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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이렇게 살아갑시다.(롬12:14-21) 2014.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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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5-26 10:49 조회 19,904 댓글 0
 
이렇게 살아갑시다.(롬12:14-21) 2014. 5. 25
 
 
 
로마서는 16장의 분량으로 된 사도 바울의 편지이다. 11장까지는 교리를 담고 있고 12장부터는 성도인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교훈하는 생활편의 내용들이다. 12장의 1-2절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성도가 되어야 할까를 교훈한다. 성도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성도의 영적 예배라고 하였다. 영적 예배자인 성도는 세상 풍조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마음이 새로워 져야 신앙이 새로워진다. 생각해 보라. 똑 같은 가정생활, 똑 같은 가족 관계, 똑 같은 일터의 선후배 동료들, 내 주변의 그 아무것도 내가 원한다고 변화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변화란 오직 내 마음이 새로워질 때에 시작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이다. 1절의 몸과 2절의 마음은 따로 따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다.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는 신앙적인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변화는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아니 변화는 그렇게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매 순간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살아가야 한다. 사실은 제 생각, 제 느낌, 제 판단, 제 주장, 자기의 이기적인 소견과 생각과 주장으로 따라서 주변 사람이나 주변 상황을 자기 편리한대로, 자기 유익한 대로, 자기 좋은 대로 판단해 놓고 나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한다면 이는 얼마나 이기적인 모습인가.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이 세 가지를 시험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과연 선한 일인가를 물어야 한다. 여기서 말씀하는 선이란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윤리에 근거한다. 그래서 9절에서도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하였다. 21절에서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분부와 명령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매사에 적용되어야 하는 신앙적인 질문이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는 말씀도 앞의 선하신 뜻을 찾아 나서는 신앙의 과정과 맥을 같이 한다. 하나님이 선하게 여기시는 일에는 기쁨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란 우리 인간사와 차원을 달리 하지 않는가. 인간은 온전하지 못하다. 이 세상에 온전한 인간이란 없다. 인간은 권위와 권세로 자신을 포장하는 위선이 더욱 강하다. 그와 같은 무한이 부족하고 약하고 항상 죄와 악에 노출되어 있는 인간에게 예수께서는 온전한 삶으로의 초청을 이미 하셨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무엇일까를 분별해 나가는 매 순간, 매 과정이 신앙생활인 것이다. ‘분별한다’는 ‘도키마제인’(dokimazein)은 “시험을 통해 입증하여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는 어찌 보면 내 스스로 분별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여곡절이 많은 생을 살아가면서 죄와 악이 끊임없이 우리의 곁에 엄습하는 세상에서 시험과 유혹과 미혹을 이기며 나의 마음과 생각과 뜻과 행동의 범사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가, 기뻐하실 만한가, 온전한가를 끊임없이 분별 받는 것이 우리 각 사람의 신앙생활이 아니겠는가.
 
공항에 입출국할 때에는 반드시 자진 신고해야 하는 것 중에 검역자진 신고 기록서를 작성하게 되어 있지 않나. 동물, 식물, 씨앗, 균류, 총기류 등등 휴대 금지 품목을 몰래 숨겨 가지고 상대방의 나라에 입국해서는 안 된다는 규제가 엄격하다. 그럼에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그 검역 기준대로 따르지 않는 입국자들의 눈속임 때문이 아닌가. 아무리 현대화된 장비를 동원하여 검역을 실시하고 검사를 자세히 하려 하여도 속이려고 들면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이처럼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은 스스로 분별한다기 보다는 나를 분별하시는 하나님 앞에 매 순간 신앙의 고백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12잘 3-13절까지는 성도가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에 어떤 생활을 하여야 할까를 구체적으로 교훈하는 내용들이다. 은혜를 따라, 믿음의 분량대로, 한 몸을 이룬 한 지체 의식을 갖고 각각의 은사를 따라서 서로를 대하라고 하였다. 믿음의 분수대로, 섬기는 일로, 가르치는 일로, 위로하는 일로, 성실한 구제 생활로, 부지런함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에게 긍휼을 베풀며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교회 생활이요 이것이 성도들 간의 원만한 교제라는 것이다.
 
