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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그리고 이제는(엡2:11-22) 2024.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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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7-21 15:03 조회 1,137 댓글 0
 

                     그 때에 그리고 이제는(엡2:11-22)        2024. 7. 21

 

 

 

“저 사람 예수 믿더니 사람이 많이 달라졌어. 새 사람이 되었어”라고 말하는 경우를 본다. 맞다. 예수 믿으면 사람이 달라져야 한다. 달라진다. 변화된다. 변화 받게 된다. 성령 받고 은혜를 받으면 달라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그 말씀의 힘이 운동력이 있어서 그 한 사람의 삶을 전혀 새로운 길로 인도해 간다.

 

사도 바울 자신이 그런 사람이었다. 모세의 율법에 대한 열심히 특심하던 자였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몰랐었다. 그래서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이들을 박해하였었다. 사도 바울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기 이전에는 율법을 향한 열심과 혈기가 넘쳤다. 사도행전 9장 1절에 보면 “사울이...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다”라고 했다. 그는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마땅한 일로 여길 정도였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기 이전의 인생의 모습과 변화 받은 후에 모습을 대비하여 교훈하고 있다.

 

 

그 때의 실상.

읽지 않은 에베소서 2장의 1절부터 보면 2절에 ‘그 때에’, 3절에 ‘전에는’그리고 11절과 12절에 ‘그 때에’라는 시제가 반복된다. ‘그 때에’예수를 모르고 살 때의 모습이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상태”를 말한다.

 

2-3절에 보면 ‘그 때에’는,

허물과 죄 가운데서 행하며 살았다.

세상 풍조를 따랐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다. 

그 때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지냈다.

그 때에는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다.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였다.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11-12절에 보면,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였다.

그 때에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었다.

약속의 언약의 밖에 있었다. 외인이었다.

세상에서 소망이 없이 살았고 하나님도 없던 자들이었다.

 

그렇지 않나. 과거나 요즘이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라. 세상 사람들은 살인, 강간, 간음, 도적질, 횡령, 밀수, 거짓말, 온갖 탐심에 갇혀서 살아간다. 최근 해외 뉴스에 따르면 남미 브라질은 매 6분마다 강간 사건이 일어나는 나라라고 한다. 지난 한 해 동안에만도 통계상 강간 피해 신고 건수가 8만 3,988건으로 집계됐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에베소에 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저들에게 물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그들은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라고 대답하였다. 사도 바울은 세례 요한의 물 세례밖에 모르던 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세례를 소개하였다. 저들에게 안수할 때에 성령이 임하였다.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는 사람들이 열두 명쯤 되었다. 바울 사도는 회당에 들어가서 석 달 동안 머물면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고 권면하였다. 마음이 굳어서 순종하지 않고 비방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따르는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였다. 사도행전 19장 9절에 나오는 ‘두란노 서원’이란 이름으로 한국 교회 문서 선교 역사의 한 축을 이룬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사도행전 20장 3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의 에베소 선교는 무려 삼년이나 계속되었다. 바울 사도의 제 1, 2, 3차 선교 여정 중에 가장 오래 머물며 복음을 전파한 곳이 에베소이다.

 

에베소는 30여만 명이 모여 살던 큰 도시였다. 아데미 신전이 있었다. 아데미 여신의 신상을 숭배하면 다산과 풍요를 준다고 믿었다. 고린도가 교통과 상업의 발전과 더불어 타락하고 음란한 도시였다면 에베소도 그 이상의 심각한 타락과 부패의 온상이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7절에서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의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에베소서 4장 19절에 보니까,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고 하였다. 22절에 보니까,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라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라고 권면하였다. 

 

25절 이하에서는,

거짓을 버려라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아라.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아라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 하지 말아라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아라

오직 덕스럽고 선하고 은혜로운 말만 하여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아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 와 함께 버려라”(엡4:31)라고 교훈하였다. 

 

5장 3절에서는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4절에서는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다”5절에 보니까,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라고 하였다. 

