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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고침 받은 나아만(왕하5:15-19) 201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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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08-15 22:01 조회 18,981 댓글 0
 
고침 받은 나아만(왕하5:15-19)            2016. 8. 14


중국 북서부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 선교하는 선교사 들이 모이는 중앙아시아 선교사 대회에 참석하고 돌아 왔다. 저들을 섬기고 사귀고 선교의 현장 사역 현황을 듣고 기도 제목을 함께 나누며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교제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갖고 돌아 왔다. 우루무치에서 나흘 간 함께 시간을 가졌다. 우루무치는 중국 최서북단에 위치한 위그르 족의 자치구이다. 중국에 속해 있지만 거의 다 이슬람계 인구가 사는 곳이다. 주변국인 거대한 카자흐스탄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의 나라와 위구르 족 중심의 선교 영역을 중앙아시아 선교 지역으로 구분한다. 99% 이슬람 지역이다. 

선교가 자유롭지 못하고 제약이 극심한 지역이다. 그런 환경에서도 위험을 무릎 쓰고 선교하는 선교사들의 열정과 전략과 선교 협력의 의지에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오랜 기간 선교 현장에서 병약해진 이들도 여러 명 만났다. 특히 사모님들이 여러 분 허약해 진 모습을 보았다. 카족 족 유목민 선교를 15년째 하는 한 선교사는 너무 자주 양고기와 양 기름을 대접 받다 보니까 통풍에 걸려서 고생하고 있었다. 직접 선교의 벽을 극복하기 위해서 비즈니스 비자를 받고 체류하면서 마켓, 식당, 컨설팅 회사, 제과점, 유치원 사역 등의 접촉점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생생한 간증을 들을 수 있었다. 타지키스탄의 선교사 부부는 그 동안 11곳의 유치원을 세웠고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유치원 관련 기자재를 7컨테이너로 실어 날랐다고 한다. 이제는 유치원 교사도 많이 양성해 내었다고 보고하였다. 대통령이 나서서 유치원 교육에 관심을 보인다고 하였다. 

우리 일행은 참석한 여러 나라의 선교사 부부와 자녀들과 함께 시간마다 예배를 드리고, 선교 현장을 이곳저곳 방문하며 기도할 기회를 가졌다. 마지막 날 오후에는 몽골 사람들의 게르와 같은 전통 초원 가옥에서 폐회 예배를 드렸다. 나라별로 선교사 부부에게 한국에서 방문한 네 명의 목회자들이 일일이 안수하고 간절히 성령의 임재를 기원하였다. 다시 저들의 사역지를 향하여 재 파송하며 기도하는 감격스럽고 은혜로운 시간도 가졌다. 남의 나라에 가서 남의 나라 언어를 습득하고 그들의 언어로 저들 곁에 다가가서 복음을 전하는 그런 열정을 가지면 내 나라 안에서 내 말을 갖고 이룩하지 못할 선교 열매가 무엇이 있겠는가. 

