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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눅23:50-56)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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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3-06-16 21:55 조회 24,064 댓글 0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곁에는 수많은 무리들이 항상 그를 따랐다. 예수님은 자신이 부르셔서 제자 삼은 12명의 제자들 외에도 나중에 부르신 70명의 제자를 비롯하여 항상 가시는 곳마다 그를 따르는 이들과 만나고 싶어 하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정작 붙들려 고난을 당하시고 대제사장 가야바와 본디오 빌라도를 통한 심문과 재판을 받으시는 동안에서 12제자들조차도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슬금슬금 모두 다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채찍에 맞으며 골고다 언덕을 향해 십자가를 지시고 끌려가시던 예수님은 그를 구경하는 구경꾼들 사이에서 수도 없이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거반 다 죽게 된 모습이 되었다. 본문으로 읽은 누가복음의 앞부분인 23장 27절에 보면,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고 하였다. 이미 지쳐 쓰러지던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경하다가 끌려 나온 구레네 사람인 시몬에 의해서 이동되고 있었다.

십자가에 달려 여섯 시간쯤 고통을 당하시던 예수님은 결국 운명하셨다. 정오가 되자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덮쳤다. 오후 세시 경에 예수님은 돌아 가셨다. 그 시간에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한 가운데가 찢어졌다. 예수님이 돌아가시던 장면을 끝까지 목격한 로마의 백부장은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는 말을 했다. 구경하듯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던 무리들은 모두가 다 가슴을 치며 슬퍼하며 뿔뿔이 흩어져 돌아갔다. 평소에 예수님을 알던 여인들과 갈릴리에서 올라온 여인들이 멀리서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하며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 때에 산헤드린의 공회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나서서 빌라도에게 갔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시체를 처리할 권한을 받아 내었다. 그는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서 정성스럽게 니고데모가 가져온 몰약과 침향 섞은 것으로 골고루 씻고 세마포로 감쌌다. 그리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자기를 위하여 파 두었던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지내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곧 이어서 안식일이 시작되었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따라 왔던 여인들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뒤를 따라가서 그 무덤과 예수님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자세히 보고 돌아가서 안식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 본문의 이 사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골고루 다루고 있는 그에 관한 성경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그는 부자였고 예수님의 제자였다.(마27:57, 요19:38)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자신이 예수 믿는 자인 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겨 오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처형하려고 공회인 산헤드린이 결의할 때에 찬성하지 않았던 인물이기 했다. 이는 불법을 행하며 예수님을 처형하려던 모임에 처음부터 가담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당시의 결의란 모든 것이 만장일치였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5장 1절에 보면 예수님을 죽이려 하던 그 날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거기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라는 말씀 속에 그런 시대적인 상황을 입증하는 근거가 있다.

그런 그가 역사적이고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 있는 행동을 하였다. 마가복음에 보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성격이 당돌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공회원이었다.(막15:43) 누가복음의 본문인 23장 50절은 그를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고 했다. 이 모두를 종합해 보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신앙관과 인물의 됨됨이를 알게 된다. 특별히 마가복음과 누가 복음은 반복해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평하기를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하였다.(막15:43, 눅 23:51)

부자라는 말은 그가 경제 관리와 운영에 성공적인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성경은 그가 유산이 많았는지 혹은 공회원이 되기 전에 무슨 사업을 했는지, 무슨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번 부자가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하튼 그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제적으로 핍절하지 않고 넉넉한 부를 이룬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에 연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로 꾸준히 성실하게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사모하며 산 사람이었다. 그는 이 세상 생활이 가난하고 곤고하고 병들고 힘들고 어렵고 지치고 살맛이 없으니 어서 죽어서 하나님의 나라에나 가고 싶다는 식의 도피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부자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유대 나라에 단 70명밖에 없던 조직인 공회 즉 산헤드린의 의원일 정도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도 출세한 인물이었다. 예수님 당시의 공회인 산헤드린의 의장은 대제사장이 맡았다. 구성원들은 제사장과 서기관, 장로 등이었다. 서기관들의 대부분이 바리새인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결국은 거의 모두가 바리새인들 중에서 공회원이 구성되었다. 공회원은 백성들의 종교생활과 일상생활을 재판하는 일을 하였다. 공회는 벌금형이나 태형을 선고하였다. 오늘 날의 경찰권과 같은 치안의 권한도 있었다. 단지 사형에 관한 결정권만은 로마 정부에 있었다.(요18:31) 공회는 안식일과 절기 이외에는 날마다 열렸다. 공회의 회의는 아침 번제 이후에 시작해서 저녁 번제 이전까지 계속되었다. 회의 장소는 상황에 따라서 옮겨졌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는 결정을 하던 날은 그 해의 대 제사장인 가야바의 뜰에서 열렸다.(마26:59) 그 공회를 멀찍이서 구경하던 베드로가 하인들 곁에 앉아 불을 쪼이다가 한 여자 아이가 자기를 알아보고 ‘예수를 따르던 자’라고 말하자 부인하고 배반하고 저주하고 도망쳐 버린 그 현장이 바로 그 곳이다. 당시에 이처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사회적인 지위와 신분을 가지고 활동하던 70명의 산헤드린 공회원 중의 한 사람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었다. 그는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마가복음 15장 43절에 보면 사회적으로 존경받던 인물이었다. 이처럼 사회적인 기반이나 세상적인 여건이 분명하고 확고하였던 그였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된 이후로 항상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이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신앙.
