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에 읽는 말씀(신8:1-10) 2023. 11. 12
유월절로부터 시작되는 칠일동안의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은 성경이 강조하는 삼대 절기이다. 무교절이란 출애굽을 기념하여 누룩 없는 떡을 먹는 절기이다. 누룩이 없는 떡을 ‘고난의 떡’(신16:3)이라고 하였다. 칠칠절은 맥추절이다. 추수감사절은 초막절이다. 수장절이라고도 한다. 신명기 16장 16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지키라”라고 하였다.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라”라고 하였다.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신16:17)라고 하였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말씀은 두 가지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1-6절의 내용은 광야 생활에 대한 회상이다. 7-10절은 장차 들어갈 가나안 생활에 대한 가르침이다. 모세는 신명기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지켜 갈 것인가”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간의 애굽 종살이를 뒤로하고 출애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전혀 불가능한 일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 후 40년 동안 광야 생활이 이어졌다. 모세는 광야 생활 말미에 신명기의 가르침을 통해서 다시금 광야 생활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지켜야 할 것’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라.
백성들을 향한 모세의 말은 모세의 말이 아니다. 그를 통해서 전하시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모세는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라고 말이다. 왜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라는 걸까. 교통질서를 지키는 것은 운전자 자신과 동승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는 강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지 않나. 요즘도 이러저러한 모양으로 일어나는 범죄와 사건의 내용을 성경적 가치 기준을 가지고 분석하면 대답이 나오지 않나. 각종 강력 사건, 치정 사건, 경제 사범들의 다양한 수법의 보이스 피싱을 비롯한 사기 혹은 횡령 사건 등을 보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과 사람을 해석하며 살아간다면 어떻게 저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깝고 충격적인 사건 소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성경은 분명하게 교훈하고 있다.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우리는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의 말씀을 안다. 그 이후의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역대상하의 말씀도 기억한다. 그 많은 교훈의 말씀과 역사 속에 담긴 가르침이 무엇인가.
정작은 모세조차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느보산 정상에 이르러 비스가 산 꼭대기에서 요단 강 건너 가나안 땅을 보라다 보고 눈을 감아야 했다. 하나님은 길르앗 온 땅과 단까지를 한눈에 보게 하셨다. 그 때까지도 모세는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도 쇠하지 않았다.”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거기까지 사용하셨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해야 하는 것은 모세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모세 자신도 한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다. 자기감정을 담아서 경솔하게 행동했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났다. 민수기 20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출애굽한 백성들은 신 광야를 지났다. 가데스에 이르렀다. 거기서 모세와 아론의 누이 미리암이 죽었다. 거기에데가 장사하여야 했다. 그곳에서도 물이 없으므로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 곁으로 모여 들었다. 백성들은 원망과 다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지난 날 형제들이 죽임 당할 때에 우리도 같이 죽었어야 하는데 살아 남아서 이 고생이라”라고 불평하였다. “왜 우리를 그 좋은 애굽에서 나오게 해서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고 항변하였다. “이 곳에는 파종할 곳도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고 툴툴거렸다. 모세와 아론은 저들 백성들 곁을 떠나서 회막 문 앞에 엎드렸다.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났다. 하나님은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민20:8)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형 아론과 함께 백성들을 반석 앞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고 말하며 모세가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다. 물이 많이 솟아 나왔다. 백성이 짐승과 함께 충분하게 물을 마셨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이 날의 이 사건을 문제 삼으셨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동시에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20:12)
모세의 때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다. 그 때의 광야 백성들이나 오늘날 지구촌에 살고있는 그 어느 민족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배우고 연구하는 것이 귀하지만 지켜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지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행하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나. “부뚜막의 소금도 입에 넣어야 짜다”라는 속담이 있지 않나. 올해도 오십일 정도밖에는 남지 않았다. 세월과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시간과 세월 앞에 부끄럽지 아니한 나날을 살아가는 보람된 인생 살이가 되시길 축원한다.