중국의 기독교 선교 역사로는 허드슨 테일러(J.Hudson Taylor, 1832-1905)를 중심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둘째 날 중국 선교 초기 기독교인들과 순교자들의 묘지를 방문할 시간도 가졌다. 우리나라 개신교 선교를 이야기 할 때에 감리교의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와 장로교의 언더우드 선교사를 언급하는 것처럼 말이다. 허드슨 테일러는 영국에서 태어났다. 중국 내지 선교회(CIM)은 오늘 날 OMF선교회로 150년 이어오고 있다. 그 4대 손자가 여전히 중국 선교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바도 있다. 허드슨 테일러는 다섯 살 때 이미 동생들을 곁에 앉혀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는 하였다. “나는 어른이 되면 중국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것이다.”고 말하고는 했다. 그런 그를 그의 부모들은 신앙으로 정성스럽게 키웠다. 학교에 가서도 책상 앞에 앉아서 손을 모으고 기도드릴 때가 많았다. 친구들은 그런 그를 몹시 놀려 대고는 하였다. 결국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15살 때부터 은행에 다녔다. 돈을 벌어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그런 그에게 시력이 점점 약해지는 어려움이 찾아 왔다. 그와 부모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드렸고 회복의 은혜를 입었다. 주님의 구원의 은총을 깨닫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기로 작정하였다. 그가 17살 때의 일이다. 선교, 언어, 의술을 익히며 선교를 준비한 그는 22살 때에 5달의 항해 끝에 상해에 도착하였다. 1850년대의 중국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그는 조금만 잠자고 헐하게 먹고 형편없는 옷을 누더기로 입고 지내며 선교에 매진하였다. 그런 여건에서도 성경을 번역해서 보급하고 기독교 신앙 서적을 보급하는 데 앞장섰다. 나중에 그를 통해 세워진 중국 내지 선교회를 통해 중국 선교에 헌신한 선교사들의 수가 1,000명을 넘어섰다.  그의 선교 열정은 미국과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호주, 뉴질랜드 등에 중국내지선교회 지부가 설립되며 열방으로 번져 나갔다. 허드슨 테일러는 말년에 선교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한 지방에 이르자 성문 위에서 금빛으로 “내륙의 은인”이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진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는 호남성에서 73살의 나이로 열정적인 전도자의 일생을 마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갔다. 

며칠간 머물렀던 도시인 우루무치(Wulumuchi,烏魯木齊)는 몽골어로 '좋은 목초지, 아름다운 목장'이란 뜻으로 신장(新疆)자치구의 주도이다. 광야 지역에 만년설이 녹아 내려 흐르는 물줄기를 중심으로 오아시스가 생겨나고 그런 환경에 발전한 도시이다. 중국은 23개의 성과 5곳의 자치구와 4곳의 직할도시와 2곳의 특별행정구로 구분된다. 홍콩과 마카오가 그 2 곳의 특별행정구이다. 당나라의 지배를 받다가 8세기 위구르족의 지배에 들어갔다가 18세기 청나라가 중국 북서부를 방어하는 중요한 요새가 되었다. 1884년 신장이 성이 되면서 성도가 되었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교역 중심지로 급성장했다. 청대 말기에 영국과 러시아가 신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면서 우루무치의 전략적 중요성과 국제적 의미가 높아졌다. 1949년 이래 우루무치는 신장의 행정수도이자 문화중심지로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주요공업기지로 발전했다. 1955년 커라마이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어 1958-1959년부터 생산에 들어갔고 이후 중국의 주요 석유와 가스 생산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일조권이 좋아서 포도, 복숭아와 같은 당도가 높은 극상품의 과일이 풍성하게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 날도 카작 족과 같은 유목민들의 생활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이 땅의 어느 지역, 어느 민족에게든지 모두 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죄 사함과 영생의 축복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위한 선교는 주님 오시는 날까지 계속되어야만 할 것이다. 

열왕기 하의 엘리사 시대에 있었던 말씀을 계속하여 묵상하도록 하자. 화를 내며 분노하며 자기 나라로 되돌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아람 나라 군대 장관 나아만이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수행했던 종들이 강권하는 말을 받아 들였다. 요단 강 물에 가서 나병에 걸린 몸을 일곱 번 담그면 나을 것이라는 엘리사 선지자를 통한 명령에 순종하였다. 그리고 그의 몸이 어린 아이의 피부처럼 깨끗하게 나았다.

그런 그가 치료 받은 몸으로 엘리사 선지자를 다시 찾아 가서 예물을 전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하려 하였다. 이 세상에 참 신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신앙도 고백하였다.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고 희생제를 드리는 신앙으로 살겠다는 다짐도 말하였다. 그런 그에게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고민이 있었다. 당장 자기 나라 아람에 돌아가면 임금이 섬기는 우상인 림몬 신당에서 제사를 도와야 하는 부담이 그를 억 누르고 있었다. 나아만은 선지자 엘리사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그런 고민과 신앙적인 갈등을 용서해 주시기를 원한다고 말하였다. 엘리사 선지자는 나아만 장군의 그런 설명을 듣고 더 이상 한 마디도 대화를 이어 가지 않았다. 단지 “너는 평안히 가라.”하고 복을 빌어 주었을 뿐이었다. 좀 더 자세하게 말씀을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자.