우리가 영종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일정한 시간 날아가면 유럽의 여러 나라에도 갈수 있고, 미국이나 캐나다에도 갈수 있고, 호주에도 갈 수 있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지만 가서 보면 그런 나라가 지구 저 반대편에 펼쳐져 있다.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비유를 통하여 계속하여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해 주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실존을 설명해 주신 것이다. 우리는 보지 않은 것은 잘 믿으려 하지 않는 불신이 있다. 그러나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더욱 복된 자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런 것이다. 지난 해 이맘때에는 은평 뉴타운 성전 터에 아무 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지난 해 5월 22일에는 터를 파던 지하 토목 공사 현장에 공사 중지 명령이 떨어지면서 여름 내내 아무 공사도 하지 못했다. 장마가 들면서 물 바다였다. 그런데 가을을 지내고 연말연시에 한 겨울 그 추운 날들 동안에도 발동기를 켜고 온풍기를 틀어가면서 한 층 한 층 예배당이 지어지고 이제는 7층짜리 성전이 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일 년 전에 눈에 보이지 않던 건물이 지금은 눈에 보이는 것이다.

신앙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믿지 않는 이들은 예수를 믿는 이들의 열심을 이해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지난 주일에는 우리 성도들이 4,300만원의 헌금을 하나님 앞에 바쳤다. 개척교회치도는 대단한 기적이 아닌가. 어떻게 그런 헌신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일까. 돈, 재물, 금과 은과 보석과 그 어떤 값지고 귀한 것이라도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이나 리비아의 카다피나 에집트의 무바라크나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가 금과 은이 없어서 죽었나. 자기 누울 집이 없어서 죽었나. 자기 탈 차와 자기 입을 옷이 없어서 죽었나. 자기 먹을 보약이 없고 식량이 없어 죽었나. 자기를 지켜주는 군대나 경호부대가 없어서 죽었나.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의 나중과 그렇지 못한 인생의 나중은 하늘과 땅, 천국과 지옥의 차이처럼 큰 것이다.