신명기 5장에는 십계명의 말씀을 하신 후에 하나님은“다만 그들이 항상 이 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신5:29)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러한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게 하셨다.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신5:32-33)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복된 자이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며 준행하는 바가 복된 자이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는 자가 복된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제대로 반응하며 응답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지난날의 광야 사십 년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때로 낮추시고 때로 시험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어떠한지 주의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를 알려고 하셨다. 때로는 낮추시고 때로는 주리게도 하셨다. 하나님은 그러는 중에 날마다 만나로 배부르게 하셨다. 메추라기도 공급해 주셨다. 의복이 헤어지지 않게 하셨다.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셨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징계처럼 하나님의 징계를 깨닫게 하셨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는 분명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라”(신6:3)라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다. 이 말씀을 읽다가 보면 마태복음 4장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나.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다.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다. 예수를 시험하는 마귀가 다가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말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신명기 8장 3절의 이 말씀을 인용하여 마귀를 물리치셨다. 맞다. 그렇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믿음의 사람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물론 우리도 밥과 떡도 먹고 고기와 생선도 먹고 과일과 채소도 먹으며 산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자들이어야 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라”
다윗의 고백처럼 말씀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내 삶의 힘의 근원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윗처럼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2)라는 고백 가운데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살아가는 생생한 간증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라는 찬송가의 후렴이 무엇인가.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라고 찬송하지 않나.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서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온전히 주께 맡긴 내영 사랑의 음성을 듣는 중에
천사들 왕래 하는 것과 하늘의 영광 보리로다
주 안에 기쁨 누림으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그런 궁리에 갇혀 살지 말고 나를 향하신 주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담대한 믿음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서울대 교수와 KAIST 교수를 거치고 지금은 한국 고등 과학원 교수인 김인강 박사는 중증 장애인이다. 보조 기구가 없이는 단 한 발짝도 걸을 수가 없다. 가난과 장애, 차별과 절망을 딛고 일어났다. 도저히 평안할 수 없는 상황과 조건에서도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충남 논산군 시골 마을에서 가난한 농사꾼의 6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2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으나 너무 가난하여 치료 시기를 놓쳤다. 그 후유증 때문에 “앉은뱅이” 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한 발짝도 못 걸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장애를 부끄러워 했다. 술을 마신 날이면 “저런 쓸모없는 놈 제발 좀 갖다버리라. 갖다가 땅에 파 묻어 버려라”라고 고함을 쳤다. 폭력을 휘둘렀다. 어머니는 눈물로 밤을 지샜다. 혼자 힘으로 설 수도 없었기에 기어 다녔다. 헛간에 버려진 비료 포대 위에 엎드려 한 손으로 땅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론 포대를 잡아끌었다. 어린 시절 그에게 친구라고는 마당에 오가는 병아리들과 강아지와 마당섶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작은 꽃들이 전부였다.
9살 때에 어머니의 등에 업혀 집에서 1시간 떨어진 국민학교에 갔다. 학교는 장애인이란 이유로 그의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등에 없고 오는 길에 슬픈 마음으로 아들의 꽁꽁 언 발을 만지며“얘야 춥지”라고 따뜻하게 물으셨다. 그 말은 어둠 가운데 생명과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같았다. 그 날 이후 어린 아들의 마음은 평안해졌고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11살 때에 집을 떠나 재활원에 들어갔다. 굳은 다리를 펴서 보조기를 끼우고 목발을 짚으며 걷는 방법을 배우는데 2년이 걸렸다. 그런 그가 공부에서는 늘 1등을 했다. 선생님의 추천 덕분에 대전 중학교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입학 연합고사에서 만점을 받아 장학금을 받고 충남고에 배정받았다. TV가 크게 틀어져 있는 방 한구석에서 밥상 위에 책을 펼쳐 놓고 공부했다. 서울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했고 미국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카이스트와 서울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고등과학원 (KIAS) 교수이다. 2007년엔 40세 이하의 과학자에게 주는 ‘젊은 과학자 상’을 받았다. 그는 ‘3차원 다양체의 위상수학' 과 ‘기하학 분야' 의 세계적인 수학자로 인정 받고 있다. <기쁨 공식>은 그의 자서전이다.
그는 주위의 온갖 냉대와 차별 속에서도 장애를 이겨낼 수 있었던 신앙의 힘에 대해 담담하게 말한다. 하나님이 그를 위해 마련해 둔 계획은 달랐다고 털어 놓는다. 그는 끔찍한 고문과도 같은 재활 치료 끝에 초등학교 6학년 때
보조기를 끼고 목발을 짚고 처음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대학교 3학년 초, 목발을 짚고 무거운 가방을 맨 체 너무 많이 걷다 보니 갈비뼈와 폐가 부딪쳐 폐에 큰 구멍이 났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의사가 말했다. 그는 기도원 한 구석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왜 나한테만 이렇게 가혹하신가요?
항상 아프기만 하고.. 아무 쓸모없는 나를 데려가 주세요.”
