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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내게로 오라(마2:1-12, 계22:12-21) 2014.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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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관리자
작성일 14-12-09 17:52 조회 21,049 댓글 0
 

                  
대강절 첫째 주일


대강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일 이전의 4주간을 말한다. 과거에는 장림절(將臨節)이라고 하였고, 지금은 대림절, 강림절이란 용어를 혼용하고 있다. 이 절기가 되면 교회와 성도들의 가정은 푸른 전나무 이파리를 엮어 만든 둥근  바탕 위에 4개의 대림초를 마련한다. 지금은 진 보라색, 연 보라색, 분홍색, 흰색을 쓰고 있지만 예전에는 붉은색 2개, 황색 1개, 흰색 1개였다. 붉은 색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을 상징한다. 황색은 영혼과 육신의 생명력을 뜻하고 흰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영광을 의미하였다. 대림초는 구세주가 어느 정도 가까이 오셨는지 그 절기를 알려준다.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모습처럼 깨어 신랑을 맞을 준비를 갖추기 위해 매 주마다 초 하나씩을 더 켜 간다. 제단의 제의 보의 색을 보라색으로 하는 것은 속죄(贖罪), 회개(悔改)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는 구세주 탄생이 임박해 오는 것에 대한 준비와 기쁨과 소망과 사랑과 환희를 표현하는 것이다. 대림환을 둥글게 만드는 것은 처음이며 마지막이시고 시작과 끝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변함이 없으신 영원성을 상징한다. 푸른 전나무로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리시는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새로운 생명을 뜻한다. 그 사이에 붉은 열매를 섞는 것은 보혈의 은총을 기념하는 것이며 희망과 살아 있는 생명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4개의 초를 사용하는 것은 동서남북 즉 온 세상을 두루 비추시는 예수님의 구원의 빛을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만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에 구원 받아야 하는 죄인들인 천하 만민을 위해서 오셨다. 대림환에는 매 주일 하나씩 새 촛불을 더 불 붙인다. 이는 차츰 점점 더 밝아지는 세상을 의미하며 주님이 오셔서 세상의 빛이 되시고 우리의 마음을 죄의 어둠에서 해방시키시고 진리의 빛으로 채워주시는 것을 상징한다. 초의 색깔이 차츰 밝은 색으로 바뀌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님으로 가까이 오고 계신 것과 주님이 세상의 완전한 빛이시라는 것을 교훈한다. 또한 주님이 우리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령은 인간을 하나님께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고, 예수님께로 가까이 가게 하지만 사탄은 자꾸만 인간을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한다. 사탄인 뱀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를 그 아름다운 축복의 동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결국은 타락한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와 사탄의 결박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자유하게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절기가 성탄절이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대강절은 아기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구세주로 오시기를 기다리는 신앙의 회복을 위한 절기이다.
지난 40여 일 동안 새벽마다 묵상한 말씀의 마지막 분량이 마침 오늘 분량이다. 본문인 요한 계시록 22장 17절에 보면, “오라, 듣는 자도 오라, 목마른 자도 오라, 원하는 자는 와서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게 된다. 이천년 전에 베들레헴 마구간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죄에 빠진 인간을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도록 ‘오라’고 부르시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이시다.

이천년 전 동방의 박사들이 이상한 별의 움직임을 발견하고 그 별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루살렘에 가서 헤롯을 만난다. 그리고 베들레헴에까지 찾아가서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아기 예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드리고 경배한 후에 제 나라로 돌아갔다.  저들의 그 멀고 먼 길을 이동해서 메시아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 경배한 것은 언제나 ‘오라’고 초청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을 가슴에 간직하고 떠났던 멀고 먼 신앙의 순례길인 것이다.

이 땅에 다녀가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이기고 부활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마하고 약속해 주셨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에서 이 땅에 계실 때에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요14:1-4)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는 말씀으로 분명히 ‘다시 오시리라’는 약속을 해 주셨다.

