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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갈에 흉년이 들었는데(왕하4:38-41) 201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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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06-25 09:20 조회 21,725 댓글 0
 
길갈에 흉년이 들었는데(왕하4:38-41)      2016. 6. 19


이 세상에 풍년(豐年)이 드는 것이 좋지 흉년(凶年)을 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항상 잘되기만 하는 풍년이 어디 있겠는가. 애굽의 바로 임금 때에도 칠 년 풍년 후에 찾아온 칠년간 계속되는 흉년이 있었지 않았나. 이 세상에 영원한 젊음도 없고, 영원한 건강도 없고, 영원한 권력이나 영원한 부요함이란 없다. 이 세상의 것들은 모두 다 지나가는 것들이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40:6-8)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흉년보다 풍년을 오히려 조심하라고 교훈 하셨다. 누가복음 12장에만 나오는 일화이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 왔다. 자기 형과의 유산 분배 문제로 자문을 구하려 하였다. 예수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였다. 그 부자는 마음속에 생각하였다.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그리고 그 부자는 자기 영혼에게 말하였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부자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예수님은 이 비유의 말씀에 이어서 이렇게 교훈해 주셨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21)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그 부자는 재산은 많고 농사가 잘 돼서 풍년을 맞기는 하였으나 그 마음속에 탐심으로 인하여 그 영혼은 불행한 흉년이 시작되고 있었다. 

흉년, 가난, 배고픔, 굶주림, 실패, 질병, 전쟁, 테러, 재해, 재난 앞에서 씨름하며 사는 이웃들이 의외로 많다. 

엘리사 선지자가 길갈을 찾았을 당시에 그곳, 길갈에 흉년이 들었다. 오늘 날도 흉년이란 어려운 일인데 지금부터 2850년 전인 당시에 겪는 흉년이란 얼마나 참담한 일이었겠나. 너나 나나 먹을 것이 귀하게 되자 엘리사는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들에 나가서 들 호박을 따다가 썰어 넣고 국을 끓이도록 하였다. 선지자의 제자들이란 오늘 날로 하면 신학교 학생들이 아닌가. 나라에 흉년이 들고, 지역에 흉년이 드니 매 끼니마다 먹고 살아가는 것이 문제였다. 우리 속담에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일단 흉년이 찾아오고 너나 나나 굶주림을 겪기 시작하면 한 끼의 먹을거리를 해결하는 일이 싸움이 되고 전쟁이 되고 만다. 

열왕기 하 6장 24절 이하에 보면 아람 왕 벤하닷이 북 왕국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다. 사마리아 성을 에워싸니 사마리아 성 안에 기근이 찾아 왔다. 성 안에는 성 밖에서 보급되던 식료품과 물자 조달이 끊기자 생지옥이 되고 말았다.  나귀 머리 하나에도 값이 대단하였다. 심지어는 비둘기 똥을 돈을 주고 팔고 사는 일이 다 벌어졌다. 해결할 수 없는 기근이 계속되자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도 이성을 잃었다. 두 여인이 하루는 이 여인의 어린 아들을 삶아 먹었다. 그 다음 날 네 아들을 삶아 먹자고 하자 그 상대 편 여인이 어린 아들을 숨기고 내어 놓지 않자 싸움이 벌어졌다. 그 사실을 임금 앞에까지 가지고 나가게 되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기근이 계속되자 제 새끼를 잡아먹는 동물적인 본능으로 변해서 어린 아들들을 키우는 엄마들조차도 정신이 나갔고 미쳐 버린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분노하기 시작했고 이 시대적은 불운을 선지자 엘리사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갔고 하나님이 사마리아 성에 기적을 베푸셨다. 선지자 엘리사는 예언하였다. “내일 이맘때에 기적이 일어 날 것이다. 내일 이맘때가 되면 밀과 보리가 풍성하게 될 것이다. 누구라도 쉽게 밀과 보리를 사게 될 것이다.” 왕도 장관도 엘리사 선지자의 이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날이 되자 꿈처럼 아람 군대가 모두 다 도망가고 말았다. 급하게 도망친 아람 군대는 의복과 병거와 밀과 보리를 그대로 다 남겨 두고 떠나가 버렸다. 사마라아 성에 엘리사 선지자를 통한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 하신 기적이었다.  

