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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선물(행2:37-47) 2014.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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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6-08 22:31 조회 18,233 댓글 0
 
성령의 선물(행2:37-47) 2014. 6. 8
성령강림주일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것은 승천하시던 예수께서 하늘나라로 올리어 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이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하셨다. 불행한 길을 간 가롯 유다 이외의 열 한 제자는 약 120여명이 모여 기도하는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 함께 모여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 곳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고 예수의 아우들도 있었다. 저들은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40일 간 이 땅에 계시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 승천 하신 이후에 열흘째 기도하던 무리들 가운데 성령이 임한 것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이란 그런 숫자의 의미를 포함한다. 오순(五旬)이라 오십일이란 뜻이 아닌가. 기도하던 120여명의 무리들이 다 같이 모여 있던 그 시간에 성령이 임하였다. 사도행전 2장 2절부터는 그 상황과 현상을 기록해 주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2-4)
 
서로 다 놀라 당황해 하며 “이 어찌 된 일이냐”고 묻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기도 하였다. 그 때에 베드로 사도가 저들 한 가운데 서서 전한 말씀이 사도행전 2장 14절 이하의 말씀이다. 지금이 오후 3시 경인데 술에 취하였다함이 무슨 말이냐며 반격하였다.
 
베드로는 구약 요엘서 2장 28절 이하의 말씀은 인용하여 복음을 증거하였다.
 
요엘서에 보면,
말세에 하나님이 남녀종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는 날에는 자녀들이 예언하고, 젊은이가 환상을 보고, 노인들은 꿈을 꾸리라고 하였다.
 
21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도 하였다.
 
베드로 사도가 전한 메시지의 내용은 간명하다. 너희가 십자가에 죽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시 살리셨다는 부활 복음을 증언한 것이다. 사도행전 2장 32절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라고 하였다.
 
베드로 자신을 비롯한 120 성도들이 성령을 받은 것에 대하여서도 분명하게 설명하여 주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2:33)
 
뿐만 아니라 예수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명확하게 증언하였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2:36)
 
여기까지가 본문이 시작되는 배경이다. 베드로가 이와 같은 복음의 말씀을 증언할 때에 듣고 있던 무리들이 마음에 찔려서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에게 물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그 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다시 복음을 명확하게 재해석하고 성령 받는 길을 설명한 말씀이 사도행전 2장 38절 이하의 내용이다.
 
여러분, 회개(悔改)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洗禮)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罪) 사(赦)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聖靈)의 선물(膳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성령의 약속은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 성령과 관련된 중요한 핵심적인 내용들이 다 들어 있다.
 
회개하여야 성령을 받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의 세례, 성령 세례, 불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
회개하고 성령 받은 성도는 죄 사함을 받게 된다.
구원 받고 성령 받은 성도는 세상을 이기며 사는 거룩함이 있어야 한다.
 
이 성령은 남녀노유 그 어느 누구나 다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주를 믿고 따르는 성도라면 이 세상이 패역한 세상이라는 것을 인정할 있어야 한다. 우리가 누구나 다 이 세상 중에 나가서 학교도 다니고, 직장도 다니고, 장사도 하고, 사업도 하지만 이 세상은 패역한 세상이란 관찰이 있어야 한다. 세상 좋다고 세상에서 흥청망청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령 받아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노아 시대에 패역하게 살아가던 세상 사람들과 노아의 생애는 달랐다. 엘리야 시대 때에 하나님은 엘리야처럼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000명을 구별해 주셨다. 이처럼 성도는 패역한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물들지 말고 세상을 이기며 사는 성령의 사람, 말씀의 사람, 복음의 사람, 은혜의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회개와 성령.
회개는 성도가 되는 길이다. 이 땅에 와서 예수의 오실 길을 예비하던 세례 요한의 첫 말씀선포도 이것이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3:2)
회개하고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나무뿌리에 도끼가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는 인생으로 살아가라.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그는 성령과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알곡은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는 심판이 있음을 알라고 증거 하였다. 이와 같은 세례 요한의 회개의 촉구와 더불어 예수께서도 똑 같은 내용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후에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셨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붙잡혔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전파한 복음의 시작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는 말씀이셨다.
 
