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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하나님의 전신갑주(엡6:10-20) 2016.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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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6-01-31 22:06 조회 21,917 댓글 0
 
하나님의 전신갑주(엡6:10-20)           2016. 1. 31


과거에 스코틀랜드의 기독교 부흥기가 지나가고 쇠퇴기가 찾아 왔을 때에 유행하던 말 중에 “목사란 누구인가”에 대한 이런 정의가 있었단다. “주 중에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가 주일이면 나타나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는 사라지고 또 다시 일주일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 교훈적이지 않나. 이는 목사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인 우리 각 사람 모두에게 도전을 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본문은 말씀한다. 

주 안에서 강건하여지라.
주님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그래야 마귀의 간계(奸計)를 능히 대적할 수 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한다. 
그래야 악한 날에 마귀의 악한 궤계(詭計)를 능히 대적하고 그 모든 영적 싸움에서 싸워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란 이런 것이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성령 안에서 기도와 간구의 생활을 항상 힘쓰라고 하였다. 그 내용을 다시 좀 더 자세히 정리하여 묵상하도록 하자.

악한 영인 마귀를 대적하라.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끊임이 없는 영적 전쟁의 계속이다. 성도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다.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기 위한 싸움이다. 11절의 마귀란 ‘디아볼로스’라고 하는데 이는 모든 악한 영들의 우두머리은 ‘사탄’을 가리킨다. ‘간계’라는 것은 “온갖 방법과 기술을 총동원하여 속이고 교활하게 모략하려는 악한 의도”를 말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여야 한다. ‘대적한다’는 말은 군사가 적군을 맞아서 물리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귀의 간계 앞에 소극적으로 피하고 숨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맞서서 싸워 이겨야 한다.

아브라함도 조카 롯과 그 처자와 부녀자들과 속한 모든 종들을 되찾아 오려는 그돌라오멜 연합군의 진영에 쳐들어가서 싸워 이기고 조카 롯과 그에 속한 모든 가족들과 빼앗겼던 짐승까지 모조리 다 되찾아 왔다.
모세 때에도 광야의 아멜렉과의 싸움에서 여호수아와 군대는 나가서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손을 맞잡아 들고 기도하여 승리하였다.

여호수아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전쟁 방법을 통해서 여리고 성 전투에 칼과 창을 사용하지 않고 순종함으로 날마다 한 바퀴씩 성을 엿새 동안 돌았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그리함으로 여리고 성 함락 전쟁에 크게 승리할 수 있었다.

사사 기드온도 미디안의 군대와 싸우는 전쟁의 때에 32,000만 명의 군대 중에서 하나님이 너무 많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2저렇게 많은 자들이 나가 싸우면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삿7:2)고 경고하셨다. 두려운 자는 이제라도 돌아가라고 명령하자 22,000명이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고 1만명만 남았다. 하나님은 그 1만 명을 물가로 데리고 가라고 하셨다. 물 먹는 장면을 보게 하고 구별하여 남은 자를 데리고 전쟁에 나가게 하셨다. 손을 움켜 입에 대고 핥아 먹는 자가 300명이었다. 나머지 9,700명은 무릎을 땅에 대고 허기진 듯이 물을 마셨다. 그 9,700명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그 300명의 엄선된 용사들과 함께 전쟁을 벌여서 승리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방법대로 순종할 때에 승리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야간 전투를 명령하셨다. 혹시 네 마음이 두렵거든 부하 ‘부라’를 함께 동행하여 가도록 하라고 하셨다.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연합한 군대의 수가 골짜기에 누워 있는데 메뚜기 떼와 같았다. 그들이 전쟁에 동원한 낙타의 수가 얼마나 많던지 해변의 모래가 많은 것처럼 많았다. 그 때 한 사람이 친구에게 꿈을 말하였다. 꿈에 보리 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에 굴러 들어가서 한 장막을 쳐서 무너트리고 위쪽을 엎고 그 장막이 모두 쓰러지게 하였다고 말해 주었다. 이 말을 들은 그 친구가 그 꿈을 해석하였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삿7:14) 이 꿈 이야기를 전해들은 기드온은 하나님께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 갔다. 그리고 말했다.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그리고 300명을 세 대로 나누었다. 각 병사들의 손에는 나팔을 들게 하였고 빈 항아리와 항아리 속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였다. 다 같이 조용히 기드온의 뒤를 따르다가 나팔을 불기 시작하면 일제히 불고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하고 말하라고 명령하였다. 깊은 밤중인 제 2경에 전쟁이 시작되었다. 300명은 동시에 왼 손의 항아리를 부수고 횃불을 높게 치켜들었다. 오른 손에는 나팔을 불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함성을 지르기 시작하였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하고 소리쳤다. 적군들을 깊은 밤에 들판에서 잠을 자다 말고 일어나서 자기들끼리 서로를 치고 죽이는 불행한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에 죽은 적군들이 12만 명이나 되었다. 하나님의 전쟁 방법에 순종하여 큰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 전재으로 기드온의 인기가 하늘로 치 솟았다. 백성들은 기드온에게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하고 요청하였다. 그러자 기드온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 드렸다. 하나님은 기드온이 백성들을 다스리는 동안 40년 동안이나 온 나라에 평안을 주셨다. 사사기 7장과 8장에 나오는 영적 싸움의 승리의 장면이다. 

