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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온전한 회복(막2:23-3:6) 2014.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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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7-06 20:49 조회 17,762 댓글 0
 
온전한 회복(막2:23-3:6) 2014. 7. 6
 
 
 
유대인들은 세 가지 절기를 지켜 왔다.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이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바로 왕의 학정에서 놓여나서 홍해를 건너 광야로 출애굽한 날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맥추절은 칠철절이라고도 하고 오순절이라고도 하는데 보리를 농사하여 수확한 감사 절기이다. 수장절은 오늘 날의 추수 감사절기이다. 초막절이라고도 한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들판에 초막을 짓고 일주일간 지내며 지난 날 선조들이 광야에서 40년간 초막 생활을 하며 고생한 날들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절기이다.
 
우리가 맥추감사절을 추수감사절처럼 성대하게 지키지는 않지만 생각해 보면, 돌아 보면 올해도 지난 반 년 동안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인도해 주신 사랑에 감사한 생각이 얼마나 큰가. 출애굽기 23장 16절에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고 하였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은혜를 아는 사람이요, 믿음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훌륭한 사람이다.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27년간 감옥의 독방생활을 마치고 72살에 출소하였다. 그에게 다가간 기자가 건강한 출소 비결을 묻자.
 
“나는 날마다 감옥 안에서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감사하고 땅을 내려 다 보면서도 감사하였습니다. 물을 마시면서도 감사하였고 어떤 음식이든 받아먹을 때마다 감사하였습니다. 강제 노동을 힘겹게 해야 할 때에도 감사하였습니다. 내가 건강을 지킨 비결은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였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영국의 유명한 성경 주석가 메튜 헨리는 “감사는 더하기와 같아서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점점 더해지도록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다. 그러나 불평하고 원망하면 있던 것 같지도 빼앗기고 없어지고 만다. 그러므로 원망하고 불평하면 점점 원망하고 불평할 일이 늘어나게 된다.”고 말했다. 감사가 넘치는 나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본문은 소위 ‘예수 그리스도의 안식일 논쟁’에 관한 내용이다.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 중에서 제 4 계명이 안식일에 관한 계명이다. 이 날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쉬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과 인간을 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쉬셨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제 7일에는 안식하라고 명령하셨다.(신5:15) 안식일에 관한 첫 규정은 출애굽기 16장에 나오는 만나를 내려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하실 때였다. 안식일 전날에는 이틀 치의 만나를 거두어 두었다가 먹도록 하셨고 안식일에는 만나를 내려 주시지 않았다. 안식일을 지키도록 성문화하신 것은 시내 산에 모세를 불러올리신 하나님께서 십계명의 말씀을 주실 때였다.(출20:8-11) 안식일을 지키게 하신 바탕은 쉼과 구원에 대한 감사이다. 하던 일을 멈추고 쉬게 하신 것이 안식일의 개념이다. 노동을 금지하고, 물건을 사고파는 상행위를 삼가고, 육체적인 오락을 즐기지 말라고 하셨다. 불 사용도 삼가도록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이다.
 
이사야 58정에 보면,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58:13-14)
 
정리하면 이런 말씀이다.
 
안식일에는 분주한 출입을 삼가라.
너희의 거룩한 날이니 오락을 하지 말아라.
안식일을 즐거운 날로, 여호와의 존귀한 날로 지내라.
네 마음대로 행하지 말아라.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않도록 하여라.
그리하면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날이 될 것이다.
안식일을 잘 지키며 살면 하나님이 나를 땅의 높은 곳에 올려 주시겠다고 하셨다. 즉 존귀한 인생으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해 주셨다.
뿐만 아니라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시겠다고 하셨다.
 
이는 당시로 하면 바벨론의 포로에서 귀환시켜 주시겠다는 자유의 회복과 해방과 독립에 대한 약속이실 뿐만 아니라 야곱의 후손다운 축복을 누리게 해 주시겠다는 선언이시다. 야곱을 향한 그 축복은 아들 요셉의 때에 가서 담을 넘는 가기와 같은 왕성한 축복이 시작되었다.
 