우리가 무엇을 회개하여야 할까.
세례 요한은 이사야 40장 3절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길을 평탄케 하라.”는 말씀의 성취자답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친 것이다. 광야와 사막 같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길로 오시는 메시아를 만날 준비를 하라는 말씀이 아닌가. 세례 요한과 예수께서는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천국에 대하여 증거하셨다.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가장 핵심적으로 전하고 또 전하신 모든 비유의 중심이다.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가 없다면 이 땅에서 회개, 구원, 죄 사함, 영생, 거듭남 등 운운 하는 것은 모두 다 공허한 이야기일 뿐이다. 성도된 우리가 무엇을 회개하여야하며 왜 회개하여야 하는가의 바탕이 천국이다. 더군다나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가까왔다’는 말씀은 매우 임박한 것을 의미한다. 천국이란 회개한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회개하면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는 현세적이며 미래적이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천지와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에덴동산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실 때에 이미 실존하는 하나님의 세계이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단절된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회복되고 완성되는 실존의 세계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신 회개의 복음을 깨달아 믿고 받아들여 회개하고 죄 사함 받은 이들이 성도다. 그러므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라면 죄 용서 받은 그 구속의 은총을 감사하면서 그 은혜의 삶을 누릴 뿐만 아니라 증거하며 살아가야 한다. 회개하고 성령 받은 성도는 장차 이 땅에 재림주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세계를 열어 주실 주님을 고대하며 살아가는 무리들이다. 회개하여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느냐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고 대답하신 적이 있다. 또한 예수를 재판하던 빌라도의 질문에 대하여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6)는 대답도 하신 바 있다. 그러므로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적이면서도 다분히 영적이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천국 비유를 보라. 마가복음 4장 26절 이하에 보면 씨 뿌리는 비유가 나온다. 예수님의 천국 비유는 이렇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리는 것과 같다. 농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천국 비유의 말씀을 깨달아 알고 회개하고 주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이 성령이다. 에베소서 5장 5절에도 보면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을 자와 얻지 못할 자를 구별하여 경고하신 말씀이 나온다. 베드로 후서 3장 11절 이하에도 보면 회개하고 성령 받아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 자”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회개하고 성령 받은 성도들은 베드로 후서 3장 13절의 말씀처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자”들이다.
 
‘회개(悔改)하라’는 ‘메타노에오’(metanoevw)의 ‘메타’는 ‘다르게’, ‘노에오’는 ‘생각하는 것’이다. 즉 메타노에어는 ‘생각을 고친다’, ‘생각을 바꾸다’(change one's mind) 즉 ‘마음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다. 회개가 무엇인가. 회심, 참회란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지’ 하며 스스로도 뉘우치고 실망스럽고 자책이 되고 양심에 거리끼고 하나님 앞에서 벌 받을 것 같은 그 모든 생각들을 고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고치는 행위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이 임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령 받아야 한다. 성령 받아야 회개도 할 수 있고 진정으로 회개하여야 성령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와 성령, 성령을 받는 것과 회개는 동시적인 사건이다. 성령이 임하는 것과 회개가 동시적인 사건이란 말이다. 회개할 때 성령이 임하고, 성령이 임하시면 동시에 참 회개의 사건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세례를 받기 위하여 세레 요한 앞으로 나아오는 유대 백성들을 향하여 세례 요한은“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눅3:7-9)고 책망하면서 회개를 촉구하였다.
 
그러므로 회개가 우선이다. 참 회개를 하여야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 참으로 회개한 성도인가 아닌가는 서로가 보면 안다. 회개한 성도들 사이에 끼어 지내는 것으로 회개한 양 ‘회개한 척’만 하는지 아니면 진정으로 회개한 성도답게 성령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사는 성도인지 아닌지는 그 삶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그냥 자연인의 상태에서 ‘사람 좋다’는 정도의 차원과는 다른 것이다.
 