성도의 영적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로 하는 씨름이 아니다.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다. 이 모든 설명은 타락한 천사, 악한 영, 마귀에 대한 내용이다. 성도의 싸움과 성도의 씨름은 악한 영과의 씨름이며 싸움이다. 그러므로 이 악한 영과의 씨름과 싸움에서 반드시 싸워 이겨야만 한다. 

다윗도 마찬가지 아닌가. 사울 왕과 다윗 왕의 차이는 무엇인가. 다윗도 한 때 인간적인 범죄와 실수의 부끄러운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다윗이 어떻게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13:22)는 하나님의 큰 칭찬을 받는 주인공이 되었는가. 다윗은 평생토록 어려서나 광야의 청년 시절이나 임금이 된 후의 40년 동안이나 한 결 같이 그의 마음속에 가득 찬 신앙의 고백이 있었다. 가령 시편에 소개되는 다윗의 첫 시편인 시편 3편의 내용을 보라.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시3:1-3) 다윗의 평생토록 그렇게 계속되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어떻게 연전연승할 수 있었을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다윗을 하나님은 위험한 매 순간마다 눈동자처럼 보호하여 주셨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서 연전연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한다. 인간적인 방법만 가지고는 패하고 만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나서 부를 찬송인 585장은 종교 개혁가인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이 시작된지 12년 후인 1529년에 작사하고 작곡한 찬송이다. 그 2절에 보면,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 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라고 하였다. 그렇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군의 주로 섬기고 믿고 따르는 영적 전사로서의 삶을 살아 갈 때에 주님은 그를 믿는 성도들을 영적 싸움에서 반드시 이기게 해 주실 것이다. 

국가의 군사력, 개인의 전략만 믿지 말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무엇인가. 여섯 가지다. 그림을 보고 따라 해 보자. 

주 안에서 주님의 힘의 능력으로 강해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악한 날에 능히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고 모든 영적 싸움을 싸운 후에 승리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첫째, 진리(眞理)의 허리띠.
당시의 군대나 오늘 날의 현대화된 무장을 하는 군대가 한결같이 전쟁을 위해서 허리에 띠를 띤다. 육군의 경우에는 그 탄띠에 권총도 차고 탄약창도 차고 대검도 찬다. 탄띠라고 이름하는 폭이 넓고 견고한 탄띠에 수 십개의 구멍을 이용해서 별의 별 전쟁에 필요한 것을들 부착한다. 그 허리 띠의 이름을 진리라고 하였다. 더 정확한 의미는 ‘성실과 정직’으로 라고 해야 한다. 거짓과 기만과 위선이 극심한 마귀의 간계 앞에서 그 미혹과 유혹과 악한 전략에 빠져 들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군대답게 성실하고 정직하여야 한다. 다윗은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시51:6)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라고 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4:25)

거짓되면 나라의 대통령을 지냈어도 국무총리를 지냈어도 국가의 법 앞에서 심판을 받지 않나. 국가적인 기업의 회장이나 세계적인 기업의 대표라도 감옥에 가지 않나. 공의에서 벗어나고 정의에서 멀어지면 스스로 불행해지지 않나. 이사야서 11장의 전반부에는 메시아 예언이 나온다. 그 내용 중에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11:5)고 하였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공의와 정직과 그 입의 막대기와 그 입술의 기운으로 가난한 자, 겸손 한 자, 악인을 심판하여 악인을 죽일 것이라고 하였다. ‘입의 막대기’란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막대기로 사용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와 성실과 정직의 영으로 오셔서 영원히 세상을 심판하시는 심판주이시다. 그러므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의와 성실과 정직과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허리띠를 띠고 살아가야 한다. 