유계준(劉啓俊, 1879-1950)은 평양산정현교회의 장로였다. 주기철 목사를 도와서 일본 식민지 시대 때에 신앙투쟁을 펼쳤고 창씨개명도 거절하였다. 해방 후 조만식 장로와 함께 건국 사업에 앞장섰다. 평안남도 안주군에서 태어난 유계준은 어려서 한문 공부를 하다가 13살 때에 평양으로 나왔다. 그 후 평양의 한 무역상의 사환으로 들어가 10여 년간 일하며 돈을 벌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23살 때에 평양 시내에 깡패들을 몰고 다니던 깡패였다. 어느 날 미국인 선교사 사무엘 모펫이 평양시내에서 전도하는 것을 보고 선교사를 구타하는 등 선교를 방해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매를 맞고도 ‘예수 믿으라’고 권유하는 선교사에게 설득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힘 입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다. 그 후에 자기의 넓은 집에서 미림교회를 설립하여 예배를 드렸다. 그는 25살 때에 아내 윤덕준(1885-1975)권사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결혼 초기에는 그에게 자녀가 없었다. 그는 나중에 사업에 성공한 후에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어 평양 숭덕학교 재단 이사장으로 헌신하였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 보기 어려운 양로원을 설립하여 사회사업에도 손을 뻗쳤다. 그러면서도 민족의 자유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나중에는 자녀도 육남 이녀 즉 팔 남매를 낳았다. 선교사들로 인하여 예수 영접한 후에 열심히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세례를 받고 집사가 되고 45살에 장로가 되었다. 그 후 평양에서도 유서 깊은 산정현교회의 교인이 되면서 길선주, 주기철, 김규찬, 한경직 목사 곁에서 조만식, 오윤선, 안창호 장로등과 가까이 교제하며 일제의 침략을 받아 점점 어두워져 가는 한국과 한국교회를 위하여 헌신할 결단을 하며 살아갔다. 특히 주기철 목사가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1944년 4월에 감옥에서 순교할 때까지 5년 4개월을 한 결 같이 그의 옥바라지와 주 목사님의 가족들의 경제적인 뒷바라지를 도맡아 감당하였다. 결국 이 일로 평양 경찰서에 소환되어 일본 경찰들에게 협박당하면서도 "우리 교회가 모시고 있는 목사님이 지금 감옥에 들어가 고생을 하고 계시는데 그 가족의 생활비마저 어떻게 안 드릴수가 있겠습니까?”하고 당당하게 말했다고 한다. 1920년에 독립투사들의 뒷바라지를 하기도 했고 저들의 은신처를 제공하며 창씨개명 운동에 적극 반대하였다. 물론 신사참배도 반대하였다. 담임 목사였던 주기철 목사가 신사 참배를 반대하다가 붙들려 감옥에서 5년간을 고문을 받으며 온갖 고초를 다 겪었고 1944년 4월 21일, 47살에 순교를 당했다. 유계준 장로는 사택을 비워달라는 요청을 거부했고 결국 평양 경찰서는 순교 당한 주목사 가족들을 끌어내고 사택을 폐쇄해 버렸다. 유계준 장로는 주기철 목사와 더불어 굳건히 신앙의 절개를 지켰으며 교회의 신성(神聖)을 보존하였다. 이로 인해 견디기 어려운 고초를 당해야만 했다. 해방이 되어 자유를 누릴 겨를도 없이 유 장로는 공산당의 위협을 받게 되었고, 탄압이 거세지자 부인과 8남매의 자녀들과 주기철 목사의 유족들을 월남시킨 후에 자신은 끝까지 평양에 남아 교회를 지켰다. 그는 6. 25사변이 일어나기 하루 전날 공산당 정권의 정치 보위부원 들에게 연행되어 구금된지 3개월 후인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이후 패주하던 공산군에 의하여 순교 당하였다. 그의 아들딸 팔 남매는 아버지 유계준 장로와 어머니 윤덕준 권사의 신앙을 이어 받아 신앙의 명문가를 이루었다. 장남 유기원 장로는 생전에 국립의료원장을 역임했다. 2남 유기형 장로는 부산의대 교수를 지냈다. 역시 의사 출신인 3남 유기선 장로는 올해 91살로 현재 부산에 거주하고 있다. 4남 유기천 장로는 서울 법대 학장과 사범대학장을 거쳐 제 9대 서울대 총장을 역임했으며 사재 30억 원을 모교에 장학기금으로 기부해 귀감이 되기도 했다. 특히 미국 시카고에 거주하고 있는 역시 의사인 5남 유기진 장로는 올해 88살로 월남 이전까지 장기려 박사와 함께 평양기독병원에서 근무했던 당시 몇 안 되던 외과 의사였다. 그는 월남 후에 포로수용소에서 군의관으로 일했다. 1964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북미기독의료선교회를 창립했고 의사였던 부인 고난경 권사와 함께 시카고 한인장로교회를 섬겼다. 또 장녀 유기옥 권사는 올해 84살인데 서울 용산에서 누가의료원 원장을 지내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거주하고 있는 6남인 81살, 유기묵 장로도 의사이다. 8남매 중에서 여섯 명이 의사가 되었다. 또한 둘째 딸은 국무총리를 지낸 이한빈 박사의 부인이며 전 숭실대학교 총장을 지낸 유기숙 박사이다. 유계준 장로님의 후손이 모두 106명을 넘어 섰는데 하나님을 잘 믿으며 나라 안과 밖의 사회 각계각층에서 유명인사로 활동하고 있다.(2004년 자료)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의 생애와 그 자손의 앞날은 이 세상에서부터 다르고 영원히 다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의 받는 축복.