엘리사 선지자가 시키는 대로 한 사람이 들에 나가서 들포도 넝쿨을 헤쳐 가며 들 호박을 따다가 국을 끓였다. 논과 밭에서 경작한 먹을거리가 귀해지자 야생의 먹을거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우리말에 ‘초근목피’(草根木皮)라는 말이 있지 않나. 가난해지고 흉년이 들고 먹을거리가 귀해지면 풀뿌리라도 캐어 먹고, 나무껍질이라고 벗겨 먹으며 연명하는 참담한 상황이 되고 만다. 

그런데 문제는 들 호박을 따다가 끓인 국이 먹을 수가 없었다. 그 들 호박에 무슨 독이 있었는지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고 아우성이었다. 그 때에 엘리사 선지자는 가루를 가져 오라고 하였다. 성경은 그 가루가 무슨 가루인지를 설명해 주고 있지 않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가 시키는 대로 가루를 가져 왔고 들 호박 국솥에 그 가루를 넣은 후에 다시 퍼다 나누어 주어 먹게 하였는데 그 국에 퍼져 있던 독이 없어져서 모든 선지자의 제자들이 맛있게 잘 먹고 허기를 해결 할 수 있었다.  

엘리사 시대에 있었던 길갈의 흉년 중에 일어난 이 기적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누구라도 언제나 흉년을 겪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로 결심하고 새로운 인생길을 떠난 아브라함도 흉년과 기근을 겪었다. 그는 흉년과 기근을 피해 보려고 애굽에까지 내려 간 적이 있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고 큰 위기를 겪어야만 했다. 

이삭도 종들이 파는 우물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기고 쫓기고 피해 다녀야 하는 인생의 흉년을 겪은 적이 있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축복 기도를 받은 후에 형 에서가 그를 죽인다고 달려들었다. 야곱은 아버지 집에서 도망쳐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해야 하는 인생의 위기와 흉년을 겪어야 했다.

야곱의 열 번 째 아들 요셉은 10명의 배 다른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애굽에 팔려 가는 신세가 되었다. 요셉의 나이 17살 때에 인생의 위기와 흉년이 찾아 왔다. 어느 날 애굽의 왕 바로가 꿈을 꾸었다. 바로 임금의 꿈은 인생 최악의 흉년기를 지내며 애굽의 감옥에 갇혀서 2년째 지내던 요셉을 감옥 안에서 불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요셉은 바로 왕의 꿈을 해석 해 주었고 바로 왕의 곁에서 총애를 받으며 나라를 살림하는 총리가 되었다. 바로 왕이 꾼 꿈으로 인해서 13년간 계속되던 요셉의 청년기의 흉년이 끝나게 되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신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요셉은 애굽의 전역에 창고를 지었고 칠년간 이어지는 풍년 동안에 여유 있는 곡물을 새 창고에 쌓아 두었다. 애굽에 일곱 해의 풍년이 끝나고 시작된 칠년간의 흉년을 이겨낸 것은 지혜의 사람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던 믿음의 사람인 요셉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세월이 흐르고 가나안에 흉년과 기근이 찾아 왔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130의 연세에 70명의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들의 손을 잡고 애굽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내려갔다. 가나안의 흉년이 아니었으면 야곱은 애굽에 내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가나안의 흉년이 아니었으면 야곱은 총애하던 아들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가 된 것도 모르고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흉년이 축복일 수는 없으나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인생의 흉년을 통해서도 그처럼 섭리하시고 역사하시고 간섭하신다. 

