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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부르심을 받은 효자 엘리사(왕상19:19-21) 2016. 5. 8 201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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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05-08 15:55 조회 19,931 댓글 0
 
부르심을 받은 효자 엘리사(왕상19:19-21)       2016. 5. 8



기독교는 효도를 강조하는 종교다. 아무리 예수를 믿으며 살고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도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는 아들 딸, 며느리 혹은 사위라면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아버지의 분부하신 사명을 완수한 효자의 생을 사셨다. 예수는 십자가에 죽으시면서도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이며 이종 사촌인 사도 요한에게 부탁하였다. “요한아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이다. 요한 사도는 장수하면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효성을 다하였다고 한다. 

십계명 중에서 인간관계를 교훈하는 첫 계명인 제 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효자였다. 애굽에 팔려 갔던 요셉도 아버지 야곱에게 효자였다.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있어서 마치도 친 아들과 같은 효자 같은 인물이었다. 룻기의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있어서 효부였다. 에스더서의 주인공 에스더는 부모를 일찍 잃고 자랐지만 자기를 보살펴 준 사촌 오빠 모르드개를 부모처럼 여겼다. 모르드개는 부모가 돌아가신 어린 에스더를 친 딸처럼 키웠다. 에스더는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로 성장하였다. 에스더는 바사 제국의 아하수에로 왕이 왕비를 간택할 때에 수많은 경쟁 상대를 물리치고 왕의 마음에 들어 대 제국의 왕비가 되었다. 그런 그녀의 동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만의 궤계로 인해서 멸족당할 위기의 때에 “죽으면 죽으리이다”하고 동족들에게 삼일 밤낮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 금식을 선포하였다. 하나님은 에스더와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식 기도를 들으시고 하만의 잔학한 궤계로부터 온 민족을 구해 주셨다. 이것이 부림절의 기원이다. 하나님은  불쌍한 사촌 누이 동생 에스더를 하나님의 딸답게 양육해 준 모르드개를 축복해 주셨다. 에스더 10장 3절은 에스더서의 끝 절이다. 거기에 보면 모르드개를 부모처럼 여긴 에스더도 복을 받고 불쌍한 고아 소녀 에스더를 딸처럼 훌륭한 하나님의 딸로 키워 낸 모르드개도 큰 복을 받았다.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모르드개는  바사 제국의 왕 아하수에르 앞에서 제 2인자가 되었다.
모르드개는 유다인들 중에서 크게 존경 받았다.
모르드개의 허다한 형제들은 모르드개를 사랑하였다.
모르드개는 그의 백성들의 이익을 도모하였다.
모르드개는 그의 모든 종족들을 안위하였다. 
이는 효의 신앙 정신이 살아 있던 가정의 인생들을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높여 주신 내용들이다. 디모데는 바울을 친아버지 같이 여겼다. 사도 바울 자신도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얻은 친아들처럼 여겼다.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는 마치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도 같았다.  

엘리야 선지자는 브엘세바 광야의 로뎀 나무 아래와 호렙 산의 동굴 속에서 그를 찾아  오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부르심을 체험하고 또 체험하였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버리지 않으시다. 땅 끝에라도 찾아 가시고 바다 끝에라도 찾아 가신다. 

하나님은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던 엘리야에게 떡과 물을 먹고 마시게 해 주시고 호렙 산 동굴에 피신해 있던 엘리야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격려하시며 새 힘을 공급하셨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서 그의 다음 대를 이어 갈 선지자 엘리사를 부르신 장면이 본문의 내용이다.