 

다른 이야기 할 시간에 없다. 그 당시에 에베소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서 읽게 할 정도라면 교회 밖의 에베소 도시 일반 시민들의 일상이란 얼마나 심각하였는지를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이는 고린도서에서 대하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과 고린도에 사는 시민들의 실상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는 로마서에서 접하는 로마 교회 구성원들의 실상과 로마의 시민들의 생활상도 마찬가지이다. 그 당시에 이미 동성애의 문제가 심각하였다. 음행하고 교만하였다. 로마서 1장 27절에 보면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한다”라고 고발하고 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1:29-31)라고 낱낱이 지적하였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예수 모르고 살고 하나님 모르고 살면서 육체의 욕망에 사로 잡혀 살아가던 그 때의 삶의 모습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하나님의 가족(家族)인 성도(聖徒).

에베소서 2장 19절의 ‘하나님의 권속’이란 ‘가족’이란 뜻이다. 새번역 성경, 현대인의 성경, 공동번역 성경 등에서는 모두 ‘권속’이란 표현 대신에 이해하기 쉬운 ‘가족’이란 단어를 사용하였다. 맞다. 성도는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다.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이다. 13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진 자들이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화평의 근원이시다. 하나님은 두롤 하나를 만드셔서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예수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심으로 헐어 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택함 받은 성도들은 주 안에서 새 사람이 되게 하셨다. 화평을 이루셨다.

 

 <주는 평화>를 찬양하자.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염려 다 맡기라 주가 돌보시니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십자가는 둘을 하나로 만드는 화평의 능력이 있다. 십자가는 화목하게 하고 화평하게 하고 화해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십자가는 서로 원수된 것을 소멸하고 서로를 평안케 하시는 신비가 있다. 십자가는 둘을 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한 마음으로 나아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성도는 외인이 아니다. 나그네가 아니다.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이다” 성도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다”“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다.”

 

R. C. 스프로올(Sproul, 1937-2017)은 미국 신학교의 교수요 목회자요 설교가요 저술가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늘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살았다. 그렇게 그는 분석적이고 철학적이었다. 그런 그가 복음을 깨닫게 되었다. 1994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비평가들이 뽑은 ‘신앙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신학자’세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뽑힐 정도의 영향력 있는 기독교 지도자였다. 7년 전에 주님 앞으로 돌아갔다. 2017년, 눈을 감을 때까지 약 90여 권의 책을 썼다. <리고니어 선교회>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기독교 진리를 알리려고 노력했다. 그의 책 <거듭남이란 무엇인가>(What does it means to be Born Again?)에서 예수 안에서 거듭 나기 이전의 모습과 거듭난 이후의 변화에 대하여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거듭남은 사람의 안에서 일어나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영적 실상이다. 거듭났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통해 알 수 있는가. 태어날 때부터 그리스도인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라고 말씀하셨다. 성도란 거듭 나기 이전의 그 때의 삶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하나님의 가족다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딸인 자녀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으로 거듭났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성장하는 것은 공동체적인 일이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 안에서 힘쓰고 애써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일이 완성되어 간다. 하나님은 누군가를 중생시키실 때 그 사람과 영원히 함께 있도록 성령을 보내 주신다. 성령의 임재는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수반되는 모든 것을 공급하시겠다는 보증이다. 

 

성도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된 가족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하나가 된 하나님의 가족이다. 가족이 누군가.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구성원이 아닌가. 우리나라는 홀로 사는 이들이 일천만 명을 넘어섰다. 혼자 먹고 혼자 자고 혼자 지내는 이들이 일천만 명이 넘는단 말이다. 가정이 해체되고 가족의 개념이 흐릿해져 가고 있다. 대가족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가족이 있다고 해도 일 년에 명절이나 애경사 때 아니면 얼굴 보기도 힘들다. 만나도 신앙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면 서먹하고 할 말도 별로 없다.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되고 하나님 안에서 성도로 만나서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좋은 일인지 모른다. 

 

가족이란 한 공간에서 함께 먹고 함께 지내고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더불어 기쁨과 슬픔을 더불어 나누며 위로하고 돕고 격려하고 감싸주고 힘이 되어 주며 살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가족이 가족을 경쟁의 대상으로 삼나. 가족이 가족을 시기하나. 가족이 가족을 흉보나. 가족이 가족을 무시하나. 그그건 가족이 아니다. 가족은 있는 모습 그대로의 가족 구성원을 서로 받아 주는 것이 가족이다. 영어로 가족(家族, family)의 어원은, “Father And Mother I Love You ”(아버지, 어머니 나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누가 만든 표현일지라도 의미가 있다. 가정에 사랑이 식어 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나. 가족 간에 사랑이 식어 버린다면 서로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맞다. 사도 바울의 강조처럼 성도란 서로가 하나님 나라인 천국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이다.