금번에 미국의 한인교회 이야기를 들으니 한인들 간에 교회 안에서 무슨 ‘계’(契)를 하다가 문제가 생겨서 계주가 우리 돈으로 하면 몇 억 원을 계원들에게 손해를 입히고 두 손을 들고 말았다고 한다. 저희 교회 주보 속지에 보면 어느 한 귀퉁이에 “저희 교회는 성도들 간에 금전 거래를 하거나 상업적인 거래 행위를 금지합니다.”는 문구를 써 넣은 것을 보실 것이다. 왜 그런가. 교회는, 성도들 간에는 그런 일에 연루되면 언젠가는 반드시 문제가 생기고 잘 못되고 서로 상처 되고 서로의 관계에 금이 가기 때문에 그런 일에 가담해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을 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도들 간에는 서로를 상업적인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다만 9절 이하의 말씀처럼 서로가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는 대인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 성도인 형제 자매간에 서로를 성도의 예절로 사랑하고 우애 있게 지내야 한다. 서로를 먼저 인격적으로 존경하여야 한다. 주님을 섬기는 일에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어야 한다. 소망을 갖고 즐겁게 살아가야 한다. 환난이 있을 때에 잘 참고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 기도 생활에 항상 힘써야 한다. 성도들 간에 서로를 돌아보아서 서로의 쓸 것을 공급하여야 한다. 잘 사는 이들끼리만 모여서 주를 섬기는 것이 교회여서는 안 된다. 교회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어느 누구이든지 다 같이 함께 더불어 주를 섬기는 곳이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사랑이다. 9절의 거짓이 없는 순수한 사랑, 10절의 형제자매의식을 자지고 서로를 대하는 성도들 간의 사랑이 있을 때에 성도들 간에 속회와 부서와 기관에서 서로를 판단하지 않고 원만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이다.
 
12절이 성도들 간의 내적인 모습을 다른 교훈이라면 13절은 지극히 외적인 성도들의 대인관계를 말씀한 것이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십시오.
환난 중에 참으십시오.
기도에 항상 힘쓰십시오.
 
이런 권면은 성도인 우리가 각자 처한 형편을 따라서 서로 관심과 사랑을 갖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고 힘이 되어 주면서 환경과 여건과 처지를 극복해 나가야 하는 성도들 간의 연합이 아닌가. 그 구체적인 모습이 성도들 간에 어려움 당한 이들을 돌아보고 손잡아 주고 위로하고 필요를 따라서 쓸 것을 공급해 주고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는 교훈에까지 이른 것이다.
 
저희 교회가 설립된 후로 처음으로 교도소 재소자를 돌아보는 방문 계획을 세웠다. 400여명의 재소자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예수님의 양과 염소의 비유 가운데 보면 이처럼 돌아보는 자를 향한 주님의 은총을 말씀하고 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5-36)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주릴 때에, 목마를 때에, 나그네 되었을 때에, 헐벗었을 때에, 병들었을 때에, 옥에 갇혔을 때에”라는 우리 주변의 상황에 대하여 두 눈을 딱 감고 나만 먹고 마시고 입고 누리고 건강 챙기고 나만 바르게 살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다. 세상은 조금만 눈을 돌려 보면 이와 같은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이 너무나도 많다. 가령 옥에 갇힌 자에 대하여도 그렇다. 제 잘못하여 제 죄 값으로 감옥에 갇혔겠지 하고 외면하면 않 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본문인 14절 이하의 말씀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면 이 세상, 이 사회를 향하여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를 갖고 살아가야 할까를 말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누구라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
더군다나 나를 박해하는 자에 대하여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고 하셨다.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써서 보낼 당시의 교회 상황, 성도들의 형편이 그러하였다. 박해가 있었다. 이 ‘박해’라는 표현은 예전 성경에는 ‘핍박’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고 하였다. 마태복음 5장 45절 이하에 보면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한다면 무슨 하늘 상급이 있겠느냐 그런 사랑은 세리도 하느니라고 말씀해 주셨다. 또 너희 형제들끼리만 문안하며 살아간다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셨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도 그런 정도의 사랑이나 문안은 다들 하며 지낸다고 하셨다.
 
