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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왕하3:13-20) 2016.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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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06-03 00:23 조회 23,225 댓글 0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왕하3:13-20)     2016. 5. 29



정경화 씨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있다. 그러나 바이올린을 만드는 사람은 따로 있다. 악기를 만드는 일이나 그 악기를 수준 있게 연주하는 일이나 모두 다 대단한 노력과 남다른 공장의 재주와 은사가 필요하다. 금 번에 세계에서 5년마다 한 번 씩 열리는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에서 세계 1, 2위를 차지한 주인공은 한국인 박지환 형제이다. 올해 34살이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성결교의 목사이셨다.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후 결혼을 하고 그 곳, 크레모나에서 공방을 운영 중인 박지환씨는 지난 5월 15일, 폴란드 포즈난에서 폐막한 제13회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에서 ‘오르소(Orso)’라는 이름을 붙인 악기로 1등인 그랑프리가 되었다. 또 ‘마샤(Masha)'라는 이름의 악기로는 폴란드의 크지슈토프 크루파와 공동 2위에 올랐다. 한 사람이 만든 두 작품이 세계 1, 2위를 모두 다 차지한 예는 대회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는 자기 전공 분야에 몰두하며 자기 앞에 전개되는 날마다의 인생의 골짜기에 개천을 열심히 많이 팠다. 밤낮 없이 성실하게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장인의 기술을 갈고 닦던 중에 이런 쾌거를 올리게 된 것이다. 오늘 말씀에 보면 엘리사 선지자는 자신에게 전하라고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 여호람과 남 왕국 유다의 왕 여호사밧과 세명의 왕에게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이런 말씀을 전하게 된 역사적인 배경은 이렇다. 엘리야 선지자가 회오리바람 가운데 하늘로 불려 올림을 받은 이후에 하나님은 엘리야의 겉옷을 받아 든 엘리사를 통하여 요단의 물이 이리 저리 갈리지는 기적을 똑 같이 보여 주셨다. 그리고 이어서 여리고 성읍의 사람들이 안타깝게 요구하는 대로 새 그릇에 가져 오게 한 소금을 여리고 성의 나쁜 물의 근원에 뿌려서 좋은 물이 솟아 가게 하는 기적을 보여 주었다. 나쁜 물을 좋은 물이 되게 한 치유 사건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오늘 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자연과 인생을 고치시고 치유하시고 회복하시는 전능자이시다. 

그 후에 엘리사 선지자는 여리고에서 벧엘로 올라갔다. 길가로 지나가는 엘리사를 보고 작은 어린 아이들 42명이 모여 나와서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하고 엘리사 선지자를 놀리며 조롱하였다. 아마도 엘리사는 머리가 많이 벗겨지고 외모가 좀 우스꽝스럽게 생겼던 것 같다. 마음이 불편해지고 속이 상한 엘리사 선지자는 뒤를 돌아다보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 어린아이들을 저주하였다. 성경은 엘리사 선지자가 그 어린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자세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수풀 속에서 암곰 두 마리가 나와서 그 어린이들 42명을 모두 다 찢어 죽였다. 설명하기 복잡하고 착잡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를 조롱한 사건은 그 당시에 왕을 비롯하여 어른이나 어린 아이나 누구나 할 것 없이 우상인 바알을 숭배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살던 모습을 입증하는 사건이다. 이는 엘리사 선지자를 조롱하였다기 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을 조롱한 것이다. 42명의 어린 아이들이 두 마리의  암곰에 찢겨 죽임을 당하는 이 엄청나고 끔찍한 사건으로 인하여 그 주변과 온 이스라엘 나라 안에 하나님의 선지자를 함부로 대하거나 조롱하는 일은 곧 하나님을 조롱하거나 비방하는 것과 같은 경고의 사건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성경은 그 사건 현장에 대하여 더 이상 긴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 일 후에 엘리사는 갈멜 산으로 갔고 다시 사마리아로 돌아갔다. 갈멜은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하고 기도하여 여호와의 불이 임하였던 역사적인 곳이 아닌가. 사마리아는 임금이 살던 북 왕국의 수도이다. 엘리사는 그 곳에 머물며 왕을 상대할 정도로 엘리야의 대를 이은 선지자의 입지를 강화해 나갔다. 