우리나라는 집권 정당뿐만 아니라 야당인 새정치 민주연합 측에서도 신혼부부를 위한 임대 아파트 지어주기를 공약으로 내 걸고 있다. 사실 지방의 젊은이들이 수도권에서 직장을 마련하고 내 집을 마련하여 가정을 꾸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부모가 재력이 있어서 적지 않게 도움을 주면 모를까 스스로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하루 이틀의 노력으로 해결 될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집이 선물로 주어진다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예수님은 천국을 건설하고 나면 우리를 데리러 오시겠다고 하셨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여건의 경제력을 갖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지 예수님은 성도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꿈처럼 소개하여 주셨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사도 요한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 대할 수 있는 온갖 보석을 총 동원하여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성 전체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다. 성곽의 12개의 기초석은 이 땅에서 대할 수 있는 온갖 보화로 되어 있다. 그 보석들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루비나 사파이어를 비롯하여 좋다는 보석은 총 동원 되었다. 12개의 문들은 전체가 진주로 되어 있다. 새 예루살렘의 성은 길이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다. 성전은 보이지 않는데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곧 성전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는 성도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셔서 죄와 악을 멀리하고 참되시고 진실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삶을 살기를 기대하신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보내 주신 것은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예수님 덕분에 백화점의 매출을 올리라고 오신 것도 아니고 호텔의 관광 수입을 올리고 이스라엘 나라와 베들레헴을 찾아가는 관광객들로 인해서  베들레헴 주민들에게 관광의 호황을 누리라고 오신 것도 아니다. ‘내게로 오라’는 주님의 초청의 의미는 무엇인가.


유대인의 왕에게로 오라.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실 뿐만 아니라 주님을 왕으로 영접하고 따르는 구원 받은 모든 성도들의 왕이시다. 전하여 지는 바에 의하면 동방 박사들은 동방의 어느 나라에서 이 땅에 왕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께 경배하기 위하여 그를 찾아 간 동방의 왕들이라고 한다. 왕들이 예수께 경배하러 간 것이다. 과거에 다윗의 왕국이 강성하였을 때에 주변 왕국의 왕들이 다윗에게 조공을 바치고 다윗에게 찾아가서 그를 높였다.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삼하8:6), “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삼하8:14) 솔로몬 때에도 주변 나라의 왕들이 솔로몬에게 금과 은과 보석과 각양 좋은 것들을 조공으로 바치면서 솔로몬을 만나 그의 지혜를 배우려고 찾아 나섰다. 열왕기 상 9장과 10장에 보면, 두로 왕 히람은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 120달란트를 솔로몬 왕에게 조공으로 바쳤다. 120달란트면 4톤 정도의 금이니 상상을 해 보라. 스바의 여왕도 금 120달란트와 많은 향품과 보석을 솔로몬 왕에게 조공으로 바쳤다. 솔로몬 임금은 그 조공으로 받은 것들 중에서 백단목을 갖고 성정과 왕궁의 난간을 만들고 노래하는 자들을 위하여 수금과 비파를 만들었다.
세상의 왕들은 이웃 나라의 왕들로부터 조공을 받는 것으로 힘을 과시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시며 공의의 왕이시고 사랑과 인애와 자비와 긍휼과 치유와 회복의 왕이시다. 한 아기로 오신 왕이신 예수님은 이사야 9장 6절의 예언을 성취하신 왕이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 말씀 가운데 보면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평강의 왕’(Prince of Peace)이시라고 하였다.  그렇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인생들에게는 이 세상의 그 어느 누구라도 누릴 수 없는 놀라운 은혜와 평강이 그 마음속에 생명수 강수로 넘쳐흐르게 된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가정에는 평화와 행복과 사랑이 넘쳐흐르게 된다. 내가 나를 주장하면 욕망의 지배를 받고 불행해 진다. 그러나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민족과 문화는 이 땅에서도복을 받고 번성하고 창대해 진다. 요한복음 7장 38절에 보면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하셨다. 요한 계시록 22장 1절부터 보면, 구원 받은 성도들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와 어린 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 강가의 생명나무의 축복을 누리리라고 하셨다. 이는 창세기 3장 22절에서 말씀하신 ‘생명나무’의 축복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자들은 영생의 축복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 그 생명나무의 열매는 열두 가지의 열매가 매달마다 열두 달 풍성하게 맺힌다고 하셨다. 그 생명나무의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 두루마리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불의하고 더러운 것을 멀리하고 의롭고 거룩한 자의 삶을 살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간다는 것을 내 일상생활 중에서 주님의 뜻과 기대에서 벗어나지 않고 주님의 다스림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월가의 한 투자 회사에 다니는 형제가 있었다. 그는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이요 왕으로 모시고 신실한 크리스천의 삶을 살고자 하였지만 회사에서 크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술자리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절대로 술을 마시지는 않았다. 동료들의 음담패설에도 끼어들지 않았다. 술과 세상으로 사는 주변 동료들을 나무라거나 그들과의 직장 내의 교제를 끊거나 하지도 않았다. 항상 주변 사람들에 대하여 겸손하고 친절하게 대하였다. 기회가 되면 신앙 상담의 기회를 갖기도 하였고 결정적인 순간이 기독교인의 면모를 잘 지켜 나갔다.  그의 회사와 그의 파트에 미국에서 꽤나 잘 나가는 잡지사로부터 투자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 투자 요청을 거부하였고 자신에게 돌아 올 20만 불의 투자 수수료도 포기하였다. 그리고 회사의 대표에서 당당하게 설명하였다. “물론 우리 회사가 그 회사에 거액의 사업 자금을 투자하면 그 회사는 지금보다 더 많은 포르노 잡지를 찍어 낼 것입니다. 더 많은 성인물 동영상을 제작하여 공급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회사는 돈을 더 벌겠지만 이 도시와 이 나라의 십대의 성 문화는 점점 더 타락할 것이고 성 범죄는 더 증가하고 가정들은 점점 더 금가고 무너져갈 것입니다. 저를 믿어 주신다며 이보다 훨씬 건전하고 능력 있는 회사들에게 사업 자금의 투자 기회를 유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젊고 패기가 있는 이 기독교 젊은이의 보고를 들은 그 회사의 대표는 그의 당당한 자세를 눈 여겨 보았다. 세월이 지나자 그 젊은이는 따로 새로운 투자 회사를 창업하였고 하나님은 그에게 놀랍도록 복을 쏟아 부어 주셨다. 이는 생명의 삶 11월 호에 실린 묵상 에세이의 내용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삶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인생의 나중은 점점 복되게 되어 있다.


