과 계명과 규례를 선포하신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러나 사랑하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용서하시고 용납하시고 너그럽게 받아 주시고 부족을 가리어 주시는 성품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인 것이다.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은 나에게 있어서 어떤 아버지이신가.

∙끝이 없는 사랑을 공급해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약한 자를 격려해 주시고 힘을 주시는 능력의 아버지이시다.
∙어리석은 자에게 지혜를 깨우쳐 주시는 지혜와 명철과 모략의 근본이신 지혜로우신 아버지이시다.
∙미련한 자에게 최상의 현명한 길을 깨우쳐 주시는 지혜와 지식의 공급자이신 아버지이시다.
∙쉽게 좌절하고 절망하고 포기하는 자에게 용기와 소망과 꿈과 희망을 심어 주시는 아버지이시다.
∙인생이 한계의 높은 벽 앞에서 힘겨워 할 때에 곁에 오셔서 나와 함께 그 모든 인생의 장벽을 뛰어 넘는 투지와 담력을 공급해 주시는 아버지이시다.
∙전혀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가능하게 성취해 주시고 이루어 주시는 자상하신 아버지이시다.
∙매 순간 갈등과 번민 속에 방황하는 인생들에게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능력과 담대한 마음을 갖도록 붙들어 주시는 아버지이시다.
∙나를 원수 취급하고 대적하는 자에게 쫓기고 피할 때에 피난처와 방패가 되어 주시는 아버지이시다.
∙병들어 약하고 지쳐 있을 때에 치료자의 손길로 다가 오셔서 손을 붙잡아 주시고 어깨를 부둥켜안아 주시며 안위해 주시는 아버지이시다.
∙불 가운데에서와 물 가운데에서 나를 건져 주시는 구원의 주님이시며 아버지이시다.
∙배고파 쓰러져 있고 목말라 헐떡거릴 때에 영원한 생명의 떡과 영원한 생명의 물을 먹고 마시도록 해 주시는 온갖 필요의 공급자이시다.
∙그 어느 누구도 인정해 주고 믿어 주려 하지 않는 오해와 배척 가운데 버려져 있을 때에 찾아 오셔서 나의 마음 중심을 헤아려 전폭적으로 위로해 주시고 믿어주시고 기다려 주시고 붙들어 주시는 자상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바로 나의 아버지요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시다.
∙불안 가운데 초조해 하며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을 때에 찾아 오셔서 감싸 안아 주시고 진정한 삶의 평안과 위로와 안식을 공급해 주시는 아버지가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지치고 쓰러져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고 주저앉아 있을 때에 곁으로 다가 오셔서 내 손을 잡아 주시고 다시 힘을 얻어 사십 주야라도 더 걷고 나아가게 하시는 엘리야의 하나님 아버지가 곧 나의 아버지요 우리 모두의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경우와 상황은 서로 다 다르겠지만 육신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하늘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이 땅의 인생들 곁에 찾아 오셔서 늘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고 격려해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시고 용기와 소망이 되어 주시는 은혜롭고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신 아버지이시다. 오히려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인 우리가 약하면 약할수록 더욱 더 격려 해 주시고 더욱 더 힘이 되어 주시고 더욱 더 용기가 되어 주시는 아버지이시다.
잠시 동영상 한편을 보고 나서 말씀을 계속하여 묵상하도록 하자.
(인터넷에 ‘Dick and Rick’ 이라고 치면 여러 개의 동영상이 소개되어 있다.)
아들 Rick Hoyt은 태어 날 때에 탯줄이 그의 목을 감아 산소 공급 부족으로 뇌성마비와 경련성 전신마비 증세로 목숨을 겨우 건졌다. 그런 그는 일반 학교에 정상아들 곁에서 함께  공부할 기회를 가졌고 그를 위해 제작된 특수 컴퓨터를 통해서 의사를 교환할 수가 있었다. 나중에는 보스턴에서 컴퓨터를 공부해서 대학과정도 졸업할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 Dick Hoyt은 아들을 위해서 사랑과 정성을 다하며 서로 함께 힘을 모아 살아가는 가슴 뭉클한 실화의 영상물이다. 샘 널이 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이란 책의 주인공인 아버지와 아들이기도 하다.