 

<우리는 사랑의 띠로>를 찬양하자

 

우리는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널리 전하세

모두 사랑하며 주의 사랑을 전하세

모두 함께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에 널리 알리세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신앙.

그 어떤 건물도 하루 이틀에 지을 수는 없다. 물론 요즘은 원하는 건물을 공장에서 주문 생산해서 완제품을 원하는 현장에 이동해다 세워 주는 경우도 있기는 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건물이란 그 준비와 설계와 건축의 과정은 길고 긴 수고와 노력의 열매이다. 더군다나 역사적인 건물들은 하루 이틀에 건축되지 않는다. 긴긴 세월 동안 정교하게 건축한다. 사도 바울은 성도의 신앙 생활을 건물의 건축에 비유하여 설명해 주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엡2:21) 라고 하였다. 성도의 신앙생활이란 하루 하루 순간 순간 계속되어야만 한다. 아름다운 건물은 쓸고 닦고 보존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성도의 신앙생활이란 지속적이어야 한다. 주일 예배는 한 주간의 시작일 뿐이다. 월화수목금토 날마다의 생활 속에서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는 인생”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는 개인과 개인, 가정과 가정, 성도와 성도의 거룩한 연합이며 공동체성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속회가 그런 역할을 하여야만 한다. 우리는 속회를 통해서 서로의 신앙을 확인하고 주 안에서 형제 자매된 연대성을 경험한다. 서로의 신앙생활을 나누는 것을 통해서 영적 도전을 받고 믿음 생활의 유익을 경험하게 된다. 서로 격려하고 용기를 주고 사랑과 관심을 통해서 성도의 아름다운 연합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는 중에 자신의 믿음이 자라나는 것을 체험하게 되며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속도원들 간에 서로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돌보고 섬기는 일상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세상 그 어디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속회를 통해서 찬송, 기도, 말씀 묵상과 나눔, 간증과 중보 기도, 봉헌과 헌신, 봉사와 섬김을 끊임없이 경험하게 된다. 서로 간에 어려울 때에 힘이 되어 주고 약해져 있을 때에 보호자가 되기도 한다. 예수님과 그의 열두 제자들의 삼년 동안 밤낮 없이 날마다 함께 한 삶은 마치도 우리가 경험하는 속회 안에서의 연합의 원형과도 같다고 할 것이다. 맞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거룩한 집인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혼자서 믿음을 지켜가는 외로운 순례가 아니다. 더불어 함께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 중의 하나가 노트르담 성당이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다. 1163년 건설을 시작한 이래 많은 건축가들의 손에 의해 무려 170년이나 걸쳐 1330년에 완공된 성당이다. 고딕 건축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는 포도주 창고로 사용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 후 나폴레옹 1세(Napoléon I)가 다시 성전으로 회복하고 자신의 대관식을 그곳에서 거행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왕과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프랑스의 왕족들이 그곳에서 세례를 받았다. 드골 장군, 미테랑 대통령의 장례식도 그곳에서 거행되었다. 내부의 중앙에는 13세기에 만들어진 지름 13.1m 크기로 유럽에서 가장 큰 장미창(Rosace)이 있다. 창은 각각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구성되어 있다. 2019년 4월 15일 저녁에 화재가 났다. 96m첨탑과 지붕에 모두 불탔다. 아직도 복원 공사 중이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 생활은 계속하여 보수하고 중건하고 다듬고 관리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말한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2) 맞다. “나 한 사람 쯤이야 게으르면 어쩌겠어. 나 한 사람쯤이나 열심을 내지 않으면 어쩌겠어. 나 한 사람 쯤이야 몰라라 하면 어쩌겠어” 이런 마음은 성령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다. 성령은 우리 각 사람이 서로 서로 연합하여 주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집으로 지어져 가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을 힘 입고 날마다 순간마다 자신의 신앙 생활의 소임을 잘 감당해 나가는 착하고 충성된 성도의 삶을 계속해 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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