그런 어느 날 이스라엘의 여호람 왕은 연합군을 형성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열왕기 하 3장은 그 전쟁 상황을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1절에서 말씀하는 유다의 제 4대 여호사밧 왕 열여덟째 해란 BC854(?)을 말한다. (실제는 여호사밧 제 20년인 BC 852이 맞다.)그는 유다의 제 4대 왕으로 25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그 당시에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은 아버지의 대를 이은 아합 왕의 아들, 여호람이었다. 아합의 대를 이은 형제 아하시야 왕이 왕궁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들고 2년 만에 죽었다. 그러자 아합의 또 다른 아들인 여호람이 대를 이어 왕이 되었고  12년을 다스렸다. 여호람은 아버지 아합과 어머니 이세벨이 섬기던 바알의 주상을 없애는 등 우상 척결에 앞장섰다. 그러나 결국은 그도 또 다른 우상들을 섬기게 되면서 우상 숭배를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임금이 되고 말았다. 여호람은 12년간 통치하던 중에 예후의 공격을 받아 예후가 쏜 화살이 그의 심장을 관통하는 바람에 죽고 말았다.(왕하9:24)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 이전의 그 어떤 왕들보다 악을 행하였다. 그런데도 그는 22년 동안이나 왕 노릇을 했다. 뿐만 아니라 아합 왕 때에 국제적인 외교력도 대단하였다. 주변 국가였던 모압의 왕 메사는 해마다 새끼 양 10만 마리의 털과 숫양 10만 마리의 털을 준비해서 조공으로 바쳤다. 우리는 이걸 알아야 한다. 하나님 없이도 잘 먹고 잘 살고 번성하고 창대할 수 있다. 심지어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여도 번성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이 세상에 영원히 번성하는 악이란 없는 법이다. 그래서 시편 37편은 말씀한다.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그들의 칼은 오히려 그들의 양심을 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지리로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시37:14-17) 그렇게 대단한 악으로 나라를 번성시키며 우상인 바알을 숭배하던 아합 왕이 죽은 후에 모압은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다. 더 이상 조공을 바치려 하지 않았다. 모압에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기 시작한 것은 다윗 왕 때부터이다. 

왕 아하시야에 이어 새롭게 왕이 된 여호람은 이스라엘의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나라의 형편을 둘러보았다. 열왕기하 3장 6절의 “둘러보고”라는 말은 전쟁에 군사로 동원할만한 젊은이들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는 말이다. 또한 남 왕국 유다의 여호사밧 왕에게 사신도 보냈다. 그리고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지 않으시겠소”하고 연합군을 형성 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 때에 남 왕국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여호사밧 왕은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여호사밧 왕은 평소에 북 왕국과 동맹 관계를 갖는데 열심히던 왕이다. 여호사밧은 자기의 아들 왕자 여호람을 위해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아합 임금의 딸인 공주를 며느리로 맞을 정도였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은 외교에 능한 왕이었다. 그는 남 왕국 유다의 왕 여호사밧과 손잡고 뿐만 아니라 에돔의 왕과도 손을 잡았다. 세 나라가 연합군을 형성한 것이다. 세월이 지난 후에 하나님은 예후의 입을 통하여 남 왕국 유다의 왕 여호사밧이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과 손을 잡고 연합 군대를 동원한 일이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이 아니었다고 책망하였다. 예후는 여호사밧에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대하19:2)고 경고하였다. 