마침 어버이 주일인 오늘 본문은 엘리사의 효자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만났을 때에 엘리사는 빈둥거리며 놀고 있지 않았다. 엘리사는 열두 겨리 소를 앞장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다.  ‘겨리’라는 말은 “두 마리의 소가 끄는 쟁기”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열두 겨리 소는 24마리이다. 엘리사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아니었다. 24마리의 소가 밭을 갈 정도의 큰 농사를 하는 대농의 아들이었다. 대 지주의 아들이었단 말이다. 그는 부잣집 아들이라고 늘 먹고 놀며 지내지 않았다. 그는 종들이나 품꾼들이 나서서 일하도록 하고 빈둥거리던 청년이 아니었다. 이는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던 성실한 젊은이 엘리사의 모습을 보게 하는 장면이다. 엘리야는 자신의 겉옷을 엘리야에게 던지며 엘리사를 자신의 대를 이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초청하였다.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내 부모와 입 맞추게 하소서. 그리 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일을 한답시고 부모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고, 부모의 마음을 허전하게 하고, 부모의 마음에 한과 슬픔과 큰 미련이 남게 하는 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의 모습일 수 없다.

엘리사는 그런 면에서 효자였다. 날마다 성실하게 밭에서 일하던 모습도 그렇고 부모에게 입을 맞추고 작별을 고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겠다는 모습도 그렇다. 뿐만 아니라 엘리사는 그를 아는 주변의 이웃들을 초청해서 잔치를 벌였다. 아예 한 겨릿소를 끌어다가 잡았다. 즉 엘리사는 두 마리의 소를 잡은 것이다. 그 소에게 씌워서 일하던 기구들을 불살라서 고기를 삶았다. 평소에 그를 알고 지내던 이웃의 백성들을 모두 다 초청해서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렸다. 그리고 이웃 주민들이 배 불리 음식을 먹고 그를 축하하고 축복해 줄 수 있는 잔치 자리를 스스로 마련하였다. 그 후에 일어나서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을 들기 시작하였다.


밭을 갈던 엘리사.
엘리야 선지자가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났을 때 엘리사는 열두 겨리 소를 앞 장 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다. 일은 소중한 것이다. 도둑질, 사기, 강도, 밀수, 밀렵, 횡령 등의 악한 일이 아니라면 일은 모두 다 귀한 것이다. 그 일이 논과 밭과 산과 바다와 공장과 사무실과 연구실 등 그 어디서 하는 어느 업종의 그 어떤 일이든 일은 귀한 것이다. 해도 해도 표시도 없는 가정의 살림살이도 귀한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하여 시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세탁기 돌리고 청소하고 다리미질을 하고 화초를 가꾸는 그 모든 일들이 아름답고 귀한 일이다. 특히 어린 아기를 키우고 어린이를 양육하고 노인을 돌보고 병약한 가족이나 병든 부모를 섬기는 그 모든 일들을 더욱 더 귀한 일들이다. 

22년 전인 1994년 1월 5일에 미국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다. 그 때 두 아들은 8살, 10살이었다. 그 겨울의 어느 공휴일에 네 가족이 필라델피아 동물원에 갔다. 그 추운 겨울인데 화자용 침대를 밀고 침대에 환자 가족이 누워 있는데 이불을 두껍게 덮고 얼굴을 감싸고 털모자를 씌우고 마스크를 해 주어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른인지 젊은이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지만 겨울 바깥나들이를 시켜드리는 장면을 보고 가슴이 뭉클한 적이 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모든 일들이 귀하고 복된 일들이다. 꼭 어디 출근해서 일하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월급을 타고 수입을 갖는 일만이 일이 아니라 크고 작은 일들이 모두 소중한 일들이다. 특히 매우 사소해 보이는 일, 그러나 내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일이 참으로 귀하고 복된 일이 아닐까.