둘째, 의(義)의 호심경.
전에 보던 성경에는 “의(義)의 흉배”라고 하였다. 오늘 날로 하면 방탄조끼와 같은 것이다. 전에는 가죽이나 쇠나 구리 등으로 제작하여 가슴을 보호하는 호심경을 착용하였다. 의(義)란 칭의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원칙에 순종하고 그 말씀을 행함으로 충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도덕적 완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실제로 의로운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마귀의 간계 앞에서 공격 받지 않고 세상을 이기며 죄를 이기며 자신을 이기며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다. 호심경은 심장을 비롯한 우리의 가슴을 보호하는 방어 수단이다. 사단은 나의 약한 부분을 치고 들어오려고 한다. 그러므로 의의 호심경으로 심장과 가슴을 보호하고 잔등을 보호하며 마귀에게 나의 약점으로 보이면 안 된다. 나의 허점을 드러내면 안 된다. 그런 순간에 마귀의 칼과 창과 화살이 내 심장을 꽤 뚫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려 의의 호심경을 항상 착용하여야만 한다. 그 호심경의 이름이 의다. 의의 호심경을 항상 착용하는 생활이란 감사하고 말씀에 감격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항상 예민하게 반응하며 매사에 감사, 감사, 은혜, 은혜 그런 삶을 계속하여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성도가 의의 호심경을 착용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모세 시대 때에 광야 길을 가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셨다.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나오게 해서 그 많은 백성들과 짐승들이 배부르게 마실 수 있게 하셨다. 마라의 쓴 물이 변하여 단 물이 되게 해 주셨다. 

그런데도 때때로 여전히 원망과 불평이 목구멍에 차 올랐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16:3),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출17:3)

하나님은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을 모세나 아론에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한 것이라고 하였다. 민수기 14장에 보면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라고 하였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비교하고 시기하고 탄식하고 근심과 염려와 불안과 초조와 두려움 가운데 살면 하나님의 의에서 점점 멀어져 가게 되고 만다. 이것이 마귀의 간계이다. 그러므로 의의 호심경을 착용하는 성도의 삶이란 감사하고 기뻐하고 기도하고 은혜로운 삶의 수위를 계속하여 유지해 나가야만 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고 하였다. 이와 같은 말씀의 은혜 가운데서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생활을 계속해 나가는 것은 마귀가 성도의 삶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능력이 된다. 

약해지면 바이러스가 침입하여 감기로 고생하게 된다. 지난해 발표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매년 독감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의 수가 2,300명에 이른다. 설마 감기로 죽겠어. 독감으로 죽겠어. 감기 바이러스로 죽겠어가 아니다. 2,300명 이상이 감기 바이러스, 독감 바이러스를 이기지 못하여 죽는다. 감기바이러스는 200종 정도가 밝혀졌고 세부 종은 2만종이상 밝혀졌다. 하지만 미 탐색 세부 종은 10만종 이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누구나 감기 바이러스가 득실대는 세상에서 매일 매 순간 그 바이러스의 심각한 감염을 이겨 낼 수 있을 때에 이겨 내는 만큼 살아가는 것이다. 