여호람은 전쟁을 시작하면서도 주도권을 갖지 않고 함께 손잡은 두 왕들과 전략을 의논하였다.  여호람 왕이 물었다.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리이까” 그 때에 여호사밧 왕이 대답하였다. “에돔 광야 길로 쳐들어갑시다.” 그리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와 에돔의 군대가 총 동원되어 전쟁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에돔의 광야 길을 이동하던 제 칠일 째 되어서 물이 동나고 말았다. 전쟁이란 것이 칼과 창과 활과 말과 마병도 있어야 하지만 먹을 식량이 조달 되지 못하고 마실 물이 떨어지면 어떻게 싸우겠는가. 그래서는 전쟁을 시작해 보지도 못하고 에돔 광야 길에서 일주일 만에 물이 떨어져 다 죽을 지경이 되었다. 군대와 전쟁에 동원된 짐승들까지 마실 물이 없게 되자 당황스러운 지경이 되었다. 열왕기하3장 9절의 “길을 둘러 갔다”는 말은 “광야에서 배회하고 방황한 것”을 표현한 말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연합군을 형성하고 전쟁을 벌인 저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의 의미가 크다. 

열왕기 하 3장 10절에 북 왕국의 왕 여호람이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는 말을 하였다. 이는 여호람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전혀 묻지 않다가 전쟁 중에 위기를 만나니까 여호와를 찾은 얄팍한 믿음의 행태를 보여 주는 장면이다. 평소에는 제 맘대로 행하고 어려움을 겪게 되자 하나님을 찾는 인간의 간교한 장면을 보게 된다. 

그의 말을 들은 유다의 왕 여호사밧이 물었다.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제사장이 여기 북 왕국 이스라엘에는 없습니까.” 그 때에 여호람 왕의 신하 중에서 한 사람이 끼어들어서 대답하였다.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왕하3:11) 여호람 왕의 신하가 남 왕국 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엘리사를 소개하는 표현이 재미있다. 그냥 엘리사 선지자라고 하지 않고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자”라고 소개하였다. 맞다. 소 열두 겨리를 앞 장 세우고 밭을 갈던 자리에서 엘리야를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나선 엘리사는 엘리야 선지자의 곁에서 그의 손에 물을 부어 주면서 10여년을 하나님께서 자신을 쓰실 날을 준비해 온 선지자이다. 이 표현은 엘리사가 평소에 엘리야 선지자로부터 얼마나 총애를 받으며 엘리야의 곁에서 신임이 두터웠나를 보게 하는 내용이다. 

지금, 아합 왕을 상대하면서 할 말을 담대하게 하던 국가적인 선지자 엘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로 올라가고 없다. 그 엘리야의 대를 이은 선지자 엘리사가 있단 말이다. 엘리사 선지자를 소개 받은 남 왕국 유다의 왕 여호사밧이 이렇게 말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있도다”(왕하3:12) 이는 여호사밧 왕을 통하여 엘리사의 입지를 드높여 준 말이다. 하나님은 전쟁 중에 엘리사를 세 명의 왕들 가까이 가게 하셔서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증거 해 보여 주셨다. 