밀레의 미술 작품 중에 <만종>이란 제목의 그림이 있다. 들판의 저녁나절에 하루 종일 일하던 부부가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장면의 그림이다. <만종>의 처음 제목은 <감자를 수확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 저만치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지평선의 뒤 그림으로 보이는 먼 마을에는 예배당의 높은 종탑이 보인다. 마치도 그림 속에서 예배당의 저녁 종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남편은 모자를 벗어 들고 쇠스랑을 그 곁에 땅에 꽂아 둔 채 기도하고 있다. 옆모습이 보이는 아내는 곁의 땅 바닥에 바구니를 내려놓은 채 두 손을 단정하게 모으고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기도드리고 있다. 그 그림에 보면 하루 종일 힘쓰고 애써서 땀을 흘리면 수고한 농부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일의 소중함, 노동의 신성을 그림이 표현한 것이다. 남편과 아내, 아내와 남편의 모습을 통해서 가정의 소중함도 나타냈다. 멀리 보이는 마을의 높은 첨탑이 보이는 예배당과 고개 숙여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은 신앙의 소중함을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다.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미술가이다. 그는 <이삭 줍는 여인들>, <만종>, <씨 뿌리는 사람들> 등의 농촌 배경의 그림이 잘 알려져 있다. 사실주의 자연주의 화가이다. 밀레는 어려서 자라나던 마을의 두 개신교 목사에 의해서 신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라틴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근대 문학 작가의 많은 작품들을 읽기도 하였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솜씨가 있어서 성경과 기독교의 종교적인 장면의 그림을 많이 그리며 자라났다. 그는 결핵으로 아내가 먼저 일찍이 세상을 떠나는 슬픔도 겪었다. 그의 미술 활동은 나중에 목사의 아들로 화가가 된 반 고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일이란 소설을 쓰거나 시를 쓰는 문학이든, 무슨 학문 분야의 연구 생활이든, 음악, 미술, 체육, 건축, 공학을 비롯해서 수백, 수천, 수 만 가지의 각종 직업과 일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그 모든 것이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한 번은 TV의 특집 프로그램 중에서 큰 호화 유람선이 먼 바다를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서 그 배후에서 보이지 않게 수고 하고 애쓰는 책임 맡은 이들이 손님들의 즐겁고 안전하고 만족스러운 여행을 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내용을 자세하게 구석구석 다루는 다퀴 물을 본 적이 있다.  

부르심이란 의미의 소명(召命)이란 그처럼 일과 관련이 깊다. 영어로 ‘calling’이라는 소명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뜻도 있지만 일 그 자체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표현도 담겨 있다. 그러므로 ‘소명감’이란 일을 제대로 잘 감당하는 책임감을 말하는 것이다. 수 천 명이 타는 유람선 한 척이 태평양이나 대서양과 같은 먼 바다를 항해하려면 선장, 기관장, 선원, 기술자, 영양사, 의사, 간호사를 비롯해서 아주 사소한 일을 맡아 해야 하는 수많은 선원들이 필요하다. 손님들의 객실과 활동 공간과 필요를 채우는 별의 별 크고 작은 일들을 제 각기 다 따로 제대로 잘 감당해야 한다.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는 일은 그냥 “공부 잘해서 성공해라”하는 정도 그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 아들딸, 손자손녀들이 자라나면서 각자가 자기만의 은사, 역량, 재주, 능력, 실력을 갈고 닦아서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공헌하며 일하며 살아 갈 수 있는 일꾼으로 자라나도록 돌보고 관찰하고 상담하고 대화하고 격려하고 후원해 주어야 한다. 

특히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성령 안에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어른 젊은이 어린이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제 각기 자기만의 소중한 일을 각 분야에서 성실히 잘 감당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도 이 땅에 계신 동안에 일하셨다. 예수는 30살에 고향을 떠나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신 후에 하나님의 아들 즉 메시아로서의 사명 감당을 위해서 밤낮 없이 수고하고 애를 쓰셨다. 고단한 날마다의 일과를 소화해 내셔야 했다. 예수의 소문이 나자 그는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무리가 그를 따랐다. 각색 병자들이 예수를 통해서 고침 받기를 원했다.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의 천국 비유 말씀을 듣기를 원했다. 예수는 가시는 곳마다 귀신을 내어 쫓고 문제를 해결하고 무리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다. 베세다 광야의 배고픈 무리들에게는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장정만도 5천명 이상이 배 불리 먹고도 12 광주리의 부스러기를 거두는 풍성한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여성과 어린이들을 포함하면 2만 여명의 무리들이 배 불리 먹은 것이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늘 일을 하며 사셨다. 고향 나사렛을 떠나기 전에는 일찍 돌아가신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의 목수 일을 배워서 했다. 그 목수의 일을 배워서 어머니와 여러 동생들의 가정 경제를 책임지며 사셨다. 예수의 목수 일이란 나무와 돌을 다루어야 하는 고단하고 힘이 많이 드는 일들이었다. 