영적으로 하면 성도들은 최후 승리를 거두어 의의 면류관을 쓰게 해 주시는 순간 까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무장하되 의의 호심경을 반드시 착용하여야 한다. 불편해도 답답해도 의의 호심경을 벗어 내면 안 된다. 잠을 자는 시간에도 의의 호심경을 입고 지내야 한다. 의의 호심경을 24시간 365일 항상 착용하고 지내야 한다. 그래야 언제 공격해 들어올지 모르는 마귀의 칼과 창과 화살로부터 나의 영적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360장 찬송, “행군나팔 소리에”처럼, 

“행군 나팔 소리에 주의 호령 났으니 십자가의 군기를 높이 들고 나가세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받아쓰리라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예루살렘 성에서 면류관 받으리 
저 요단강 건너 우리 싸움 마치는 날 의의 면류관 예루살렘 성에서”

언제나 힘차게 이런 찬송을 부리며 살자. 라디오 채널 중에 ‘국군 방송’ 채널을 고정해 두었다. 6개 FM고정해 두 채널 중의 하나다. 유익한 뉴스와 정보도 많다. 가끔씩 육군, 해군, 공군의 군가나 나온다. 주로 관악으로 우렁차게 연주되는 그 멜로디와 가사가 힘차고 좋아서 가끔씩 운전 중에 듣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전신갑주 무장한 강한 군사가 되길 원하신다. 과거에 대통령 경선에서 어떤 후보는 1144만 표를 받았다. 전체 투표자의 46.5%의 높은 지지표였다. 당선자와의 표차도 70만 표정도 밖에 않았다. 그렇게 가깝게 추적하고도 당선되지 못한 배후에는 아들 병역 기피 비리에 대한 의혹이 선거권자들인 국민의 신뢰를 흩어지게 하였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의 나중에 평생 발목을 잡게 한 것이다. 나라가 군사로 부를 때에 강하고 담대한 군사로서의 삶을 살았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큰 힘과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사탄 마귀의 간계 앞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마귀의 간계에 빠져 들면 안 된다. 마귀의 미혹 앞에 빨려 들어가면 안 된다. 마귀의 잔꾀에 빠져 들면 안 된다. 영적 지혜와 분별력을 가지고 잘 훈련된 군사처럼 사주 경계에 철저하고 의의 호심경을 착용한 하나님의 강한 군사로 살아가야 하겠다.

셋째, 평안(平安)의 복음(福音)이 준비한 신.
먼 길을 가려며 신발이 편안해야 한다. 신발이 내 발에 잘 맞아야 한다. 그 신의 이름이 ‘평안의 복음’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안이 금 가게 한 것은 죄이다.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 때에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 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동산 그늘 가운데 숨어 버렸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평안이 사라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 죄인이었던 인간이 예수님의 ‘평안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회복된 구원의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전쟁에 나서는 군사는 그 신는 신발이 다르다. 여름에 바닷가에 가는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고 전쟁에 나가는 군인은 없다. 가장 안전하고 견고하고 착용감이 뛰어나고 활동적이고 어떤 환경에서도 사방으로 이동하는데 가장 용이한 신발을 군화로 신어야 한다. 그 신발의 이름이 ‘평안의 복음’이다. 복음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평안이 자리 잡게 된다.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이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2:14)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평안, 성도들 간에도 평안이 항상 자리 잡아야 한다. 세상에 나가서 이 평안의 복음을 지속적으로 담대하게 증거 하여야 한다. 내 주변의 주를 모르는 영혼들의 마음에 이 평안의 복음이 영접되도록 중보하며 기도하고 상대방의 영혼에 하나님의 복음,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평안의 복음이 심겨 지기까지 섬겨야 한다.