룻기는 베들레헴에 임한 흉년 이야기로 시작된다.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은 베들레헴에 덮친 흉년을 피하여 아내인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모압 땅에서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다.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모압 여성과 가정을 이루고 결혼하였으나 두 아들들도 다 죽었다. 나오미의 인생에 최악의 흉년이 찾아 왔다. 며느리 중의 하나인 오르바는 제 동족에게로 가 버렸다. 초라한 운명의 연세 많던 여인 나오미는 남아 있던 며느리 룻과 함께 남편의 고향 마을인 베들레헴을 찾아 돌아갔다. 그런데 베들레헴의 대 지주 총각 보아스가 나오미의 모압 며느리 룻을 사랑하였고 결혼하게 되었다. 남편과 사별한 젊은 이방의 과부 룻은 베들레헴의 대 지주의 부인이 되었다. 룻은 오벳을 나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다. 이세는 8명의 아들들을 낳았는데 그 중의 막내아들이 나중에 왕이 된 다윗이다. 나오미와 룻은 인생의 흉년에 다시 찾아 돌아간 베들레헴에서 시들어 가던 가문의 영광을 회복하는 존귀한 여인들이 되었다. 흉년은 인생의 끝이 아니다. 흉년도 지나가고 기근도 지나간다. 믿음의 사람은 살다 보면 닥치는 인생의 흉년을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가야 할지를 하나님 안에서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장 발장’(Jean Valjean)은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쓴 장편소설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소설의 주인공이다. 1862년도에 발표된 소설이다. <레 미제라블>은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쯤의 일이다. 지금의 프랑스야 잘 살지만 그 당시의 프랑스는 사회 질서가 엉망이었고 귀족이 아니고는 평민들의 삶이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장발장은 프랑스 라브리 지방에서 어렵게 살던 노동자였다. 가난하게 지내며 배고픔을 이겨 가던 중에 가엾고 불쌍한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붙잡혔고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툴롱의 감옥에 갇혀 지내다가 4번 탈옥을 시도했으나 다시 붙잡혔고 결국은 19년의 징역을 살았다. 나중에 다시 탈옥을 시도해서 성공 했지만 죄수번호 24601으로 냉혹한 경찰 자베르에게 20년간 끈질긴 추격을 받았다. 장 발장은 출소 후에 한 성당에 숨어들어 갔고 그 곳의 미리엘 주교에게서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해결 받았다. 그러나 그는 배은망덕하게 성당 안에서 은으로 된 값비싼 물건을 훔쳐 가지고 도망가다가 포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런 장 발장의 범행을 미리엘 주교는 감쌌고 그에게 은촛대까지 덤으로 주며 장 발장을 구해 주었다. 그 후 장 발쟝은 이름을 마들렌으로 바꾸었다. 나중에는 공장주인도 되었고 시장도 되었다. 언제나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선행을 베풀며 살았다. 그런 어느 날 판틴이라는 불쌍한 여인의 부탁으로 그녀의 딸인 코제트를 구하러 가려 하였으나 언제나 장 발장의 뒤를 추격하던 악한 경찰 자베르의 계략에 빠져 들고 말았다. 결국은 무고한 사람을 구해내고 스스로 감옥에 다시 들어갔다. 하지만 곧 탈옥하여 "종달새"라 불리던 불쌍한 코제트를 결국은 구해 주었다. 장 발쟝은 수녀원 등지에서 숨어 지내며 코제트를 돌보아 주다가 마리우스라는 젊은이와 짝을 지어주고 자신은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빅토르 위고는 소설의 주인공 장 발장을 통해서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악에 대항하여 인간을 향한 신의 소리, 즉 하나님의 사랑, 긍휼, 용서, 자비, 관용 등을 소설로 표현하고 싶어 하였던 것이다. 빅토르 위고는 1851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반대한 이유로 국외로 추방당했다. 그 후로 19년 동안을 영국 해협에 있는 두 섬을 오가며 지냈고 그런 망명 생활 중에 써낸 작품들 중의 하나가 <레 미 제라블>이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원하든 원하지 아니하든 흉년을 겪을 때가 있다. 흉년이란 것이 꼭 농사가 잘 되지 않아서만 흉년은 아니지 않나. 정치, 경제, 국방, 외교, 장사, 사업, 무역, 생산, 문화, 교육, 체육, 음악, 미술, 의학, 과학 연구, 요리 등등 모든 분야에 흉년을 겪을 수 있다. 흉년이란 것이 개인이든 가정이든 다 마찬가지이다. 피할 수 없는 흉년이 찾아오면 한 국가라도 휘청거린다. 1997년경에 우리나라는 ‘국제 통화 기금’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국가적인 경제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IMF 말이다. IMF가 무엇인가. ‘International Monetary Fund’ 즉 ‘국제 통화 기금’의 도움이 없이는 국가 경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던 건국 이래 최악의 큰 흉년을 겪은 일말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은 장롱 속에 감추어 두었던 금반지, 금팔찌, 금 목걸이, 금 두꺼비, 금 십자가, 행운의 금 열쇠, 심지어는 어린 아기들의 돌 반지 까지 다 끌어내어다가 나라를 살려 보겠다고 힘을 모은 적이 있었다. 흉년이 찾아오면 왕이라고 휘청거리게 되고 대기업의 회장이라고 잠을 설치게 된다. 흉년이 찾아오면 천사 장사인 씨름 왕이라고 헐떡거리게 된다. 