그처럼 예수께서는 늘 땀 흘려 일하고 수고하는 일을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하셨다. 요한복음 5장에는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신 장면이 나온다. 유대인의 명절 기간이었고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그 베데스다 연못 가에는 물이 동할 때 들어가면 낫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소문을 듣고 거기 모여 지내는 환자들이 넘쳐 났다.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서 지냈다. 심지어는 38년 동안 된 병자도 있었다.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 때 그가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고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하고 말씀하시자 그가 그 즉시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일을 했다고 예수를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고 대답하셨다. 

이처럼 선한 일, 귀한 일, 좋은 일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언제나 복되고 아름다운 것이다. 예수께서는 늘 좋은 일을 하며 사셨다. 이 기적 사건 이후로 유대인들은 예수를 더욱 죽이려고 하였다. 예수가 안식을 범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친 아버지라고 말했고 시비를 걸었다. 

효도 중의 효도는 일을 성실히 열심히 하며 사는 것이다. 남녀노유 누구나 다 마찬가지다. 일하기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일하기를 즐겨 해야 한다. 이것이 효자가 되고 효녀가 되는 기본이다. 그 일이 가정의 살림이든 집 안과 집 밖에서 그 어떤 일이든 선하고 좋은 일이라면 열심히 잘 감당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일이란 몸으로 하는 일이든 머리로 하는 일이든 그 모든 일들이 다 같이 소중하고 필요하고 귀한 것이다. 
캥거루족이 되어서 일을 하지 않고 부모가 일구어 놓은 평생의 업적의 울타리 안에서 늘 부모의 그늘에 가려서 빈둥거리며 살면 안 된다. 일은 신성하고 귀한 것이다. 각 분야에서 일하며 사는 것이 부모 공경하고 효도 하는 시작이다. 엘리사는 열심히 밭을 갈던 성실한 청년이었다. 


 
부모에게 입 맞추며 이웃에게 잔치를 벌인 엘리사.
엘리사를 만난 엘리야 선지자는 평소에 자신이 입고 다니던 겉옷을 벗어서 그에게 던져 주었다. 선지자의 옷이란 선지자의 부르심을 상징한다. 아합 임금 시대에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활약하던 대표적인 하나님의 사람인 선지자 엘리야가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엘리사에게 던져 주었다는 것은 엘리사를 대를 이을 선지자 후보로 불러내는 장면이다. 그 때에 엘리사는 밭을 갈던 소를 버리고 엘리야 선지자 앞으로 달려갔다. 이는 부르심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응답한 엘리사의 빠른 행동과 판단을 보여 준다. 엘리야 선지자 앞에 나아간 엘리사는 부모와 작별 입맞춤을 하고 돌아와서 엘리야를 따르겠다고 말했다. 이는 평소에 엘리사 자신이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지자의 한 사람으로 부르신다면 언제라도 순종하겠다는 마음가짐과 준비된 마음과 태도를 갖고 살아 왔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앞에 나타나서 겉옷을 벗어 던져 주는 엘리야 선지자의 부르심은 우연한 순간이 아니라 엘리사의 입장에서는 기다리고 기다리며 고대하고 고대하던 부르심을 순간이 온 것이다. ‘엘리야’란 이름의 뜻이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의미가 있듯이 ‘엘리사’란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는 그의 아버지 사밧이 아들의 이름을 지어 부를 때에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소망하는 시대적인 열망을 아들이 이름에 담아서 부린 것이 아닌가. 우상 숭배인 바알 숭배가 극심하던 시절에 엘리사의 아버지 ‘사밧’은 아들의 이름을 통해서 그 당시의 시대 상황을 구원하실 분은 오직 주 여호와 하나님뿐이심을 선언하고 선포하는 신앙으로 살았고 그런 신앙으로 아들 엘리사를 양육하였을 부모의 신앙관이 배어 있는 이름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엘리야 선지자의 부름 앞에서 부모와 작별을 위한 입맞춤을 하고 와서 따르겠다는 말은 얼마나 아름다운 부모와 자녀의 사랑의 표현인가.