전쟁 중에 이스라엘 왕 여호람과 남 왕국 유다의 왕 여호사밧과 에돔의 왕등 이 세사람의 왕이 모두 다 같이 의합하여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 방문한 일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본문은 그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여호사밧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여호람 왕과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에돔 왕이 함께 엘리사를 찾았을 때에 엘리사는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왕하3:14) 엘리사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요 여호사밧은 남 왕국 유다의 왕이었으나 엘리사는 여호사밧 왕의 하나님 신앙에 대하여 소문을 들어서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만약에 여호사밧 왕이 함께 온 자리가 아니었다면 그는 이스라엘 왕 여호람을 만나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도대체 여호사밧 왕이 누구이기에 엘리사에게 그런 평을 들을 정도였을까. 여호사밧 왕은 남 왕국 유다의 제 4대 왕이었다. 그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는 뜻이다. 이 급박한 전쟁의 때에 에돔 광야에서 그 많은 군대와 전쟁에 동원된 가축들이 마실 물이 없어 목이 타 들어 가고 있을 때였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선지자는 남 유다의 왕 여호사밧으로 인하여 세 왕들을 만나주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여호사밧 왕에 대한 내용은 열왕기 상 맨 마지막 장인 22장의 마지막 부분에 소개되어 있다. 여호사밧은 35살에 왕이 되어 25년간 남 왕국 유다를 강력하게 다스렸다. 여호와는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다.(대하17:3) 여호사밧은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왕이었다. 그는 다윗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고자 했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고 아버지 임금 아사의 길을 따르지 않았다. 하나님은 남 왕국 유다를 여호사밧의 손 안에서 견고하게 해 주셨다. 그는 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었고 산당을 제거하고 아세라 목상들을 제거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는 나라의 처처에 방백들을 보내고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을 보내서 각 성읍마다에서 여호와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게 하였다.(대하 17:3-9) 하나님은 여호사밧을 점점 강대하게 해 주셨다. 그는 남 유다의 곳곳을 요새로 삼고 국고성을 건축하였다. 예루살렘에는 크고 강력한 군사를 배치하였다. 여호사밧의 부귀와 영광은 점점 크게 떨쳐져갔다.(대하17:12-19) 그러나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기대를 벗어나서 북 왕국 아합 왕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여 정략혼인 관계를 맺고 말았다.(대하18:1) 이것은 하나님이 못마땅해 하시며 나중에는 하나님이 진노하시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사밧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던 왕이었다. 여호사밧은 아합 임금과 연합해서 길르앗 라못에서 아람의 군대와 싸웠다. 하마터면 여호사밧은 그 전쟁터에서 죽을 뻔하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신지라.”(대하18:31)고 하였다. 그 전쟁에서 아합 왕은 죽고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목숨을 구하였다. 역대하 19장 4절 이하에 보면 여호사밧 왕의 하나님 신앙을 자세하게 기록해 주었다. 여호사밧은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았다. 그는 브엘세바에서 에브라임 산지까지 찾아다니며 백성들에게 조상들이 잘 믿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다녔다. 그는 재판관들에게 사람을 위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하여 잘 살펴서 공평한 재판을 하라고 강조하였다. 여호사밧 왕은 백성들에게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대하19:7)고 가르쳤다. 하나님은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다고 선포하며 다녔다. 그는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과 족장들에게 “너희는 진실과 성심을 다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여호와께서 선한 자와 함께 하실지로다.”(대하19:11)는 신앙관을 바탕으로 나라와 백성들을 돌보았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신앙을 지킨 인물이었다.(왕상22:43)그는 나라 안에서 남색하는 자들 즉 동성애자들을 유다 땅에서 추방하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앞장서고 남 유다와 에돔과 연합해서 모압과 싸우려고 벌인 이 전쟁을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으로 인하여 도우시려 하셨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왕이었다. 하나님은 여호사밧으로 인하여 이 전쟁을 승리로 몰아가고 계셨다.


엘리사의 하나님.
엘리사 선지자는 전쟁을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에돔 광야에 갇혀서 배회하고 있는 수많은 군대와 가축들이 마실 물이 없어 죽어 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엘리사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왕들에게 거문고 탈자를 데로 오라고 하였다. 이는 마치도 사울 왕을 악신이 부릴 때에 다윗은 수금을 타며 여호와의 영에 감동한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이미 전쟁이 벌어진 급박한 상황인데 엘리사는 태연하게 거문고 탈자를 찾았다. 거문고 타는 자를 수소문해서 엘리사 선지자 곁에서 거문고가 연주되었다. 성경은 거문고 타는 자가 무슨 곡을 연주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연주할 때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의 위에 임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전쟁 중이지만 마음에 평안을 구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원했던 엘리사의 모습을 보여 준다. 

여기서 “여호와의 손”이란 “여호와의 능력, 여호와의 권세”를 상징하는 말씀이 아닌가. 예전 성경에는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는 감동하시니”라고 번역되어 있다. 그렇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기도할 때에 여호와의 영이 임하고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것이다. 아마도 거문고를 타는 악사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는 찬송과 함께 악기를 연주하였을 것이다. 그리할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에게 감동하시고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에게 임한 것이다. 

