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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게 행하라(레27:30-34,엡5:15-21) 2016.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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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01-10 22:48 조회 19,874 댓글 0
 
지혜롭게 행하라(레27:30-34,엡5:15-21)    2016. 1. 10



해마다 1월 둘째 주일에는 청지기 주일로 지키며 십일조에 관한 설교를 해 왔다. 어느 가정의 부인이 평소에 교회 안 다니던 남편을 모시고 교회에 왔는데 그날따라 목사님의 설교가 헌금 얘기, 십일조 얘기여서 하나도 은혜를 못 받았다고 한다. 오늘의 설교에 은혜를 못 받는 분이 없으시길 바란다. 오늘을 십일조에 관한 말씀을 서두에 짧게 전하고 계속하여 묵상해 가는 에베소서의 말씀을 좀 더 자세히 묵상할 것이다.

성경에서 십일조를 가장 처음으로 드린 인물은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그돌라오멜 연합군의 군대 진영에 기습해 들어가서 조카 롯을 구출하고 돌아 왔다. 빼앗겼던 재물과 부녀와 친척들까지 모두 다 되돌려 왔다. 그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들 중에서 십분의 일을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바쳤다. 그 살렘 왕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고 했다.

또 하나는 고향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을 향해서 도망 길에 올랐던 야곱이 루스 광야에서 잠이 들었다. 그 돌베개를 베고 잠을 청하던 그 밤에 하나님께서 들판의 야곱에게 나타나셨다. 하늘이 열리고 사닥다리가 하늘에서 땅에 닿았다.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광경을 보았다. 그날 밤 하나님은 야곱에게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3-15)

그 밤에 야곱은 잠을 청하다 말고 아침이 일찍이 일어나서 베고 자던 돌맹이를 세워 놓고 기름을 그 위에 부었다. 그리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정하고 하나님 앞에 서원하였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28:20-22)

오늘 읽은 본문 중의 한 곳인 레위기 27장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때에 명령하신 십일조에 관한 명령이시다. 다 같이 읽도록 하자.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또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십일조를 무르려면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 그 우열을 가리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무르지 못하리라 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이니라.”(레27:30-34)

말라기에서는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 앞에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한 생활을 도둑질이라고 책망하신 내용을 우리는 잘 안다. 

십일조 신앙에 대한 강조의 말씀은 예수께서도 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예수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십일조 신앙이 있었다. 저들은 아주 사소한 것 즉 박하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라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렸다. 예수님은 그런 저들에게 십일조 신앙과 더불어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리지 말고 실천하는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라고 교훈하신 것이다. 

우리 예수 사랑교회의 성도들은 어른과 젊은이는 물론 어린 아이에 이르기까지 십일조 신앙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고 말라기의 교훈처럼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복을 간증하는 주인공들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에베소서 본문에 보면 지혜로운 성도의 삶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15절 말씀을 의역하면 “너희가 어떻게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인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뜻이다. 


규모 있는 시간 사용.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씀한 세월이란 단순히 흘러가는 세월을 의미하지 않는다. ‘카이로스’라는 이 시간은 특정한 시간, 사건으로 기억되는 시간을 의미한다. 누구나 하루하루 지내는 시간과 세월 중에 자기만의 특별한 시간과 특별한 날이 있지 않나. 물처럼 흘러 가 버리고 화살처럼 지나가 버리는 시간을 선용해서 시간을 유익하게 사용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말씀이다. 한 국가의 임금의 시간이나 다리 밑에서 사는 거지의 시간이나 하루 24시간의 길이는 같지만 그 시간이 그 자신에게 주어지는 의미는 다르다.  
밤을 새워 가며 우주공학을 연구하며 최첨단 과학의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의 하루 밤이나 낚시터에서 밤새 낚시 대를 드리우고 새벽을 기다리는 강태공의 하루 밤이나 시간의 길이는 같지만 그 시간이 그에게 열매로 안겨주는 결과는 다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단순히 생명이 있기에 사는 의미보다는 삶을 어떻게 경영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고 하였다. 

가령 아브라함으로 하면 175년을 이 세상에서 살던 그의 생애 중에 75살 되던 때의 어느 날 그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1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말씀이 아닌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모르고 살 때의 75년 세월과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응답하고 살아가기 시작한 후의 세월은 전혀 그 차원이 다르다. 