흉년이란 어디라도 찾아 올 수 있다. 논과 밭과 바다와 산과 공장과 기업과 군대와 학교와 병원과 국가에도 찾아 올 수 있다. 어떤 분야의 물건을 산더미같이 생산해서 창고 가득 쌓아 놓았으나 생산한 물건이 제 값에 팔려 나가지 않는다면 그 생산품은 흉년을 맞고 말 것이다. 농부들이 농사한 배추나 무를 판매 하지 못하고 모두 다 트랙터로 갈아엎는 경우를 보라. 

우리나라는 구한말 이후 참으로 우여 곡절을 많이 겪은 민족이다. 시대적으로 정치적인 흉년을 겪었다. 그래서는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겨우 살아남은 민족이 아닌가.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식민지 통치 기간 동안에 우리 민족은 참담하고 쓰라린 역사의 긴긴 흉년을 겪어야 했다. 이번 토요일은 우리나라에 6.25 전쟁이 일어난 지 66주년이 되는 날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에 자라나는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 중에서 6. 25 전쟁이 언제 일어난 전쟁인지, 왜 일어난 전쟁인지,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잘 모르는 학생들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남들은 원해도, 노력해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스스로 흙 수저 운운하며 자기 목숨을 끊는 불행한 일이 간 혹 일어난다. 지난 2015년 12월 18일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19살에 생을 마감한 그 학생은 “곁에 있는 사람이 어려워 할 때에 ‘다 잘 될거야.’라는 식의 위로는 오히려 독이다. 나는 정신적 귀족이 되고 싶었지만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수저 색깔이었다.”는 식의 유서를 남기고 빌딩에서 뛰어 내려 세상을 끝냈다.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흉년을 겪을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신체적인 조건이나 정신적인 능력에서 흉년 같은 장애 속에서 인생을 출발 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환경이나 가정의 여건이나 주변의 조건이 끝이 보이지 않는 흉년과 같은 상황일 수  있다. 그렇다고 인생을 끝내 버려야 하나. 

6.25 전쟁은 순식간에 우리나라를 송두리째 흉년을 겪는 민족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교회, 학교, 관공서, 병원, 공장, 박물관 등등이 폭격을 받아 불타고 무너지고 폐허가 되었다. 전쟁은 온 나라를 순식간에 죽음과 폐허로 몰고 갔다. 하나 밖에 없던 한강 철교는 폭파 되었다. 남한 북한 할 것 없이 6. 25 전쟁 중의 우리나라는 산마다 들마다 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국민 소득은 60달러였다. 찢어지게 가난했고 좌익과 우익의 이념으로 대립하던 나라가 그나마 전쟁으로 불바다가 되고 말았다. 어렵게 휴전을 맞았고 오늘 날 남한인 대한민국은 50년 만에 세계적인 강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다운 선을 행하자.
엘리사 선지자는 자신도 배가 고팠지만 굶주려 하던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들 호박 국이라고 끓여 먹이길 원하였다. 그러나 그 들호박 국은 무슨 독이 있었던지 먹을 수가 없었다. 선지자의 제자들은 국을 먹으려다 말고 소리 질렀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의 독이 있나이다.” 마치도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았으나 죽음의 독이 가득한 들 호박 국솥과 같았다. 북한의 김일성은 러시아의 사주를 받고 남한을 침략하여 공산화할 야욕을 품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에 남침을 시작했다.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순식간에 온 나라가 들 호박 국을 끓인 가마솥과 같이 죽음의 독이 퍼져서 남한과 북한이 다 죽을 판이었다. 6. 25 당시에 미군과 16 나라의 유엔군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은 공산화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 모든 고난과 아픔의 역사 배후에 우리 민족을 건져 주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 