누가복음 3장 10절에 세례 요한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 선포를 듣던 무리들이 질문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그 때에 세례 요한은 이렇게 가르쳐 주었다. “두 벌 옷 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한 벌을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이 있는 자는 먹을 것이 없는 자에게 나누어 주어라.” 무슨 말씀인가. 재물관, 경제관,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지나치게 재물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탐심을 버리고 있는 것을 족한 줄로 알고 살라는 교훈이 아닌가. 가난을 합리화하거나 즐기라는 말씀이 아니다. 12절에 보면 세리들도 세례 요한 앞에 세례를 받기 위하여 나와서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하고 물었다. 그 때에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했다. 서민들을 못살게 굴며 불법하게 늑징과세하지 말라고 교훈해 준 것이다. 잠시 후에 군인들이 나와서 물었다. “우리 군인들은 무엇을 하리이까” 그 때에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교훈해 주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저가 그리스도이신가”하고 마음에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나는 물로 세례하지만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과 불로 세례할 것이다”라고 예수님을 소개하여 주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야 한다.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예수 믿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로마서 8장 6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만 다니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 받고 살아가야 한다. 예수 안에 살기 시작하면 그 어떤 무엇도 성도된 우리를 정죄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로마서 8장 2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성도를 해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 받은 성도라면 육신의 욕망에 붙들려 살면 안 된다.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회개하고 성령 세례 받고, 불 세례 받고 죄 사함 받은 성도라면 그 삶이 구체적으로 달라야 한다. 그러므로 성령 받은 성도들의 연합체인 교회 생활도 달라야 한다. 41절에 보면 베드로의 말씀 전파를 듣고 회개하고 죄 사함 받고 성령 받은 무리들이 그 한 날에 3,000명이라고 하였다. 할렐루야! 그리하여 초대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성령을 선물로 받은 성도들의 공동체인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특징이 무엇인가.
 
 
교회와 성령.
첫째,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제와 기도에 전념하였다.
이것이 교회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이다. 말씀 중에 깨달음과 교훈과 가르침을 받는 일이 계속하여 영적 사건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것이 교회다. 뿐만 아니라 교제하고 떡을 떼는 사귐이다. ‘서로 교제하며’라는 것은 가족과 같은 친밀감을 말씀하고 ‘떡을 떼며’라는 말씀은 단순히 음식을 같이 먹는 것이 아니라 성찬에 참여하는 것을 말씀한다. 이것이 교회이다. 그리고 성령 받은 이후에도 오직 기도에 힘쓰는 생활을 계속하였다. 말씀과 교제와 성찬과 기도는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기둥과 같은 것들이다.
 
둘째,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
교회는 거룩하고 신비한 하나님의 임재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사건이 성령 안에서 계속되는 곳이어야 한다. 사도행전이 나중에 기사와 표적 사건이 다양하게 증거 되는 것처럼 교회는 기사와 표적이 계속되는 하나님의 부름 받은 성도들의 거룩한 공동체인 것이다.
 
국제예수전도단의 창설자이며 하와이 열방대학의 총장인 로렌 커닝햄의 책, <열방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책>(The Book that Transforms Nations)에 보면 피지 섬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내용을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 우리 교회의 김성재 선교사가 가서 사역하는 남태평양 한 가운데 있는 작은 섬, 피지 말이다. 한 번은 피지의 수상과 추장 협의회와 피지의 목사들이 보낸 대표단 세 사람이 하와이 열방 대학을 방문하였다. 저들은 로렌 커닝햄 목사에게 고래 이빨을 선물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고래 이빨은 추장이나 왕족에게만 선물하는 저들이 대단히 귀하게 여기는 매우 귀한 선물이라고 한다. 피지에는 지난 2000년에 두 차례의 쿠테타가 있었다. 사회의 지도자들은 피지가 망했다고 생각했다. 피지의 경제는 어려워졌고 젊은이들은 방황을 계속하였다. 피지의 모든 분야는 어수선하였다. 피지는 인구의 절반이 토착 원주민인 기독교인이다. 나머지 절반은 영국이 그 곳을 식민지로 다스릴 때에 노동자로 끌려갔던 인도계의 피지인들이다. 저들은 대부분이 힌두교와 이슬람을 믿는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인도계 피지 정착민들이 피지의 상업과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하여 분개하고 있었다. 쿠데타가 일어나자 원주민들은 인도계 피지인들의 가계와 상점을 약탈하고 불 태웠다. 인도계 피지인들의 여성들을 강간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당하였고 8명은 죽었다. 그런 상황에서 가라세 총리가 교회의 목사들에게 분쟁 해결을 위하여 협조를 요청하였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고 가라세 총리도 금식에 동참하면서 국민들에게 금식에 참여하기를 촉구하였다. 마치도 니느웨의 회개같은 회개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총리는 야당 지도자인 힌두교인인 마헨드라 초드리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면서 대야에 물을 떠다가 예수처럼 정적들의 발을 일일이 닦아 주었다. 그런 일이 벌어진 앨버트 공원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서로 부둥켜안고 울며 용서를 구하는 회개 운동이 일어났다. 성령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불효하던 이들이 부모에게 효도하기 시작했고 술에 취해 살던 주정뱅이들이 술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도둑질하던 이들이 회개하고 변화되기도 하였다. 피지 원주민들 간에도 회개 운동이 번져갔고 어떤 부족들은 선조들이 영국의 선교사를 죽인 것을 회개하면서 돈을 모아서 비행기 표 값을 영국에 보내서 선교사의 후손들을 피지에 초청해서 용서를 구하는 일도 일어났다. 고산지대에서는 남 몰래 마약인 마리화나를 키우던 원주민 농민들이 우리 돈 13억 원 어치의 마리화나 14,000여 그루를 뽑아 버리는 회개 운동도 일어났다. 우상을 숭배하고 주술하던 이들이 자신들이 점치던 도구들과 우상으로 섬기던 것들을 모두 다 불태워 버리는 일이 생겨났다.
 