넷째, 믿음의 방패.
로마 시대의 방패는 폭이 77센티미터, 길이가 120센티미터인 장방향의 적지 않은 것이었다. 공격해 들어오는 적의 창과 칼과 화살로부터 나의 몸을 온전히 다 가릴 수 있는 크기였다. 그러므로 이 방패의 이름인 ‘믿음’이란 온전한 믿음, 전적으로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는 신앙상태를 말한다. 주저주저 하는 믿음이 아니다. 반신반의하는 믿음이 아니다. 필요하면 믿고 필요 없으면 자기주장대로 하는 그런 인본적인 믿음이 아니다. 절대로 하나님 아버지만 믿고 따르는 그런 믿음으로 말씀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실 때에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셨다. “왜 의심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책망하신 적도 있으셨다. “네 믿음이 크도다.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의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도다”라고 칭찬하신 적도 있으시다. 심한 중풍병자인 하인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께 찾아 왔던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다. 중풍병자를 들것에 메고 와서 지붕을 뚫고 환자를 예수께 달아 내렸던 네 사람의 믿음을 칭찬하셨다. 귀신 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와서 “개들도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고 말하며 간절한 믿음을 표현했던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실 때에 그 딸에게서 귀신이 떠나가고 깨끗해졌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진들의 이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벌써 2016년도 1월이 다 지나갔다. 지난 한 달을 어떻게 살아 왔나. 믿음으로 살아 왔다. 하나님을 속이고 예수님을 속이고 성령님을 속이고 대강 대강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면서 되는 대로 살아오지는 않았나. 송구영신 예배 때의 결단과 각오와 서원한 기도의 내용들을 날마다 실천하며 살아 왔는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인본적으로 살면서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면 안 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는 초청과 도전의 말씀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예배, 기도, 찬송, 말씀 묵상, 십일조, 전도, 가정 예배, 봉사, 헌신, 나눔, 돌봄, 섬김, 베품”등의 체크 리스트를 갖고 매시간 매일 매주 매달 자기의 영적 체크 리스트에 성실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그렇다.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적은 것이다. 재물이 없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적은 것이다. 재주가 없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다. 은사가 없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적은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고 하셨다. 당시에는 화살에 불을 붙인 불화살이 있었다. 믿음의 방패를 가지면 그런 적군의 불화살이라도 능히 막을 수 있다고 하였다.


다섯째, 구원(救援)의 투구.
온 몸이 다 소중하지만 머리가 중요하다. 그 머리에 쓰는 것이 투구이다. 그 투구의 이름은 ‘구원’이다. 그렇다. 성도인 우리가 평생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데 결국 나중에 가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 평생의 믿음 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나. 성도인 우리가 남들에게는 복음을 전해서 남들은 구원하게 하고 자신은 구원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한가. 

가롯 유다의 마지막 불행이 무엇인가. 그는 예수의 12제자들 중의 한 사람이면서도 그 나중이 구원에서 멀어진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말았다. 왜 마귀를 조심해야 하나. 요한복음 13장 27절에 보면 가롯 유다는 예수님과 다른 제자들과 함께 그 마지막 밤의 만찬 자리에 함께 식탁에 앉아 있었다. 예수님과 맞은편에 앉아서 식사하였다. 예수님과 한 떡 그릇에 손을 함께 넣으며 그 밤에 다 같이 유월절 음식을 먹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요13:27)고 했다. 사탄이 무엇인가. 마귀이다. 마귀, 귀신, 사탄을 주의해야 한다. 과거에 보이지 않는 연탄가스가 방바닥으로 스며들어 와서 잠을 자는 동안에 목숨을 잃는 이들이 얼마나 많았나. 사탄이란 것이 그런 것이다. 가만히 들어와서 인생을 사망으로 몰고 가고, 가족을 사망으로 몰고 간다. 

육신의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영적으로 구원 받지 못하게 멸망으로 끌고 간다. 가롯 유다는 제자 출신이지만 구원에서 멀어져간 역사적인 불행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탈 때에 헬멧에 중요하듯이 신앙생활은 구원의 투구를 반드시 써야 한다. 투구는 멋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결코 장식품이 아니다. 투구는 생명과 직결되고 구원과 직결되는 것이다. 그 투구의 이름이 ‘구원’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고 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장과 그 집안사람들이 그 밤에 사도 바울과 실라가 전해주는 구원의 복음을 영접하였다. 그 밤에 세례를 받았다.  그 밤에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음식을 차려서 대접하였다. “그와 그 온 집안에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고 하였다. 구원이란 그런 것이다. 구원은 현세적인 것이다.

암은 어디든 걸린다. 혀에 암이 걸려서 혀를 절단해 낸 환자 소식을 들었다. 신체의 다른 부위에서 조직을 이식하면 혀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의술이 놀랍고 신체 조직의 이식이 가능한 것이 신비하지 않나. 이식을 성공적으로 이룩하지 못하던 과거에 혀의 암이란 상상해 보라. 혀의 일부를 절단해 내는 그 상황을 말이다. 그러나 요즘의 의술은 암의 부위를 절단하고 새로운 신체 조직을 이식해서 혀의 기능을 회복하게 된 다니 놀랍고 신비하고 감사하지 않나.