마치도 독이 퍼져서 먹을 수 없는 들 호박 국과 같은 참담한  6. 25 전쟁의 중심에 하나님은 미군과 맥아더 장군과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과 16개국의 유엔군을 신속하게 동원해 주셨다. 불쌍한 대한민국의 남북의 강토에 퍼져 있는 독을 제거하기 위하여 던져 넣은 엘리사의 가루처럼 하나님은 세계 16나라 연합군의 구원의 손길을 동원하셔서 우리 민족을 구원해 주셨다. 부산을 중심으로 낙동강 남쪽으로 급하게 퇴각한 국군은 공산당을 이길 힘이 없었다. 부산까지 함락 당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독이 가득한 들 호박국 솥과 같던 대한민국에 전쟁 역사상 유래 없는 16나라의 유엔군을 보내 주셨고 48만 명의 미국 군대가 엄청난 군수 물자를 갖고 와서 우리나라를 도왔다. 6. 25 전쟁 중에 미국군대만도 5만 5000여명이 죽었다. 미군 8,177명은 시체도 찾지 못했다.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 전사자가 62만 9000명에 이른다.  

6. 25 전쟁이 일어나던 1950년에 랄프 몽클라르(Ralph Monclar, 1982-1964)는 프랑스 육군 중장이었다. 그는 세계 제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다 겪은 전쟁의 백전노장이었다. 1950년도에 그의 나이는 68살의 현역 3성 장군이었다. 그는 제 1, 2차 세계 대전 중에 18번의 부상을 입었고 18번의 훈장을 받은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대한민국에 일어난 전쟁 소식을 듣고 우리나라에 와서 전투에 참여하길 원하였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유엔군의 파병을 꺼리고 있었다. 그러나 랄프 몽클라르 장군은 앞장서서 해병대와 공수부대원들 중에서 600명을 모병하였고 프랑스 정부를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직접 대대장의 신분으로 나서서 전투에 참여 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정부와 국방부의 간부들이 반대하자 그는 이런 말로 맞섰다. “계급은 중요하지 않다. 곧 태어날 자식에게 유엔군의 한 사람으로서 평화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참전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다”그는 중장 계급인 별 세 개를 스스로 떼어 내고 중령 계급장을 달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유엔군 프랑스 대대의 대대장 신분으로 한국전에 참전하였다. 그가 이끄는 부대는 부산항을 거쳐서 1951년 2월 꽁꽁 언 겨울의 추위를 견뎌 내며 경기도 양평군의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군 2개 사단 병력과 마주하고 싸워야 했다. 3성 장군이었던 그이지만 당시에 프랑스 군대를 지휘하는 미군 2사단 23연대의 지휘 체계 아래서 자신보다 훨씬 어린 지휘관들의 명령을 수용해가면서 연합군 대대의 대대장 역할을 하며 전쟁의 최 일선에서 진두지휘하였다. 결과는 프랑스 군대의 승리였다. 5배가 넘는 수자인 중공군 2개 사단 규모의 공격을 섬멸시킨 것이다. 양평군 지평리에 가면 그 당시의 전투를 기념하는 “지평리 전투 전적비”가 있다고 한다. 2개월 어간 동안 중공군에 밀리던 유엔군은 드디어 양평군 지역에서 랄프 몽클라르 장군이 이끄는 대대 병력의 심리전과 백병전의 도움으로 후퇴를 멈추고 재 반격으로 전세를 전환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평리 전투로 중공군 3만 명 이상이 죽었다. 랄프 몽클라르 장군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는 3500여명이 6. 25 전쟁 내내 교대로 투입되었다. 그 중에 전사자 262명, 부상 1008명, 실종 7명이었다. 몽클라르는 1964년, 82세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군사박물관인 앵발리드 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에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주관하였고 정중한 예우를 다하였다. 그의 시신은 앵발리드 성당 지하에 안장되었다. 