누가복음 6장 28절에도 보면 예수께서는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다. 누가 내게 이 뺨을 치면 저 뺨도 돌려 대고 겉옷을 빼앗으면 속옷까지도 거절하지 말고 빼앗기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이미 모세의 때에 레위기를 통하여 이런 사랑의 실천에 대하여 자세한 교훈의 말씀을 해 주셨다. 그 중에 레위기 19장 18절에도 보면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교훈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 살아가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핍박을 받는다든지, 박해를 받는다든지 하면 쉽게 그런 상황을 소화할 수 있겠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그러므로 성경의 이와 같은 권면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본문에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는 그 ‘축복’이란 뜻은 ‘좋게 말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도 바울이 신앙적인 이유 때문에 남을 핍박하고 박해하고 잔해하던 악한 심성을 가진 유대주의자가 아니었나. 그런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변하여 새사람이 된 후에 그는 평생을 이방 선교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 아닌가. 고린도 전서 4장에 보면 변화된 사도 바울의 모습을 만나보게 된다.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고전4:11-13)
 
다메섹 체험 이전의 바울 즉 유대주의자 사울의 모습에서는 이와 같은 모습이란 눈꼽만큼도 없었다. 변화되기 이전의 사울은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딤전1:13) 사도 바울은 그런 형편없는 삶을 살아 왔던 자신이 이처럼 변화된 이후의 고백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아름다운가.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딤전1:14-17)
 
남을 핍박하고 저주하고 박해하고 욕하고 때리고 죽이려 달려들던 유대주의자 사울이 이처럼 변화를 체험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다 축복을 선포하고 선언하며 살았던 그런 삶을 우리도 살아가자.
 
바울은 본문 중에서도 이처럼 강조하지 않나.
악으로 악을 갚지 말아라.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원수라도 직접 원수 갚으려 하지 말아라.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맡겨라.
오히려 원수라도 주리면 먹이고 목말라 하면 마실 것을 주어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12:20)고 하였다. 이는 무슨 뜻일까. 우리에게도 가정에 불씨를 이어가는 일이 귀하던 시절이 있었듯이 이천년 전인 당시에 유대사회 뿐만 아니라 대개의 가정들은 가정에 불씨를 보존하는 일이 살림 중에서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다. 당시에 난방용이든 취사용이든 불씨를 꺼트리게 되면 이웃집에 가서 불씨를 얻어 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 때 그 불씨를 이웃에게 건네주어서 이웃이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고 숯불을 머리에 이고 가게 하는 친절한 행위가 축복된 행위란 말씀이다.
 
즐거움과 슬픔을 함께 하라.
15절에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8절에는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하였다. 이는 설명이 필요 없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가. 참된 이웃 관계란 즐거움과 슬픔을 함께 하는 진정성이 담긴 인격적인 공감대를 말씀한다. 이웃이 만난 즐거운 일에 함께 즐거워하고 진심으로 축복하고 축하하거나 아니면 이웃이 겪는 슬픔에 대하여 함께 슬퍼하고 진심으로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그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아닌가.
 
이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일상생활 즉 직장, 일터, 학교, 그 어떤 사업 현장에서든지 다 마찬가지다. 가령 예수를 믿는 아내가 예수를 믿지 않는 남편에 대하여 어떻게 대하여여 할까. 베드로전서 3장에 보면,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벧전3:1-2)
 
‘희로애락’(喜怒哀樂) 즉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세상에서 성도인 우리가 이웃의 즐거움이나 슬픔에 대하여 어떻게 대하며 살아가느냐를 물으시는 말씀이다.
 