본문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밭 사이를 지나 어디론가 가던 중에 시장해 하던 그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비벼 먹은 현장을 목격한 바리새인들이 시비를 거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예수는 사무엘 상 21장에 나오는 다윗 때의 일화를 인용하여 대답을 대신하셨다. 어느 날 다윗이 사울 임금에게 피신 다니다가 몸은 지치고 배는 고프고 어디서 먹을 것을 구할 길이 없자 ‘놉’에 있던 성막에 뛰어 들어가서 당시의 대제사장이던 아히멜렉에게 먹을 것을 간청하였다. “떡 다섯 덩이만 달라”고 요청하였다. 대 제사장 아히멜렉은 하나님께 바쳐진 진설병 밖에는 없다고 대답하며 다윗의 성결한 생활을 확인한 후에 진설병을 새로 드리고 물려 낸 것 중에서 먹을 것을 주었다.
 
이와 같은 지혜로운 예를 드신 후에 예수는 두 가지의 교훈을 말씀하셨다.
 
첫째,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둘째,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그리고 다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셨다.
 
말씀의 제목을 ‘온전한 회복’이라고 정하였다. 본문의 내용은,
 
참다운 노동의 회복
안식일과 사람과의 관계의 회복
예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신 것을 선포하신 권위의 회복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구원 사역의 회복
마른 손이 온전하게 펴지는 온전한 회복을 말씀하신 내용을 담고 있다.
 
 
안식일과 주일 신앙의 회복.
예수는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교 환경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셨다. 그런 예수께서 가시는 곳마다 안식일 문제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부딪치셨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본래 신앙 정신에서 벗어나서 온갖 규제 사항을 지킬 것을 강요하는 바리새인들의 비 성경적인 모습에 대하여 철저하게 대항하셨다.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준 치유 기적은 바리새인들의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했다. 마가복음 3장 6절에 보면, 결국 저들은 헤롯당원들과 결탁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를 죽여 버리려는 의논을 할 정도로 바리새인들 사이에 예수는 눈에 가시처럼 못마땅한 존재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 하신 이후로 예수를 메시아로 , 구세주로 믿는 성도들은 안식일 대신에 부활의 날을 기념하는 주일 신앙을 갖게 되었다. 오늘 날 우리는 그 부활의 날을 주일 날로 맞아서 예배드린다.
 
안식일을 복된 날이다. 하나님께서 쉼을 베풀어 주시는 날이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날이다.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날이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굳건하게 하는 날이다. 안식일의 주인이 누구신지를 깨닫는 날이다. 뿐만 아니라 안식일은 주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예비하는 날이다. 이처럼 복되고 아름다운 안식일을 온갖 규정으로 정하여 안식은커녕 점 점 더 심적으로 부담만 되게 변질 되어 가는 안식일 제도에 대하여 도전하시고 새로운 안식일 신앙을 선언하신 것이 본문의 내용이며 교훈이다.
 
그러면 우리는 안식일인 주일 신앙으로 살면서 무엇을 온전하게 회복하여야 할까.
 
 
가치 있는 노동과 쉼의 회복.
에덴에서 추방된 아담이 이마에 땀을 흘리는 수고를 하여야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무언가 선한 일을 위하여 땀을 흐리고 수고하며 애쓰고 노력하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인류의 문명은 누군가가 분야마다에서 이처럼 수고하고 애쓰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일을 지내고 가정과 사회의 이런 저런 분야마다에서 생활하는 그 모든 삶의 현장은 악한 일이나 나쁜 일이 아니라면 모든 수고와 노동은 다 숭고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정신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다 마찬가지이다. 그처럼 엿새 동안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수고하고 애 쓴 후에 주일날을 맞아서 가족과 함께 예배당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생활은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인가.
 
강도, 사기, 절도, 밀수, 횡령, 착취, 약탈, 공갈, 협박 등의 악한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떤 노동이든 신성한 것이다. 그 모든 노동의 수고에 하나님의 축복이 더해져야 진정한 축복인 것이다. 시편 127편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정과 그 성곽 즉 나라와 도시를 지켜 주시고 세워 주시어야만 복이라고 하였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127:1-2)라고 하였다.
 