그리스도께로 오라.
어린 양이신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라는 뜻은 메시아란 말이다. 구약 성경은 히브리말로 쓰였는데 그 히브리어로 ‘메시아’가 신약성경이 쓰인 헬라말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리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란 말은 예수님이 왕이실 뿐만 아니라 제사장이시며 선지자이시란 말이다. 헤롯 왕을 만난 동방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그러나 헤롯 왕은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 모아 놓고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다. 하나님은 헤롯 왕을 통하여 오히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만방에 공포하게 하셨다. 이는 역사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시다. 그렇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왕 중의 왕이시며 제사장들 중의 대 제사장이시며 선지자 중의 선지자로 오신 그리스도이시다. 마태복음 5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고 왔다.”고 하셨다. 그렇다. 예수님은 구약의 말씀인 모세의 율법과 선지서의 완성을 위하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히브리서 9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신” 중보자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에 구원의 능력이 있으신 것이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4)는 말씀이 깨달아 지고 믿어지는 신앙으로 살아가야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 22장에 보면 새 예루살렘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을 거론하고 있다. “개들과 점성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계2:15) 그러면 누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인 천국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요한계시록 21장 7절에 보면, “이기는 자는 이것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된 우리들로 하여금 죄와 사망을 이기게 하신다. 아니,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각 사람이 영원한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붙들어 주시는 주님이시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지막 하신 말씀이신 “다 이루었다”는 말씀과 함께 완전하고 영원한 승리를 선언해 주셨다. 그렇게 죽으시고 다시 사신 부활의 주님은 “평안이 있을지어다”하고 평안을 선포하여 주셨다. 그리고 주님의 곁을 떠나가서 갈릴리에서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으려 하던 제자 베드로에게 찾아가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반복하여 물으셨다. 그리고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분부해 주셨다.