실제로 입맞춤은 의학 연구에 의하면 몇 가지 큰 유익이 있다고 한다. 첫째, 입맞춤은 엔돌핀, 옥시토신 등의 인체 면역과 질병 예방에 유익한 호르몬 분비를 돕는다. 둘째, 입맞춤은 침의 분비량을 늘려서 입 안의 건강에도 좋다. 셋째, 입맞춤은 체중 조절과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 넷째, 입맞춤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를 억제하고 옥시토신 같은 호르몬의 분비를 도와 정서 안정에 크게 도움이 된다. 다섯째, 입맞춤을 자주 하면 안면의 30여개의 안 쓰던 근육을 더 쓰게 돼서 덜 늙는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이유로 부모의 마음에 허전함이나 슬픔을 남긴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입 맞추고 두 마리의 소를 잡아 그 소가 쓰던 농기구를 불  살라서 고기를 삶아 이웃들을 초청하고 풍성하게 잔치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것을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 나서 엘리야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엘리사는 가족 관계나 부모 관계나 이웃 관계가 원만한 안정되고 사회성이 뛰어난 성품의 인물이었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이다.”는 말이 있지 않나. 절대로 인간은 혼자서는 못 산다. 서로 더불어 사는 것이다. 한자의 사람 ‘인’(人)자도 그러하지 않나.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돕고 서로 사랑과 우정과 감사와 지혜와 역량을 주고받고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IQ가 높아도 EQ, NQ, SQ가 약하면 사회생활을 제대로 잘 하기가 어렵다. 감성 지수, 관계 지수, 사회 지수가 높은 사람들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원만한 인간관계 속에 살 수 있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 행복하게 살아 간 부모의 곁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부모에게도 더 잘 효도할 가능성이 높다. 

상처 속에 자란 아이가 그 상처를 가족이나 사회에 투사(投射)해서 문제 가정, 문제 남편, 문제 아내, 문제 자녀, 문제 인물이 되는 것이다. “00여사 팔순 기념 관광”이라고 쓴 관광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어머니의 팔순을 기념해서 가족이나 혹은 어머니의 친구 분들이나 이웃들을 초청해서 관광버스에 모시고 관광을 시켜 드리는 것 같았다. 아름답지 않나. 

현대판 고려장인 고독사의 경우가 많다. 지난 달 17일 인천 부평의 쪽방에서 79살 노인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미 숨을 거둔지 한 두주가 지난 상태로 부패가 심했다. 자식이 셋이나 있었지만 그 어느 자식도 찾아 와 돌보지 않는 버려진 노인의 죽음이었다. 지난 해 통계로 65세 이상이 662만 명이다. 해마다 20-30만 명 씩 늘어난다. 그 중에 혼자 지내는 노인이 138만 명이다. 해마다 6만 명쯤이 늘어난다. 그 중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가운데 버려진 듯 살다가 돌아가시는 무연고 사망자가 1245명으로 보고되었다. 슬픈 사회 현실이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1813-1855)는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세상에 42년을 살다가 죽었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부모와 입 맞추고 이웃을 초청하여 두 마리의 소를 잡아 잔치를 벌이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린 후에 선지자의 길을 나서는 엘리사의 모습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교훈해 준다. 엘리사는 효자 아들이었음이 분명하다.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을 든 엘리사.
엘리사는 부농의 아들이었다. 아버지 사밧의 농사가 적지 않았다. 12겨리의 소인 24마리의 소를 앞장 세워 밭농사를 할 정도면 대 지주의 아들이었다. 그런 그가 부모와 주변 사람들과 작별을 고하고 엘리야 선지자를 따라 나섰다. 그리고 엘리야 선지자를 수종들기 시작하였다. 이는 마치도 광야 생활을 하던 모세의 곁에 늘 그 옆을 지키던 여호수아가 모세가 죽은 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는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하나님은 마무리되어가는 엘리야 선지자의 시대를 이어갈 인물로 엘리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통해서 갈멜 산의 하나님 승리를 선언 하실 당시에 그 현장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엘리사는 삼년 육 개월 만에 풍성한 비가 내린 밭을 갈고 농사하는 일에 땀을 흘리고 부지런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찾아 온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엘리사는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망설이지 않았다. 부모와 입 맞추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를 잡아 잔치 한 후에 엘리야를 따라 나서서 수종들기 시작하였다.