기독교 문학, 기독교 음악, 기독교 미술을 비롯한 기독교의 문화유산을 보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도스토에프스키의 <죄와 벌>, 헨델의 <메시아>,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로뎅, 렘브란트 같은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미술가들의 그 아름다운 그림들과 조각품들이 어찌 기도와 묵상과 잠을 못자는 수고와 열심히 없이 저절로 완성된 작품이 그 어디 한 작품이나 있겠는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아닌가. 배재학당에서 공부한 김소월의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같은 시를 보라.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寧邊에 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어머니에게서부터 하나님 신앙을 이어 받은 박목월이나 하나님 안에서 민족의 고난을 가슴에 끌어안고 ‘십자가’나 ‘서시’ 같은 역사적인 불후의 신앙 명시를 남긴 청년학도 윤동주를 보라.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 세계의 그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을 완성해 내던 말 못하던 작가 김기창 화백과 같은 분들의 가슴 속에 간직되어 있던 하나님 신앙을 보라.
 
안익태 선생이 곡을 붙인 애국가의 가사를 윤치호 박사가 썼다. 아니면 안창호 선생이 썼다는 등 주장이 다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저들의 가슴 속에 불붙는 하나님 중심 신앙이 있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토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그렇지 않나. 그 모든 일들의 배후에는 노동과 작업과 수고와 헌신의 가치를 알고 노동과 쉼을 회복하는 균형 있는 예배자의 삶을 살던 이들에게서 역사적인 일들이 이루어 졌다는 점이다.
 
남미의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는 과거에 세계 6대 강국에 들던 잘 살던 나라였지만 젊은이들이 일 하기를 게을리 하고 놀자 먹자 즐기자하며 흥청대며 지내던 중에 지금은 얼마나 못 사는 나라가 되고 말았는가.
 
헨델의 메시아(Messiah)는 조지 프레드릭 헨델이 작곡한 오라토리오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이다. 복음서와 이사야서, 시편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탄생과 삶과 수난을 담았다. 전체 곡 중에서 '주의 영광'과 '할렐루야'가 가장 유명하다. 그는 2시간 연주 분량인 259페이지의 메시아 오라토리오를 작곡하는데 24일이 걸렸다고 한다. 그 자신의 음악적인 작곡 기량이라기 보다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는 작곡을 마친 맨 뒷 장의 악보에 SDG라고 썼다. 그 뜻은 “Soli Deo Gloria' 즉 ‘오직 주께 영광’이란 의미이다.
 
우리가 노동과 안식의 균형을 갖고 예배자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은혜 주셔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건강, 재물, 번영, 성취 다 좋으나 행복하고 즐겁고 기쁘고 감사한 삶은 하나님이 날마다의 일상생활에 내려 주시는 축복이며 선물이 아닌가.
 
그러므로 노동도 보람 있게 하여야 하지만 주일의 쉼과 안식도 잘 누리며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이 날은 이 날은>이라는 찬양이 있다.
 
이 날은 이 날은 주의 지으신 주의 날일세
기뻐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즐거워하세
이 날은 주의 날일세 기뻐하고 즐거워하세
이날은 이 날은 주의 날일세
 
이 날은 이 날은 나의 모든 죄 사함 받은 날
기뻐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즐거워하세
이 날은 주의 날일세 기뻐하고 즐거워하세
이날은 이 날은 주의 날일세
 
이 날은 이 날은 우리 주님이 부활하신 날
기뻐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즐거워하세
이 날은 주의 날일세 기뻐하고 즐거워하세
이날은 이 날은 주의 날일세
 
이 날은 이 날은 성령님께서 임하시던 날
기뻐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즐거워하세
이 날은 주의 날일세 기뻐하고 즐거워하세
이날은 이 날은 주의 날일세
 
 
예수 안에서 생명을 살리는 완전한 회복.
우리의 몸은 맑은 공기 마시고 맑은 물을 마시고 골고루 영양 있는 음식을 섭취하고 쉼을 가지면 활력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늘 묵상하는 대로 인간은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구성된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영혼육의 질서 있고 균형 있는 회복이 없이는 진정으로 회복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마가복음 3장 1절 이하에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신 예수께서 한 쪽 손 마른 사람을 만나셨다.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그 날도 예수를 고발하려는 따가운 시선으로 예수의 행동을 주목하고 있었다. 안식일에 만난 그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시나 아니하나 주목하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진정한 안식일 신앙에서 벗어난 이들의 행동은 매사가 그렇다. 예수의 선한 행동까지도 고발 거리를 찾으려 하고 주시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예수께 대하여 4절에 보면 악하고, 5절 말씀처럼 완악한 마음을 갖고 매사를 대하였다.
 