예물을 들고 도로 찾아 온 나아만.
엘리사의 집 앞에 도착한 나아만 장군을 엘리사 선지자는 밖에 내다보지도 않고 치료책을 전달하였다. 이런 취급을 받게 된 나아만 장군은 크게 화를 내면서 자기 나라로 되 돌아 가겠다고 분노하였다. 다행히 그를 수행 중이던 종들이 나아만 장군을 설득하고 나섰다. 이 보다 더 큰 일이라면 행하지 않겠는가.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담그면 나병이 나을 수 있다는데 못 할 것이 무엇이냐고 설득하였다. 그렇게 펄펄 뛰며 화를 내던 나아만 장군은 요단 강물에 가서 몸을 일곱 번 담그고 나병이 깨끗하게 나았다. 그 때 나아만 장군은 자기 나라로 가지 않고 갔던 길을 되돌아 와서 엘리사 선지자의 집을 찾아 갔다. 15절에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라는 “도로 와서”라는 표현은 “회개하였다”는 뜻이 포함된 단어이다. 그렇지 않나. 처음에 엘리사 선지자의 처방을 전해 듣고는 자기 나라 아람에 있는 아바나 강이나 바르발 강이 더욱 깨끗한데 나에게 요단 강물에 몸을 씼으라는 말이 웬 말이냐며 화를 내던 그였다. 또한 자기를 내다보지도 않고 치료책을 말했다고 분노하며 자기 나라로 가 버리려던 그였다. 그런 그가 종들을 설득으로 생각을 바꾸고 순종했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나병에서 고침 받은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 선지자에게 도로 와서 그를 만났다. 그리고 정중한 예절로 예물을 전달하며 감사한 마음을 표하였다. 
분노하며 화를 크게 내며 거만한 태도로 고집을 부리며 자기 나라로 돌아가겠다고 하던 상황과 비교하면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제는 나병도 깨끗하게 나았다. 홀가분하고 날아갈 듯이 기쁜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며 엘리사 선지자 앞에 공손하고 겸손한 태도로 찾아 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라고 말하며 예물을 전하고 싶어 하였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는 나아만 장군이 강권하는 예물을 거절하고 받으려 하지 않았다. 

왜였을까. 엘리사는 모든 영광과 경배와 섬김을 오직 하나님께서만 받으셔야 한다고 나아만 장군에게 교훈한 것이다. 당시 아람 나라와 같은 이방 국가들 중에서는 병을 고친다거나 상대방을 축복한다는 명목으로 백성들의 재산이나 재물을 갈취하는 이방 종교의 제사장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므로 엘리사 선지자는 오직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는 아버지이심을 나아만이 깨닫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성전에 기도하려고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 앞에 앉아 늘 구걸하던 나이 사십 쯤 된 걸인을 고쳐 일으킨 기적을 행하였다. 이 일로 베드로와 요한에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마치도 베드로가 태어 날 때부터 못 걷던 중증 장애인을 일으켜 세운 것처럼 무리가 흥분하고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 때에 베드로는 겸손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 3:12)고 대답하였다. 그렇다. 나병에서 고침 받고, 못 걷던 사람이 걷고, 못 보던 사람이 눈을 뜨고, 못 듣고 못 말하던 사람이 듣고 말하고 중풍병자가 고침 받고 하는 기적이 사람이 행하는 기적이 아니지 않나. 

병을 고치고 구신을 내어 쫓고 죽은 자를 살리고 하는 기적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엘리사 선지자는 예물을 받으실 분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영광과 칭송을 받으신 분도 자신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여호와이시라는 것을 나아만 장군에게 깨닫게 해 준 것이다. 물론 엘리사 선지자에게 감사를 표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사 선지자는 정중하게 예물을 거절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도록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 아버지만이 언제나, 영원히 찬양과 경배와 영광을 받으실 홀로 한 분이신 전능자이시다. 