여기에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고 섬기는 성도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한 은혜가 생명수 강물로 흘러넘치게 되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 22장 12절에 보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시고 살아가면 상이 있다. 14절에 보면, 복이 있다고 하셨다. 거기에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란 말씀의 두루마리는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성도들의 예복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이 옷을 세상 생활 중에 더럽힐 수 있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답게 행하고 옳은 행실을 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날마다 회개하고 순간마다 죄를 뉘우치고 죄와 악을 멀리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옷인 두리마기를 항상 빠는 일에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함께 잡수시던 그 날 밤에 겉옷을 벗으시고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 주셨다. 그 때 베드로가 주님께 발과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 때 예수께서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고 대답하셨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날마다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실 속의 크고 작은 죄들을 물로 씻듯이 회개하는 삶을 살아가야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자녀의 삶을 살 되 자기 두루미기를 날마다 순간마다 빠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이처럼 죄에 대하여 예민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이 무엇인가. 그들은 생명나무에 나아가고, 열린 저 천성 문 안에 들어가는 권세를 받게 하신다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주께로 가길 원하는 자들은 값없이 생수를 받게 되리라고 약속해 주셨다.

한때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법률 고문이며 특별보좌관으로서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던 챨스 콜슨(Charles Colson, 1931-2012)박사가 워터게이트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7개월간 앨라배마 교도수에 투옥되었다. 그가 출옥 후 간증하기를 "4년 동안 매일 아침 백악관에서 대통령 중심으로 12명의 참모들이 모여 세계를 요리한다는 자부심에서 열띤 회의를 가졌으나 돌이켜 보면 세계는 변함이 없었다. 내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듭났다는 사실보다 지금 내게 더 중요한 사건은 없다."고 말했다. 어떤 정책이나 철학, 힘도 인간을 변화시킬 수 없으나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만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많은 보수의 유혹도 뿌리치고 오직 감옥 전도에 남은 전 생애를 바치기를 원했고 그런 삶을 살다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갔다. 그는 재소자들을 전도하는 선교회인 <교도소선교회>(Prison Fellowship Ministries, PFM)의 창설자이기도 하다. 브라운 대학 출신의 변호사로서 종교에 관심이 없었던 찰스 콜슨은 교도소에서 크리스천 기업인인 친구 탐 필립스의 전도를 받고 변화를 받는다. 탐 필립스는 C. S. 루이스의 <단순한 기독교>라는 책에서 한 문구를 그에게 읽어주었는데 그것이 그에게 회심의 기회가 되게 하였다. 출옥 후 찰스 콜슨은 교도소 사역을 시작하였는데 오늘 날은 미국 내의 연방 교도소뿐만 아니라 세계 115개 국가에서 사역하는 교도소 선교 단체로 발전하였다. 자신이 겪었던 아픈 과거와 상처가 누군가의 삶이 회복되도록 돕는 영광스런 별이 되게 한 것이다. 그는 <거듭남>(Born Again)이란 책을 비롯하여 20여권의  기독교 서적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 매거진 ‘브레이크 포인트’의 주필로 활약했다. 브레이크 포인트는 주 800만 청취자에게 배포되어 왔다. 남침례교인이었던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독교 잡지인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의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였다. 그는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일컫는 템플턴상도 받았다. 상금으로 받은 100만 불의 상금도 모두 교도소 선교에 쏟아 부었다. 그에게 그런 영광스러운 상이 주어지자 언론은 “오늘 날 가정 건강한 사상적 영향가이고 기독교 저술가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강력한 전도자이고 가난하고 억눌리고 갇힌 자의 따뜻한 이웃인 그가 새로운 이웃이 되어 우리 곁에 돌아 왔다”고 그를 높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어떤 언론은 “닉슨 정부의 워터게이트의 주범, 세상을 떠나다”라는 혹평하는 기사를 더러 실었다. 그러나 대개의 언론들은 “세계적인 교도소 선교의 거장, 하나님의 품에 안기다.”라고 대서특필하였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면 요한 계시록 22장 12절과 14절의 말씀처럼 상도 주시고 복도 주신다. 대강절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살아가면 그 나중이 영원히 복되게 되어 있다.

주의 백성을 다스리는 목자에게로 오라.
예수님은 양의 목자이시다. 양은 목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예수님은 구약, 미가서 5장 2절의 예언처럼 ‘다스릴 자’로 오신 우리의 목자이시다. 목자이신 예수님께는 여호와의 능력이 있으시다. 예수님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목축하신다. 목자이신 예수님의 양떼는 맹수로부터 안전하게 보호 받을 수 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이끄시는 양은 털이 기름지고 젖이 풍성하다. 요한복음 10장 11절 말씀처럼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선한 목자는 양의 음성을 알고 선한 목자의 양들은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 또한 안다.

