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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인자의 살과 피(요6:52-59)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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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3-03-24 21:38 조회 22,986 댓글 0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전해져 오는 바에 따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골고다 언덕의 땅 속에서 혈흔이 발견되어 그 피를 검사하였더니 홀 X염색체만 있더란다. 사람은 23쌍의 XY 염색체의 결합에 의하여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나는데 여자의 경우 XX, 남자의 경우 XY염색체로 결정된다. 23쌍의 염색체(sex chromosome) 중에서 1쌍이 성을 결정하는 성(姓) 염색체이고 나머지 22쌍은 상(常)염색체라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로 추정되는 골고다 언덕 땅 속에 흘러 내렸던 피에서는 어머니 마리아의 피를 이어받은 23개의 홀 X 염색체만 발견될 뿐 쌍을 이루어야 하는 XY염색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성령으로 잉태된 독생자이심을 성경의 사건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는 주장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즉 인자의 살과 피를 통하여 구원을 받고 영생하는 신앙의 길로 초청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매미는 이슬을 먹고 살지만 사람은 오곡백과와 야채와 생선과 고기를 주식으로 하여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는 것이다. 노아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직접 내려 오셔서 저들과 말씀하시는 말씀 안에서 살았다. 그러나 모세 시대에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해 주신 두 돌판의 십계명을 비롯하여 언약서에 쓰게 하신 언약의 말씀과 수많은 율례와 법도와 규례의 말씀들을 명하셔서 그 말씀 안에서 광야 백성들과 더불어 살아가게 하셨다. 모세시대에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셔서 그것을 주식으로 먹고 살아가게 해 주셨다. 애굽의 고기타령을 하면 하나님께서 바람으로 메추라기를 보내 주셔서 고기를 먹고 배부르게 하셨다.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와서 그것으로 인생과 짐승이 배가 부르게 먹고 마시고 해갈하게 하셨다. 사도 바울은 나중에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서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해석해 주었다.

요한복음의 전반부에는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에서 큰 무리들에게 어린이가 가져온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가 부르게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의 부스러기를 거둔 기적이 기록되어 있다. 감격해하고 놀라워 한 무리들이 그 표적을 체험한 후에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억지로 예수님을 임금 삼고 싶어 하였다. 예수님은 백성들의 그와 같은 움직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기도하러 가셨다.

날은 저물어 가고 그 밤중에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호수를 건너 저편으로 가던 중에 큰 바람을 만나 파도가 심해졌다. 큰 바람과 파도 가운데 노를 젓는 일은 암담한 일이었다. 한 십여 리쯤 큰 바람과 파도 가운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그 갈릴리 위로 걸어서 제자들의 곁으로 다가 오셨다. 저 멀리 다가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본 제자들이 두려운 마음을 가졌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기뻐서 예수님을 배 위로 영접하였고 얼마 후에 배는 갈릴리 저 맞은편에 도착하였다. 그 이튼 날 있었던 일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갈릴리 저편에서 어저께 예수님이 보여주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베푸신 배부르게 하는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이 서로 서로 배를 나누어 타고 다시 갈릴리 건너편으로 모여 들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6:26)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요6:32-33)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 때에 무리들이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하고 요구하였다.

자,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신 “하늘에서 내려서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떡”이란 무엇일까.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생명의 떡을 달라고 하는 무리들에게 “내가 생명의 떡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란 말씀은 무엇인가. 예수님께로 오는 자는 결코 굶주리지도 않고 배고프지도 않을 것이며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그렇다. 신앙생활이란 예수님의 이 오묘한 말씀의 진리를 깨달아 알고 믿고 예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성령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나의 영혼이 배부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도인 것이다. 그래야 진정으로 믿음의 사람인 것이다. 예수님을 보고 믿는 것이 영혼이 배부르고 영혼이 목마르지 않게 되는 시작이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은총이요 축복이요 신비인 것이다.