그 때 나아만 장군은 이스라엘 나라의 흙이라도 노새 두 마리의 잔등에 실어 가고 싶다고 말하였다. 출애굽기 20장 24절에 보면 흙으로 제단을 쌓고 제사 드리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나온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나아만 장군은 이처럼 이스라엘의 흙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토단을 쌓고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싶어 하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자기가 고침 받고 축복 받은 땅의 흙을 기념으로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에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흙을 가져간 적이 있었다. 


오직 여호와 신앙을 고백한 나아만.
신앙생활 중에 체험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경우로든 체험을 갖는 것은 하나님을 실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아닐 수 없다. 일곱 귀신 들렸던 고난의 날을 뒤로 하고 예수님으로부터 고침 받은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섬겨 드리는 역사적인 신앙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팔아 버린 후에 불행하게 생을 마치고 말았다. 나아만 장군은 어떤가. 나병에서 고침 받기 전에는 화를 내며 분노하며 자기 나라로 그냥 돌아가 버리자고 큰소리치며 어리석게 교만을 떨던 그가 아닌가. 그런 저가 요단 강 물에 몸을 일곱 번 담그고 깨끗하게 고침 받았다. 그 후에 그의 생각과 마음가짐과 태도가 완전히 변하였다. 17절 중반부에서부터 읽자.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왕하15:17하)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의 고백인가. 늘 자주 반복해서 묵상하지만 에녹은  65살에 아들 무두셀라를 낳았다. 그 해에 어떤 신앙 체험을 했는지 성경은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싣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에녹이 65살 되던 해에 신앙생활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 후로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생활을 하다가 죽음을 겪지 않고 하나님이 그를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 가셨다. 65살 때에 체험이 그를 300년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한 것이다. 

노아도 긴긴 세월 방주를 지으며 그런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지 않았다. 아브라함도 75살에 부름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체험 신앙이 점점 성숙해져 가지 않았나. 이는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 사무엘,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모두 다 마찬가지이다. 

베드로도 얼마나 다양한 신앙 체험과 신앙의 우여곡절 끝에 초대 교회의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나.  어느 날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다. 제자들 중에 베드로가 나서서 대답하였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여러분은 하나님 앞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어떤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가. 우리의 신앙은 고백으로부터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것이다. 끝 없는 고난을 이겨 내야 했던 이방 선교사 사도 바울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갈1:1)고 고백하였다. 사도 바울은 편지마다에서 분명하게 고백하였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그렇다. 사도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오늘 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오늘 날, 지금 나의 나 된 것에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으시다. 그 뜻을 발견하고 깨달아 알고 순종하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참 모습이 아닌가. 

이번 선교 일정 중에 다른 목사님의 설교 시간에 이런 예를 들었다. 나무는 추운 겨울 동안에 뿌리가 자라난다는 것이다. 긴긴 추운 겨울 동안에 따뜻한 땅 속 깊이 뿌리를 더 깊이 내렸다가 봄이 되면 그 뿌리에 저장된 힘과 영양을 갖고 싹을 내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고 설명하였다. 그렇다 우리들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날마다 개나리꽃, 진달래꽃, 목련 꽃, 벗 꽃이 화창하게 피는 봄날만 계속되길 원하지만 어떻게 인생이 늘 그런 봄날만 계속되겠는가. 요즘처럼 불 볕 더위 가운데 오곡백과가 익어 가는 것 아닌가.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반문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그 고난을 통하여 나를 정금처럼 뽑아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시편 기자처럼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는 겸손한 고백이 매 순간, 날마다 계속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아만 장군은 나병에서 고침 받은 후에 이처럼 절절히 여호와 하나님 중심 신앙을 고백하고 있지 않나. 