어려서부터 목자의 성장기를 보냈던 다윗은 나중에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도 그의 목자는 여호와 하나님 뿐이셨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는 고백은 얼마나 겸손하고 진실한 고백인가.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목잔이셔야 한다. 그래야 그 인생이 순탄하고 복되게 된다. 삯꾼은 이리가 오면 양떼를 버리고 도망가 버리지만 선한 목자는 양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선한 목자는 양떼를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한다. 예수님은 자기의 백성을 먹이고 이끌고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이시다. 예수님은 이 땅에 목자로 보냄을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두 차례 선교 목적으로 방문하였던 몽골의 들판에서 보았던 양떼와 양을 치는 목자의 풍경은 언제나 성경의 이런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목자가 없는 양을 상상해 보라. 맹수의 공격과 추위와 더위로부터 양을 보호하는 것은 목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양이 좋은 주인을 목자로 만나는 것처럼 귀한 축복은 없다.

목자이신 예수님은 언제나 양떼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나의 인생의 목자 삼고 그 분의 눈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분의 지팡이와 막대기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복이 임하게 된다. 개인, 가정, 직장, 일터, 사회생활과 교회 생활의 범사가 다 그러하다.

이 세상에서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인생의 목자로 모시고 그 분을 따르며 그 분의 인도하심 가운데 자신의 삶을 맡겨 드리고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자에게 선물처럼 주어지는 나중 은총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축복이며 새 예루살렘 성에 그 문으로 들어가는 권세를 누리는 축복인 것이다.

버질 브록(Virgil T. Brock, 1887-1978) 목사는 1914년 인디애나주의 그린포크(Greens Fork)에서 목회할 때, 선교팀에서 함께 일하는 작곡자요 피아니스트인 블랑슈 커(Blanche Kerr, 1888-1958)를 만나 결혼하였다. 그는 쾌활하고 붙임성이 좋아 많은 사람들을 편하게 하였다. 그는 91세까지 살면서 500여 곡을 작곡하였는데, 늙어서도 밝고 맑은 목소리로 찬양을 인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해지는 저편”은 그의 대표작인 찬송이다. 이 찬송가가 탄생한 이야기는 너무나 은혜롭다.
 
저들 부부는 미국 오하이오를 중심으로 “노래하는 부록 부부”라는 이름으로 불려 지며 사역하던 찬양사역자였다. 1936년 인디애나주의 위노나 호반(Winona Lake)에서 집회를 마치고, 호수 근처에 있는 로드히버(Rodeheaver) 사장의 집에 초대를 받아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버질 브록 목사의 책의 출판을 후원해주는 사업가였다. 그는 아내와 맹인인 4촌 형 호레이스 버(Horace Burr)와, 그의 아내 그레이스(Grace)와 함께 석양을 바라보며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넓은 호수는 황금빛이 되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런데 얼마 후에 먹구름이 뭉게뭉게 몰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앞을 보지 못하는 4촌 형이 “우와! 정말 아름다운 석양이야! 이렇게 아름다운 석양은 처음 보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때에 버질 브록 목사는 “아니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그렇게 감탄을 하세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앞을 보지 못하는 호레이스 버는“나는 영의 눈으로 본다네. 나는‘석양의 저 너머’(Beyond the Sunset), 죽음의 세계까지 볼 수가 있거든.” 그 순간 버질 브록 목사는‘석양의 저 너머’(Beyond the Sunset)이란 말에 순간적으로 영감을 받았다. 즉석에서 그런 내용의 찬송시를 썼다.

 
Beyond the Sunset, O blissful morning.       해 지는 저편 새 하늘에는
When with our Saviour Heaven's begun.      우리 주 예수 계시오니
Earth's toiling ended, O glorious dawning    고난은 가고 찬란한 새벽
Beyond the sunset when day is done!           영광의 날이 밝으리라
 
아내가 즉석에서 곡을 붙여서 피아노로 반주를 하였다. 이 노래는 나중에 아내가 수정하여 발표한 것이다. 우리 찬송 238장의 “해 지는 저편”이란 찬송이 탄생하던 저녁이었다. 앞 못 보던 호레이스 씨가 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다 보면 감격해하고 감사하며 살았듯이 성도된 우리들은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의 영원한 나라 백성들로 성도들을 초청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오라’는 주님의 초청에 응답하는 나날을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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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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