그 날 예수께서는 고 손 마른 사람을 많은 사람들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고 하셨다. 숨어서 고치신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치유해 주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무리들 한 가운데에 손 마른 사람을 세워 놓고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것이 옳으냐”
 
그 때 무리들이 잠잠하였다. 예수는 바리새인들의 완악함을 탄식하시고 분노하셨다. 그 후에 다시 한번 주변의 무리들을 둘러 보신 후에 손 마른 이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을 내 밀라” 그 때에 그 사람이 못 펴던 손을 내 밀자 쭉 펴지고 건강해 졌다. 그 손이 회복되었다. 영어 성경에 보니까 '완전히 회복되었다'(completely restored)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의 능력을 지니신 회복의 주인이시다. 예수 안에서 살아가려 하는 성도들은 예수를 통하여 몸과 마음과 영혼이 온전히 치유받고 회복되어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게 된다. 오늘도 예배 중에 영혼육에 그러한 치유와 회복의 은총이 임하길 소원하자. 날마다 동네 사우나에 다니는 분들이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무슨 크리닉, 무슨 데라피를 받기 위해 다니시는 분들이 있다.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 받을 필요 있으면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바쁜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고 뛰고 달리고 수고하고 애쓰고 살면서 주일날이면 가족과 함께,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의 집에 와서 찬송하고 기도드리고 말씀 묵상하고 성도들과 교제하고 섬기고 봉사하고 하는 중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영혼육에 안식과 치유와 회복의 능력이 공급되고 새로워지는 것이다.
 
세상을 물고 뜯고 빼앗고 찢고 먼저 삼켜 버리려 한다. 그러나 우리 주님 예수께서 내게 찾아오시면 회복이 일어나되 완전한 회복이 은총으로 주어지게 된다.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고깃덩어리 하나를 앞에 놓고 서로 야옹 거리며 싸우고 있었다. 지나가던 여우가 끼어들어서 참견하였다. “너희들 왜들 그러니 무슨 일이니” 상황을 알게 된 여우가 참견하였다. “내가 절 반 씩 공평하게 나누어 줄게” 절반을 자르고 나니 한 쪽이 좀 커 보였다. 여우는 그 좀 더 큰 쪽의 고기 한 점을 잘라 먹었다. 다시 너무 한 쪽이 작아지자 맞은 편 고기 한 점을 다시 잘라 먹었다. 계속 그렇게 하다 보니 나중에는 손톱만한 고기 한 점만 남게 되었다. 약은 여우는 그 남은 한 점의 고기마저 냉큼 삼키고는 어디론가 여유롭게 사라지고 말았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고단한 세상을 살면서 서로 물고 뜯고 찢고 싸우는데 혈안이 되어서 매사에 돈, 돈, 돈 하며 재물만을 좇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참 안식일 신앙을 회복하고 주일 신앙을 회복하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회복의 은총을 누리는 주인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루살렘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고 그 곳에 행각 다섯이 있었다. 거기에 많은 병자들이 모여들어서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문에 그 물에 동할 때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낳는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38년된 병자도 같이 있었다. 예수께서 그 누워 있는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다. 그는 물이 동할 때에 물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남이 먼저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이러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 때 예수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시자 그렇게 하였다. 깨끗함을 받았다. 요한복음 5장 9절 이하에 보면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냐는 시비에 휘말리신 것이다. 16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그 일로 예수를 박해하게 되었다. 그 때 예수께서 유명한 말씀으로 대답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
 
그렇다. 안식일과 주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시며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 안에서,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고,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온전한 회복의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안식의 시작이며 주일 신앙의 시작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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