우리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믿던 하나님과 주기철 목사나 유계준 장로가 믿던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을 잘 믿고,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분명한 신앙을 갖고 살아가면 나중 천국의 영생복락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잘되고 번성하고 존귀해 지는 축복을 받게 되어 있다. 비겁하게 숨고 피하고 도망 다니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비롯한 열한 제자가 나중에는 모두 다 성령 충만을 받은 예수님의 제자다운 제자들이 되었다. 가롯 유다 이외의 모든 제자들은 지난 2,000년 기독교 역사의 중심에 서는 인물들이 모두 다 되었다. 사도행전의 내용은 우리가 아는 대로 “성령 받고 나니까 베드로가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다. 은혜 받고 나니까 야고보와 요한이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성령 받고 나니까 핍박자 사울이 위대한 이방 전도자 사도 바울이 되었다.”는 역사기록이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고, 예수님을 제대로 체험한 인생이라면 분명히 그 인생관이 바뀌고 그 신앙관이 변하게 되어 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아리마대 사람 요셉처럼 출세하고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권력과 명예를 누리며 살아도 이 세상에 연연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살 줄 아는 분명하고 다른 소망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의 재물관, 시간관, 건강관, 직업관, 인생관이 남들과 분명히 다르다. 지금 나의 건강이나 나의 생명도 나의 것이 아니다. 매 순간을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돈도 재물도 내가 정성스럽게 땀 흘려 일궈 놓은 산업이나 장사의 터전이나 사회생활의 그 어떤 그 무슨 기반이라도 내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태도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은 이 세상 지위와 명예와 권력과 건강과 부와 재물과 출세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으며 살 줄 아는 사람이다.
성경의 인물 들 중에서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나 요셉이나 모세나 여호수아아나 다윗을 보라. 저들의 인생을 성경이 많은 분량의 지면을 할애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기록하고 모세의 삶에 대하여 기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성경에서 다윗에 대하여 만난다.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는가. 반면에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 있어서 다윗은 어떤 삶을 살았던 인물인가.

왜 아브라함이 가는 곳 마다 하나님 앞에 단을 쌓으며 살아갔다고 여겨지는가. 왜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다고 믿어지는가. 왜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홀로 외롭게 밤을 새워 가면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며 기도하였다고 여겨지는가. 아브라함이나 야곱에게 양이 없었나, 염소가 부족하였나. 소나 약대가 더 필요하였나.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에게는 양과 염소와 소와 나귀와 약대가 산허리를 덮는 떼를 이루었다. 오늘 날로 하면 집안에 돈이 넘쳐 나고, 은행의 VVIP 고객이고 처처에 투자해 놓은 땅과 사들여 놓은 빌딩에서 돈이 쏟아져 들어오고 넘쳐나는 재벌이었다. 수십만 주, 수백만 주의 주식이 잠자는 사이에도 돈을 엄청나게 벌어들이는 큰 부자였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점점 분명해져 가는 삶을 살았다. 이는 모세도 마찬가지요, 다윗도 마찬가지였다. 모세 당시의 모세나, 다윗 당시의 다윗은 당시의 세상 인생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매우 가까이 하던 인물들이 아니었는가. 모세는 200만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는 민족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면 40일씩 금식하며 시내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두 돌 판에 언약의 말씀을 받아 들고 하산하던 말씀의 사람이요, 언약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전파하던 율법의 사람이었다. 왜 오늘날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를 귀하게 여기고, 다윗을 존귀하게 여기는가. 저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과 이끄시는 대로 살고 싶어 했던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 모세는 애굽 사람을 살인한 사람이요, 다윗도 부하 장수인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고 그의 남편 우리야 장군을 전쟁의 최 일선에 배치해서 죽도록 한 살인 방조죄를 범한 죄인이었지 않나.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다시 나게 하셨고, 다윗을 다시 되게 하셨다. 모세의 나중 생은 달랐고 다윗의 나중도 점점 달라져만 갔다. 저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다윗은 40년 동안 왕이었지만 늘 자신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자기의 왕이요 하나님이 자기의 목자이셨다. 시편 16편 2절에도 보면 다윗은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하고 고백하고 있다. 같은 시편 16편의 마지막 절인 11절에는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 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 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 그 유명한 시편 23편의 고백처럼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고백이 늘 그의 마음에 가득 차 있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은 하나님 안에서 살다가 하나님 안에서 4,000년이 지나고, 3,500년이 지나고, 3,000년이 지나도 그 이름이 퇴색되지 않고 점점 존귀한 이름이 되어 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세상에 이 보다 더한 축복이 그 어디에 있겠는가. 필라델피아 제 10장로교회에서 30여간 목회한 제임스 보이스 목사의 <하나님이 부르신 보통 사람들>이란 책에 보면 지금 묵상하는 이런 내용들에 그도 공감하는 글들을 넘쳐 나게 써 내려 간 것을 본다.

