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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교회(엡5: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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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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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01-21 10:51 조회 22,671 댓글 0
 
                    그리스도와 교회(엡5:22-33)               2016. 1. 17


“당신이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Because You Loved Me)라는 시에 곡을 붙인 노래가 있다. 다이엔 워렌(Diane Warren)이 가사를 쓰고 작곡한 노래이다. 

당신이 내 곁에 머물렀던 시간들이
나에게는 진실에 눈을 뜨게 했어요
당신은 내 인생에 큰 기쁨을 안겨주었고
나의 모든 잘못을 바로잡아 주셨죠
당신은 나의 소망을 이뤄 주었고
나는 당신으로 부터 사랑을 느꼈습니다
영원히 당신께 감사드려요 베이비
당신의 사랑으로 나를 감싸 주었고
나를 넘어지지 않게 받쳐 주었죠
당신이야 말로 나 하나의 사랑입니다

한결같은 그 모든 것이
내가 약해질 때면 당신은 나의 힘이었고
내가 말 못할 때면 내 목소리가 되어주었고
내가 볼 수 없을 땐 나의 눈이 되어 주었죠
당신은 내 안에 최고의 모습 찾아 주었어요
내가 미처 닿지 못한 곳으로 올려 주셨죠
당신의 믿음이 내게는 확신을 주었기에
오늘의 내 모습이 존재하는 것이죠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후렴 01
당신은 언제나 나를 위해 내 곁에 있어 주었어요
당신은 감미로운 바람이 되어 나를 실어갔고
당신은 어둠속에 한줄기 빛이 되어
내 인생에 사랑을 비추었죠
당신은 내 삶에 신비한 영감을 주었어요
거짓과 기만 속에서도 당신만은 진실했어요
당신으로 인해 내 세상은 빛났어요
후렴 02
오늘의 내 모습이 존재하는 것이죠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For all those times you stood by me
For all the truth that you made me see
For all the joy you brought to my life

For all the wrong that you made right
For every dream you made come true
For all the love I found in you

I'll be forever thankful baby
You're the one who held me up
Never let me fall

You're the one who saw me through
Through it all

You were my strength when I was weak
You were my voice when I couldn't speak
You were my eyes when I couldn't see

You saw the best there was in me
Lifted me up when I couldn't reach

You gave me faith 'coz you believed
I'm everything I am
Because you loved me

Repeat First
You were always there for me
The tender wind that carried me
A light in the dark shining your love into my life
You've been my inspiration
Through the lies you were the truth
My world is a better place because of you

Repeat Second
I'm everything I am
Because you loved me)
인기 있고 뛰어난 여자 가수나 여배우를 일컬어 ‘디바’(diva)라고 한다. 뛰어난 가창력과 열정적인 무대 매너를 인정받는 여 가수나 여 배우에게 붙여지는 표현이 ‘디바’이다. “당신이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Because You Loved Me)라는 이 노래는 미국의 휘트니 휘스턴(Whitney Houston, 1963-2012)과 머라이어 케리(Mariah Carey, 1970-)와 함께 3대 디바로 알려진 셀린 디온(Celine Dion, 1968-)이 불러 유명해진 노래이다. 그녀의 CD는 무려 2억 장 이상 팔렸다고 한다. 셀린 디온은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곡인 “My heart will go on.”을 불러서 더욱 널리 알려진 가수이다. 

이 세상의 남녀의 사랑, 부부의 사랑이 이런 노래의 가사처럼만 이루어진다면 문제되는 가정, 위기로 금이 가고 나뉘는 부부가 그 어디에 있겠는가. 새해가 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업의 대를 이은 후세들의 가정이 위기를 맡는 뉴스들이 전해지고 있지 않나. 

본문은 아내와 남편에 대하여 말씀한다. 남편을 대하는 아내의 예절, 아내를 대하는 남편의 책임에 대하여 말씀하심이 분명하다. 그러나 사실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교회론에 관한 내용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의 13편의 서신들 중에서 특히 심오하고 탁월한 말씀 중의 한 곳이 본문이 아닌가. 본문에 살을 붙이거나 뺄 것이 하나도 없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
남편이 아내의 머리다. 여기서 복종이란 남녀의 차별이나 차등에 근거한 말씀이 절대 아니다. 다만 바울은 창조의 질서를 언급하는 것이다. 가정의 질서와 통일성을 위하여 아내는 남편을 가정의 대표로 인정하고 존경하고 복종하라고 한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하였다. 이러한 말씀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인종, 신분,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다 평등하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다만 고린도전서 11장의 긴 설명처럼 남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입각하여 복종하라는 말씀을 한 것이다. 