그때 문득 등 뒤에서 찬송소리가 들려왔다.“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그 순간 자아가 꺾이며 회개가 터져 나왔다. 욥처럼 하나님의 모든 주권과 통치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처럼 연약한 자들에게 희망을 전해 주는 것이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육신을 의지하지 않는 법” 을 그에게 가르쳐주셨다. 그는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기도하는 법’과‘성경 읽는 법’을 배웠다. 고통 하는 가운데서도‘찬양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육신의 나약함에 끊임없이 노출되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인해‘약한 데서 강해지는 법’을 배우게 하셨다.
예수님은 그에게 ‘세상의 모순과 절규’를 알려주었고,‘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방법’을 알게 하셨다. 세상이 그를 죄인 취급할 때 하나님은 그를 변화시키시며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계획하셨다.
그는 고백한다.“나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질그릇이 되게 하신 것이며 나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이름과 선하심을 나타내려 하셨습니다. 이웃을 돕는 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자신의 인생을 진정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상처 위에 덧입혀져 무감각해질 때까지 버티는 동안 어느덧 그의 마음은 딱딱해지고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졌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 성경 공부를 하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온갖 모욕을 당하시는 구절들을 읽었다.
그는 자신이 고난을 당하는 것 같았다. 따귀를 치고 침을 뱉고 희롱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했던 예수님의 고난을 인간은 자신의 처지로 이입시키는 놀라운 체험을 한다. 그것이 은혜이다. 예수는 그렇게 모욕을 준 사람들에게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용서의 기도를 하셨다. 이 말씀이 청년 김인강의 마음을 움직였다.
김인강은 그 날 이후 아들에게 욕하고 저주하던 아버지를 용서했다. 그를 보고 놀렸던 아이들도 용서했다. 그리고 나서야 웃음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막혔던 기쁨의 샘물이 터졌다. 오늘날 우리가 간증으로 접할 수 있는 크리스천 김인강 박사 이야기이다. 말씀 따라서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한다.
그를 경외하고 찬송하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신앙 생활의 시작이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주먹을 믿으라고 허풍을 떤다. 자신의 지식, 자신의 젊음, 자신의 능력, 자신의 학력,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 자신의 명예, 자신의 역량, 자신의 경험, 자신이 쌓은 부를 자랑하며 살아간다. 세상 사람들은 좀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크나큰 은총이며 복 중의 복이다. 신명기의 말씀은 반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신명기 6장 2-3절에 보면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가르쳐 주신 말씀이 우리가 ‘쉐마’라고 기억하는 그 말씀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6:4-9)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자녀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게 마련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증거가 예배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누가 예배하라고 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예배한다. 하나님을 찬송한다.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한다.
요한계시록 4장에 보면 하늘의 예배 장면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하나님은 요한 사도로 하여금 하늘의 열린 문을 보게 하셨다. 나팔 소리 같은 음성도 듣게 하셨다. 요한 사도는 성령에 감동되었다.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았다. 그 곁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금관을 쓰고 앉았다.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났다. 보좌 앞에는 등불 일곱이 켜 있었다.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보좌 앞에는 수정 같은 유리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변에 네 생물이 있었다. 사자와 송아지와 사람의 얼굴과 날아가는 독수리였다. 네 생물을 각기 여섯 날개를 갖고 있었다.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였다. 그들이 밤 낮 쉬지 않고 찬양을 계속하였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계4:8)
네 생물은 계속해서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리고 있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렸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렸다. 그리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계4:11)라고 찬송하였다.
그 후에는 천천 만만의 천사가 큰 음성으로 주를 찬송하였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5:12)
그리고 이어서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피조물이 주를 찬송하였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5:13)
찬송은 계속하여 이어졌다.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송하였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계7:12)
오늘 본문에 돌아와 보자.
지난 사십년 동안 건강을 지켜 주시고 생명을 보존해 주셨으며 먹을 것을 끊임이 없이 공급해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이다. 옷이 해어지지 않게 하시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이다. 때로 아버지가 아들을 징계하듯이 사랑으로 징계해 주신 하나님의 징계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장차 가나안에 들어가서 누르게 될 축복의 날들을 마음에 품고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언제나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신명기 8장 7-10절을 읽자.“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시냇물과 연못이 있고 산골짜기에 샘물이 흘러넘치는 아름다운 땅으로 여러분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곳은 밀과 보리와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이 많은 땅이며 양식이 풍부하여 부족함이 없고 철이 돌처럼 흔하며 산에 구리가 많은 땅입니다. 여러분은 먹을 것이 풍부할 때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기름진 강에 대하여 그 분에게 감사하십시오.”
항상 주를 경외하며 주께 감사하며 주만을 찬송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