이는 마치도 예수께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과 같은 제자들을 갈릴리 해변에서 제자로 불러 내실 때의 장면을 연상하게 된다. 

성경은 엘리야가 나타나서 엘리사를 부른 장면을 기록하고 말았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엘리사 곁에 보내시기 이전에 이며 여러 차례 이러 저러한 방법과 사건들을 통해서 엘리사를 부르고 계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호렙 산 동굴 앞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엘리야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열왕기상 19장 16절의 내용이다.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이 말씀은 이미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엘리사에게 보내시기 전에 엘리사를 엘리야의 대를 이을 선지자 감으로 정하시고 엘리사의 마음속에 그런 부르심이 무르익어 오도록 계획하고 계셨음을 증거 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부르셔서 쓰실 때에 내면적인 부르심과 외면적인 부르심의 방법을 병행하셔서 일하신다. 이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때나 오늘 날이다 별 차이가 없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신학교 갈까 하지만 여전히 십대 청소년들과 20-30대의 청년들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준비하는 인물들이 적지 않다. 마치도 열왕기 상 19장 18절의 “칠천 명”과 같은 그런 준비되어 가는 하나님의 사람들 말이다. 
우리 교회 안에도 그런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성도들로 넘쳐 나기를 소망한다. 엘리사와 같은 효자 효녀들이 모두 다 되기를 소망한다. 

효도 받으려면 효자 효녀로 키워 내야 한다. 어려서부터, 청소년과 청년 시절에 그리고 장년 시절에 효자 효녀가 되도록 성장기를 돌보아 주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주의 교훈과 말씀으로 양육하여야 한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귀하게 여기고 순종 할 줄 아는 아들딸로 키워야 한다. 요한 웨슬리 목사의 어머니 수산나 사모는 19을 낳았다. 그 중에 3명의 아들과 7명의 딸이 살아남았다. 세 아들이 다 목사였다. 7명의 딸들은 목사 부인, 간호사, 학교 교사 등등이었다. 어려서부터 저들을 철저한 기독교 교육,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양육하였다. 그 슬하에서 자라난 아들딸들 중에서 요한 웨슬리 목사, “만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같은 찬송가의 가사를 작사한 찰스 웨슬리 목사와 같은 인물들이 자라났다. 저들 10남매가 효자효녀였다. 효자 효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키워내고 양육시켜 내는 것이다. 청년의 때에도 부모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아들딸로 살아가게 해야 한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23:22)고 했다. 

요즘 부모를 버리거나 학교의 스승을 때리고 손찌검하고 걷어차거나 하는 못된 학생들이 있다.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졌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고 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딤전5:4)고 했다. 

부모가 아무리 부족해도 부모를 무시하면 안 된다. 부모를 통해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그 자체만으로도 이 세상 그 무엇으로 다 갚을 수 없는 큰 사랑의 빚을 지고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날 낳아서 씻기고 먹이고 안고 입히고 아플까 병들까 다칠까 잘 못될까 노심초사하며 핏 덩어리를 낳아서 이만큼 장성하도록 젖을 먹이고 사랑을 입혀 키워 주셨으니 그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가. 물론 고아라도 그렇다. 부모가 일찍 돌아 가셨어도 그 누군가의 손길이 없이 자란 아기는 없다. 물론 남의 집에 맡겨져서 눈치 밥 먹고 괄시 받으며 자라났어도 지금 내 생명이 이 세상에 있는 그 자체로 부모와 이웃과 누군가에게 잘 할 이유가 충분히 된다.