오늘 날로 하면 시간만 있으면 스포츠와 오락과 레저와 여행과 향락에 끌리고 취해서 그저 산으로 들로 바다로 해외로 열심히 인생을 즐기려고 드나드는 그런 인생이 아니다. 내도 벌어 내가 쓰는데 남이 왜 내게 무어라고 하느냐며 나 하나 즐겁고 내 가족 하나 잘 먹고 내 자식 하나 잘 키우고 잘 살면 그 뿐이라는 식의 그런 인생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가진 인생으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이 2만 5천명을 넘어 섰다. 선교사뿐만이 아니다. 세상이 죄와 악으로 가득한 것 같아도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향기를 발하며 살고,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는 얼마든지 많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예배당 잘 짓고 우리끼리 좋고, 우리끼리 정들고, 우리끼리 행복한 것으로 만족한 그런 교회 생활을 꿈꾸고 바라고 희망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와 보살핌에 목 말라하고 굶주려 하는가. 그런 가난하고 병들고 불쌍하고 소외되고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고 절망과 좌절과 고통과 무의미 가운데서 허덕이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믿음을 심어 주어야 한다. 반면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나 니고데모처럼 부자요 출세하고 성공하고 이 세상에서 권력과 재물과 명예가 넘쳐 나더라도 인생의 무의미 가운데서 세상길로만 치달으며 배를 신처럼 섬기고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아 보겠다는 인생들의 가는 길을 막아서서 인생이 인생답게 살다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세상에 하나님의 자녀다운 흔적을 남기고 주께로 돌아가는 길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증거하고 전파하여야만 한다.

천명의 고관대작들과 밤이 새도록 술을 퍼 마시며 잔치를 벌이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간 성전의 금 그릇을 꺼내다가 술을 부어 마시며 만용을 부리던 벨사살 왕을 하나님은 그 밤에 죽이시고 말았다. 다니엘서 5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그 밤으로 갈대아 왕 벨사살의 생을 끝내 버리시고 매데 사람 다리오가 왕이 되어 새 나라를 건설하도록 이끄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던 기도의 사람이요 믿음의 사람 다니엘은 그 다리오 왕조차도 두려워하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다니엘서 6장 18절에 보면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어 놓고는 그 밤에 왕궁에 돌아가서 밤새도록 금식하며 오락을 그치고 잠도 자지 않고 꼬박 그 밤을 새웠다. 그리고 새벽같이 사자 굴로 달려갔다. 사자의 밥이 되어 뼈만 남았을 것으로 생각했던 다니엘은 사자 굴속에 여전히 살아 있었다. 다니엘 앞의 사자는 순한 양과 같았다. 다니엘보다 더 놀란 것은 왕 다리오였다. 그는 심히 기뻐서 명령하였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올려 졌고 창세기의 요셉처럼 왕의 제 이 인자를 삼았다. 반면에 다니엘을 참소하던 역적들은 그 처자들까지 모조리 다 사자 굴에 던져 넣어서 그들의 뼈까지 다 부서뜨려지게 하였다. 가족이 몰살당한 것이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에게 매력을 느꼈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다니엘 6장에 보면,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단6:26-27)고 하였다.  그 다음 절에 보면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제 내가 살아도”라는 복음 성가가 있다.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이제 내가 떠나도 저 천국가고
이제 내가 있어도 주 위해 있네
우리 예수 찬송하며 나는 가겠네
천군 천사 나팔 불며 마중 나오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갈라디아 2장 20절 말씀처럼 그런 신앙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아다 승리하는 신앙으로 주 앞에 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두 다 되어야 만 할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갈2:20)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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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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