성경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신지를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으로 꽉 찬 마음이시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 그것을 증언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 내어 영생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이요 격려의 마음이요 용납하는 마음이요 소망을 불어 넣어 주는 마음이요 믿어주고 신뢰해 주는 마음이고 기다려 주는 마음이며 참아 주는 마음이고 견뎌 주는 마음이며 눈 감아 주는 마음이고 길이길이 용서해 주는 마음이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또한 너그러운 마음이시며 은혜로운 마음이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자비로운 마음이시며 긍휼이 한이 없으신 마음이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이 땅의 70억이 넘은 인구의 모든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다 합친 것 보다 더 크고 더 깊고 더 넓고 더 길고 더 긴 마음이시다.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의 바다요 너그러움의 강줄기요 받아 주고 용납하는 크고 큰 호수요 언제 바라보아도 거대한 산처럼 우리를 감싸 안아 주시는 크고도 넓은 마음이시다. 하나님은 언제나 밝고 빛나는 큰 광명으로 가득하여 어두운 그늘이 전혀 없으신 완전한 광명의 근원이신 마음이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빛은 이 세상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해와 달과 모든 별들의 빛을 다 합친 광명보다 더 큰 광명이시며 더 큰 마음의 빛이시다.

호세아 1장 10절에 보면,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했다.
고린도 후서 6장 18절에 보면,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다.

신명기 31장 6절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는 택한 자녀들과 늘 함께 가시며 결코 그 곁을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는 아버지이시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아버지로서 약속해 주신 말씀들이 바로 이것이다. 여호수아 1장 5절과 6절에도 보면 하나님은 모세의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의 아버지이시라고 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1992년 8월 3일, 바로셀로나 올림픽이 열리고 있었다. 영국의 데렉 레드몬드 (Derek Redmond)선수가 400미터 예선전 중 갑자기 인대가 파열되어 트랙에 넘어지고 말았다. 데렉 선수는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트랙에서 뒹굴었다. 6,5000여명의 관중들은 모두가 안타깝게 그 장면을 주목하고 있었다. 모든 관중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잠시 후에 데렉 선수가 고통을 참으려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부축하려는 진행 부의 관계자들을 뿌리치고 절뚝거리며 트랙을 돌기 시작했다. 관중들은 박수하고 격려하며 열광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것처럼 일제히 모든 관중들이 관중석에서 일어나서 우레와 같은 박수로 데렉 선수를 격려했다. 그 때 관중들 틈에서 한 사람이 운동장의 트랙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데렉 선수의 몸을 자신의 어깨에 메고 함께 트랙을 돌기 시작했다. 그는 데렉 선수의 아버지였다. 이미 경기는 끝났지만 그 데렉의 아버지와 데렉은 끝까지 400미터를 다 달려 완주하였다. 아니 달린 것이 아니라 고통을 참고 이기며 뒤뚱거리며 아픔을 참고 끝까지 결승선에 도착한 것이다. 그 후 사람들은 그 아버지와 아들을 향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두 사람은 올림픽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완주를 다한 주인공이다."

우리가 늘 익숙하게 기억하는대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란 뜻이 무엇일까. 하나님 아버지는 선조 때부터 대대로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우리들의 아버지이시고 곧 나의 아버지이시다. 그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보내 주셨다.

오늘 본문의 비유에서 소개된 아버지의 마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설명해 주시고 싶었던 그 하나님의 마음이시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인생들이 죽음에서 영생으로 회복된 아들딸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집 나갔던 아들이 돌아오듯이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아들딸의 삶을 아버지 곁에서 즐겁게 기쁘게 더불어 서로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이런 기쁨과 즐거움을 영원히 받아 누리는 아들딸의 권세가 무궁하기를 기도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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