“그대가 무슨 일을 겪으시든지 그 가까운 곁에 반드시 제가 함께 하겠습니다.” 이런 마음가짐과 태도가 아쉬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겸손하게 지혜를 배우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여야 겸손해 질 수 있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 겸손한 사람을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깔보지 않는다. 높은데 마음을 두지 않고 낮은데 처하는 마음이 겸손한 마음이다. 남들 보다 더 가졌다든지, 더 배웠다든지, 더 누린다든지, 더 나은 지위나 힘이나 권력이 주어져 있다고 해서 거만하거나 교만하거나 독선적으로 행동하면 안 된단 말씀이다.
 
미국 뉴올리언즈 시내의 한 귀퉁이에 고아원이 있었다. 말가리다라는 부인이 여러 명의 오갈 데 없는 고아들을 돌보는 시설이었다. 연말이 되고 성탄절이 다가 오는데 날씨는 춥고 난방비도 마련하기 어렵고 애들 먹을거리 마련도 하루하루 힘겨웠다. 하루는 용기를 내서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손님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모금을 시작하였다. 술에 취한 저들의 반응은 싸늘하였다. 외면하는 사람, 마지 못 해 구걸하든 모금함에 돈을 넣는 사람 등 여러 다양한 모습을 경험하게 되었다. 한 귀퉁이에서 한 손님이 소리쳤다. "썩 꺼져 버려, 술맛 떨어지게, 어서 나가 버리라고”그 때 한 쪽에서 “어거나 먹고 꺼져 버리라고”하면서 맥주잔이 날아 와서 부인의 얼굴을 갈겼다. 부인의 얼굴에서는 피가 흘렀고 맥주잔은 바닥에 떨어져서 산산 조각이 났다. 부인은 제 얼굴에 피가 흐르는 것도 모르고 엎드려서 “아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깨진 맥주잔을 일일이 손으로 주워 모으고 있었다. 머쓱해진 술집 손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지갑을 꺼내서 그 부인이 한 편에 놓은 모금함에 돈을 넣기 시작하였다. 그 부인에게 맥주잔을 던진 손님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고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작은 쪽지의 메모와 함께 돈 지갑이 놓여 있었다. “불쌍한 고아들에게”
 
그 고아원 원장의 그 날 저녁 일은 온 도시에 소문이 났다. 그 부인의 선이 악을 이긴 것이다. 그 날 이후 그 고아원에는 고아원 사역을 후원하는 독지가 등의 후원금이 넘쳐 나기 시작하였다.
 
영국의 고아들의 아버지, 5만번의 기도 응답의 사람 조지 뮬러 목사가 그러하였고, 목사의 아들로 자라나서 영국 국교회의 목사가 되었던 요한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 목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뜨겁게 하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35살에 은혜 받고 88살, 1791년에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까지 복음 전파와 사랑의 실천을 위하여 온 정열을 다 쏟아 부었던 하나님의 사람, 예수님의 사람이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십시오.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도리어 낮은 데 처하십시오.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마십시오.
아무에게라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하십시오.
원수에게라도 그리하십시오. 악에게 지지 마십시오.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이런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합시다. <조지 뮬러의 평생 기도 수칙 6가지>는 이렇다. 예수님만 의지하라, 죄를 버려라, 하나님만 믿어라, 추수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인내하며 기도하라, 하나님의 뜻을 살피며 기도하라, 할 수 있는 한 새벽에 기도하라. <조지 뮬러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6가지> 자신의 뜻을 포기하라. 지나치게 느낌을 믿지 말라, 성령과 말씀을 바라보라, 환경을 고려하라, 하나님의 뜻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라, 결정하였을 때에 마음이 평온한지 점검하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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