2016년 4월에 <랄프 몽클라르 장군의 전기>(傳記) 2000권이 육군사관학교에 기부되었다. 이 책은 6. 25 전쟁 중에 태어난 랄프 몽클라르 장군의 늦둥이 딸 파비엔느 몽클라르가 쓴 것이다. 해군 법무관 출신 김성수 변호사가 2011년 번역해 출간한 책이다. 김 대표는 양평에서 소송 자료를 보관할 사무실을 구하다 우연히 “지평리 전투 전적비”를 봤다고 한다. 그는 "몽클라르 장군의 6.25 참전과 승리담을 읽고 감명을 받았고 그 후에 육사에 기부할 책 2000권 가운데 1200권은 재학생들에게 한 권씩 주고 나머지 800권은 졸업생 등 동문에게 전달하는 일에 앞장 선 것이다. 

오늘 날 주를 믿는 우리 모두는 흉년에 때에 어떻게 해서라도 한 끼의 국거리라도 해결해 가며 누군가를 섬기기를 원했던 선지자 엘리사의 마음을 갖자. 하나님은 오늘 날도 엘리사와 같은 사랑의 사람, 섬김의 사람, 헌신의 사람이 이 세상에 처처에 일어나길 원하신다. 아니, 오늘 날 교회 안에 엘리사와 같은 그런 섬김의 사람들이 계속하여 일어나기를 원하시고 계신다. 


독을 없애는 가루를 준비하여 뿌리자
여리고의 쓴 물의 근원에 선지자 엘리사는 소금을 가져 오게 하였고 그 소금을 던져 넣어서 좋은 물이 흘러넘치게 하였다. 열왕기 하 2장에 나오는 기적 내용이다. 이는 엘리사를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의 기적이다. 본문에서는 독이 있어서 먹을 수 없던 들 호박 국에 가루를 가져 오게 하였고 그 가루를 솥에 던져 넣어서 독이 사라지고 맛있게 먹을 만한 국으로 변화시켜 주었다. 이것은 엘리사를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기적이다. 하나님은 독이 변하여 약이 되게 하실 수 있는 전능자이시다. 하나님이 하시면 못 하실 일이란 없다. 

대한민국 온 강토에 덮쳤던 동족끼리 싸우는 6. 25 전쟁은 순식간에 온 나라를 잿더미가 되게 하였다. 산과 들과 도시와 농촌의 처처에 죽고 죽이는 군대와 민간인의 시체가 가득하였다.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흉년과 같은 폐허를 딛고 오늘 날처럼 힘차게 일어 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시대적인 엘리사 선지자처럼 나서서 가루를 뿌려 가며 독이 해결되기를 간절히 소원했던 이들이 있었다. 조국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희생과 헌신을 다하는 애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국제 시장 영화의 주인공이 이 시대 그런 민족사의 전쟁과 흉년을 겪은 그 시대를 살아 온 모든 이들의 이야기이다. ​1950년 12월 23일 북한 흥남부두에서 마지막 피란 배가 출항했다.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다. 2000-3000명 탈 수 있는 배에 14000명의 피난민이 몸을 실었다. 1950년 12월 23일에 출발해서 성탄절 날에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했다.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었다. 오히려 그 배 안에서 태어난 5명의 아기가 있었다. 미군은 저들을 김치 1, 2, 3, 4, 5로 불렀다. 그 김치 5의 주인공인 이경필씨는 성탄절 날 아침에 태어났다. 그가 인터뷰 하는 것을 최근에 들어 보았다. 올해 나이가 66살이다. 평화 동물 병원 원장이다. 배 안에서 탯줄을 끊을 도구가 없어서 이빨로 잘라냈다고 한다. 태어난 아기를 씻길 물이 없어서 배 안에 함께 타고 피난하던 여인들이 자기들의 속치마를 찢어내서 갓 태어난 아기의 몸을 닦아 주었다고 한다. 그가 어렸을 적에 그의 부모님께서는 아들에게 “너는 자라서 도움을 받은 은혜를 잊지 말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고 늘 강조하였다고 한다. 14000명을 실어 나른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와 현봉학 박사의 헌신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젊어서부터 하나님일 신실하게 믿고 기도 생활을 해 오던 흥남 부두 철수 작전의 주인공 레너드 라루 선장은 6. 25 전쟁 후에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사가 되었다. 