한나가 기도하며 아들 사무엘을 낳기를 원하였던 기도의 시간,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의 선물로 낳아 키웠던 시간, 그렇게 애지중지 키우던 아들을 어려서 실로의 성막에 보내 놓고 아들 사무엘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해 가기를 소원하며 기도하던 어머니 한나의 시간, 성막 안에서 생활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체험하던 어린 사무엘의 시간의 의미가 남다르지 않나. 이와 같은 ‘카이로스’의 시간들은 성경 역사의 중심인물로 자리 잡도록 그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셔서 섭리하신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개입하신 사건의 시간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런 면에서 부탁하였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성도의 시간 사용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 세례 요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비롯한 주의 제자들, 사도 바울과 바나바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등 저들이 살다가 간 시간과 세월의 의미가 다르지 않나. 이 땅에 복음을 전해 준 헨리 아펜셀러나 언더우드의 생애가 전해주는 시간과 세월의 의미가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성도는 하루 24시간을 기도, 말씀, 봉사, 섬김, 전도, 복음 전파를 위해서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자기 개발, 변화, 발전, 성장, 복음의 사람다운 성공적인 인생살이를 위해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94년을 산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는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는 묘비명을 미리 유언으로 해 놓았다. 그는  소설가요 평론가로 지내던 중에 69살 때에 노벨문학상(1925)도 받았다.  

인생이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 하고 요즘처럼 백년을 사는 장수 시대라고 하지만 그래도 각 사람에게 주어진 인생의 세월은 흐르는 물처럼 다 지나가고 말 것이다. 그런 세월을 어떻게 아끼며 살아가느냐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의지적인 선택이다. 우리는 매 순간 ‘현재’라는 시간을 살아가면서 그 적지 않은 세월들을 모두 다 ‘과거’라는 기억의 창고에 담아 놓고는 한다. 그 중에 많은 세월의 분량들은 기억 속에서조차 모두 다 잊어버리고 막연하게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라는 시간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2005년, 스티브 잡스(Steve Jobs,1955-2011)는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의 14분 연설 말미에서 ‘죽음’을 주제로 연설하였다. “누구도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심지어 천국을 가길 원하는 사람조차도 죽어서 그곳에 도달하길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할 최종 목적지입니다. 누구도 비켜갈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의 유일한 최고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삶을 변화시키는 대리인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들을 위해 길을 만들기 위해 오래된 것들을 치우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새로운 것은 여러분입니다. 그렇지만 현재로부터 멀지 않은 어느날 여러분은 점차 오래된 것이 되어 치워지게 될 것입니다. 너무 극적인 것 같아 미안하지만 완전한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제한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사람의 삶을 사는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결과로 살아가는 독단에 빠지지 마세요. 내면의 소리를 소멸시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허락하지 마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세요. 여러분은 이미 어느 정도 여러분이 진정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와 같은 연설 뒤에 인용해서 유명해진 영어 속담이 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라는 말이다. 의역하면 “현재의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항상 무엇인가를 갈망할 것이며, 다 배웠다고, 자만하지 말고 항상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하며 우직하게 앞을 향하여 나아가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표현은 스튀어드 브랜드이 편집한 <지구백과>(The Whole Earth Catalog)라는 두꺼운 백과사전의 뒷면에 쓰여 있던 영어 권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속담이다.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을 아껴 살아가야 한다. 왜 세월을 아끼라는 것인가. “때가 악하니라.”고 하였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악한 세상에서 그 악을 거슬러서 선한 일을 위하여 시간을 사용할 줄 안다. 세상에는 세상을 악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없지 않다.

멕시코 '마약왕'이란 별명을 가진 호아킨 구스만(57)이 교도소에서 땅굴을 뚫고 탈옥한 지 6개월 만인 올 1월 8일에 고향인 멕시코 북서부 시날로아 주의 로스모치스에서 생포됐다. 2001년 처음 탈옥했을 때는 13년 동안이나 도주 행각을 벌이다가 붙잡힌 그가 다시 감옥에 갇혔다. 그런데 구스만은 수감된 지 17개월 만인 지난해 7월에 자신의 독방에 연결된 직경 50cm의 구멍을 지하 10m 깊이, 길이 1.5km 땅굴을 파고 다시 도망쳤다. 그리고 다시 여섯 달 만에 붙잡혔다. 구스만에게 현상금 500만 달러(약 60억원), 멕시코 연방검찰은 380만 달러(약 45억6천만원)를 각각 내걸었다. 멕시코 군경은 1만여 명이 넘는 인력을 검거 작전에 동원했다. 구스만의 탈옥을 도운 핵심 인물 6명을 포함해 모두 34명을 체포했다. 세상에는 이렇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한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주의 뜻을 분별하기.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을 어리석게 살면 안 된다. 지혜롭게 살아 갈 줄 알아야 한다. 헛똑똑이로 살면 안 된다. 지혜 없는 자 같이 살면 안 된다. 그 중의 하나가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하였다. 