신앙생활의 고민을 말한 나아만.
나아만의 신앙 고백은 아름답고 멋있었다. 그렇지 않나.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왕하15:17하)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예배시간에, 은혜 받는 그 순간에 고백하는 신앙의 고백만 가지고 그리 쉽게 넉넉히 이겨 낼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 이는 누구나 다 마찬가지다. 피할 수 없는, 피하기 어려운 현실의 문제이다. 잘못 하면 왕따 당하고, 잘못하다가는 매장 당하고 만다. 베드로는 멋지게 신앙 고백 한 후에 오히려 자기 고집을 내세우다가 ‘사탄’이라고 주님께 책망 받고 말았다. 

세상살이라는 것이 술 주면 술 마시고 담배 건네면 한 대 피우고 같이 놀자하면 놀아주고 즐기자고 하면 함께 즐기고 같이 이차 삼차 가자하면 어울려 주는 게 쉽지 않나. 까마귀 가득한 고을에서 나만 혼자 백로처럼 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아만 장군도 그런 고민을 털어 놓았다. 엘리사 선지자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의연한 믿음을 결단한 것 까지는 참으로 좋았다. 그러나 막상 자기 나라 아람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해 보니 군대 장관으로 지내면서 임금 벤하닷 왕이 섬기는 림몬 신당에서 함께 엎드려 몸을 굽혀 가며 우상 앞에 제사 드려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림몬’ 신은 그 당시 아람 나라의 대표적인 우상이었다. ‘림몬’은 아람의 최고신으로서 당시 고대 근동 지방에 널리 알려져 있던 폭풍의 신 ‘하닷’을 말한다. 이 림몬은‘하닷 림몬’이란 이방 신의 명칭을 요약한 칭호이다. 이 신은 후에 희랍 신화에 전능한 신으로 등장하는 ‘제우스’(Zeus)와 동일한 신으로 전해져 왔다. 한편 아람 왕의 이름이 ‘벤하닷’으로 불린 것은 ‘하닷’신의 이름을 왕의 이름에 붙여서 왕에게 신적 권위를 부여한 것이기도 하였다. 이는 왕 자신이 아람의 민족 신인 하닷을 숭배하였다는 증거이다. 그런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림몬 신을 철저히 숭배하는 임금의 총애를 받던 군대 장관 나아만이 신앙의 갈등과 고민에 빠져서 이 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말을 선지자 엘리사 앞에서 하고 또 하였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왕하5:18)

이람 왕 벤하닷은 림몬 신당에서 제사할 때에 군대 장관 나아만의 손을 의지해서 제사하고는 하였다. 왕의 곁에서 왕이 내어 미는 손을 친히 바쳐 들 정도면 얼마나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신분인지 짐작이 가지 않나. 이런 표현은 열왕기 하 7장 2절과 17절에도 “그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였던...”이란 표현이 반복된다. 

그렇다. 신앙은 결단이다. 신앙은 타협이나 절충이 아니다. 악과 선, 거짓과 진리, 불의와 정의, 어둠과 빛은 결코 같이 하나가 될 수는 없다. 그 동안 어떻게 세상을 살아 왔는가. 지금 아람 나라로 돌아가기 전에 엘리사 선지자 앞에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며 괴로워하는 나아만의 심정에 공감 할 수 있어야 한다. 

20대 후반 목회 할 당시에 대전 철도청 보선 사무소 소장으로 근무하던 젊은 집사가 있었다. 그는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기술 기좌 국가고시에 합격한 젊은 고급 공무원이었다. 일정한 구간의 철도 안전과 보선 공사를 책임지고 있는 현장의 적지 않는 기술진들을 총괄하는 막중한 책임자이다. 그에게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위기가 왔다. 철도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하여 철도 위에 돼지 머리와 고사 상을 차려 놓고 고사를 지내야 한다는 상부의 명령이 내려 왔다. 자기는 기독교인의 양심과 어려서부터 신앙으로 성장한 젊은 집사의 신앙 양심으로 그런 일 앞에 타협 할수 없었다. 더군다나 철도 보선 사무소장이 제주가 되어서 돼지 머리 앞에 술을 따르고 돼지  콧구멍에 종이돈을 말아서 꽂고 절을 하여야 했다. 그는 상관에게 자신의 신앙을 분명하게 말하였고 정면 승부를 선언하였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나. 