6. 25 전쟁의 승리 뒤에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도 있었고 랄프 몽클라르 장군도 있었고 주일 미 8군 사령관이었던 윌튼 워커 장군도 있었다. 월튼 워커 장군은 그의 아들 샘 워커 대위와 함께 6.25에 참전했었다. 아버지 윌튼 워커 장군은 의정부 가까운 양주군 노해면에서 전쟁 중에 교통사고로 전쟁 중에 앞서 세상을 떠났다. 1950년 12월 23일, 성탄절을 이틀 남겨 놓고 전쟁 중이지만 아들이 받게 된 미국 정부가 주는 은성 무공훈장 수여식에 축하하기 위해서 가다가 변을 당하고 말았다.  그의 아들 샘 워커 대위는 6. 25 참전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가서 나중에 미국 역사상 최연소 사성장군인 대장까지 지냈다. 저들은 아버지와 아들이 대한민국을 공산당으로부터 막아내고 건져 내기 위해서 독이 가득한 들 호박 국솥에 뿌려진 가루와 같은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생을 살다간 인물들이다. 

은평구 역촌 역 사거리에 있는 평화 공원에는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1922-1950)대위의 동상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1920년대에 평양을 중심으로 이 땅에 와서 서울과 대전에서 선교하던 미국 감리교 선교사였던 윌리엄 쇼 선교사이다. 대전감리교 신학교가 오늘 날의 종합대학으로 발전하도록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 서위렴(1890-1967)이란 한국 이름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의 아들인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평양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그 후에 미국에 가서 대학을 공부하고 미국 해군 장교로 입대해서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까지 참전한 바 있다. 전역 후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미 군정청 소속으로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인 ‘조선 해양경비대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며 생도들을 가르쳤다. 교관으로 근무하던 중 학업에 뜻을 품은 쇼 대위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었다. 결혼하고 이미 세 명의 아기의 아빠로 지내며 박사 과정을 공부하던 중에 6. 25 전쟁이 일어난 소식을 접하였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다.” 그렇게 말하며 다시 미 해군에 재 입대 하였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곁에서 최측근 보좌관으로 유창한 한국말과 영어 실력으로 인천 상륙 작전을 도왔다. 이후에도 그는 서울탈환작전에 직접 자원해 참전하였다. 그러던 중 1950년 9월 22일 아침, 적 후방 정찰을 위해 지금의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에 접근하던 쇼 대위는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북한군 매복조의 공격을 받고 28살에 전사하고 말았다. 그이 시체는 일주일 만에 양화진 묘지에 장례 될 수 있었다. 평생 한국을 위해 선교사로 일한 그의 부모도  나중에 양화진의 선교사 묘지에 아들과 함께 안장되었다.  쇼 대위의 묘비에는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성경 구절이 새겨져 있다. 

2010년에는 서울시 은평구 평화공원에 동상이 건립됐다.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그의 큰 며느리 '캐롤 캐머런 쇼'는 윌리엄 해밀턴 쇼의 아내인 시어머니가 보낸 편지글을 읽으며 그의 한국 사랑에 대해 전했다. "윌리엄 해밀턴 쇼는 그가 태어나고 자라서 일을 하고 생을 마감했던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겼고 한국인을 가족처럼 생각했던 분이었습니다. " 이는 한국 선교사를 준비하던 그가 전쟁에 참가하며 부모님께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어머님 아버님! 지금 한국은 전쟁으로 고통당하고 있는데, 이를 먼저 돕지 않고 전쟁이 끝난 뒤 평화 시에 선교사로 간다는 것은 제 양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습니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그런 평소의 생각대로 6. 25 전쟁에 참전하였고 이 땅을 구하기 위하여 땅에 떨어져 썩는 한 알의 밀알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였고 미국 정부는 은성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지난 2015년 6월에는 그를 기념하는 호국 영웅 우표도 발행된 바 있다.  
외아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가 한국 전쟁에서 전사하자 아버지 윌리엄 쇼 선교사는 5,925명이 보내준 14,500불의 헌금으로 쇼 기념교회를 대전 감리교 신학 대학교 안에 건립하였다. 우리 부부는 1983년 가을에 그 곳 신학교의 채플에서 결혼식을 하였다. 1955년 목회자들의 수련을 위하여 쉐파트(Shepard) 부인이 헌금한 6천불을 기초로 목자관을 건립하고 관장으로 봉직하였다. 감리교대전신학교 창립 이사(1954-1960)로 참여하고 신약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고 존경 받는 스승이었다. 그도 6. 25 전쟁 내내 참전 군목으로 활동하던 종군 목사였다. 