사무엘 하 7장에 보면 나단과 다윗의 대화 장면이 소개 된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하고 싶어 하였다. 그 낮의 대화를 하나님도 들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 밤에 나단 선지자에게 다윗 왕과 그 후손의 장래를 축복하는 말씀을 해 주셨고 다음 날 낮에 나단 선지자는 그 모든 내용들을 그대로 다윗 왕에게 전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7:15) 하나님이 언약하시는 축복의 말씀을 전해들은 후에 감격한 다윗은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삼하7:21)라고 응답하였다. 그 후로 다윗의 늘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삶을 살아가다 보니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삼하8:14)는 정도의 축복을 누리기 시작하였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사건에 휘말리고 말았다. 그것이 사무엘 하 11장에 나오는 부하 장수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그의 남편을 전쟁의 최전선에 보내서 죽게 하는 사건이다. 사무엘 하 11장의 끝 부분은 이렇다.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삼하11:2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하였다. 다윗의 주의 뜻을 벗어나니까 금방 어리석게 행동하고 범죄하지 않았나. 이런 모습은 지혜의 왕으로 출발했던 다윗의 아들 솔로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어리석은 자로 행동하고 주의 뜻을 벗어나니까 이스라엘 나라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두 동강 나지 않았나. 다윗의 손자요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남 왕국 유다의 왕이 되었다. 르호보암의 아버지 왕 솔로몬이 60살에 죽었다. 40년 동안 왕이었던 솔로몬이 60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다. 나라는 남북으로 나뉘었다. 르호보암이 41살에 왕이 되어 17년을 통치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암몬 사람 나아마였다. 르호보암은 할아버지 다윗의 믿음이 없었다. 그는 암몬 여자인 어머니 나아마의 품 안에서 자라났다. 르호보암의 시대에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그의 조 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 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다.” 산 위에와 푸른 나무 아래에 마다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다. 그 땅에 남색하난 자가 있었다. 여호와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땅에서 쫓아내신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고 본 받아 행하였다” 르호보암 통치 5년 되던 해에 애굽의 왕 시삭이 예루살렘에 쳐들어 왔다. 애굽의 군대는 여호와의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과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들을 모두 다 빼앗아 갔다. 남북 왕국 사이에도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계속하여 항상 전쟁이 계속되었다.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가던 솔로몬의 말년과 그의 아들 르호보암 왕의 통치 기간 내내 어려움이 점점 심각해져만 갔다. 주의 뜻을 벗어나면 받았던 축복도 사라지고 만다.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이 만날 때에 축복의 역사가 전개되는 법이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 기도를 드렸자. 그 내용이 열왕기 상 8장에 나온다. 그 중에는 “설령 적국에 붙잡혀 간다고 할지라도 그 잡혀 간 땅에서라도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 와서’ 성전을 향하여 회개하는 기도를 드린다면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아 주세요.’ ”라고 기도하였다. 
그렇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항상 주의 뜻을 이해하려고 주께 마음과 생각을 집중하는 삶의 모습을 말한다. 다윗은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시143:10)라고 기도하였다. 

예수께서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주의 뜻을 묻고 그 대답을 찾는 생활이다. 아브라함이 기근을 만났을 때에 아내 사라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 간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말한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였다면 애굽에 내려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묻는 그런 묵상 생활과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당시 그런 상황에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리브가나 야곱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삶을 살아갔다면 남편 이삭 속이고 아버지 이삭 속일 수 있었겠나. 리브가가 야곱을 변장 시켜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아버지 침소에 축복 기도를 받게 들여보낼 때에 그 장면에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고민한 모습이 보이나. 

야곱의 아들들 10명이서 배 다른 동생 요셉을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장사꾼들에게 팔아 버릴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 했다면 그런 짓을 했겠나.