헬라어 본문에는 복종이란 단어가 없다. 단지 에베소서 5장 21절을 설명하기 위해서 ‘복종’이란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한 것뿐이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일반 원리는 부부의 관계에도 이어서 설명하다 보니 이렇게 반복하여 사용한 것뿐이다. 이런 본문을 대할 때에 여성들의 경우에는 아내의 입장에서 ‘복종하게 해야 복종하지요’라고 속으로 되 뇌일 수 있다. 그렇다. 22절의 내용은 아내가 남편을 대할 때에 주께 하듯 하라는 의미에서 복종을 말씀하신 것이다. 서로 그리하라는 21절의 말씀의 연장선에서 묵상하고 이해하여야만 그 본 뜻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다. “남편이 교회의 머리됨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정의 질서를 말씀한 것이다. 그렇다. 아담이 먼저이다. 고린도전서 11장 3절에 보면,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였다. 이것은 부부를 바탕으로 한 가정의 질서이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인간과 하나님과의 창조 질서를 선언한 말씀이기도 하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고전11:8-9)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고전11:11) 그 다음 절에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고전11:12)

아브라함과 이삭은 부전자전으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 아브라함은 사래를 이삭은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였다. 그런 남편을 사래와 리브가는 남편이라고 대하며 살았다. 그 나중이 어떻게 되었나. 위기는 극복해 나가야 한다. 부부가 살다 보면 별의 별 일을 다 겪는다. 그런 상황을 소화해 내야 한다. 아내가 남편의 부족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남편이 아내의 연약함을 감싸고 힘이 되어 주고 격려와 위로자가 되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가정이 세워 질 수 있다. 그래야 좋은 날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의 약점으로 하면 어떻게 그가 믿음의 조상이라 일컬어지겠나. 이삭의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하면 어떻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거론될 수 있었겠나. 

에베소서 5장 23절에서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설명하면서 이는 마치도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고 하였다.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라.
남편들아!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부부다운 부부의 삶을 살려면 부모를 떠나라.
아내와 합하라. 둘이 한 육체가 되라.
남편은 자기 아내를 제 몸처럼 사랑하라.
아내는 제 남편을 존경하라.

그렇다. 피차에 사랑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나. 남편이 자기 몸을 사랑하듯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데 자기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을 아내가 어디에 있겠나.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시면서 사실은 교회와 그리스도,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말씀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는 교회인 성도들의 머리다.
그리스도는 몸 된 교회와 성도들의 구주(救主)이시다.
그러므로 교회인 성도는 그리스도께 복종(服從)하여야 한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신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그의 사랑을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는 교회인 성도들을 물로 씻듯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자기 앞에 영광(榮光)스러운 교회로 세우신다.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남편이 자기 몸을 보호하듯이 성도들을 양육(養育)하고 보호(保護)하신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肢體)이다.


성도들의 구주(救主)이신 예수 그리스도.
인간의 모든 신체 각 부위가 다 소중하지만 머리가 소중하다. 예수는 교회의 머리이다. 예수는 교회의 머리로서 그의 몸 된 지체를 이룬 성도들을 구원하시는 구주시다. 머리가 없는 인생을 상상할 수 있나. 머리가 잘려 나간 인간의 삶이 가능한가. 살아가다 보면 손가락 발가락을 잃을 수 있다. 눈과 코와 귀를 잃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최근의 영화 중에 ‘히말라야’가 유명한 것처럼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 중에 ‘에베레스트’가 유명하다. 지구 최고봉인 8848미터의 에베레스트에 오르려 했던 이들 중에 죽은 자가 있고 살아남아 돌아 온자가 있다. 어떤 이는 살아남아 돌아 왔지만 동상에 걸려서 발가락이 잘려 나갔다. 동상으로 코가 형체를 분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 얼굴의 형상이 흉물스러워졌고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생명이 남아 있고 여전히 머리가 붙어 있으므로 살아 돌아 올 수 있었다. 

살다보면 오장 육부를 수술하기도 한다. 남의 심장을 이식 받기도 한다. 폐의 일부를 절단해 내기도 한다. 간의 70%를 잘라 내서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기도 한다. 신장 한 개를 떼어 내서 남을 주기도 한다. 위암으로 위를 거의 다 잘라 내기도 한다. 소장, 대장 수술을 받아 얼마의 부분을 잘라 내고 살아가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고를 당하여 팔 다리를 잘라 내기도 한다. 한센병으로 코와 귀와 손가락이 문들어 지기도 한다. 당뇨가 심해지면 양 다리를 다 잘라 내기도 한다. 그래도 살아가는 동안은 살 수 있다. 그러나 머리를 잘라내고는 못산다. 