수술의 의술 혜택도 그렇게 귀하고 감사하거늘 구원이란 생각하면 얼마나 놀라운 은총이며 선물인가. 에베소서 2장의 말씀처럼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해 주신 것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고 하였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9)고 하였다. 


여섯째, 성령(聖靈)의 검.
전신갑주 중의 유일한 공격 무기가 검이다. 그 검 즉 칼의 이름이 ‘성령’이다. 성령 중심의 신앙생활이 되어야 한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 불을 받아야 심령이 뜨거워진다. 초대 교회의 베드로 사도를 비롯한 120성도들을 보라. 3000명이 회개하고 세례 받은 장면을 보라. 남자만도 5천 명이 넘어서던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을 보라. 예루살렘에서 유다 사마리아를 벗어나 안디옥을 비롯하여 고린도, 에베소, 갈라디아, 빌립보, 로마를 향해 번져 갔던 복음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보라. 구체적으로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계신 말씀이다. 이 말씀이 아브라함을 불러 내셔서 믿음의 조상 되게 하신 것이다. 이 말씀이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과 기드온과 사무엘과 다윗과 솔로몬을 부르신 말씀이시다. 

오늘 날 나와 여러분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령의 역사가 말씀 안에서, 성령 안에서 역동적으로 바람처럼 불의 혀처럼 증거가 넘치게 역사하시기를 소망한다. 개인과 가족과 어른 아이, 성도 간에 말씀과 성령의 운동이 불길처럼 일어나야 한다. 일 주일 동안 교회에 다시 못와도 스스로 자신의 말씀 생활, 성령 중심의 생활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 음식을 먹어야 육체에 힘이 생기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친근히 하여야 그 말씀이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검도도 마찬가지다. 그처럼 말씀을 칼을 다루듯이 성령 안에서 자유자재로 쓰임 받아야 한다. 


기도와 간구 생활에 항상 힘쓰라.
말씀과 기도! 이것이 신앙생활의 대답이다. 나라마다 기차의 철로 위로 총알같이 빠른 기차가 달려간다. 신앙생활로 치면 그 두 철길의 이름이 말씀과 기도이다. 이제  2월 10일이 사순절의 시작이 성회 수요일이다 올해도 기도로 봄을 맞고 기도로 부활의 새벽을 맞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고단하다 바쁘다 하며 잠에 빠져 들지 말고 기도의 열심, 말씀 생활의 열심에 불이 붙기를 소망한다.

설명이 필요 없는 도전과 초청의 말씀을 하시지 않나.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

기도와 간구 생활의 열심을 가지자. 유튜브에서 우연히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연습 장면을 보았다. 그의 발도 보았다. 우리는 무대 위에서 백조처럼 공중으로 사뿐히 뛰어 오르는 날아오를 듯한 그녀의 모습에 감탄한다. 그러나 그녀의 그 초인적인 연습량과 그의 발의 모습을 보면 세계 정상에 서는 한 분야의 대가의 숨겨진 비밀을 보게 된다. 

올 한해 우리 교회, 우리 가정, 우리 자신 각자의 영적 승리의 정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정도에 좌우하게 될 것이다. 항상 기도하자. 성령 안에서 기도하자.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자. 여러 성도들을 위하여 구하자.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방에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사도 바울의 생각에 하나님께서 그 때 그 때마다 적절한 말씀을 주시도록, 당연히 할 말을 담대하게 전파할 수 있도록 중보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우리도 서로 간에 이와 같은 기도의 부담을 갖고 서로를 대하자. 기도의 불길이 붙는 가정, 개인, 속회, 교사, 성가대, 부서와 기관, 영 유아, 유치, 유 초등, 중 고등 청년대학생 어른 노인 누구나 기도의 용사가 되자. 

사도 바울은 비록 감옥에 갇혀 있을 지라도 기도의 능력을 믿었다. 기도하면 베드로와 요한, 바울과 실라의 때에 옥문이 열리게 해 주신 기적처럼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이다. 기도하면 새로운 일, 놀라운 일,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들이 전해질 것이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무장하고 날마다 승리하는 하나님의 군사가 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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