이런 일화는 끝이 없다. 1885년 이 땅에 처음 발을 내디딘 언더우드 선교사의 손자 원일한은 6. 25 때에 해군장교로 복무하며 휴전협정의 수석 통역관으로 헌신하였다. 휴전회담의 성패를 가르는 통역은 한국의 문화와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진행돼야 했기 때문에 그의 유창한 한국말과 영어 실력은 돋보였다. 연세대 신학과 서정민 교수는 “원일한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선교사 후손으로,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한국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미군 내에서 몇 안되는 특별한 한국전문가 역할을 한 것이다.”라고 평가하였다. 그의 쌍둥이 동생들도 6. 25에 참전한 쌍둥이 군목으로 구제와 선교의 역할을 크게 감당하였다. 저들은 모두가 독이 가득한 들 호박 국솥에 가루를 던져 넣은 엘리사와 같은 인물들이다. 

여호수아 4장 19절 이하에 나오는 지명이 길갈이다. 광야에서 요단강을 건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동편에 도착한 히브리력으로 첫째 달 십일이었다. 그 곳 요단 동편의 경계가 길갈이란 곳이었다. 여호수아는 12지파를 대표한 이들이 요단 강 바닥에서 들고 나온 12개의 돌을 모아서 그 곳, 길갈에다가 기념비를 세웠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였다.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묻거든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고 설명해 주라고 하였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이어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셨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홍해를 말리시고 건너게 하신 것처럼 요단강도 건너게 하셨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길갈은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곳이다. 길갈은 엘리사 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늘로 올리어져 가기 직전에 방문했던 곳들 중에 한 곳이기도 하다. 엘리야가 살던 땅, 엘리사가 살던 땅에도 흉년이 찾아 왔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인생의 흉년이 찾아 올 수 있다. 문제는 그 흉년을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이기며 어떻게 믿음의 사람답게 살아가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은 독이 가득한 들 호박 국솥에 뿌려진 가루와 같은 생을 사셨고 그렇게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 뿌림을 받은 곳마다 독이 제하여 지고 맛있는 국으로 변하듯이 새롭게 하시는 영원한 변화와 구원의 주님이 되셨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개인과 가정과 민족과 나라와 역사마다 구원의 찬연한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가 맺게 되었다.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고 하였다. 

길갈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 하나님은 그 곳을 찾아 간 엘리사를 통하여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오늘 날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누구일까. 우리나라 개화기와 일제시대 때에 독립과 해방을 위하여 목숨 바쳐 희생적으로 살다 간 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땅에는 적지 않다. 응칠 안중근, 매헌 윤봉길,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월남 이상재, 남강 이승훈, 고당 조만식, 송재 서재필 등을 보라. 대한 독립을 위하여 충성하였던 김좌진 장군과 지청천 장군을 보라.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과 그의 형제 이회영과 그의 여섯 형제는 오늘 날로 하면 2조원 상당의 가족 재산을 통 털어서 우리나라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서 나라 안팎으로 고군분투하며 살다가 갔다. 그의 가문은 10대를 거슬러 올라  가도록 조선 시대 때에 영의정, 좌의정, 이조 참판, 형조 참판, 이조 판서 등을 지낸 고급 관료 집안 이었다. 같은 이씨이지만 이시영, 이회영의 형제들과 매국노 이완용의 일생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국가나, 교회나 가정이나 개인에게 흉년은 언제라도 있을 수 있다. 흉년의 때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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