23절에 말씀하는 대로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란 존재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몸 된 교회의 구주이시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의 구주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란 존재할 수 없다. 이 세상에, 우리나라에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지 않으면서 교회 운운하는 이단과 사이비들이 있다. 그런 곳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아무리 화려한 건물을 사들이고 아무리 큰 건물을 짓고 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할지로도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교회를 사칭하는 사기꾼의 소굴이며 사기꾼의 집단일 뿐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그를 믿는 자들의 구주이시다.
세상이 먹고 살만하니 돈이면 다 되고, 재물이면 다 되고, 오일 머니(OIL MONEY)면 다 되고, 땅이면 다 되고, 재산 많으면 다 되고, 사업만 잘 되면 다 되고, 핵폭탄만 가지면 다 되고, 지금 손에 잡고 있는 권력과 명예와 인기와 힘이면 다 될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애굽의 바로 임금이 나일 강 줄기의 산업이 피폐해 져서 죽은 것이 아니다.
임금 사울과 세 왕자가 손에 칼과 창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다. 갑옷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다. 
사사 삼손이 나이 많아 늙어서 기운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다. 
솔로몬 왕이 왕궁의 창고에 금과 은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다. 황금 방패가 모자라서 죽은 것이 아니다.
아합 왕과 이세벨이 빼앗은 나봇의 포도원의 포도 소출이 적어서 죽은 것이 아니다.

세례 요한의 목을 베어낸 헤롯이 권력이 없고 부하가 없고 재물이 없어 죽은 것 아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재판한 본디오 빌라도가 권력이 없어서 죽은 것 아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와서 활동 할 당시의 로마의 지배를 받던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동전에는 로마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나 티베리우스! 저들은 오늘 날 다 어디로 갔는가. 저들의 얼굴 모양이 새겨진 동전을 지금도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2,000년 세월이 지났어도 그런 금화와 은화를 얼마든지 박물관의 전시대 안에서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천하제일의 권력을 자랑하던 주인공들이 지금 다 어디로 갔는가. 

역사의 영웅호걸절세가인들이 다 어디로 갔는가. 저들의 권력과 군사력과 부요와 명예와 인기와 젊음과 아름다움이 저들 자신을 구원하였는가.

이 세상에는 구주가 필요하다. 구주가 계셔야 한다. 그러면 누가 인생의 구주이신가.
공자, 맹자, 노자, 석가, 마호멧, 간디 혹은 우리나라의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崔濟愚, 1824-1864)가 구주인가. 익산의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이 구주인가. 알렉산더인가. 히틀러인가. 일본의 히로히토 천황인가. 스탈린인가. 나폴레옹인가. 뭇솔리니인가. 호메이니인가. 누가 구주인가. 

요즘 한국 교회를 어지럽히는 그 어떤 사이비 집단이나 이단의 교주가 구주인가. 과거의 일어났던 구원파 사건, 오대양 사건 등을 기억하나. 권신찬이 구주인가. 유병언이 구주인가.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주)오대양의 공예품 공장 식당 천장에서 오대양 대표 박순자를 비롯해 가족·종업원 등 구원파 신도 32명(남 4명, 여 28명)이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긴 채 시체로 발견됐다. 사망자 32명 중 17명은 가족관계였다.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자살극으로 위장된 변사사건이었다. 숨진 오대양 직원 대부분은 구원파 신도였다. 잇따라 '타살' 의혹이 제기돼 사건이 일어난 지 2년 후에 그리고 4년 후에 두 차례 재수사를 진행했지만 '집단 자살'로 결론 내려졌다. 어리석은 사상, 어리석은 종교, 어리석은 집단에 휘말리면 개인과 가족이 모두 다 불행해지고 만다. 저주를 자초하고 만다. 

그러면 누가 인생의 구주인가. 에베소서 5장 23절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몸의 구주이시다. 그렇다. 남편이든 아내이든 남자이든 여자이든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종이든 자유자이든 인간을 구원할 구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한 종교 재판이 열렸다. 저들은 예수의 부활 복음을 전파하는 베드로와 요한을 너무나 싫어하여 붙잡아 옥에 가두었다. 하룻밤 갇혀 있던 저들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이 집단으로 모여들어 종교 재판을 열었다. 이미 베드로와 요한의 성령 충만한 복음 전파를 받아들이고 부활 복음을 믿는 남자들의 수만도 오천 명을 넘어섰다. 그 때 베드로가 성령 충만하여 큰 소리로 외쳐 복음을 증언하기 시작하였다.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어제 성전 미문 앞에 있던 앉은뱅이를 고친 사건으로 붙잡혀 감옥에 갇혀 있었다. 베드로가 말했다.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행4:12)

궁색해진 가야바와 안나스와 대제사장 문중과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들이 더 이상 베드로와 요한을 비난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베드로와 요한을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하고 풀어 놓아 주었다. 그 때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보다 옳은 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3:19-20)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원의 복음을 깨닫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든 믿는 자의 구주이시다. 