그의 분명한 신앙관의 피력은 상관의 강요를 뛰어 넘었다. 그는 30년이 지난 오늘 날 장로가 되어 존경 받는 사회생활과 인정받는 교회 생활과 모범 적인 가정생활을 해 나가고 있다. 

영어 표현 중에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Failing to prepare is preparing to fail.)

라는 표현이 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인정받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풍파와 환난과 핍박을 이겨내야 한다.  

155cm의 크지 않은 키로 미국 농구계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잔 우든(John Wooden, 1910-2010)이다. 그는 1960-70년대에 UCLA,팀의 코치로 있으면서 미국대학체육연맹 주최의 농구 대회 12시즌 중에서 10번을 우승하게 하는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그는 선수 생활과 코치 생활 내내 평생 탁월한 선수요 신실한 삶을 살았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재능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서 겸손해야 하며, 명성은 사람들이 준 것이라서 감사해야 하며, 자만심은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라서 조심해야 한다.”
(Talent is God-given. Be humble. Fame is man-given. 
Be grateful. Conceit is self-given. Be careful.)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신 은혜를 깨닫고 겸손한 나날을 살아가야 한다. 남들이 나를 칭찬할 때 더욱 겸손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속에 교만이나 자만심이 고개를 들 때에 매 순간 조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믿음이 돋보이고 그 신앙생활에 열매가 풍성하게 된다. 

야곱의 형 에서, 가나안 아이 성 참전 용사 아간, 사사 삼손, 사울 왕, 솔로몬 왕은 이런 면에서 아쉬움을 남긴 인물들이다. 은혜를 받았는가. 축복을 경험했는가. 몸과 마음과 영혼에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체험하였는가. 그 은혜에 대한 신앙의 고백과 함께 가정,직장, 사업장,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림몬 신당에 엎드려야 하는 영적 도전과 갈등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일제시대 때에 “신사참배는 우상 숭배가 아니다.”라고 결의하고 일본의 신사 앞에 가서 줄줄이 고개를 숙였던 기독교인들과 기독교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았나. 왜 한국 교회가 주기철, 손양원, 김익두 목사와 유계준 장로와 조만식 장로 등의 신앙을 귀하게 여기는가. 

1992년, 템플턴상을 받던 자리에서 한경직(1902-2000) 목사마저 신사 참배하던 죄인임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했다는 일화를 우리가 알지 않는가. 해방, 광복만 기뻐하지 말고 해방된 민족의 일원다운 역사관과 시대정신과 신앙관을 갖고 살아야 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평화란 없다. 

4세기 로마의 개혁주의자요 군사 전문가였던 베게티우스(Vegetius)는 <군사학 논고>라는 그의 책에서 경고했다. 

“평화를 원하는가? 그럼 전쟁을 대비하라.”
(If you want peace, prepare for war).

유비무환(有備無患). 이것이 대답이다. 은혜 받은 나를... 은혜 받은 것 같은 나를... 세상은 그냥 그렇게 쉽게 받아 주지 않을 것이니까 말이다.

나아만 장군은 나병에서 고침 받고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 고백하였지만 막상 아람 나라로 돌아가려고 생각하니 고민에 빠졌다. 아람 나라의 벤하닷 임금 곁에서 군대 장관으로 지낼 것을 생각하니  눈앞에 어른거리는 ‘림몬 신당’ 제사의 고민을 갖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나아만의 심정을 생각해 보라.

우리 각 사람은 영적 전쟁터인 세상 가운데서 말씀의 분별력을 갖고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담대한 신앙의 승리자들이 모두 다 되어야만 할 것이다. 엘리사 선지자는 긴 말로 설명하거나 다른 말을 더 하지 않고 나아만 장군의 앞날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단 한 마디로 축복하였다.

“너는 평안히 가라.”(Go in Peace.)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평화와 평안이 임하길 소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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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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