셋째, 서로 함께 다 같이 재산과 소유와 물건을 통용하였다.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생활에서 서로 더불어 다 같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중심의 나눔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다. 교회가 살아나야 나도 산다. 내가 교회의 구성원답게 성령 충만한 회개와 죄 사함 받은 성도다운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살아야 교회도 활력을 얻고 지역 사회에서 강력한 복음의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5만 원 권 화폐는 8억 7700만 장이라고 한다. 43조 8500억 원이다. 그 열 장 중의 일곱 장은 어느 집의 장롱과 금고와 지갑에 들어 간 후로 다시 세상에 유통되질 않고 있다고 한다. 몇 해 전에는 어느 도박업자가 전북 김제의 마늘 밭에다가 숨겨 두었던 5만원권 110억 원의 돈다발이 비닐에 둘둘 말린 채로 무더기로 파헤쳐져 나온 적도 있다. 문제가 터진 원전 업체 간부는 5만 원 권 6억을 집안에 쌓아 두었다가 들킨 적도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8-10)
 
돈과 재물과 소유가 없어서는 살수 없으되 지나치게 재물에 탐심을 갖고 살면 그 나중은 그 누구나 초라해지고 오히려 그 재물 때문에 비참해 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중심, 성도 중심, 선한 사역 중심의 복되고 건전한 경제관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 성령 받은 믿음의 사람답게 살아가야만 한다.
 
넷째,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미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칭찬을 받았다.
그렇다. 성령 받고 주를 믿는 성도라면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몇 주 전인데 수요일 저녁에 예배 중간인데 어느 집사님이 어린 딸과 함께 헐레벌떡 수요 기도회에 참석하였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수요일 저녁 예배를 드리고는 싶고 교회는 멀어서 가까운 이웃교회의 예배에 가려했더니 유치원 다니는 어린 딸이 이왕이면 우리 교회에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달려 왔지만 예배 시간 시작 전에 도착하지는 못했고 늦게 라도 참석한 것이라고 하였다.
 
초대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특징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여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하고 성찬하고 떡을 떼는 일을 집과 교회를 오가며 날마다 계속하는 성령 충만한 공동체였다. 저들에게는 기쁨이 넘쳤고 그 마음에는 순전함으로 가득하였다. 저들은 모일 때 마다 하나님을 찬미하였고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칭찬이 자자하였다. 성령 받고 나면
 
마음이 하나 되어 마음을 같이 하게 된다.
성전 생활 즉 교회 생활을 날마다 힘쓰게 된다.
마음이 순전해 지고 기쁨으로 찬송하게 된다.
집집마다 모여 성도의 교제를 하게 된다. 세상이야기하고 이단 사이비에 현혹되고 남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다운 교제와 성도다운 애찬과 성도다운 섬김의 삶을 살게 된다.
 
주님께서는 그런 예루살렘 교회 안에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날마다 점점 많아지게 해 주셨다. 이 같은 초대 교회의 성령 충만함의 우리 가운데도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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