광야 행진을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을 거치고 가데스에 도착하였다. 거기서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죽어 거기 장사하였다. 마실 물이 없자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 곁에 몰려 들었다. 백성들의 불평이 쏟아졌다. “파종할 땅이나 무화과나 포도나 석류는 고사하고 마실 물도 없다”고 원망하였다. 다급해진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떠나서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렸다.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다. 여호와께서 그 때에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미민20:8)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하였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손에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모세가 말했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그리고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많이 솟아 나왔다. 회중과 짐승이 풍성하게 마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날의 그 사건을 심각하게 다루셨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앞에 자기 만용을 드러내려 하고 자기 혈기를 부렸던 모세에게 준엄하게 경고하셨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20:12) 그날 그 때에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는 겸허함이 없었다. 

모세의 형 아론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나날을 살았다면 백성들의 요구를 듣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절하는 그런 잘못을 범하였겠나. 

사도행전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주의 뜻을 이해하려는 분별력 있는 믿음이 있었는가. 저들 부부가 주의 뜻을 찾으며 살아갔다면 땅을 팔아 그 절반의 재산을 하나님께 바치려 했던 저들인데 부부 모두의 운명을 죽음으로 몰고 가기야 했겠는가.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는 삶을 살려면 사도 바울과 같은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내 시간 사용, 내 재물 사용, 내 헌금 생활, 내 취미 생활, 나의 앉고 서는 자리, 나의 가고 오는 자리, 내 일거수일투족의 그 모든 면에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는 섬세함”이 반드시 있어야 만 한다. 

사도행전 27장에는 로마를 향하여 호송 되어 가는 죄수 신분의 사도 바울과 그의 배 안에 탄 일행 276명이 유라굴라 광풍을 만나 죽을 고생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2주 만에 겨우 안정을 찾았다. 그 때 하나님은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셨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행27:24) 그냥 어떻게 하다 보니까 날씨가 안정되어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을 장차 가이사 앞에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셨다. 하나님께서 그 배에 탄 276명을 사도 바울과 함께 한 사람의 목숨도 잃지 않게 하셔서 구원하시려는 뜻이 먼저 계셨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라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매순간을 살아가야만 한다.  


성령 충만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이 말씀을 한 마디로 하면 성령 충만한 삶을 살라는 권면이다. 성령 충만해야 술도 끊게 된다. 성령 충만하면 그 입에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가 샘물처럼 넘쳐 나게 된다. 성령 충만하면 성도들 간에 서로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게 된다. 성령 충만하면 입으로 노래하지 않고 마음으로 주께 노래고 찬송하게 된다. 19절에 보라.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하지 않았나. 성령 충만하면 범사에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성령 충만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기에 서로 복종하는 신앙생활을 성숙되게 하게 된다. 

성령 충만하면 그 생각이 달라진다.
성령 충만 하면 그 입의 말과 노래와 찬송이 달라진다.
성령 충만하면 출입하는 곳도 달라진다.
성령 충만하면 즐겨 앉는 자리도 달라진다.
성령 충만하면 시간 사용의 우선순위도 달라진다.
성령 충만하면 예배드리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 성도 간에 교제하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성령 충만하면 헌신, 봉사, 충성이 달라진다.
성령 충만하면 재물 사용의 우선순위도 달라진다.
성령 충만해 지고 나면 헌금 생활도 달라지고 매달, 매주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봉헌 신앙도 그 차원이 달라진다. 
성령 충만하면 열의 하나가 아니라 열의 셋, 열의 다섯, 전부라도 하나님께 드리고, 내 몸이라도 불살라 드리고 싶은 열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성령 충만하며 누군가에게 자꾸만 주의 복음을 전하고 싶어진다. 
성령 충만하면 모든 삶이 감사 생활이 된다. 
성령 충만하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감사와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삶을 성숙하게 열매 맺으며 살게 된다.
성령 충만하면 그야말로 날마다 신이 나고, 날마다 살맛나고, 날마다 좋고, 날마다 기쁘게 천국 생활을 하게 된다. 
성령 충만하면 환난이 와도 핍박이 와도 역경이 와도 불행이 와도 넉넉히 이기고 소화하며 용감하게 살아간다. 
다윗처럼 성령 충만해지면 사울 왕과 다윗을 죽이려고 사울이 보낸 3,000명의 자객이라도 두렵지 않게 된다. 
성령 충만하면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담대해 진다. 
성령 충만하면 850명의 바알, 아세라 우상 숭배자들의 눈길이 전혀 두렵지 않아진다. 성령 충만해지면 아합과 이세벨과 같은 권력자의 대적도 두려워지지 않게 된다.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께 마음을 고정하고 기도하여 갈멜 산의 불의 응답 같은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성령 충만한 나날을 살아가자. 주께서 반드시 축복해 주실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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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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