엘리사는 부모를 대하는 예절, 이웃을 대하는 대인 관계 등을 볼 때에 어린 시절과 청년기에 성숙한 인격으로 부모로부터 충분한 가정교육과 신앙 훈련을 받고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그는 부모나 주변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부르심과 작별롱 인해서 슬픔이나 분노나 긴장이나 우울한 추억 등이 남지 않도록 했다. 오히려 기뿐 마음으로 그를 축복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하여 출발 할 수 있도록 축하해 주었다. 엘리사 자신이 그런 축복과 축하를 받을 만한 자리를 마련하였고 그런 사랑을 나누었다. 엘리사는 엘리야 선지자를 따라 다니며 10년 간 수종 들었다. 수종들었다는 말은 온갖 잔심부름을 다 하며 온갖 것들을 신앙적으로 배우며 살아갔다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어느 분야에나 견습 기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유명한 분들 곁에서 사사를 받는 시간이 필요하다. 엘리사의 축복은 그 당시의  여러 선지자들 중에서 다른 선지자가 아닌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엘리야의 부름을 받고 그의 곁에서 수종들 수 있는 너무나 좋은 기회를 얻고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물론 엘리사를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하여 엘리야의 곁으로 엘리사를 부르셨다. 그리고 엘리사는 나중에 자신의 스승인 엘리야를 능가하는 수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며 하나님께 쓰임 받는 시대적인 큰 인물로 쓰임 받았다. 하나님은 택하시고 부르셔서 준비하여 쓰신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들었더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준비 과정이며 하나님의 준비 방법이다. 

하나님은 노아를 불러 홍수 시대를 준비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불러 언약 시대를 열어 가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준비하셨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부르셔서 가나안 시대를 열어 가셨다. 하나님은 하나를 통하여 태어난 사무엘을 통해서 오래도록 하나님의 하시려는 일들을 이루어 가셨다. 하나님은 모압의 젊은 과부 룻을 부르셔서 보아스와 가정을 이루게 하셨고 그 4대 손으로 다윗과 같은 인물이 태어나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다윗을 부르셔서 사울의 미움과 증오를 피하며 엔게디 광야와 아둘람 동굴 속에서 십 수 년 동안을 훈련하고 연단하고 준비하게 하셔서 다윗의 시대 40년을 열어 가셨다. 하나님은 부르셔서 따를 자를 따르게 하시고 수종 들만한 자 곁에서 수종들며 배우게 하셔서 그 부르심을 완성해 가시는 주님이시다. 

일본 히브아 공원에서 밤중에 한 여성이 강도의 칼에 살해당했다. 나중에 알려진 바는 19살이었던 그녀는 그 강도의 딸이었다. 강도로 감옥을 드나들면서도 세상에 나와서도 새로워지지 않는 아버지를 위해 딸이 얼굴을 가리고 변장하고 아버지의 범행 현장에 나타나서 살해당한 것이다. 강도짓을 한 후에 피해자의 가방을 열어 보니 그 속에서는 아버지께 보내는 딸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 이제는 새 사람 되셔서 예수님 영접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사시다가 천국에서 만나세요. 아버지 불효녀를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 참담한 사건 후에 강도짓을 일삼던 아버지가 변화 되었다. 슬프고 부끄럽지만 새 사람이 되어 감옥의 형기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서 모범 시민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였다. 부모가 구원 받고 가족이 구원 받고 자식들이 구원 받고 내 주변 사람들이 구원 받는 일이 소중하다.  주 안에서 자녀를 사랑하는 가정, 하나님 안에서 부모께 효도하고 공경하는 가정의 주인공, 엘리사와 같은 사명자의 길을 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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