교회를 핍박하거나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비난하는 이들이 흔히 하는 말들 중에 “아니! 교회 다니면 밥이 나오느냐, 돈이 나오느냐”고 헐뜯으려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하여 보라. 교회를 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삶의 구주로 영접하고 살아가기 시작하면 밥이나 돈의 문제 정도가 아니라 온갖 좋은 것들이 하늘로부터 내게 임하게 된다. 예수님은 사십일 동안 광야에서 성령에 이끌리어 금식하신 후에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였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그 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고 하셨다. 그렇다. 성도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 가운데 죽었던 인생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고 영생하게 하는 생명의 양식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성도들은 위의 것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사람이 땅에 것을 주로 생각하며 사는 것은 아직 자신의 삶이 땅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로부터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라면 몸은 비록 이 땅에 살아갈 지라도 위의 것을 주로 생각하며 살게 된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3:2)고 하였다. 사람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부해지려고 하고 재물과 돈을 많이 생각하며 산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하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9-10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하늘 위에서 내려 주시는 양식을 먹고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육체를 갖고 있는 동안에 육체를 위한 양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온유와 인내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딤전6:11-12)고 분부하였다. 성도된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하면 그 영혼으로부터 굶주려 하고 목 말라하는 양식이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말씀이다.

본문이 있는 요한복음 6장의 그 앞부분을 포함하여 묵상해 보면 예수님께서 영생에 관한 몇 가지의 교훈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성도의 양식.
예수님은 스스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셔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의 그 어떤 뜻을 이룩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기 위해서 보냄을 받으신 메시야이시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대하시는 뜻은 예수님께 맡기신 영혼들을 일일이 모두 다 마귀에게 빼앗기거나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다 구원하여 영생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여기서 말씀하는 생명(生命)이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영원한 선물 즉 영생(永生)인 것이다. ‘성찬’ 즉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이미 영생을 가진 것이라고 하셨다.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혹시 성찬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아직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의 진리를 제대로 깨달아 알지 못한 상태라면 본문에서 묵상되는 예수님의 이같은 말씀의 진리와 교훈을 제대로 깨달아 알고 믿고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27절에 보면, 예수님으로부터 배가 부르도록 먹는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이 갈릴리 저편에서 이편까지 극성스럽게 찾아 온 무리들을 향하여 일침을 가하셨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요6:27) 그 때에 무리들이 예수님께 질문하였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님은 너무나 명쾌한 대답을 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6:29) 이 세상 천하 만민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기대는 예수님을 믿는 인생,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인생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성경을 자세히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무리들이 예수님께 질문한 내용의 ‘일’이란 ‘에르곤’(e[rgon)이란 말이 제자들에게서는 복수로 사용되었고 예수님은 단수로 대답하셨다. 그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예수님은 당시나 오늘 날이나 이 한 가지 부족한 ‘일’에 대하여 안타까워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예수님을 영생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그것이 일중의 일이라는 강조인 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라고 하였다.

며칠 전에 꿈에 너무나도 선명하고 분명한 꿈을 꾸었다. 예배당이 다 지어지고 모든 인테리어를 마쳤다. 꿈이었다. 예배당에 혼자 앉아서 강단을 바라다 보고 있는데 강단 중앙의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로부터 너무나도 분명하게 예배당 십자가를 향하여 내려오는 꿈을 꾼 것이다. 그 말씀인 즉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는 말씀이었다.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역을 마무리 하시고 붙잡혀 고난을 겪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순간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예견하시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기도하신 유언의 기도가 나온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4-5) 예수님은 평생토록 특히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난 삼년 동안 공생애의 사역을 하신 그 분주하고 길지 않은 기간 동안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라고 주신 일 즉 사명을 다하기 까지 그 일을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하고 기도 드리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요6:27)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 천국의 일꾼들이 되어야만 한다. 그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 곧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이 아니겠는가.

간디와 네루와 함께 인도의 3대 성자로 알려져 있고 기독교로 개종한 성자 썬다 씽(Sadhu Sundarsingh, 1893-1929)이 어느 날 기차 안에서 전도지를 돌리며 전도하고 있었다. 승객 중의 한 사람이 요한복음 쪽 복음서를 받아 들더니 갈기갈기 찢어서 기차 창문 밖으로 날려 버렸다. 그런데 얼마 뒤에 기차가 지나간 기차 길을 걷던 어떤 사람이 우연히 기차 길 위에 흩여져서 날아다니는 종잇조각을 주워서 읽게 되었다. 그것은 기차 안에서 찢어서 버린 요한복음 성경의 일부분이었다. 그 찢어진 종이쪽지 안에는 “생명의 떡”이란 단어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그 표현이 성경인 것을 알고는 수소문 끝에 성경을 한 권 샀다. 그리고 차례대로 성경을 읽으면서 “생명의 떡”이란 말씀이 성경의 어디에 나오는 말씀인가를 찾아 가기 시작하였다. 그는 성경을 읽는 중에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인도 중부 지역의 수많은 영혼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인도한 전도자가 되었다.