성도들로 하여금 복종(服從)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다시 한 번 반복하여 묵상하자.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신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그의 사랑을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는 교회인 성도들을 물로 씻듯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자기 앞에 영광(榮光)스러운 교회로 세우신다.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남편이 자기 몸을 보호하듯이 성도들을 양육(養育)하고 보호(保護)하신다.

그러하니 예수 그리스도 인해서 무한하신 사랑을 덧입고 살아가는 성도가 어찌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지 아니할까. 예수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성막과 성전의 물두멍의 물로 씻듯이 우리의 죄와 악을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거룩해 지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티도 업고 흠도 없고 주름 잡힌 것도 없는 온전한 성도의 구원을 이루기를 원하신다. 이 세상의 죄와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정결한 신부의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유모가 어린 아이를 양육하고 보호하듯이 보살펴 주시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그의 말씀으로 성도들을 거룩하게 하신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17-19)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신령한 젖과 딱딱한 음식이라도 골고루 먹여 강건한 하나님의 군사로 준비하시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진리이신 그의 말씀 안에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딤후3:16)하신 말씀으로 성도들을 먹이신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을 양육하시고 보호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공급 받기 시작하면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신다.”(딤후3:17) 그러므로 성도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여야 한다. 그리할 때에 범사에 유익한 주의 말씀으로 전신갑주 무장하게 된다.

1592년 8월 14일, 일본의 침략을 막아 큰 승리를 거두었던 한산대첩(閑山大捷) 때에 이순신(李舜臣,1545-1598)의 용맹과 전략은 뛰어났다. 이순신을 경험한 일본 군대의 장수였던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 1554-1626))는 이순신으로 인해서 크게 패배한 후에 이런 글을 역사에 남겼다.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제일 미워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내가 제일 흠숭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다.
내가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도 이순신이며
내가 가장 차를 함께 마셔 보고 싶은 사람도 이순신이다.”

그 후 일본과 중국의 명나라는 “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이란 주제로 당대의 역사와 이순신에 관한 연구서를 25권이나 냈다. 오늘 날도 일본의 와키자키 후손들은 해마다 한국에 와서 이순신의 유적을 둘러본다고 한다. 

시대적인 명장이 등장하면 시대가 그에게 집중한다.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 어떤 그 누구와 비교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는 측량할 길이 없다. 예수의 은혜의 풍성함은 이 땅의 강물을 합치고 이 땅의 바닷물을 다 모은 것보다 더 풍성하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지존(至尊)하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을 이기신 부활의 능력의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권세는 그 분의 발아래 무릎 꿇고 만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1:20-23)고 하였다. 
성도들을 지체(肢體)로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교회인 성도들의 머리다. 성도들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이다. 주를 믿는 성도된 우리들은 믿는 자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몸 된 한 지체이다. 

220장 찬송, “사랑하는 주님 앞에”의 3절에 보면,

“사랑하는 주님 예수 같은 주로 섬기나니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한 몸 같이 친밀하고 마음으로 하나 되어
우리 주님 크신 뜻을 지성으로 준행하세”

라고 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다. 이것이 성도의 신앙 고백이다. 성도는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한 지체된 성도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그런 지체로 부르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교회를 이룩하고 어떤 성도의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 간에 어떤 마음가짐을 대하며 살아가야 하겠는가. 

이런 생각과 묵상을 하면 엄숙하고 경건해지지 않나.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성찬 공동체요, 한 몸 공동체요, 한 꿈 공동체요, 한 몸 같이 친밀하고 마음으로 하나 되어야 하는 공동체의 일원이란 말이다. 

유대인들이 왜 유월절을 지키나. 왜 초막절을 지키나. 왜 부림절을 지키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십년간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부르게 하신 분이 누구신가. 목 말라 하는 백성들과 그 많은 짐승들에게 마실 물을 공급하신 분이 누구이신가. 누가 낮의 해를 막아 구름 기둥이 되어 주셨나. 누가 밤의 어둠을 밝히는 불기둥이 되어 주셨나. 두 돌 판에 언약을 주신 분이 누구이신가. 모세가 율법을 제정하였나. 모세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을 보존하였나. 

광야에 엘림의 열두 샘을 모세가 팠나. 엘림의 칩 십 그루의 종려나무를 모세가 심고 가꾸어 키웠나.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되어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항상 고백하고 점검하며 살아가야 한다. 거기에 영원한 생명이 신비와 풍성한 은혜의 공급이 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한 지체 된 성도의 거룩한 길을 더불어 살아가자. 그리스도의 지체의 삶을 존귀하게 가꾸어 나가는 그런 교회, 그런 성도의 거룩한 연합의 삶을 살아가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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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벤에셀 하나님"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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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천사의 말을 ..최고관리자
꿈 꾸는 것 같은 날..최고관리자
"너 축복 하시려고"최고관리자
"꿈꾸는 것 같은 날..최고관리자
"내 주 예수 주신 ..최고관리자
"내 주 예수 주신 ..최고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