지난 이천년간의 교회의 발전과 예배 중에 무악기파의 예배는 악기 연주가 없다. 찬송을 부리기는 하지만 전혀 그 어떤 악기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상하여 보라. 피아노를 비롯하여 그 어떤 악기도 동원되지 않는 예배의 분위기를 말이다. 사실 거의 모든 예배에는 각종 악기가 동원되지 않는가. 더군다나 현악, 관악, 타악기가 골고루 동원되고 규모가 있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예배의 감격이란 얼마나 큰가. 우리 안에 그와 같이 악기를 연주하며 찬양하며 기도하며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예배자들의 수가 점점 더해가는 주님의 은총이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엘리사는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기도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의지할 때에 쉽게 여호와의 영에 감동되는 영적 체험을 늘 갖던 선지자였음이 분명하다.  그 날도 엘리사는 이스라엘과 유다와 에돔의 왕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거문고 연주소리를 들으며 여호와의 손이 그를 붙잡아 주시고 여호와의 영에 감동되기를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필요한 말씀을 그에게 전하여 주셨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 잡고 날 인도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때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거문고 연주와 찬양 가운데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에게 임한 것처럼 우리 각 사람의 마음속에 이 시간도 예배드리는 중에 여호와의 영이 강력하게 임재하기를 소원하자.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하나님의 뜻을 묻고 기도하던 엘리사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감동하셨고 하시려는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나님은 계속하여 엘리사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지금은 에돔 골짜기가 메말라 있고 바람도 비도 보이지 않지만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가축과 짐승이 마시게 될 것이다.

메마른 골짜기에 개천을 파는 것은 인간의 수고이다. 그러나 바람도 보이지 않고 비도 보이지 않는 즉 전혀 비가 올 징조가 보이지 않는 마른 하늘이라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메마른 골짜기에 물이 넘쳐 흐르게 하실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다. 이 말씀을 전하게 하신 하나님은 곧 이어서 엘리사를 통하여 한마디를 더 하셨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작은 일이라.” 그렇다. 인간에게 있어서 아무리 크고 놀라운 기적이라도 하나님 편에서 보시기에는 별로 그리 큰 일일 수는 없다. 말씀으로 우주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그리 크고 대단한 일이란 없는 법이다. 

그렇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90세된 아내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은 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작은 일이다.
모세 시대에 출애굽하던 백성들 앞에 홍해를 육지처럼 두 물이 양편으로 갈라 서게 하셔서 홍해를 건너게 하신 일도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는 작은 일이다.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셔서 마시도록 하신 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작은 일이다.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육지처럼 건넌 것도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는 작은 일이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아이 성을 공략하고 헤브론을 점령한 일도 여호와 보시기에는 작은 일들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38년 된 병자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일도 작은 일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12해 혈루병 든 여인이 깨끗함을 받는 것도 작은 일이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도 작은 일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2000마리의 돼지 떼를 몰살 시킬 정도의 강력한 귀신을 내어 쫓아서 한 인생을 깨끗하게 고쳐 주시는 일이 작은 일이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만 여명의 무리들이 어린 아이가 가지고 왔던 베세다광야의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그 모든 이들이 배 불리 먹고 오히려 부스러기 12광주리를 거두는 것이 작은 일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예수께서 풍랑이 이는 갈릴리의 밤바다를 걸어서 제자들이 타고 가는 배에 가까이 가셔서 그 배에 오르시는 일도 작은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던 엘리사처럼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고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고 하나님의 하시려는 말씀이 구체적으로 임하는 믿음의 나날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손길로 자기의 그림을 그려야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라파엘로처럼 미켈란젤로처럼 되지 누군가를 시켜서 이름만 빌려 주는 대작으로는 역사적인 인생의 그림이 그려질 수 없는 법이다.

이는 음악, 미술, 체육의 각 분야와 과학, 의학 등의 연구 분야와 문학의 모든 세계와 모든 학문과 모든 기술과 모든 업적과 모든 작품과 모든 성과와 모든 공로가 다 마찬가지가 아닌가. 공부를 하든, 직장 생활을 하든, 사업을 하든, 장사를 하든 다 마찬가지가 아닌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은 성경적인 교훈의 말이 아닌가.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 하면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말쟁이가 아닌가.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이것이 오늘 날도 우리 각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대강 대강 지었는데 100층 자리 빌딩이 지어질 수 있는가. 더러 더러 지었는데 바다 속에 해저 터널을 뚫을 수 있는가. 되는대로 하였는데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얼렁뚱땅하였는데 달 나라에 다녀 올 수 있었겠는가. 내 인생의 앞에 놓인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는 수고를 계속하다 보면 반드시 하나님은 좋은 일을 보상으로 경험하게 하실 것이다. 