살아있는 떡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의 영생.
하나님의 뜻은 이 세상에서 인생들이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가다가 육신의 생명을 다하면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인간의 생명은 이 세상의 생명이 전부가 아니다. 인간은 영생하되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에서 영생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영접하지 아니하면 지옥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 온 떡이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일이 벌어졌다. 특히 예수님의 나사렛에 사는 목수였던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과 그의 아내이면 예수님을 낳은 어머니인 마리아를 아는 이들은 더욱 심했다. 예수의 부모를 자기들이 아는데 어떻게 목수 요셉의 아들인 예수가 어떻게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 왔다고 하느냐고 비난하고 수근 거리기 시작하였다.(요6:42)

모세시대에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때가 되어 다 광야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르는 인생들에게 양식으로 주신 ‘참 떡’(요6:32)이며  ‘하나님의 떡’(요6:33)이며 ‘생명의 떡’(요6:32, 48)이며 ‘하늘에서 내려온 떡’(요6:41)이시다. 예수님은 친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5)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영생을 소유의 개념으로 설명하셨다. 우리가 아무리 인천 공항에 나가서 서성거릴 지라도 비행기를 구경할 수는 있으나 비행기 티켓이 없으면 원하는 비행기를 탈수가 없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아무리 비행기를 탔다고 할지라도 ‘입국 허가서’ 즉 ‘VISA’를 요구하는 나라에 들어가려면 상대방 국가의 공항 입국 수속 담당자 앞에서 입국 허가서를 내어 보이지 않으면 천하에 그 어떤 권력자나 재벌이라도 절대로 그 나라에 입국할 수가 없는 법이 아닌가. 이처럼 천국과 영생을 예수님은 막연하게 설명하시지 않고 소유 개념으로 명쾌하게 설명해 주셨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라고 하였다. 47절에는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라고 하였다. 54절에서도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라고 하셨다. 이처럼 영생이란 막연하고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것저것을 먹음으로 그것이 내 몸에 들어가서 소화가 되고 영양이 흡수되어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와 신경 조직과 오장육부와 사지백체가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런 영혼의 양식으로서의 신비가 있는 것이다. 목이 말라서 입술이 타들어가던 상태에서 시원한 냉수를 한 바가지 마시고 나면 금방 해갈이 되고 온몸에 새 힘이 돋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질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고 하셨다.

떡을 먹고 물을 마시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상태를 말한다.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에의 참여는 말씀 신앙과 성찬 신앙의 신비가 있는 것이다. 성찬의 빵과 포도주에 신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진리를 깨닫고 믿음 가운데 구원의 신비와 영생의 신비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 진리를 알고 깨닫고 믿는 것은 얼마나 크나큰 주님의 은총이요 축복인지 모른다. 41절에 예수님을 향하여 수군거리든 유대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66절에 보면 예수님의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다. 불쌍하고 불행한 유대인들의 무리의 실상을 보여주는 예수님 시대의 단면이다.


말씀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는 생활.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신다는 생태는 예수님의 말씀이 내 마음 즉 내 심령 안에 거하시는 동행(同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시는 것처럼 성도된 우리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자들이어야만 한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증거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6:57) 우리가 밥을 먹고 살아가듯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날마다 순간마다 예수님의 말씀을 먹고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존재 할 수 없다. 어려운 말로 하면 ‘존재론적 동일성’(essential equality)라고 한다. 쉽게 풀어 간단히 설명하면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다’라는 말씀이다. 다른 의미인 것 같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라는 말씀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4:34)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 즉 부여 받은 사명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하나님 안에 거하시는 그의 증거였다. 그렇다고 하면 성도인 하나님의 아들딸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라고 하면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말씀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절대 순종하며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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