자연과 과학은 속일 수 없다. 하나님은 자연을 창조하시고 과학의 법칙을 제정하신 전능자이시다. 그 하나님의 자연의 법칙과 과학의 상식에 순응하지 않으면 타이타닉 같은 큰 배라도 가라앉고 총알처럼 달리던 기차라도 전복되고 만다. 

하나님은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고 말씀하셨다. 바람도 비도 보이지 않던 에돔 골짜기에 물이 넘쳐흐르게 하셨다. 모압의 군대와 싸워 이긴 것은 이스라엘 여호람 왕이 용감해서도 아니고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지혜로워서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하나님을 모르는 에돔의 왕이 전략이 뛰어 나서 이긴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은 메마른 에돔의 골짜기에 많이 판 개천에 물이 넘쳐흐르게 하실 수 있는 전능자이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일을 행하시는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작은 일이라고 귀 뜸해 주셨다. 

오늘 날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그런 일들을 행해 주시기를 기도하자. 그러나 막연하고 미신적인 마음으로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앞에 펼쳐져 있는 메마른 골짜기에 많은 개천을 파는 수고를 계속하자. 그리고 때가 되어 행하실 하나님의 놀랍고 새로운 일을 기도하고 기대하자. 

그러므로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의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야 한다. 예배의 개천, 기도의 개천, 찬송의 개천, 헌신의 개천, 봉사의 개천, 전도의 개천, 섬기고 나누고 돌보고 베푸는 개천을 많이 팔 때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심지 않았는데 풍성하게 거두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다. 

19절은 장차 여호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모압 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실 것을 여러 가지 모양을 말씀하신 말씀이시다. 그렇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대적자들과 원수들의 그 모든 성읍이 아무리 견고하고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나님이 원수들을 치시면 모압 땅의 그들이 아끼던 모든 좋은 나무들은 베임을 당하고  그 모든 샘물은 메워지고 그 좋은 밭들은 헐려 지고 말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그런 예언을 하루 만에 이루셨다. 다음 날 아침 소제 드릴 시간인데 에돔 쪽에서 엄청난 양의 물을 보내셔서 에돔 광야의 골짜기에 물이 가득히 흐르게 하셨다. 할렐루야

이스라엘과 유다와 에돔의 연합군에 쳐들어 온다는 소문을 듣고 전군을 동원하여 전쟁을 벌이려 하던 모압의 군대는 마른 땅에 넘쳐 흘려 내려 오는 골짜기의 엄청난 양의 물을 보았다. 그런데 그 물의 빛이 붉은 핏물처럼 보였다. 이스라엘과 유다와 에돔의 연합군 간에 서로 싸움이 벌어져서 그 죽은 자의 피가 골짜기의 물을 핏빛으로 변하게 한 것이라고 착각한 모압의 군대가 쳐들어 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 모압 군대를 일격에 이기게 하셨고 모압의 군대는 혼비백산하여 퇴각하고 말았다. 하나님이 모압과의 전쟁을 이기게 하신 것이다. 

골짜기에 갑자기 흐르게 한 넘쳐나는 물줄기로 하여금 전쟁의 혼란을 겪게 하고 모압 군대를 흩어 퇴각하게 하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해 주셔야 한다. 하나님이 이기게 해 주셔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셔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적 전쟁에 개입해 주셔야 한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인생의 싸움에서 선한 싸움을 다 싸워 승리하는 나날이 되기를 소망하자.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환난과 시련과 곤고와 고난과 질병과 사고와 사건이 많은 세상 중에서 영적 싸움에 늘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두 다 되기를 소망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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